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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激變期 登板한 세이브 投手였다”|동아일보

“난 激變期 登板한 세이브 投手였다”

  • 東亞日報
  • 入力 2020年 8月 4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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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종 前總理 有故回顧錄 ‘人生 回想’
“1964年 韓日會談 反對示威때 學生-警察 돌팔매 몸으로 막고
1992年 大選때 中立內閣 맡아… 공정한 選擧 치러내 自負心”

1992년 중립내각 국무총리 시절의 춘재 현승종. 현 전 총리는 당시 대통령선거를 며칠 앞두고 부산시장을 비롯해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하는 대책회의를 연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이 터지자 부산시장을 경질토록 하는 등 발 빠르게 조치했다. 여백 제공
1992年 中立內閣 國務總理 時節의 春材 현승종. 現 前 總理는 當時 大統領選擧를 며칠 앞두고 釜山市場을 비롯해 地域 機關長들이 모여 김영삼 민자당 候補를 支援하는 對策會議를 연 이른바 ‘草原福집’ 事件이 터지자 釜山市長을 更迭토록 하는 等 발 빠르게 措置했다. 餘白 提供
“過渡的 狀況을 調和롭게 收拾하면서 發展的 土臺를 마련하는 것이 늘 나의 몫이었다.”

올 5月 別世한 春材(春齋) 현승종 前 國務總理(1919∼2020)는 最近 나온 有故(遺稿) 回顧錄 ‘人生 回想’(餘白)에서 自身의 삶을 이렇게 要約했다.

高麗大 學生處長으로 1960年 4·19革命 前夜의 4·18依據부터 1965年 韓日協定反對運動까지의 激變期에 學生들을 진정시키려 한 일이나, 1974∼1980年 성균관대 總長으로 어려운 與件에서도 제2캠퍼스를 연 일이나, 1992年 10月부터 4個月餘의 中立內閣 國務總理로 그해 12月 大選을 공정하게 치러냈다는 評價를 받은 일 等을 볼 때 故人이 스스로를 “野球 競技에서 失點 危機에 登板하는 ‘消防手’라는 投手 役割이 나의 處地와 비슷했다”고 한 것은 謙讓之德이면서 適切한 表現으로 보인다.

이 같은 謙讓之德과 훌륭한 세이브 投手 役割의 바탕에는 ‘晉(眞·眞實함)’ ‘性(誠·정성스러움)’ ‘盧(努·힘씀)’라는 그의 人生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 事例들이 그렇다.

1960年 4·19革命 하루 前날 學生들의 安全을 지키고 자칫 廢校 當할 念慮도 없지 않다는 생각에 街頭 進出을 挽留했지만 力不足이었다. 當時 國會議事堂(現 서울 中區 서울市議會) 앞에서 連坐 示威하던 3000餘 學生이 激昂되는 것을 막으려 애쓰면서도 한便으로는 어느 한 學生도 自身에게 不遜한 態度를 取하지 않은 것을 흐뭇하게 생각했다.

현승종 전 국무총리는 등산을 매우 즐겼다. 총리 퇴임 후 산행하던 모습. 여백 제공
현승종 前 國務總理는 登山을 매우 즐겼다. 總理 退任 後 山行하던 모습. 餘白 提供
1962年 示威를 하다 連行된 學生 280餘 名을 데리러 富平 警察專門學校 講堂에 到着해 “여러분 얼마나 苦生했어요. 이 자리가 學校 敎室이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라며 눈물을 흘리자 學生들도 울어 눈물바다를 이뤘다. 1964年 韓日會談 反對示威를 하던 學生들과 警察들이 投石戰을 벌이자 그는 ‘돌멩이를 맞더라도 내가 혼자서 맞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돌멩이가 날아드는 한복판으로 나가 섰다. 그러자 兩方 모두 돌팔매를 그만뒀다.

그를 모셨던 김옥조 前 國務總理 祕書室長은 “다른 사람이 했다면 ‘政治的 搜査(修辭)’ 程度로 置簿할 말도 이분이 했다면 眞情이 담긴 말로 받아들여졌다”고 回顧한다.

冊에서는 그의 良心과 率直함 또한 두드러진다. 경성제대를 卒業하고 日帝의 學兵 募集을 避해 다니다 最終 마감日인 1943年 11月 20日 結局 支援한 뒤 그는 自責한다. “죽음의 確率이 높은 徵用을 면하기 위해 生命에 未練을 가지고 ‘支援’의 욕됨을 自招한 나 自身에 對한 罪”라고 吐露한다. ‘또 다른’ 率直함도 있다. 집에서 婚談이 오가자 兩家 父母의 許諾을 받아 配匹이 될 사람을 보고 와서는 “多幸히도 코는 비뚤어지지 않아 安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君子인 양하지 않는다. ‘平安道 울뚝밸이(화를 벌컥 내며 말이나 行動을 우악스럽게 하는 사람)’ 性格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6·25戰爭 中 空軍에 入隊해 人事行政課長으로 있을 때 일이다. 美國 訓鍊을 보낼 操縱士의 旅券 發給 問題로 外務部에서 입씨름하다 拒絶되자 火김에 玄關門을 쾅 닫아 大型 琉璃를 깨뜨린 것.

잘 몰랐던 小小한 歷史도 엿볼 수 있다. 日帝强占期 四角帽에 망토를 두르고 다닌 것으로 映畫나 드라마에서 描寫되던 大學生은 없었다. 경성제대 豫科生들이 둥근 帽子를 쓰고 망토를 둘렀다. 이들은 스톰(storm)이라는 特有의 춤을 電車길을 막고 추기도 했다.

故人의 101年 삶은 3·1運動과 大韓民國臨時政府 樹立부터의 韓國 近現代史와 一致한다. 只今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 할 理由이기도 하다.

민동용 記者 mindy@donga.com
#春材 현승종 前 國務總理 #人生 回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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