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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의 선동열을 무너뜨린 ‘龍 코치’ 金龍國…마이크 잡고 人生 2幕[이헌재의 人生홈런]|東亞日報

天下의 선동열을 무너뜨린 ‘龍 코치’ 金龍國…마이크 잡고 人生 2幕[이헌재의 人生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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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24年 4月 22日 12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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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龍國 TBC 野球解說委員은 選手 때부터 只今까지 肯定 바이러스가 넘치는 사람이다. 이헌재 記者 uni@donga.com


해태 타이거즈의 ‘檢빨 유니폼(검정色 下衣+빨간色 上衣)’李 相對 팀 選手들에겐 恐怖의 對象이던 때가 있었다. 特히 ‘無等山 爆擊機’ 선동열이 마운드를 지키던 1985年~1995年의 해태는 韓國시리즈와 같은 큰 競技에선 더욱더 剛한 팀이었다.

선동열을 앞세운 獬豸는 1986年부터 1989年까지 韓國시리즈 4連霸를 達成했다. 1990年에도 正規시즌 2位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5連霸를 正照準하고 있었다. 그해의 선동열로 말할 것 같으면 正規시즌 35競技에 登板해 22勝 6敗 4세이브 平均自責點 1.13을 記錄했다. 190과 3分의 1이닝을 던지는 동안 三振을 189個나 잡았다. 무엇보다 놀랍게도 그해 724名의 打者를 相對하면서 홈런은 單 1個만 許容했다.

김용국 TBC 해설위원의 장난스러운 모습.   김용국 제공
金龍國 TBC 解說委員의 장난스러운 모습. 金龍國 提供


하지만 三星과의 플레이오프 1次戰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反轉이 일어난다. 0-0으로 팽팽하게 進行되던 5回初 無死 2壘에서 선동열이 마운드에 올랐다. 打席에는 打率 0.220, 4홈런의 金龍國(62)이 있었다. 볼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로 몰린 狀況에서 친 功은 平凡한 1壘手 方面 파울플라이. 그런데 이 공을 捕手 장채근과 1窶籔 김성한이 서로 讓步하다가 떨어뜨리고 말았다.

죽다 살아난 김용국은 5球째 빠른 공에 냅다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방망이 中心에 제대로 맞은 打球는 쭉쭉 뻗어가더니 왼쪽 담牆을 살짝 넘어가는 홈런이 됐다. 김용국은 9回에도 선동열을 相對로 2打點 適時打를 치며 이날 팀이 얻은 4打點을 모두 올렸다.

衝擊을 받은 선동열은 2次戰에서 김용철에게 또 홈런을 許容하며 무너졌고, 三星은 3戰 全勝으로 해태를 꺾었다. 김용국은 “돌이켜보면 他者로서 最高의 瞬間이었던 것 같다. 天下의 선동열을 相對로 혼자 4打點을 올렸으니. 아마 그때가 포스트시즌에서 해태를 처음 깬 시리즈였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 코치 시절의 김용국 해설위원이 당시 외국인 선수 나바로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 위원은 2015년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나바로를 대신해 단상에 올랐다. 동아일보 DB
三星 코치 時節의 金龍國 解說委員이 當時 外國人 選手 나바로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金 委員은 2015年 골든글러브 施賞式 때 나바로를 代身해 壇上에 올랐다. 東亞日報 DB


하지만 해태를 꺾은 기쁨도 暫時. 創團 첫 韓國시리즈 優勝을 노리던 三星 앞에는 ‘신바람 LG’가 버티고 있었다. 그해 韓國시리즈에서 三星은 힘 한 番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LG에 4戰 全敗를 當했다.

여기서 다시 김용국의 말이다. “LG는 1990年과 1994年 韓國시리즈에서 優勝했는데 두 番 다 내가 持分이 좀 있다. 1990年에는 三星 選手로 4戰 全敗를 當했고, 1994年에는 太平洋 유니폼을 입고 4戰 全敗를 當했다. LG가 8番 이겼을 때 난 8番 졌다.”

따지고 보면 韓國시리즈에서 그만큼 많이 敗한 選手도 찾기 힘들다. 當時 2002年 첫 優勝을 차지하기 前까지 三星은 韓國시리즈에만 가면 異常하리만치 競技가 풀리지 않았고, 그는 恒常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選手 때 못 이룬 꿈은 指導者가 돼서 이뤘다. 三星은 2002年 첫 優勝을 始作으로 2005年과 2006年에도 韓國시리즈를 制霸했는데 그는 2006年 三星 2軍 코치로 在職하고 있었다. 三星은 2011年부터 2014年까지 韓國시리즈 4連霸를 하며 마침내 ‘王朝’를 이뤘다. 그는 1군 守備코치로 榮光의 瞬間을 함께 했다.

