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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의 香氣]障壁 너머엔 어둠 뿐이었나… 다시 召喚한 東獨의 記憶|東亞日報

[冊의 香氣]障壁 너머엔 어둠 뿐이었나… 다시 召喚한 東獨의 記憶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2月 24日 01時 4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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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般市民 回顧-證言 바탕으로 41年의 明暗 立體的으로 담아
女性 91%가 일할 權利 누리고, 大學 進學率 西獨 앞지르기도
抑壓的 體制에서도 다채로운 삶… “殘忍한 狀況 속 回復力 보여줘”
◇障壁 너머/카트야 호이어 지음·송예슬 옮김/648쪽·3만3000원·서해문집

동독 사람들의 일상 1949년부터 1990년까지 존속한 독일민주공화국(DDR·동독)에는 수탈과 계획경제의 모순, 비밀경찰의 억압이 있었지만 다채로운 
일상과 사랑, 분투도 존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72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즐거워하는 베를린의 초등학생들(위 사진)과 발트해 
퀼룽스보른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독 시민들(두 번째 사진), 공산주의 혁명가의 이름을 딴 카를리프크네히트 중공업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 서해문집 제공
東獨 사람들의 日常 1949年부터 1990年까지 存續한 獨逸民主共和國(DDR·東獨)에는 收奪과 計劃經濟의 矛盾, 祕密警察의 抑壓이 있었지만 다채로운 日常과 사랑, 奮鬪度 存在했다고 著者는 말한다. 1972年 여름放學이 始作되자 즐거워하는 베를린의 初等學生들(危 寫眞)과 발트海 퀼룽스보른에서 休暇를 보내는 東獨 市民들(두 番째 寫眞), 共産主義 革命家의 이름을 딴 카를리프크네히트 重工業 生産라인에서 일하는 女性 勤勞者. 서해문집 提供
“姑母가 西獨에서 보내준 靑바지는 希望이었죠. 東獨 옷은 거의 입지 않았어요.”

靑年期를 東獨에서 보낸 한 女性은 後날 이렇게 回想했다. 그래도 그는 2021年 獨逸 統一의 날 行事에서 ‘東獨에서의 삶은 보잘것없었다는 偏見’에 不滿을 표했고 같은 해 退任式에서는 東獨 時節의 노래 ‘컬러필름을 잊었니’를 연주해 달라고 付託했다. 그는 統一된 獨逸에서 16年이나 總理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이었다.

이 冊은 1990年 10月 3日 사라진 獨逸民主共和國(DDR), 우리가 ‘東獨’이라고 불렀던 國家에 對한 記錄이다. 수많은 一般 市民들의 回顧, 證言, 記錄들이 겹겹의 層을 쌓으며 사라진 社會에 對한 立體的인 畫幅을 엮어낸다.

1949年 出帆한 東獨의 바로 서기는 始作부터 苦難이었다. 西獨을 비롯한 西유럽이 마셜 플랜으로 援助를 받을 때 東獨은 强奪에 시달렸다. 1945∼1953年 東獨 經濟 生産의 60%가 戰爭 賠償金으로 蘇聯에 徵發됐다. 學者와 技術者들도 家族과 함께 하루아침에 트럭에 실려 蘇聯으로 向했다.

1953年 物資 不足과 蘇聯의 干涉에 抗議하는 6月 17日 蜂起가 일어났다. 高級 人力을 中心으로 300萬 名 以上이 西方으로 빠져나가자 東獨 政府는 1961年 障壁 설치라는 强手를 두었다. 人道的 側面에서는 殘酷했지만 社會를 안정시키는 데는 效果가 있었다.

優等生 西獨과 比較되는 것이 不運이었을 뿐 東獨도 經濟的 發展을 經驗했다. 國民車 ‘트라비’는 10年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지만 1988年에는 東獨 家口 折半 以上이 車를 가졌다. 平凡한 家庭도 車를 타고 프라하나 北쪽 海岸으로 休暇를 갔다. 힘든 過去는 옛말이 됐지만 나이 들어 西獨으로 親知 訪問 許可를 받은 사람들은 自己들에겐 없어서 못 사는 物件이 兄이나 언니의 洞네에선 必要 없어 버려지는 光景을 보았다.

東獨 出身 英國人으로 다섯 살 때 統一을 經驗했고 그 傳해 베를린에서의 民主化 示威를 記憶하는 著者는 ‘故鄕 나라’의 어두웠던 面을 감추지 않는다. 投票는 贊反 與否만을 記入하는 形式的 節次였고, 슈타지(祕密警察)의 철통같은 監視 體制엔 最高權力者 발터 울브리히트마저 넌더리를 냈다. 西方의 豐饒를 艱辛히 따라 하려 努力했지만 커피 調達조차 쉽지 않았다.

이 나라가 간직했던 一部 밝은 面도 이 冊은 提示한다. 女性 91%가 勤勞에 參與했고 아이들은 良質의 公共施設에 맡겨둘 수 있었다. 大學 進學率도 西獨보다 훨씬 높았고 大學生 3分의 1은 勞動階級 子女들이었다. 1960年代 以後 이 나라의 삶은 ‘지루하고 安穩했다’고 著者는 말한다. 主流 消費量이 西獨보다 두 倍 높았던 것도 ‘삶이 견딜 수 없어서’라기보다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였다는 說明이다.

지난해 나온 이 冊은 ‘옛 西方’에서 좋은 反應을 얻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冊은 사라진 나라에 對한 信望이 아니라 殘忍한 狀況에서 人間의 回復力에 對한 讚辭를 보여준다’고 評했다. 東獨 體制를 記憶하는 獨逸에서의 評은 엇갈렸다. 東獨 出身 歷史學者 日코사샤 코발추크는 ‘이 冊은 國家가 市民의 日常에 미치는 抑壓을 輕視했다’고 批判했다.

울브리히트의 뒤를 이은 東獨 共産黨 書記長 에리히 호네커는 1972年 軍隊 視察 途中 ‘西獨은 外國이다’라고 宣言했다. 2年 뒤 그는 ‘憲法에서 獨逸 民族이라는 表現을 지우라’고 命令했다. 그 16年 뒤 그의 國家는 消滅했다. 우리는 언제쯤 ‘過去의 半쪽’에 對한 微視的이고 綜合的인 評價가 可能할까.


유윤종 文化專門記者 gustav@donga.com
#障壁 #東獨 #過去의 半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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