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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市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世上을 發見합니다. 都市를 散策하고 探査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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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30~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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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곳곳에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어…문학의 故鄕 ‘南原’[전승훈의 아트로드]

    全北 南原은 사랑의 고을이자 文學의 故鄕이다. 智異山의 힘찬 山勢와 蟾津江의 부드러운 물결이 始作되는 南原 곳곳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판소리 ‘春香傳’의 誕生地이고, ‘興甫歌’의 興夫와 놀부가 살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만복사地에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판타지 사랑 이야기인 金時習의 ‘金鰲新話’가 펼쳐지고, 西道役의 鐵길 위에는 作家 崔明熙가 남긴 不滅의 現代 文學 ‘혼불’李 이글거린다. ● 만복사와 廣寒樓의 사랑南原視 왕정동 벌판에 불그스레한 노을이 번질 즈음. 텅 빈 만복사지를 지키고 있는 石人像의 두 눈은 튀어나올 것만 같다. 풀밭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高麗時代 寶物級 五層石塔과 幢竿支柱, 石佛立像, 蓮꽃무늬 佛像 座臺가 마치 演劇俳優가 臺詞를 하고 있는 듯하다. 바로 梅月堂 金時習(1435~1493)李 쓴 最初의 漢文 小說 ‘金鰲新話’에 나오는 ‘萬福寺樗蒲記’ 이야기가 펼쳐지는 舞臺다. 만복사에 머무르던 흙수저 老總角 양생(梁生). 그는 사랑하는 女人을 만나 結婚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있다. 金鰲新話에 나오는 養生, 한生, 박생이란 主人公 이름의 ‘生’은 生員의 준말이다. 朝鮮時代 小科(小科)인 生員試에 合格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鄕里의 가난한 선비를 올려주는 呼稱이기도 했다. 어느 날 養生은 부처님과 樗蒲놀이(윷놀이 비슷한 莫大 주사위 놀이) 한판 勝負를 벌인다. 게임에서 이긴 養生은 절에서 아리따운 女人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女人과 사흘을 함께 보내고, 親舊들과 함께 詩를 지으며 놀았던 養生은 마지막 날 女人으로부터 銀그릇을 膳物로 받는다. 그런데 다음 날 만난 그女의 父母님은 “3年 前에 倭寇의 侵入 때 죽은 딸의 무덤에 함께 묻어준 銀그릇을 어떻게 갖고 있느냐”며 놀란다. 結局 養生은 抑鬱하게 죽었던 女人의 還生을 爲해 薦度齋를 올려주고, 自身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平生토록 智異山의 藥草꾼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萬福寺樗蒲記를 現代的으로 脚色한다면 게임과 판타지, 멜로와 호러가 섞인 複合 장르물 映畫가 誕生할 법하다. 春香傳이 한 男子를 사랑한 女子의 志操와 貞節을 노래했다면, 萬福寺樗蒲記는 만날 수 없는 女人에 對한 男子의 變치 않는 사랑에 關한 이야기다. 南原市內는 巨大한 春香傳 테마파크로 봐도 過言이 아니다. 구룡계곡 入口 六모亭 앞에는 小說 속 虛構 人物인 춘향이의 무덤까지 造成돼 있다. 해마다 春香祭 때마다 祭祀도 지낸다고 한다. 百年佳約을 約束했던 李夢龍이 漢陽으로 떠날 때 춘향이가 따라 나와 눈물로 作別했던 정자인 ‘五里亭(五里亭)’에는 ‘춘향이 눈물방죽’이라는 說明이 붙어 있다. 五里亭에서 北쪽으로는 춘향고개가 있고, 춘향이 離別하는 아픔에 허둥지둥 따라가다 버선이 벗겨졌다는 ‘춘향이 버선밭’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白眉는 廣寒樓 夜景이다. 廣寒樓(廣寒樓)는 美人 姮娥가 살고 있는 달나라 宮殿 ‘狂漢聽許部(廣寒淸虛府)’를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玩月鄭(玩月亭)의 湖水에는 달빛이 비치고, 廣寒樓 앞에는 세 個의 섬이 떠 있다. 몽룡과 춘향이 함께 걷던 烏鵲橋는 欄干이 없는 돌다리여서 자칫 물에 빠질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戀人끼리 걸으면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南原의 代表的인 名所인 만복사와 廣寒樓는 丁酉再亂(1597年) 때 불타 없어졌다. 丁酉再亂 當時 남원성을 지키던 兵士들과 男女 百姓 1萬餘 名은 沒殺을 當해 ‘萬人義塚’에 묻혔다. 萬福寺樗蒲記에서 倭寇에 依해 抑鬱하게 죽음을 當한 女人의 悲劇이 100年 後 實際로 벌어졌던 것이다. 