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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2014]엄마 3人 눈물에 비친 事件事故|東亞日報

[되돌아 본 2014]엄마 3人 눈물에 비친 事件事故

  • 東亞日報
  • 入力 2014年 12月 29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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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年 한해 눈물 마를 새 없었던, 어머니
리조트 崩壞, 歲月號 沈沒, 軍 苛酷行爲… 가슴 무너졌던 3人
“울지 않을게, 무너지지 않을게, 엄마가 곁에 있을게”

《 2014年 大韓民國 어머니들의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고 검게 타들어 갔다. 各種 事件事故에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다. 2月 競走 리조트 體育館 崩壞로 새내기 大學生이 犧牲되고, 4月엔 歲月號 沈沒로 修學旅行 가던 靑少年들이 慘變을 當했다. 나라를 지키라고 보낸 씩씩한 아들은 멍투성이 주검으로 돌아왔고, 銃器亂射 事件의 犧牲者가 된 아들도 있었다. 永遠히 아물지 않을 傷處를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 3名을 만나봤다.

慶北 慶州 마우나리조트 崩壞 事故로 重傷을 입은 장연우 氏는 비싼 옷을 사주면 “나는 아직 어려서 이런 것 必要 없다”며 도리어 火를 내던 속 깊은 딸이었다. 檀園高 2學年 정차웅 君은 밥床에 앉아 學校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조잘대곤 했다. 윤승주 一兵은 엄마가 39歲에 얻은 늦둥이 외동아들이었다. 2014年 國民을 憤怒와 슬픔에 빠뜨렸던 事件·事故의 犧牲者들이다. 이들 앞에 그 누구보다 아파했을 이는 바로 어머니다. 家族과 幸福한 時間을 보낼 歲밑度 이들에겐 아픔과 苦痛의 나날일 뿐이다. ‘苦痛을 어떻게 이겨 내고 있느냐’는 質問에 어머니들은 이렇게 되물었다. “새해엔 우리도 웃을 수 있을까요?” 》

▼ 2月 17日 慶州 마우나리조트 崩壞… 장연우 量 10個月 看病 이정연 氏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로 중상을 입은 장연우 씨의 어머니 이정연 씨가 23일 통증에 몸부림치는 딸의 손을 잡고 고통이 사그라지기만을 묵묵히 기도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慶州 리조트 崩壞 事故로 重傷을 입은 장연우 氏의 어머니 이정연 氏가 23日 痛症에 몸부림치는 딸의 손을 잡고 苦痛이 사그라지기만을 默默히 祈禱하고 있다. 김미옥 記者 salt@donga.com
내 아이가 무너진 지붕과 눈 더미에 깔려 있을 것만 같았다. 2月 17日 午後 11時 TV에서 慶北 慶州 마우나리조트 體育館 崩壞 消息을 接하고 이정연 氏(53)는 끔찍한 確信에 사로잡혔다. 엄마의 直感은 무섭도록 正確했다. 그날 以後 306日 만인 19日 病室에서 만난 李 氏의 딸 장연우 氏(20·釜山외국어대)는 鎭痛劑를 맞은 지 5時間 만에 다시 苦痛을 呼訴했다. 새빨개진 얼굴을 감싼 두 손 사이로 눈물이 흘렀지만 엄마가 들을까 걱정하는 딸은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事故 以後 엄마 이 氏는 한時도 연우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骨盤뼈와 넙다리뼈에 쇠를 박아 固定하는 한便 銅像으로 怪死한 皮膚를 떼어 내고 移植했다. 熱이 40度까지 오르는데도 연우는 이틀에 한 番꼴로 7, 8時間씩 手術을 받았다. 그렇게 只今까지 받은 手術이 28番. 組織을 떼어 낸 皮膚를 消毒하는 것도 엄청난 苦痛이었다. 가장 强하다는 鎭痛劑도 所用이 없었다. 무엇보다 家族이 옆에 없으면 연우가 不安해했다. 窓門이 바람에 덜컹距離면 “建物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고 悲鳴을 질렀다.

10個月의 病院 生活 동안 이 氏도 많이 아팠다. 두 달 넘게 每日 울면서 지냈다. 甚한 스트레스로 잇몸 神經도 痲痹됐다. 서서 연우를 看護한 탓에 다리도 부어올랐다. 몸과 마음이 말라 버린 엄마지만 아픈 딸에게서 希望을 얻는다고 했다.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고 病室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었지만 연우는 “꼭 나아서 學校로 돌아갈 거야”라고 말했다.

“휠체어만 打倒 所願이 없겠어요.”

엄마의 새해 所望이다. 再活治療를 받아 다시 일어서고, 연우가 工夫를 마치기를 懇切히 바란다. 病院 生活의 어려움을 說明할 때도 淡淡하던 이 氏는 自身이 바라는 딸의 未來를 言及하는 대목에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4月 16日 歲月號 慘事… 차웅이 가슴에 묻은 김연실 氏

‘차웅이 엄마’ 김연실 씨가 세월호 참사 열흘 전 막내아들 고 정차웅 군과 함께 밝게 웃고 있다. 차웅이는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패밀리레스토랑을 찾았다. 김연실 씨 제공
‘차웅이 엄마’ 김연실 氏가 歲月號 慘事 열흘 前 막내아들 고 정차웅 軍과 함께 밝게 웃고 있다. 車웅이는 엄마의 生日을 祝賀하기 위해 家族과 함께 패밀리레스토랑을 찾았다. 김연실 氏 提供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막내아들을 불렀다. 저녁에 끓일 된醬찌개에 넣을 豆腐를 사오라고 했다. 答이 없다. TV 소리가 크다. 畵面에 빨려 들어갈 듯이 集中하고 있을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居室을 向해 더 크게 아들을 불렀다. 그래도 答이 없다. ‘아차’ 하는 瞬間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딸같이 살갑던 아들은 이제 없다. 習慣처럼 아들 이름을 부른 입이 怨望스러워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려 서둘러 다시 일어서서 접시에 묻은 거품을 닦아 냈다. 무너질 수는 없다. 子息을 먼저 보내고도 살아야만 하는 엄마의 몫이다.