選手 時節 그는 名3窶籔로 불렸지만 골든글러브와는 因緣이 없었다. 뛰어난 守備 實力에 비해 打擊이 弱한 便이었고, 3壘手 포지션에는 한대화를 비롯한 强打者들이 櫛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年 當時 三星 外國人 選手 나바로가 2窶籔 部門 골든글러브를 받았을 때 故國으로 돌아간 나바로를 代身해 代理 受賞을 했다. 壇上에 선 그는 “選手 生活 11年을 했는데 (아무 賞도 못 받다가) 代理首相까지 하게 됐다”며 “꿈에 나바로가 나타났다. 나바로가 韓國말을 못하고 나도 스페인語를 못하지만, 2年間 함께 하니까 대충은 알아듣겠더라. 첫째로 ‘記者 분들게 監査하고, 成績이 안 좋았는데 繼續 起用해주신 류중일 監督님께 感謝하다’고 傳하더라”고 말해 爆笑를 자아냈다.

김용국-동빈 부자의 2009년 모습. 서울고를 나온 김동빈은 한화에 입단했다.  동아일보 DB
金龍國-동빈 富者의 2009年 모습. 서울고를 나온 김동빈은 한화에 入團했다. 東亞日報 DB


野球가 잘 될 때건 안 될 때건 그는 恒常 愉快한 사람이었다. 바로 그 特有의 肯定的인 態度를 바탕으로 그는 韓國人으로는 처음 美國프로野球에서 月給을 받는 코치가 됐다.

選手 隱退 後 暫時 實業野球 현대 피닉스 코치로 일했던 그는 1997年 家族들을 모두 데리고 美國으로 코치 硏修를 떠났다. 첫해 그는 밀워키 傘下 루키리그 코치를 했다. 이듬해인 1998年에는 밀워키 傘下 싱글A에서 守備 및 走壘 코치를 맡았다.

硏修 코치 身分이라 제대로 된 待遇를 받지 못했다. 첫해엔 遠征 競技 때 받는 밀 머니(食事費)가 고작이었다. 2年次엔 球團에서 6個月 치 아파트 렌트費를 支援해 준 게 다였다.

하지만 3年째 그는 球團과 正式으로 코치 契約을 했다. 아파트 렌트費 全額 支援에 年俸으로 3萬 달러를 받았다. 只今이야 3萬 달러가 큰돈이 아니지만 當時 마이너리그 코치로서는 相當히 좋은 條件이었다. 그는 “그대로 美國에 1, 2年 만 더 있었으면 마이너리그 팀 監督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김용국 위원화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대진 캐스터. 라디오로만 2000경기 넘게 삼성 경기를 중계한 베테랑 캐스터다.  김용국 제공
金龍國 위원貨 함께 呼吸을 맞추고 있는 김대진 캐스터. 라디오로만 2000競技 넘게 三星 競技를 中繼한 베테랑 캐스터다. 金龍國 提供


美國 코치 時節 그는 가운데 이름을 따서 “龍(Yong)”이라고 불렸다. 성실함과 樂天性, 親和力과 유머 感覺까지 고루 갖춘 ‘龍 코치’는 選手들 사이에서 人氣가 많았다. 英語를 잘하진 못했지만 眞心으로 이를 커버했다.

遠征 競技를 가면 한참 어린 選手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이나 食堂을 다녔다. 배고픈 마이너離居들에게 麥酒 한 甁씩을 돌리며 疏通하려 애썼다. 필드에서는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배팅볼을 던졌다. 球團으로서는 ‘龍 코치’ 같은 사람을 求하기 힘들었다.

1999시즌이 끝난 뒤 그의 年俸은 3萬 5000달러로 뛰었다. 1年에 두 番 韓國을 오갈 수 있는 飛行機 票도 求해주기로 했다. 願하면 시즌 막판 메이저리그 昇格度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1999시즌 後 스카우트를 겸해 韓國에 왔다가 LG 트윈스와 契約하게 된다. 그는 “美國 生活이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選手들과의 좋은 關係와 달리 周邊 코치들에게서는 남모를 猜忌 嫉妬를 받았다”며 “當時 LG 球團에서 손을 내밀어주면서 다시 韓國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프로野球 選手로 11年, 指導者로 19年 等 30年間 現場을 누볐던 그는 요즘엔 大邱 慶北地域의 民營放送社 TBC에서 野球 解說委員으로 일하고 있다. 말하는 것 좋아하고, 言辯이 좋은 그로서는 ‘天職’과 같다.