만복사는 以後 빈터로 남았고, 廣寒樓는 仁祖 때 다시 지어졌다. ● 뱀사골 溪谷에서 만난 千年宋 南原은 嶺湖南의 境界인데다, 蟾津江을 통해 南海로 이어지는 要衝地다. 三韓時代에 馬韓의 王이 南原 달궁溪谷에 隱居地를 마련하고 四方 險峻한 山勢 中 敵이 넘어오기 쉬운 길목마다 守備軍을 配置했다는 傳說이 내려온다. 北쪽에는 8名의 將軍을 配置해서 ‘八良峙’라고 했고, 西쪽은 鄭 氏 將軍을 配置해 ‘정령치’, 東쪽은 黃 氏 將軍을 配置해 ‘황령値’라고 불렸다. 南쪽은 特히 重要한 要衝地여서 姓氏가 各其 다른 3名의 將軍이 防禦토록 하고 ‘聖三(姓三)再’라 불렀다고 傳해진다. 정령치는 車로 오를 수 있는 智異山 最高 높이의 고개마루로 정령치 休憩所 앞 展望臺에 서면 구름 속에서 天王峯, 老姑壇, 般若峯 等의 連峯들이 變化無雙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場面을 볼 수 있다. 南原에서 智異山을 오르는 뱀사골 溪谷은 여름 避暑와 가을 丹楓으로 有名하다. 智異山國立公園 全北事務所에서 와운(臥雲)마을 千年宋(千年松)까지 걷는 ‘뱀사골 神仙길’(2.3km)은 溪谷물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便安한 트레킹 코스다. 龍이 노는 要龍沼, 멧돼지가 노는 돗소(돗은 南原 사투리 ‘돼지’), 호리甁 같은 病巢 等 수많은 傳說이 깃든 물길을 鑑賞하며 덱길을 걷는다. 30餘 分을 걷다 보니 구름도 쉬어간다는 와운마을에 到着했다. 마을 뒤便에 우람한 千年송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하늘을 向해 꿈틀대며 오르는 姿態하며 千年 歲月의 두꺼운 龍비늘 模樣까지, 果然 우리나라 最高의 소나무(天然記念物 424號)로 불릴 만하다. 이 千年宋은 할머니 소나무로 불리는데, 20餘 m 더 올라간 地點에 할아버지 소나무도 있다. 華麗하고 우람한 할머니 소나무와 달리 할아버지 소나무는 S字 模樣의 맵시 있는 몸매를 자랑한다. 男女 性別에 對한 固定觀念을 깨뜨리는 두 소나무에도 南原의 色다른 사랑 傳說이 담겨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南原 虜鋒마을 西道役에는 崔明熙 作家(1947~1988)의 ‘혼불 文學觀’이 있다. 1981年 동아일보 創刊 60周年 記念 長篇小說 公募에 當選된 ‘혼불’은 1995年까지 月刊 ‘신동아’에 連載됐던 作品. 日帝强占期인 1930, 40年代 南原 地方의 ‘埋安 李氏’ 門中을 背景으로 한 大河小說이다. 歲時風俗, 冠婚喪祭, 飮食, 노래를 판소리처럼 韻律 있는 言語로 담아낸 ‘혼불’은 벽초 洪命憙의 ‘林꺽정’에 比肩되는 所重한 言語의 報告로 評價받고 있다. 1934年 開場한 西道驛은 小說 속 人物인 효원이 시집가던 날 “점잖은 밥 한床 천천히 다 먹을 만한 時間이면 닿는 停車場”이라는 句節로 描寫된다. 西道驛 앞에는 아름드리 古木과 호젓한 鐵길이 남아 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汽車驛 場面도 西道驛에서 찍었다. ● 숲속 美術館과 카페南原市 운봉읍 行政里의 ‘서어나무숲’에 들어서면 한여름에도 서늘한 나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200餘 年 前에 造成한 마을 숲으로 90餘 그루의 아름드리 筋肉質을 뽐내는 개서어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마을 숲은 洪水와 바람을 막고, 땅의 기운이 센 곳은 눌러 주고 虛(虛)韓 곳은 報(補)해 주는 非보림(裨補林)이다. 서어나무 숲속에서는 새소리, 바람소리를 ASMR 裝備로 듣고, 地域 特産物인 김부각 위에 치즈를 올린 디저트를 먹으며 피크닉을 하는 ‘숲멍 體驗’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이백면에 있는 ‘아담원(我談苑)’도 숲과 美術館, 카페가 잘 어우러진 休息處다. 元來 나무를 키우던 造景 農園이었는데 2018年 11月 ‘나와 나누는 對話’라는 뜻의 아담원으로 再誕生했다. 樹木園 내 散策길을 걷다 보면 글라스 하우스 形態의 美術館을 만난다. 美國의 彫刻家 로버트 모어랜드가 만든 빨간色 산 模樣의 作品,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앞 噴水臺에서 만날 수 있는 니키 드 생팔의 彫刻品이 展示돼 있다. 南原市립김병종美術館은 ‘畫帖紀行’으로 有名한 南原 出身 作家 김병종의 代表作을 만날 수 있다. 春香테마파크 뒤便에 露出콘크리트로 지어진 美術館 앞은 바닥에 물이 담겨 있어 하늘과 구름, 나무가 反射되는 한가로운 風景을 만들어낸다. 美術館 內 北카페 ‘畫帖紀行’은 너무 맛있어 未安하다는 ‘未安커피’와 直接 만든 케이크가 人氣다. 南原에 들렀다면 여름 보양食의 象徵인 鰍魚湯을 맛봐야 한다. 廣寒樓 近處에는 鰍魚湯집이 櫛比한 ‘鯫魚 距離’가 있다. 南原 鰍魚湯 맛을 내는 미꾸리는 미꾸라지와는 完全히 다른 種類다. 미꾸리는 미꾸라지에 비해 鬚髥이 짧고, 成魚 期間이 2年으로 미꾸라지보다 갑절이나 길다. 그만큼 貴한 飮食 材料로 만든 ‘南原 鰍魚湯’은 뼈째 갈아서 먹는 方式이지만, 통째로 익혀서 부추와 함께 먹는 ‘鯫魚 宿懷’도 別味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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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향이 두 뺨처럼 발그레한 廣寒樓… 스치기만 해도 빨갛게 물들겠네[전승훈 記者의 아트로드]

