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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하면 上島洞이었는데…” 46年 이웃들과 6分 作別人事|東亞日報

“YS하면 上島洞이었는데…” 46年 이웃들과 6分 作別人事

  • 東亞日報
  • 入力 2015年 11月 27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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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前大統領 國家葬]슬픔에 잠긴 상도동 自宅 周邊

永訣式을 마친 뒤 故 김영삼 前 大統領의 運柩 行列은 서울 동작구 上島洞 私邸로 向했다. 1969年 以後 大統領 在任 時節을 除外하고 줄곧 머물렀던 곳이다. 獨裁政權 時節에는 苦楚의 象徵이었고 大統領 當選 때는 歡喜의 空間이었다.

26日 金 前 大統領의 ‘마지막 歸家’를 지켜보기 위해 上島洞 住民 70餘 名이 私邸 近處 골목을 가득 메웠다. 午後 4時 10分頃 金 前 大統領의 運柩次인 검은色 에쿠스 車輛이 私邸 앞에 到着했다. 金 前 大統領의 孫子이자 長男 은철 氏의 아들인 성민 氏가 두 손으로 故人의 影幀을 품에 안은 채 마당으로 들어섰다. 次男 賢哲 氏 等 遺族 20餘 名도 성민 氏의 뒤를 따랐다. 손명순 女史는 健康 狀態를 考慮한 듯 車輛에서 내리지 않았다.

自宅 玄關 階段을 통해 집으로 들어선 성민 氏가 가장 먼저 向한 곳은 안房. 玄關 複道 左側의 안房을 한 바퀴 돈 뒤 金 前 大統領의 影幀은 맞은便 食堂으로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金 前 大統領이 손님을 맞이했던 居室. 마지막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일까. 金 前 大統領의 影幀은 1分假量 居室에서 머물렀다. ‘ㄷ’字로 소파가 놓인 이곳 壁面 正中央에는 直接 쓴 붓글씨 ‘松柏長靑(松柏長靑)’을 담은 額子가 걸려 있었다. 左側에는 美國 조지 H W 부시 前 大統領 富者와 찍은 記念寫眞이 걸려 있었고 오른쪽에는 젊은 時節 金 前 大統領이 演說을 하는 黑白寫眞이 걸려 있었다.

金 前 大統領의 影幀은 2層과 屋塔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上島洞 私邸에 머무른 時間은 約 6分. 金 前 大統領이 이곳에 머문 46年이라는 歲月을 勘案하면 짧은 時間이었다. 집 밖으로 나온 遺族은 차분한 表情으로 다시 車輛에 올라탔다. 運柩 行列은 近處 500餘 m 거리의 記念館 앞에서 5分餘 머무른 뒤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淡淡한 遺族의 表情과는 對照的으로 一部 上島洞 住民은 울음으로 故人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맞이했다. 1997年부터 상도동에 살았다는 서채숙 氏(69·女)는 “상도동 自宅을 訪問했을 때 金 前 大統領 內外와 함께 찍은 寫眞을 平生 所重히 간직하겠다”며 손手巾으로 눈물을 훔친 뒤 運柩 行列을 따라 顯忠院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生前의 金 前 大統領과 周邊 人士들이 자주 利用했던 無窮花理容院의 안主人 정순임 氏(62·女)는 “(運柩 行列 때문에) 放送局 車가 많이 온 것을 보니 1993年 大統領 當選 當時가 기억난다”며 “김영삼 大統領 하면 곧 上島洞이었는데…”라고 말하고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老人 5名은 골목을 빠져나가는 에쿠스 車輛을 向해 마치 살아있는 金 前 大統領에게 人事하듯 고개를 깊숙이 숙이기도 했다. 金 前 大統領의 마지막 歸家를 永遠히 記憶하려는 듯 携帶電話를 꺼내 運柩 行列을 찍는 住民도 여럿 있었다.

이날 상도동 私邸에서 記念館으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1200餘 名의 市民이 모여 金 前 大統領을 哀悼했다. 故人이 마지막으로 訪問하고 떠난 상도동 自宅 앞 道路에는 흰色 菊花꽃 7송이가 남아 追慕의 뜻을 더했다.

金 前 大統領의 故鄕인 慶南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老人 20餘 名은 焚香所 길 건너 敬老堂에 모여 金 前 大統領의 마지막 가는 길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特히 손명순 女史가 獻花를 하는 順序에서는 1950年代 初盤 孫 女史의 ‘새宅 時節’을 回想하며 안타까움을 나누기도 했다. 畵面에 金 前 大統領 影幀이 비칠 때마다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강홍구 windup@donga.com·유원모 / 巨濟=강정훈 記者
#金永三 #前大統領 #前大統領 #ys #逝去 #國家葬 #上島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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