그는 昨年 下半期부터 單一팀 라디오 中繼로 2200競技를 넘게 中繼한 김대진 캐스터와 함께 呼吸을 맞추고 있다. 大邱를 緣故로 하는 팀이자 自身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三星의 正規시즌 前 京畿 144競技를 모두 따라다니며 라디오 中繼를 한다.

걸쭉한 大邱 사투리를 섞어서 하는 그의 解說에 對해 많은 팬들이 ‘傳說’이라고 評價한다. 여기서 傳說은 ‘傳說’이 아닌 ‘前에 없던 解說’의 줄임말이다. 大邱 慶北 地域이 아니더라도 애플리케이션 ‘티팟’을 다운받거나 유튜브 生中繼를 通하면 어디에서나 ‘傳說’의 解說을 들을 수 있다. 金龍國 解說委員은 “偏頗 中繼는 아니다. 다만 三星을 中心으로 한 ‘偏愛 中繼’인 것은 맞다”라며 “野球 좀 아는 아재와 함께 麥酒 한 盞 마신다는 氣分으로 들어주시면 된다. 브라질이나 美國 하와이 等 外國 聽取者가 많아서 놀랐다”며 웃었다.

當初 KT 首席코치를 마친 뒤 解說委員 提議를 받았지만 何必이면 成大 쪽에 問題가 생겨 手術을 받느라 解說 데뷔가 늦어졌다. 代身 경주고 監督으로 2年間 後學을 指導했고, 2021年부터는 景氣도 野球協會 監督官으로 活動하며 初·中·古瓦 大學野球, 그리고 獨立리그 現場을 누볐다. 昨年엔 獨立野球團 京畿道리그(7個팀) 選手들로 構成한 獨立리그 代表팀의 코치로 日本에도 다녀왔다.

삼성 선수 시절의 김용국. 국가대표로 LA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동아일보 DB
三星 選手 時節의 金龍國. 國家代表로 LA 올림픽에도 出戰했다. 東亞日報 DB


元來부터 健康 體質에 樂天的인 性格까지 갖춘 그이지만 成大 手術 後엔 健康에 더 神經을 쓴다. 무엇보다 數十 年間 피워왔던 담배를 單番에 끊었다. 그는 “마음을 먹자 禁煙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只今은 1年에 200萬 원 以上 아꼈다고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運動도 틈틈이 한다. 따로 時間을 내 피트니스센터를 찾기보다는 양치를 하면서 스쾃을 하거나 TV를 보면서 런지 動作을 하는 式이다.

그가 가장 推薦하는 運動은 代表的인 맨몸運動 中 하나인 팔굽혀펴기다. 그는 時間과 場所에 拘礙받지 않고 틈이 나면 팔굽혀펴기를 한다. 한 番에 20個 씩, 하루에 100個 內外를 한다.

그런데 팔굽혀펴기 個數를 세는 方式이 普通 사람들과 다르다. 大槪는 팔을 굽혔다 올라올 때 數字를 세지만 그는 내려갈 때 數字를 센다. 그는 “팔을 뻗은 狀態에서 버티고 있는 게 事實 크게 運動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팔을 굽히고 있는 狀態에서 버티는 건 運動 效果가 좋다”며 “平生 이런 方式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다 보니 어깨가 全혀 아프지 않다. 只今도 如前히 배팅볼을 던질 수 있는 어깨를 維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국 위원의 삼성 코치 시절 모습. 김 위원은 3루수로서 최고의 수비 실력을 뽐냈다. 동아일보 DB
金龍國 委員의 三星 코치 時節 모습. 金 委員은 3壘手로서 最高의 守備 實力을 뽐냈다. 東亞日報 DB


그는 解說을 하는 틈틈이 大邱에 있는 母校를 찾아 才能寄附를 한다. 프로野球 選手로 뛰었던 두 아들(동영, 동빈)李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차린 野球 레슨場에서 배팅볼을 던지기도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野球를 始作해 只今까지 野球를 할 수 있으니 너무 幸福한 人生”이라며 “只今 하는 解說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野球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未來의 나도 언제나 野球와 함께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헌재 記者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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