    《全北 南原은 사랑의 고을이자 文學의 故鄕이다. 智異山의 힘찬 山勢와 蟾津江의 부드러운 물결이 始作되는 南原 곳곳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판소리 ‘春香傳’의 誕生地이고, ‘興甫歌’의 興夫와 놀부가 살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만복사地에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판타지 사랑 이야기인 金時習의 ‘金鰲新話’가 펼쳐지고, 西道役의 鐵길 위에는 作家 崔明熙가 남긴 不滅의 現代 文學 ‘혼불’李 이글거린다.》○ 만복사와 廣寒樓의 사랑南原視 왕정동 벌판에 불그스레한 노을이 번질 즈음. 텅 빈 만복사지를 지키고 있는 石人像의 두 눈은 튀어나올 것만 같다. 풀밭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高麗時代 寶物級 五層石塔과 幢竿支柱, 石佛立像, 蓮꽃무늬 佛像 座臺가 마치 演劇俳優가 臺詞를 하고 있는 듯하다. 바로 梅月堂 金時習(1435∼1493)李 쓴 最初의 漢文 小說 ‘金鰲新話’에 나오는 ‘萬福寺樗蒲記’ 이야기가 펼쳐지는 舞臺다. 만복사에 머무르던 흙수저 老總角 양생(梁生). 그는 사랑하는 女人을 만나 結婚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있다. 金鰲新話에 나오는 養生, 한生, 박생이란 主人公 이름의 ‘生’은 生員의 준말이다. 朝鮮時代 小科(小科)인 生員試에 合格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鄕里의 가난한 선비를 올려주는 呼稱이기도 했다. 어느 날 養生은 부처님과 樗蒲놀이(윷놀이 비슷한 莫大 주사위 놀이) 한판 勝負를 벌인다. 게임에서 이긴 養生은 절에서 아리따운 女人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女人과 사흘을 함께 보내고, 親舊들과 함께 詩를 지으며 놀았던 養生은 마지막 날 女人으로부터 銀그릇을 膳物로 받는다. 그런데 다음 날 만난 그女의 父母님은 “3年 前에 倭寇의 侵入 때 죽은 딸의 무덤에 함께 묻어준 銀그릇을 어떻게 갖고 있느냐”며 놀란다. 結局 養生은 抑鬱하게 죽었던 女人의 還生을 爲해 薦度齋를 올려주고, 自身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平生토록 智異山의 藥草꾼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萬福寺樗蒲記를 現代的으로 脚色한다면 게임과 판타지, 멜로와 호러가 섞인 複合 장르물 映畫가 誕生할 법하다. 春香傳이 한 男子를 사랑한 女子의 志操와 貞節을 노래했다면, 萬福寺樗蒲記는 만날 수 없는 女人에 對한 男子의 變치 않는 사랑에 關한 이야기다. 南原 市內는 巨大한 春香傳 테마파크로 봐도 過言이 아니다. 구룡계곡 入口 六모亭 앞에는 小說 속 虛構 人物인 춘향이의 무덤까지 造成돼 있다. 每해 春香祭 때마다 祭祀도 지낸다고 한다. 百年佳約을 約束했던 李夢龍이 漢陽으로 떠날 때 춘향이가 따라 나와 눈물로 作別했던 정자인 ‘五里亭(五里亭)’에는 ‘춘향이 눈물방죽’이라는 說明이 붙어 있다. 五里亭에서 北쪽으로는 춘향고개가 있고, 춘향이 離別하는 아픔에 허둥지둥 따라가다 버선이 벗겨졌다는 ‘춘향이 버선밭’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白眉는 廣寒樓(廣寒樓) 夜景이다. 廣寒樓는 美人 姮娥가 살고 있는 달나라 宮殿 ‘狂漢聽許部(廣寒淸虛府)’를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玩月鄭(玩月亭)의 湖水에는 달빛이 비치고, 廣寒樓 앞에는 세 個의 섬이 떠 있다. 몽룡과 춘향이 함께 걷던 烏鵲橋는 欄干이 없는 돌다리여서 자칫 물에 빠질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戀人끼리 걸으면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南原의 代表的인 名所인 만복사와 廣寒樓는 丁酉再亂(1597年) 때 불타 없어졌다. 丁酉再亂 當時 남원성을 지키던 兵士들과 男女 百姓 1萬餘 名은 沒殺을 當해 ‘萬人義塚’에 묻혔다. 萬福寺樗蒲記에서 倭寇에 依해 抑鬱하게 죽음을 當한 女人의 悲劇이 100年 後 實際로 벌어졌던 것이다. 만복사는 以後 빈터로 남았고, 廣寒樓는 仁祖 때 다시 지어졌다. ○뱀사골 溪谷에서 만난 千年宋南原에서 智異山을 오르는 뱀사골 溪谷은 여름 避暑와 가을 丹楓으로 有名하다. 智異山國立公園 全北事務所에서 와운(臥雲)마을 千年宋(千年松)까지 걷는 ‘뱀사골 神仙길’(2.3km)은 溪谷물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便安한 트레킹 코스다. 龍이 노는 要龍沼, 멧돼지가 노는 돗소(돗은 南原 사투리 ‘돼지’), 호리甁 같은 病巢 等 수많은 傳說이 깃든 물길을 鑑賞하며 덱길을 걷는다. 30餘 分을 걷다 보니 구름도 쉬어간다는 와운마을에 到着했다. 마을 뒤便에 우람한 千年송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하늘을 向해 꿈틀대며 오르는 姿態 하며 千年 歲月의 두꺼운 龍비늘 模樣까지, 果然 우리나라 最高의 소나무(天然記念物 424號)로 불릴 만하다. 이 千年宋은 할머니 소나무로 불리는데, 20餘 m 더 올라간 地點에 할아버지 소나무도 있다. 華麗하고 우람한 할머니 소나무와 달리 할아버지 소나무는 S字 模樣의 맵시 있는 몸매를 자랑한다. 