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幕내리는 炭鑛時代… “삶의 터전 사라진다니 마음이 먹먹”|東亞日報

幕내리는 炭鑛時代… “삶의 터전 사라진다니 마음이 먹먹”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5月 2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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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歷史博物館 ‘石炭時代’展
한때 300곳 넘던 炭鑛, 3곳 남아
韓産業化 이끈 石炭의 歷史 照明
鑛夫-炭鑛 마을 生活上 等 다뤄… “石炭産業의 遺産 되짚어보기를”

1962년 강원 삼척시 도계광업소에서 광부들이 석탄을 캐기 위해 지하 갱도를 뚫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62年 江原 삼척시 도계鑛業所에서 鑛夫들이 石炭을 캐기 위해 地下 坑道를 뚫고 있다. 國家記錄院 提供
“죽을 고비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鑛山 德分에 子女 셋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鑛山은 제게 살아가는 힘을 줬습니다.”

컴컴한 炭鑛 속에서 꼬박 37年. 일찍이 家庭을 꾸려 23歲이던 1986年부터 地下 1000m 깊이의 막장에서 石炭을 캐내다가 지난해 退職한 이재대 氏(61)는 이렇게 말했다. 15年 前 發破 作業 途中 炭가루가 쏟아지면서 막장에 갇힐 뻔하기도 했지만, 炭鑛 德分에 그間 가장 役割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고. 體感 溫度 40度의 끔찍한 더위도, 날아다니는 石炭 가루도 이젠 追憶이 됐다. 그가 일했던 江原 태백시 장성鑛業所는 다음 달 門을 닫는다. “오랜 時間 몸담은 職場이 없어진다고 하니 마음이 먹먹합니다.”

1960年代 初盤까지 石炭은 石油를 凌駕하는 核心 에너지源이었다. 1960年代 經濟 開發에 이어 1970年代 午日 쇼크 때도 國家 經濟에서 石炭이 차지하는 役割은 至大했다. 그러나 값싼 輸入 石炭에 비해 國內 炭鑛의 採算性이 떨어지면서 炭鑛 數가 持續的으로 줄었다. 政府의 石炭 增産 政策으로 1988年 347個에 達했던 國內 炭鑛 數는 한 자릿數로 줄었다. 1986年 6萬8861名에 達했던 炭鑛 勤勞者 數도 現在 1000餘 名에 不過하다.

大韓民國歷史博物館은 聞慶·保寧·太白 石炭博物館과 함께 우리나라 産業化를 이끈 石炭의 歷史와 意味를 照明하는 ‘石炭時代’ 特別展을 지난달 26日부터 열고 있다. 이番 展示는 石炭에 삶을 依存했던 炭鑛마을 사람들의 삶을 多角度로 照明하고 있다.

1日 大韓石炭公社에 따르면 國內에 남은 炭鑛은 3個다. 이 가운데 國內 最大 炭鑛으로 1936年 門을 연 太白 장성鑛業所가 6月 30日 門을 닫는다. 來年 6月 江原 삼척시 도계鑛業所마저 廢鑛되면 國內에서 共營 炭鑛은 사라지게 된다. 國內 唯一의 民營 炭鑛인 三陟 京東 常德鑛業所는 아직 廢鑛 與否가 定해지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석탄시대’ 특별전에 전시된 1960년대 ‘증산보국’ 편액과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충남 
보령시 동명광업소장에게 수여한 훈장증(노란색 원). 훈장증은 당시 국가 경제에서 탄광이 차지한 위상을 보여 준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 鍾路區 大韓民國歷史博物館의 ‘石炭時代’ 特別展에 展示된 1960年代 ‘增産報國’ 扁額과 1979年 朴正熙 大統領이 忠南 보령시 東明鑛業所長에게 授與한 勳章症(노란色 원). 勳章症은 當時 國家 經濟에서 炭鑛이 차지한 位相을 보여 준다. 송은석 記者 silverstone@donga.com
이番 大韓民國歷史博物館 展示에서는 1960年代 石炭 産業의 雰圍氣를 보여주는 ‘增産報國(增産報國·石炭 生産量을 늘려 나라에 報答한다)’ 扁額과 朴正熙 大統領이 1979年 東明鑛業所 勞動者에게 授與한 勳章症 等 130餘 點이 展示된다. 3交代로 밤낮없이 일하던 鑛夫들의 作業 狀況과 安全敎育 敎材, 作業服 等 鑛夫들의 生活相을 보여주는 展示品度 볼 수 있다.

展示는 總 5部로 構成됐다. 프롤로그에선 石炭의 形成부터 産業革命까지의 歷史를 紹介한다. 太白에서 採炭된 約 1m 크기의 無煙炭과 數億 年 前 慶北 聞慶과 忠南 保寧에서 自生한 植物 化石을 선보인다. 2部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炭鑛 女性 勞動者나 鑛夫의 도시락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에필로그에선 廢鑛 以後 남겨진 石炭 産業遺産을 文化産業地域으로 活用한 事例들을 紹介한다.

‘鑛夫 畫家’로 불린 황재형 作家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不純物을 골라내는 女性 鑛夫를 그린 ‘先炭夫’, 헤드랜턴을 쓴 채 어두운 坑道에서 밥을 먹는 鑛夫들을 描寫한 ‘食事’ 等을 선보인다. 壓縮된 空氣를 動力으로 巖壁에 구멍을 뚫는 2.3m 높이의 鑿巖機 實物과 鑛夫들의 作業 映像도 볼만하다. 이 밖에 煉炭 비누를 直接 만들어 보는 體驗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한手 大韓民國歷史博物館長은 “우리에게 남겨진 石炭 産業의 遺産과 뜨거웠던 石炭 時代의 記憶을 되짚어 보는 契機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展示는 9月 22日까지. 無料.


社支援 記者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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