김연실 氏(46)의 막내아들 京畿 安山 檀園高 2學年 고 정차웅 軍(17)은 歲月號 慘事 當日(4月 16日) 가장 먼저 死亡者로 確認됐다. 입고 있던 救命조끼를 벗어 親舊들을 求하고 남은 親舊들을 찾으러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정작 自身은 救命조끼도 입지 못한 채 屍身으로 發見됐다.

막내아들을 잃은 金 氏의 삶은 송두리째 變했다. 먼저 이름을 지웠다. 사람들은 金 氏를 ‘차웅이 엄마’라 부른다. 올해 10月 다니던 職場도 그만뒀다. 全國을 돌며 더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抑鬱한 죽음을 記憶할 수 있도록 懇談會에 參席하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길바닥에서 비닐 한 張 깔고 老宿도 하고 抑鬱하다고 소리도 쳐 봤다. 그러면서도 ‘의로운 차웅이’의 이름에 걸맞은 엄마가 되기 위해 些少한 交通法規 하나라도 어기지 않을까 몸가짐에 神經 썼다. 차웅이 엄마의 마지막 所願은 차웅이를 비롯한 단원고 學生들이 義死者로 指定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의로운 行動을 證明할 直接的인 證據가 없고 生存者들의 證言이 明確하지 않다는 理由 때문에 義死者 指定은 미뤄지고 있다. 21日 檀園高 生存 學生 朴某 孃(17)李 事故 트라우마 때문에 自殺을 企圖한 가운데 차웅이 엄마는 조심스럽다. 그래도 말한다. “엄마로서 子息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에요. 죽음의 門턱에서도 親舊를 먼저 생각한 아이들의 의로운 行動이 제대로 評價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4月 7日 軍內 暴行 死亡… 尹 一兵 위해 나선 안미자 氏


엄마의 손길을 아들은 아는지.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씨가 23일 영정 사진이 돼 버린 아들의 부대 배치 후 기념사진을 정성스레 어루만지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엄마의 손길을 아들은 아는지. 윤승주 一兵의 어머니 안미자 氏가 23日 影幀 寫眞이 돼 버린 아들의 部隊 配置 後 記念寫眞을 정성스레 어루만지고 있다. 홍진환 記者 jean@donga.com
아들은 電話機 너머로 한숨만 쉬었다. “엄마, 來日 오지 마. 訓鍊 가야 해.” 갈비찜을 푸짐하게 準備했던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첫 面會의 期待를 접었다. 4月 4日 이 通話가 아들과의 마지막 對話였다.

이틀 뒤인 6日 軍에서 電話가 왔다. “윤승주 一兵이 飮食을 먹다 목에 걸려 病院으로 가고 있습니다.” 病院에서 만난 아들은 온몸이 멍투성이에 성한 곳이 없었다. 아들은 그 狀態에서 눈도 떠보지 못하고 하루를 더 버티다 世上을 떴다. 3個月 半이 지나 民間團體인 軍人權센터에서 尹 一兵이 3月 3日부터 一週日을 빼고는 每日 暴行과 苛酷 行爲를 當했다는 內容의 搜査 記錄을 公開했다.

“내가 조금만 더 賢明했더라면… 面會를 갔더라면….” 23日 本報와의 인터뷰에서 尹 一兵의 어머니 안미자 氏(59)는 손手巾을 꺼내 눈가로 가져갔다. 아들이 어떤 일을 當했는지도 모르고 葬禮를 치르고 아들을 때린 先任들을 容恕하기로 마음먹었던 自身이 후회스러웠다고 했다. “毆打 事實은 알았지만… 그런 惡魔 巢窟에 있었으리라고는 想像도 못 했어요.”

아들이 맞아 죽었는데 君이 보인 態度는 安 氏로서는 到底히 納得하기 어려웠다. 8月까지 裁判이 進行되는 동안 搜査記錄도 보여 주지 않았고, 現場檢證에서도 家族을 排除했다. 輿論이 들끓은 뒤에야 軍 檢察은 傷害致死에서 殺人罪로 公訴狀을 變更했다. 그러나 10月 郡 法院의 1審 判決은 殺人罪가 아닌 傷害致死罪를 認定했다. 姨母 兵長(26) 等 加害者들이 凶器가 아닌 손과 발로 때렸고, 尹 一兵을 病院으로 옮겼기에 殺人의 未畢的 故意(積極的인 殺害 意圖는 없었더라도 ‘죽어도 相關없다’는 意思)를 認定할 만한 證據가 不足하다고 判斷했기 때문이다.

尹 一兵 暴行 死亡 事件이 알려진 뒤 어머니는 여러 番 記者會見을 했지만 每番 實名과 얼굴 公開를 꺼렸다. 尹 一兵의 두 누나와 다른 家族이 받을 傷處를 생각해서다. 그러나 29日 抗訴審 裁判날짜가 잡히면서 더以上 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軍이 事件을 隱蔽·縮小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내 아들의 죽음으로 郡內 苛酷行爲가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繼續 問題 提起를 할 겁니다.”

최혜령 記者 herstory@donga.com   
박성진 記者 psjin@donga.com   
강은지 記者 kej09@donga.com

#慶州 마우나리조트 崩壞 #歲月號 慘事 #군 暴行 死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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