男女 性別에 對한 固定觀念을 깨뜨리는 두 소나무에도 南原의 色다른 사랑 傳說이 담겨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南原 虜鋒마을 西道役에는 崔明熙 作家(1947∼1988)의 ‘혼불 文學觀’이 있다. 1981年 동아일보 創刊 60周年 記念 長篇小說 公募에 當選된 ‘혼불’은 1995年까지 月刊 ‘신동아’에 連載됐던 作品. 日帝强占期인 1930, 40年代 南原 地方의 ‘埋安 李氏’ 門中을 背景으로 한 大河小說이다. 歲時風俗, 冠婚喪祭, 飮食, 노래를 판소리처럼 韻律 있는 言語로 담아낸 ‘혼불’은 벽초 洪命憙의 ‘林꺽정’에 比肩되는 所重한 言語의 報告로 評價받고 있다. 1934年 開場한 西道驛은 小說 속 人物인 효원이 시집가던 날 “점잖은 밥 한床 천천히 다 먹을 만한 時間이면 닿는 停車場”이라는 句節로 描寫된다. 西道驛 앞에는 아름드리 古木과 호젓한 鐵길이 남아 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汽車驛 場面도 西道驛에서 찍었다. ○숲속 美術館과 카페南原市 운봉읍 行政里의 ‘서어나무숲’에 들어서면 한여름에도 서늘한 나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200餘 年 前에 造成한 마을 숲으로 90餘 그루의 아름드리 筋肉質을 뽐내는 개서어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마을 숲은 洪水와 바람을 막고, 땅의 기운이 센 곳은 눌러 주고 虛(虛)韓 곳은 報(補)해 주는 非보림(裨補林)이다. 서어나무 숲속에서는 새소리, 바람소리를 ASMR 裝備로 듣고, 地域 特産物인 김부각 위에 치즈를 올린 디저트를 먹으며 피크닉을 하는 ‘숲멍 體驗’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이백면에 있는 ‘아담원(我談苑)’도 숲과 美術館, 카페가 잘 어우러진 休息處다. 元來 나무를 키우던 造景 農園이었는데 2018年 11月 ‘나와 나누는 對話’라는 뜻의 아담원으로 再誕生했다. 樹木園 내 散策길을 걷다 보면 글라스 하우스 形態의 美術館을 만난다. 美國의 彫刻家 로버트 모어랜드가 만든 빨간色 산 模樣의 作品,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앞 噴水臺에서 만날 수 있는 니키 드 생팔의 彫刻品이 展示돼 있다. 南原市립김병종美術館에서는 ‘畫帖紀行’으로 有名한 南原 出身 作家 김병종의 代表作을 만날 수 있다. 春香테마파크 뒤便에 露出 콘크리트로 지어진 美術館 앞은 바닥에 물이 담겨 있어 하늘과 구름, 나무가 反射되는 한가로운 風景을 만들어낸다. 美術館 內 北카페 ‘畫帖紀行’은 너무 맛있어 未安하다는 ‘未安커피’와 直接 만든 케이크가 人氣다. 南原에 들렀다면 여름 보양食의 象徵인 鰍魚湯을 맛봐야 한다. 廣寒樓 近處에는 鰍魚湯집이 櫛比한 ‘鯫魚 距離’가 있다. 南原 鰍魚湯 맛을 내는 미꾸리는 미꾸라지와는 完全히 다른 種類다. 미꾸리는 미꾸라지에 비해 鬚髥이 짧고, 成魚 期間이 2年으로 미꾸라지보다 갑절이나 길다. 그만큼 貴한 飮食 材料로 만든 ‘南原 鰍魚湯’은 뼈째 갈아서 먹는 方式이지만, 통째로 익혀서 부추와 함께 먹는 ‘鯫魚 宿懷’도 別味다.글·사진 南原=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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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階段

    샤를 가르니에(1825∼1898)가 設計한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Y字 模樣’의 臺階段을 만난다. 다채로운 色깔의 最高級 大理石으로 製作된 階段은 부드럽고 優雅한 曲線으로 물결친다. 뮤지컬 ‘오페라의 幽靈’ 2幕 첫 場面에서 假面舞蹈會가 펼쳐지는 舞臺 위 階段은 바로 샹들리에와 彫刻品으로 裝飾된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階段을 借用한 것이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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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旅行社, 빅데이터-AI 통해 趣向까지 硏究해야 生存”

    “未來의 旅行社는 빅데이터와 人工知能(AI)을 活用한 檢索 알고리즘으로 航空券과 호텔, 體驗商品 等을 有機的으로 連結해 個人의 趣向까지 만족시켜야 살아남는다.” 온라인 綜合旅行社(OTA)이자 트래블 테크 企業인 타이드스퀘어의 윤민 代表(53·寫眞)가 그리고 있는 旅行商品의 未來다. 타이드스퀘어는 世界 航空社들의 航空便과 호텔, 여러 體驗 商品과 直接 連結된 電算 시스템을 構築해 旅行社와 個人들에게 다양한 旅行 商品을 設計할 수 있도록 돕는 技術 企業이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危機 狀況에서도 올해 3月 850億 원의 投資를 誘致했고, 2019年에는 카카오, 두나무 等으로부터 約 500億 원의 投資를 받는 等 總 1400億 원의 投資를 誘致했다. 고려대 食品工學科 出身인 尹 代表는 유니텔, 새롬기술 等 情報技術(IT) 企業에서 職場生活을 始作했고, 대한항공과 現代카드에서는 마케팅을 擔當했다. 여느 旅行社들이 旅行商品 開發에 沒頭하는 것과 달리 旅行 關聯 技術 基盤을 構築하는 會社를 꾸린 背景이다. 尹 代表는 “온라인에서 旅行 計劃을 짜고 商品을 選擇하는 게 一般化되면서 旅行業은 裝置産業이 돼 가고 있다. 