中國 왕이__30 外交擔當 國務委員 兼 外交部長의 訪北은 큰 注目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巨大한 ‘뉴스의 블랙홀’이 되어 버린 祖國 法務部 長官 候補者 탓이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北-美 實務會談의 進陟이 거의 없고 非核化 對話의 動力이 뚝 떨어진 狀況에서 왕이의 訪北이 큰 變數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判斷도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왕이, 北-중은 ‘風우동주’
왕 部長은 3日 카운터 파트인 리용호 外務相과 會談을 했습니다.
왕 部長은 特有의 四字成語를 引用했습니다. ‘비바람 속에서 한배를 타고 江을 건넌다’는 뜻의 風우동주(風雨同舟)란 말을 꺼냈는데 흔들림 없는 北-中 友好關係를 誇示한 것입니다.
連日 北韓이 韓國을 겨냥한 短距離 彈道미사일을 쏘아 대고, 美國과는 冷冷하다 못해 破局을 떠올리게 할 狀況에서 왕이의 訪北은 어떤 意味를 갖는 것일까요?
몇 가지 숨어 있는 코드를 찾아 봤습니다.
첫째 中國 專門家들은 왜 對外連絡部長이 아닌가에 注目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北韓과 中國은 이른바 抗美援朝(抗美援朝·美國에 反對하고 北韓을 支援한다) 戰爭을 치른 사이이고 둘 間의 關係는 國家樹立以前 共産黨間의 交流에서 始作됐다고 主張합니다.
그래서 傳統的으로 中國의 訪北謝絶 代表는 共産黨 對外連絡部長이 맡는 게 慣例였습니다. 兄弟關係이고 一種의 特殊關係라는 對外的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럼 왜 왕이냐는 겁니다. 訪北團을 왕이가 이끈 것은 單純히 지나치기에는 重要한 意味가 담겨 있습니다. 시진핑 主席은 숭타오 對外連絡部長 代身 왕 部長을 擇함으로써 ‘脣亡齒寒(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라는 特殊關係가 아닌 正常的인 國家 間의 外交關係로 北-中 關係를 다루겠다는 뜻을 傳한 것으로 解釋할 수 있습니다.
外交長官 會談에서 中國에게는 가장 敏感한 外交懸案人 홍콩問題를 言及한 것도 延長線上에서 볼 수 있습니다. 對外連絡部長이 共産黨 次元에서 言及할 問題는 아니라는 거죠.
셋째 왕이가 訪問함으로써 리용호 部長과 主로 다뤘을 議題는 非核化와 關聯한 內容이었을 것으로 推論할 수 있습니다. 왕이_ 2003年 8月 始作된 6者 會談에 副部長(次官級) 資格으로 中國 側 首席代表로 活躍했던 人物입니다. 一角의 觀測처럼 올해 北-中 修交 70周年을 맞아 金 委員長의 訪中問題를 論議하는 것은 오히려 副次的인 問題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番 왕 部長이 金 委員長의 訪北으로 이어질까요?
過去 事例를 보면 答辯은 肯定的입니다. 왕 部長이 歸國한 뒤 사흘 만에 金 委員長은 두 番째 訪中 길에 올랐고 첫 北美頂上會談이 마무리 된 直後인 지난해 6月 19日에 또 한 次例 中國을 찾았습니다. 10月에는 △中國 國慶節(1日) △北-中 修交記念日(6日) △北韓 勞動黨 創黨日(10日) 等의 記念日이 줄줄이 이어진다는 點에서 天安門 望樓에 金正恩-시진핑이 나란히 오르는 그림을 떠올리는 展望도 나옵니다.
●‘9末 10秒’ 金正恩 訪中은 없다
하지만 많은 專門家들은 올해 1月 4次 訪中 길에 올랐던 金正恩 委員長의 追加 訪北은 可能性이 적다고 보고 있습니다. 6月 시 主席은 中國 指導者로서는 14年 만에 北韓을 찾았습니다.
訪北 可能性이 적다고 보는 理由는 金 委員長이 꼭 가야할 切迫性이 떨어진다는 點입니다. 1, 2 次 北-美 頂上會談을 전후해 中國과 戰略的 協力關係를 對外的으로 誇示했던 當時와 只今은 狀況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또한 이미 4次例의 訪中 및 시 主席의 訪北으로 經濟協力 褓따리를 든든히 챙겨둔 狀態이기 때문이 굳이 또 다시 訪中길에 오를 理由가 많지 않다는 點입니다.
實際로 3日 왕 部長은 “可能한 限 빨리 兩國 頂上間 重要合意를 履行할 意向이 있다”고 했습니다. 對北食糧, 油類支援 및 軍事協力 强化 等에 裏面合意를 했을 可能性이 점쳐지는 대목입니다.
궁금한 것은 왕이의 訪北 褓따리에 어떤 內容이 담겼을까 하는 點입니다. 現在의 非核化 實務協商의 膠着을 풀 創意的인 案이 包含됐을지 가 關鍵입니다. 韓國의 仲裁者 役割은 限界에 이르렀고 美國은 非核化 協商에 微溫的인 狀況에서 가장 多急해진 쪽은 오히려 中國이 됐다는 點이 아이러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