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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펑高 1000個를 받으면…” ‘65歲 코치’ 김광수가 말하는 反復의 힘[이헌재의 人生홈런]|東亞日報

“하루 펑高 1000個를 받으면…” ‘65歲 코치’ 김광수가 말하는 反復의 힘[이헌재의 人生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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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23年 12月 24日 12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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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野球 元年 멤버인 金光守 롯데 코치가 엄지를 치켜들어보이고 있다. 요즘도 꾸준히 握力 運動을 하는 오른손에 힘이 넘쳐 보인다. 이헌재 記者 uni@donga.com


‘날다람쥐’라는 別名으로 불렸던 金光守 프로野球 롯데 코치(64)는 홈런을 많이 치는 選手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打率이 아주 높지도 않았다. OB 베어스(現 두산)에서 뛴 11시즌 동안 通算 홈런은 27個였고, 通算 打率 亦是 0.249에 不過했다.

하지만 現役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동안 그는 여러 次例 팀 內 最高 年俸을 받았다. 방망이는 弱했지만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選手였기 때문이다. 그는 탄탄한 守備와 相對의 虛를 찌르는 走壘, 그리고 뛰어난 作戰 遂行 能力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腎臟(165cm)에도 不拘하고 그는 當代 最高의 2壘手 中 한 名으로 評價받았다.

김광수 코치(왼쪽)이 2008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홈런을 친 이승엽과 양손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金光守 코치(왼쪽)李 2008베이징 올림픽 日本과의 準決勝에서 홈런을 친 이승엽과 兩손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東亞日報 DB


1992年을 마지막으로 現役에서 隱退하고 指導者로 變身한 後에도 그는 默默히 現場을 지켰다. 1993年 OB 守備코치를 始作으로 高陽 원더스 首席코치, 한화 이글스 首席코치 等을 지냈다. 韓國 프로野球의 代表的인 名將들人 김인식 前 監督, 김경문 前 監督, 金聲根 前 監督 等 ‘3金(金)’을 모두 補佐했다.

國際大會에도 여러 次例 나서 韓國 野球의 榮光을 함께했다. 2008年 베이징 올림픽 때는 김경문 前 監督을 도와 韓國의 9戰 全勝 金메달에 힘을 보탰다. 李承燁, 이대호 等이 決定的인 홈런을 치고 들어올 때 3壘 走壘코치로 하이파이브를 나눈 게 바로 그였다. 2015年 프리미어12때는 김인식 前 監督과 함께 初代 優勝의 感激을 누렸다.

현역 시절 해태 이순철(오른쪽)과 도루왕을 다퉜던 김광수 코치. 동아일보 DB
現役 時節 해태 이순철(오른쪽)과 盜壘王을 다퉜던 金光守 코치. 東亞日報 DB


그리고 10月 末 그는 이番엔 7年 連續 韓國시리즈 進出에 빛나는 김태형 롯데 新任 監督의 부름을 받았다. 2017年 韓華 以後 6年 만의 그라운드 復歸다. 그는 來年 시즌 金 監督을 輔弼해 롯데의 復活을 돕게 된다. 補職은 選手團의 雰圍氣를 추스르고, 金 監督에게 助言을 하는 役割의 벤치코치다. 그는 “監督님이 電話로 ‘같이 한 番 해보시죠’라고 提案을 해 주셨다. 現場에 復歸하게 돼 너무 幸福하다. 내가 그동안 人生을 나쁘게 살지 않았던 것 같다. 롯데의 野球를 하나로 만드는 게 내 任務다.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熱心히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金 監督에게 金 코치는 8年 先輩다. 1995年 두산의 優勝 때 김태형 監督은 捕手 마스크를 쓴 選手, 金光守 코치는 守備코치였다. 하지만 金 監督은 팀內 疏通을 위해 선뜻 먼저 손을 내밀었다. 金 監督은 “監督이 모든 걸 完璧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못 보는 部分을 누군가는 볼 수 있어야 팀이 强해진다”고 金 코치 迎入 背景을 說明했다.

金光守 롯데 코치가 지난 달 金海 상동球場에서 열린 롯데의 마무리캠프 때 選手들에게 펑高를 쳐주고 있다. 롯데 提供


1982年 出帆한 韓國 프로野球 元年 멤버인 金 코치는 來年에 65歲가 된다. 1993年 처음 코치 生活을 始作했으니 來年엔 코치로서 보낸 時間도 30年이 넘게 된다. 普通 사람들의 偏見을 깨고 그가 다시 現場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身體的, 精神的으로 如前히 準備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일구會腸을 맡고 있는 그는 꾸준히 野球와의 끈을 이어왔다. 種種 野球場을 찾아 競技를 보며 選手들이 예전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競技의 흐름은 어떤 式으로 變했는지를 觀察했다. 黃金獅子期 全國高校野球大會 等을 찾아 아마選手들의 모습도 지켜봤다. 母校인 선린인터넷고에서 인스트럭터를 맡기도 했다.

그는 예전부터 어린 選手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親和力이 좋은 코치였다. 이제는 孫子뻘의 어린 選手들과 함께 땀을 흘려야 한다. 그는 “運動場에서는 즐겁고 幸福하게 運動을 해야 한다. 하지만 結果도 함께 얻어야 한다”며 “우리는 프로다. 프로라면 어느 程度 苦痛이 따르는 건 當然하다. 準備한 過程이 酷毒한 만큼 좋은 結果가 나올 可能性이 높아진다”고 平素 自身의 持論을 밝혔다.