旅行 테크 企業에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連結 機關과 商品 情報)를 確保하느냐가 가장 重要하다. 더 많은 데이터를 確保해야 機內食을 미리 注文할 수도 있고, 窓가와 複道, 와이파이 提供 與否 等 다양한 서비스를 顧客이 選擇하게 할 수 있다. 複雜한 데이터 組合에서 最適을 찾는 作業은 더 以上 旅行社 職員이 할 수 없고, 技術의 領域이 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街 猖獗한 2∼3年間 구글과 三星電子 出身 開發者 60餘 名이 타이드스퀘어의 旅行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進行한 背景이다. 尹 代表는 “全 世界的인 次世代 航空 豫約 플랫폼인 ARM인덱스 認證을 完了함으로써 技術 優位를 先占한 것이 競爭力 强化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期待하고 있다. ARM인덱스는 國際航空運送協會(IATA)가 主導해 開發한 航空券 豫約, 發券, 取消를 위한 次世代 航空 플랫폼이다. 타이드스퀘어는 最適의 데이터를 確保하기 위해 지난해 10月에는 北美 最大 旅行社協議體인 ‘트래블 리더스 네트워크’에 加入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强化했다. 트래블 리더스 네트워크는 6000個의 地點과 4萬 名 以上의 旅行 諮問團을 保有하고 있다. 타이드스퀘어는 自社 技術을 바탕으로 現代카드 顧客을 위한 프리미엄 旅行 브랜드 ‘現代카드 프리비아(PRIVIA) 旅行’도 運營하고 있다. 2017年 SK투어비스를 引受해 企業 出張, 마이스(MICE) 領域에서도 市場占有率을 높여 왔다. 設立 7年 만에 國內 綜合旅行社 5位圈(BSP 基準)에 進入했다. 지난해 6月에는 카카오모빌리티와 손잡고 카카오T 앱에서 國內線 航空券 檢索, 豫賣, 發券을 進行할 수 있는 ‘카카오 T 航空 서비스’를 始作했다. 또 特加 航空券 알림 앱 ‘플레이윙즈’, 宿泊 豫約 앱 ‘올스테이’ 等에도 投資해왔다. 카카오톡에 ‘카이트(KYTE)’ 서비스도 始作했다. 親舊들과 온라인 메신저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旅行地가 選擇되면 바로 航空券과 宿泊을 豫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다. 尹 代表는 “코로나19 移轉 國內 旅行 産業은 디지털 트렌드와 海外 OTA 進入에 따라 劇的인 變化를 겪었다”며 “포스트 코로나 時代에 旅行業의 競爭이 다시 熾烈해질 것에 對備해 技術 開發에 더욱 邁進할 것”이라고 밝혔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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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旅行에 技術을 더해 最適의 情報 提供…트래블 테크 成長 이끌죠”

    “未來의 旅行社는 글로벌 테크企業으로 가야 한다. 빅데이터와 人工知能(AI)을 活用한 檢索 알고리즘으로 航空券과 호텔, 體驗商品 等을 有機的으로 連結해 個人의 趣向까지 만족시켜야 살아남는다.” 온라인 綜合旅行社(OTA)이자 트래블 테크 企業인 타이드스퀘어의 윤민 代表(53)가 그리고 있는 旅行 商品의 未來이자 現在다. 타이드스퀘어는 世界 航空社들의 航空便과 호텔, 여러 體驗 商品들과 直接 連結된 電算 시스템을 構築해 中小旅行社와 個人들에게 다양한 旅行 商品을 設計할 수 있도록 돕는 技術 企業이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危機 狀況에서도 올해 3月 850億 원의 投資를 誘致했고, 2019年에는 카카오, 두나무 等으로부터 約 500億 원의 投資를 받는 等 總 1400億 원의 投資를 誘致했다. 고려대 食品工學科 出身인 尹 代表는 유니텔, 새롬기술 等 情報技術(IT) 企業에서 職場 生活을 始作했고, 대한항공과 現代카드에서는 마케팅을 擔當했다. 餘他 旅行社들이 패키지 旅行 商品 開發에 沒頭하는 것과 달리 旅行 關聯 技術 基盤을 構築하는 會社를 꾸린 背景이다. “온라인에서 旅行 計劃을 짜고 商品을 選擇하는 게 一般化되면서 旅行業은 裝置産業이 돼 가고 있다. 航空社에게 받은 데이터가 많을수록 顧客에게 提供할 수 있는 情報의 組合도 많아진다. 더 많은 데이터가 있으면 機內食을 미리 注文할 수도 있고, 窓가와 複道, 와이파이(WiFi) 提供 與否 等 다양한 서비스를 顧客이 選擇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複雜한 데이터 組合에서 最適을 찾는 作業은 더 以上 旅行社 職員이 할 수 없고, 技術의 領域이 되고 있다.” 타이드스퀘어는 自社 技術을 바탕으로 現代카드 顧客을 위한 프리미엄 旅行 브랜드 ‘現代카드 프리비아(PRIVIA) 旅行’도 運營하고 있다. 2017年 SK투어비스를 引受해 企業 出張, 마이스(MICE) 領域에서도 市場占有率을 높여 왔다. 設立 7年 만에 國內 綜合旅行社 5位圈(BSP 基準)에 進入했다. 그러나 尹 代表는 이에 滿足하지 않고 海外 온라인 航空券, 호텔 檢索에 强點을 가진 ‘트래블 테크놀로지(Travel Tech)’ 企業으로 國內外 旅行社 等을 對象으로 한 ‘B to B’(企業間 去來) 市場에 集中해왔다. 特히 코로나19街 猖獗한 2年餘間 구글과 三星電子 出身 開發者 60餘 名이 타이드스퀘어의 旅行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邁進해왔다. 尹 代表는 “全 世界的인 次世代 航空 豫約 플랫폼인 ARM인덱스 認證을 完了함으로써 技術 優位를 先占한 것이 競爭力 强化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期待하고 있다. ARM인덱스는 國際航空運送協會(IATA)가 主導해 開發한 航空券 豫約, 發券, 取消를 위한 次世代 航空 플랫폼 NDC의 새로운 이름이다. 타이드스퀘어는 이미 2018年에 全世界 7個社만 認證받은 最高 等級인 NDC Capable 레벨 3을 받았고, 2019年에는 全世界 13番째로 ‘NDC Aggregator 레벨 4’ 認證을 모두 獲得했다. 타이드스퀘어는 自社 旅行 플랫폼인 투어비스에 2019年 國內 最初로 ARM 인덱스를 聯動했다. 루프트한자獨逸航空(LH), 싱가포르航空(SQ), 진에어(LJ) 聯動을 始作으로 에미레이트航空(EK)과 아메리칸航空(AA) 等 總 16個의 航空社와 ARM인덱스 聯動을 맺었다. 이로써 國內 旅行社 中 中 ARM인덱스에 가장 많은 海外 航空社와 直接的인 航空券 豫約, 發券 提携를 맺은 企業이 됐다. “ARM Index를 適用한 OTA에서는 航空社와 直接 연동한 效率的인 料金을 볼 수 있는 것은 勿論 消費者가 直接 發券課 取消, 座席 指定, 手貨物 追加, 機內食 選擇, 機內 엔터테인먼트 購買 等의 附加서비스를 選擇할 수 있다. 그동안 거의 할 수 없었던 일인데 NDC를 最初 商用化해서 航空券을 競爭力 있는 價格에 提供하고 다양한 機內 서비스를 選擇할 수 있게 됐다.” 타이드스퀘어는 最適의 데이터를 確保하기 위해 지난해 10月에는 北美 最大 旅行社 協議體인 ‘트래블 리더스 네트워크’에 加入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强化했다. 트래블 리더스 네트워크는 6000個의 地點과 4萬 名 以上의 旅行 諮問團을 保有하고 있다. 尹 代表는 또한 2016年부터는 每年 旅行技術마케팅 컨퍼런스인 WIT(Web in Travel)도 主催해 全 世界 OTA(On-line Travel Agency)의 흐름을 把握하는 데 注力하고 있다. “트래블 테크 企業의 苦悶은 얼마나 많은 顧客에게 좋은 데이터를 推薦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많은 航空社, 수많은 旅行社와 協業해야 하고 글로벌하게 疏通해야 한다. 普通 旅行社들은 中間 大行事를 통해 海外 航空社, 호텔, 리조트에 連結해왔는데 우리는 直接 連結함으로써 더 많은 데이터와 價格 競爭力을 갖추게 됐다.” 타이드스퀘어는 國內에서도 多樣한 ‘協業’을 통해 成長해왔다. 지난해 4月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會員이 타이드스퀘어가 運營하는 ‘現代카드 프리비아 旅行’이나 ‘투어비스’에서 호텔을 豫約하면 大韓航空 마일리지를 最大 1500마일까지 積立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호텔을 豫約하면 航空마일리지를 積立해주는 서비스는 國內에서 처음이었다. 지난해 6月에는 카카오모빌리티와 손잡고 카카오T 앱에서 國內線 航空券 檢索, 豫賣, 發券을 進行할 수 있는 ‘카카오 T 航空 서비스’를 始作했다. 또한 特價 航空券 알림 앱 플레이윙즈, 宿泊 豫約 앱 올스테이, 旅行스타트業인 비앤비히어로, 非마이게스트, 폴라리움 等에도 投資해왔다. “旅行은 元來 檢索이 重要하다. 檢索하고 豫約하고 그리고 旅行을 간다. 그런데 새로운 패턴이 나타났다. 知人들끼리 같이 채팅하고, 뭐가 좋을지 選擇하고, 쇼핑한다. 中國 위챗에서 그런 現象이 나타났다. 國內에서도 이런 트렌드에 맞춰 카카오톡에 ‘카이트(KYTE)’ 서비스를 론칭했다. 親舊들과 톡을 나누다 航空과 宿泊을 바로 豫約할 수 있다. 이 서비스가 旅行 플랫폼이 되도록 努力할 것이다.” 윤민 代表는 “코로나19 移轉 國內 旅行 産業은 디지털 트렌드와 海外 OTA 進入에 따라 劇的인 變化를 겪었다”며 “포스트 코로나 時代에 旅行業의 競爭은 다시 熾烈해질 것이고, 트래블 테크 企業으로서 技術 開發에 더 邁進할 것”이라고 밝혔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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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밤의 카페

    프랑스 南部 都市 아를에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作品 ‘밤의 카페(Caf´e la Nuit)’ 속 카페가 그대로 남아 있다. 별이 그려진 밤하늘과 카페 遮陽의 밝은 노란色이 對比를 이루며 어우러져 아름다운 光景을 演出한다. 고흐가 만든 이 作品에 나오는 카페의 이름은 ‘테라스(Terrasse)’였지만, 只今은 ‘카페 반 고흐’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0年代 初에 壁面을 노란色으로 漆해 반 고흐의 그림과 비슷해졌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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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舜臣 敵 살피던 受漏 오르니, ‘바다 위 城’ 閑山島 絶景이 한눈에[전승훈의 아트로드]