2010년 자선 야구 때 공을 피하는 김광수 코치 .   동아일보 DB
2010年 慈善 野球 때 공을 避하는 金光守 코치 . 東亞日報 DB


돌이켜보면 그가 守備 하나만큼은 當代 最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酷毒한 過程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上下關係가 嚴格하던 中學生 時節 그는 한 1年 先輩의 守備 파트너였다. 그가 공을 던지면 그 先輩가 공을 치는 訓鍊을 했는데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더란다. 그래서 그는 “제가 100個 連續 공을 받으면 끝내는 걸로 하자”라고 먼저 提案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訓鍊을 끝내기 위해 그는 集中力있게 守備를 했다. 그는 “하나라도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始作해야 했기에 渾身의 힘을 다했던 것 같다. 意圖치 않게 守備 練習을 많이 하게 됐다”고 했다.

高校 때는 ‘意圖치 않게’ 배팅볼을 던지며 集中力을 키웠다. 當時 1學年들은 3學年에게 배팅볼을 던졌는데 當時엔 배팅볼 投手를 위한 保護網이 없었다고 한다. 방망이에 제대로 맞은 功은 곧바로 投手를 向해 날아오곤 했다. 그는 “一旦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자칫하다간 한 房에 갈 수 있으니 어떻게든 공을 避해야 했다”며 “나중에는 몸쪽 깊은 쪽으로 공을 던지는 노하우가 생겼다. 그렇게 던져야 强한 打毬가 내 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그런 게 悚懼 練習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펑고의 달인’ 김성근 전 감독에게 펑고를 배운 김광수 코치는 요즘도 선수들에게 펑고를 쳐주곤 한다. 사진은 2017년 WBC 대표팀 때의 모습. 동아일보 DB
‘펑故意 達人’ 金聲根 前 監督에게 펑高를 배운 金光守 코치는 요즘도 選手들에게 펑高를 쳐주곤 한다. 寫眞은 2017年 WBC 代表팀 때의 모습. 東亞日報 DB


決定的인 건 프로 入團 後 김성근 監督을 만난 것이었다. 金 監督은 當時 OB 投手코치였지만 코치가 不足했던 當時엔 投手코치도 野獸들에게 펑高를 쳐주곤 했다.

‘펑故意 達人’이라 불리던 金 監督은 한 番 방망이를 잡으면 쉽게 놓는 法이 없었다. 하루 1000個가 基本이었다. 點心 食事 後 始作하면 저녁 먹기 前까지 펑高를 치는 일이 不知其數였다. 金 코치는 “하루에 1000個를 치는 사람도 대단하고, 그걸 받는 사람도 대단하다”며 “처음엔 공을 따라 몸이 움직였다. 그런데 하루 1000個씩 공을 받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境地에 이르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守備 뿐 아니라 走壘에도 一家見이 있었다. 그는 隱退 한 시즌 前인 1991年에 無慮 50個의 盜壘를 했다. 마지막까지 競合 끝에 盜壘王은 이순철(해태)에게 내줬지만 그해 盜壘 2位에 올랐다.

그런데 世間의 評價와 달리 그는 스스로는 駿足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事實 내가 그렇게 발이 빠른 便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瞬間 投手들의 習慣이나 砲手의 弱點들이 보이기 始作하더라”며 “나는 體軀도 작고 힘도 떨어지는 選手였다. 代身 競技의 흐름을 남들보다 더 熱心히 읽으려 努力했다”고 했다.

金光守 코치는 틈날 때마다 가벼운 山行을 하며 다리 筋力을 維持한다. 金光守 코치 提供


그렇게 平生 長點은 살리고, 모자라는 部分은 채우면서 살아온 그는 健康 管理에도 熱心이다. 더구나 訓鍊 때나 競技 내내 서서 있어야 하는 ‘現役’ 코치로 한 시즌을 버티려면 强靭한 體力이 있어야 한다.

競技나 訓鍊이 없는 날 그의 하루는 沐浴으로 始作한다. 아파트 團地 內 사우나에 가서 半身浴을 20分 假量 한 後 冷湯에서 몸을 식힌다. 以後 다시 사우나에서 20分假量 다시 땀을 낸 後 冷湯으로 마무리한다.

金光守 코치(왼쪽)은 週末이면 親舊 및 知人들과 함께 山을 오르곤 한다. 金光守 코치 提供


다리 筋力은 가벼운 登山으로 維持한다. 週末이면 親舊들과 함께 서울이나 隣近의 아차산과 청계산, 검단산 等을 오른다. 山에 가지 않을 때에는 집 周邊에 있는 서울 올림픽公園 等을 한 두 時間 假量 걷는다.

그는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瞬發力과 스피드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管理하는 만큼 老化를 늦출 수 있다”며 “어떻게든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움직을 수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隨時로 악력器를 利用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自然스럽게 兩손에 악력器를 들고 TV를 보곤 한다”며 “選手들에게 펑高를 쳐주려면 손아귀 힘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펑고는 무척 單純해 보이지만 제대로 하려면 相當한 技術이 必要하다. 選手가 다리를 움직이게 쳐줘야 한다. 10cm 안팎의 差異를 낼 수 있어야 한다. 選手가 팔을 쫙 펴서 잡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게 좋은 펑고다.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르지만 나도 選手들과 함께 野球場에서 오래 재미를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記者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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