    慶南 統營市 陸地에서 2km 程度 南東쪽으로 가면 閑山島에 到着한다. 배 위에 서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秀麗한 風景이 펼쳐지고 映畫 ‘閑散’에 나온 壬辰倭亂 한산大捷 激戰의 現場도 鑑賞할 수 있다. 巨濟大橋 밑 견내량의 좁은 海峽을 빠져나온 바닷물은 閑山島 앞바다에서 출렁거린다. 閑山島를 비롯해 미륵도, 火도, 巨濟島 等 크고 작은 섬들이 360度로 빙 둘러싸고 있다. 1592年 7月 忠武公 李舜臣이 左右로 날개를 활짝 펼친 鶴翼陣(鶴翼陣) 戰法으로 ‘바다 위에 城(城)’을 쌓고 73隻의 倭軍 艦隊를 擊破한 바로 그 現場이다. ● 勝利를 만드는 집, 制勝堂 統營에서 배로 30分 만에 閑山島에 到着하니 制勝堂으로 가는 牌말이 보였다. 李舜臣 將軍이 한산大捷 以後 三道水軍통第 本部로 삼은 곳이다. 둥그렇게 만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닷물이 잔잔한 湖水처럼 보이는 이곳은 바로 天惠의 要塞임을 알게 해준다. 아름드리 赤松이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로 約 1km의 海邊길을 걸으면 制勝堂에 到着한다. 大捷文科 忠武門을 지나니 ‘制勝堂(制勝堂)’이 나타난다. 이곳은 李舜臣의 執務室(宿所)이자 作戰指揮所였던 ‘운주당(運籌堂)’이 있던 곳이다. 李舜臣은 宣祖 26年(1593年)부터 漢陽으로 押送돼 갔던 해인 宣祖 30年(1597年)까지 3年 8個月 동안 이곳에서 駐屯했다. 1491日 동안의 일을 記錄한 李舜臣의 ‘亂中日記(亂中日記)’ 中 1029日의 日記가 쓰여진 곳이기도 하다. 운주당, 制勝堂은 모두 이름이 意味深長하다. 운주당의 ‘週(籌)’는 籌板(籌板)에 쓰이는 글字로, 셈을 할 때 쓰는 算가지를 뜻한다. 요즘으로 치면 最尖端 컴퓨터를 運用하며 戰略 시뮬레이션을 하는 房인 셈이다. 直觀的인 感이 아니라 武器體系와 날씨, 鳥類 變化까지 徹底한 計算을 통해 짜내는 作戰 指揮所인 셈이다. 李舜臣은 운주당에서 階級章과 相關없이 어떤 下級 兵士도 찾아와 意見을 내고 討論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映畫 ‘閑散’에서도 李舜臣 將軍이 55隻의 艦船 指揮官의 武力과 心性까지 細密하게 살펴서 左右 날개에 세우는 鶴翼陣을 完成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場面이 나온다. 制勝堂(制勝堂)은 말 그대로 ‘勝利를 만드는 집’이다. 英語 解說文에는 ‘the place where victory is made’라고 쓰여 있다. 李舜臣의 辭典에는 ‘싸워서 이긴다는’ 法은 없었다. ‘싸우기 前에 먼저 確實히 이겨놓고’ 싸웠다. 勝利는 이미 制勝堂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孫子兵法의 첫 番째인 ‘時計(始計)’ 兵法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最善이요, 싸워야 한다면 勝利가 確定된 狀況에서 最大限 빠르고 被害 없이 勝利를 거두어야 한다. 國家와 民草들의 삶에 莫大한 被害를 주고 난 다음에 이기는 勝利는 愛民(愛民)主義者 李舜臣의 머릿속에 없었다. 그러나 운주당의 ‘疏通의 文化’는 李舜臣의 白衣從軍 以後 三道水軍統制使가 된 原菌에 依해 變質됐다. “元均은 愛妾을 데리고 운주당에 살면서 울타리를 두 겹으로 막아 놓아 장수들도 그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또 술을 좋아해 날마다 술酒酊을 하고 火를 냈으며, 刑罰을 내리는 데도 일정한 法度가 없었다. 그래서 兵士들은 倭敵을 만나면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서로 하면서 수군거렸다.”(서애 柳成龍의 ‘懲毖錄’) 結局 元均은 七千輛海戰에서 大敗해 160隻의 朝鮮 水軍 艦船의 大部分과 熟鍊된 軍士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閑山島의 운주당度 廢墟가 됐다. 李舜臣은 남은 12隻의 배를 가지고 다시 싸움을 이어 나간다. 英祖 15年(1739年)에 統制使 造景은 閑山島에 다시 制勝堂을 세웠다. ●바다를 건너는 활터, 漢山停 制勝堂 近處에는 李舜臣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오르던 受漏(戍樓)도 復元돼 있다. 수루는 물가에 세운 樓閣(水樓)李 아니다. 軍隊가 駐屯하는 戍자리(兵營)에서 敵軍의 動態를 살피기 위해 세운 望臺다. 戍樓에 올라 보니 관암과 文魚脯 사이로 閑山島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只今은 平穩하지만 李舜臣에게는 애끓는 바다였을 것이다. “맑음. 늦게 가리포, 金甲, 南道, 사도, 여도가 보러 왔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이날 밤 바람은 몹시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이 낮과 같아 잠에 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밀었다.”(난중일기, 1595年 10月 20日)制勝堂 아래쪽에는 ‘漢山停’이라는 활쏘기 訓鍊場이 있다. 李舜臣이 部下들과 함께 활쏘기를 硏磨하던 곳이다. 亭子에서 쏜 화살은 바다를 건너 約 150m 距離에 있는 과녁에 맞히도록 돼 있다. 요즘 韓國의 洋弓 國家代表팀이 野球場에서 騷音 適應 訓鍊을 하듯이 李舜臣은 海戰에 必要한 實戰 適應 訓鍊을 하기 위해 바닷물을 건너는 활터를 만들었던 것이다. 映畫 마지막 場面의 李舜臣의 멋진 활 솜씨를 보고 난 後라 더욱 意味 있게 다가왔다. 統營 市內에 있는 三道水軍統制營에도 李舜臣의 遺跡이 곳곳에 남아 있다. 統制營에 있는 가장 큰 建物인 ‘洗兵館(洗兵館)’은 戰爭이 끝나고 피 묻은 칼과 槍, 활, 甲옷과 같은 兵仗器를 씻는다는 意味다. 詩人 杜甫의 ‘歲病魔行(洗兵馬行)’에서 따온 말로 平和를 念願하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銀河水 물을 끌어다가, 甲옷과 武器를 깨끗이 씻어 永遠히 使用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 洗兵館 周邊에 있는 ‘지寡聞(止戈門·戰爭을 그치게 하는 門)’, ‘掛弓亭(掛弓亭·활을 걸어두는 亭子)’도 平和를 念願하는 글句다. 偉大한 無人은 戰爭을 그치게 하는 사람이다. 또한 녹슬고 무디어진 兵仗器를 잘 씻고, 닦고, 訓鍊하며 平素에 安保에 對備해야 眞正한 平和를 누릴 수 있다는 意味가 담긴 懸板이기도 하다.● 미역이 춤을 추는 賣物도, 紅島 統營旅客船터미널에서 賣物道路 가는 뱃길에서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秀麗한 섬들을 구경할 수 있다. 두 個의 섬이 死球로 連結된 比珍島를 지난 배는 素地도, 소매물도, 燈臺섬을 보여준 뒤 1時間 半 만에 每勿島에 到着한다. 對抗港 앞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歲 仙女가 물 위에서 노니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三女度가 그림처럼 떠 있다. 每勿島와 小每勿島는 트레킹과 낚시, 다이빙으로 有名한 섬이다. 가장 有名한 다이빙 포인트는 每勿島에서 배를 타고 2時間 程度 걸리는 紅島다. 全南 新安郡 흑산면의 홍도와 이름이 같은 統營 홍도는 섬 全體가 天然記念物(第335號)로 指定돼 있다. 無人島인 홍도는 깎아지른 絶壁에 살고 있는 수많은 괭이갈매기가 섬의 主人이다. 每勿島와 紅島에서 스킨스쿠버 裝備를 갖추고 다이빙을 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니 靑줄돔이 서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며 舍廊놀이를 하고, 숲처럼 우거진 미역과 감태, 다시마 사이로 數百 마리의 자리돔 떼가 헤엄친다. 閑山大捷에서 敗한 倭將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朝鮮 水軍의 追擊을 避해 隣近 無人島에 숨어서 미역을 뜯어 먹으며 열흘을 버티다가 뗏木을 만들어 艱辛히 脫出했다. 恥辱을 잊지 않기 爲해 와키자카 집안은 한산大捷이 벌어졌던 날에 미역만 먹는 風習이 이어진다고 한다. 와키자카가 숨어 있던 섬은 아니지만 한산면에 屬해 있는 賣物도, 紅島 바닷속에서 미역과 감태, 모자반이 우거진 모습을 보니 感懷가 깊었다. 每勿島에서 550m 程度 떨어져 있는 小每勿島는 코발트색 淸明한 바다를 背景으로 우뚝 솟은 海蝕 絶壁 地形이 眞景을 이룬다. 이곳의 燈臺섬은 1980年代에 쿠크다스 菓子 CF의 背景이 돼 一名 ‘쿠크다스섬’으로 이름을 날렸다. 썰물 때면 小每勿島와 燈臺섬 사이에 열목개라 불리는 80m의 몽돌 바닷길이 열린다. 通行이 許容되는 2~5時間 동안 探訪客들은 燈臺섬으로 건너가 하얀 燈臺와 푸른 草原 위에서 閑寂한 情趣를 滿喫할 수 있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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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勝戰鼓 울려퍼지던 李舜臣의 섬…바다 위 城엔 平和의 波濤 출렁[전승훈 記者의 아트로드]

    《慶南 統營市 陸地에서 2km 程度 南東쪽으로 가면 閑山島에 到着한다. 배 위에 서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秀麗한 風景이 펼쳐지고 映畫 ‘閑散’에 나온 壬辰倭亂 한산大捷 激戰의 現場도 鑑賞할 수 있다. 巨濟大橋 밑 견내량의 좁은 海峽을 빠져나온 바닷물은 閑山島 앞바다에서 출렁거린다. 閑山島를 비롯해 미륵도, 火도, 巨濟島 等 크고 작은 섬들이 360度로 빙 둘러싸고 있다. 1592年 7月 忠武公 李舜臣이 左右로 날개를 활짝 펼친 鶴翼陣(鶴翼陣) 戰法으로 ‘바다 위에 城(城)’을 쌓고 73隻의 倭軍 艦隊를 擊破한 바로 그 現場이다.》○ ‘勝利를 만들어내는 집’ 制勝堂統營에서 배로 30分 만에 閑山島에 到着하니 制勝堂(制勝堂)으로 가는 牌말이 보였다. 李舜臣 將軍이 한산大捷 以後 三道水軍통第 本部로 삼은 곳이다. 둥그렇게 만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닷물이 잔잔한 湖水처럼 보이는 이곳은 바로 天惠의 要塞임을 알게 해준다. 아름드리 赤松이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로 約 1km의 海邊길을 걸으면 制勝堂에 到着한다. 大捷文科 忠武門을 지나니 ‘制勝堂’이 나타난다. 이곳은 李舜臣의 執務室(宿所)이자 作戰指揮所였던 ‘운주당(運籌堂)’이 있던 곳이다. 李舜臣은 宣祖 26年(1593年)부터 漢陽으로 押送돼 갔던 해인 宣祖 30年(1597年)까지 3年 8個月 동안 이곳에서 駐屯했다. 1491日 동안의 일을 記錄한 李舜臣의 ‘亂中日記(亂中日記)’ 中 1029日의 日記가 쓰인 곳이기도 하다. 운주당, 制勝堂은 모두 이름이 意味深長하다. 운주당의 ‘週(籌)’는 籌板(籌板)에 쓰이는 글字로, 셈을 할 때 쓰는 算가지를 뜻한다. 요즘으로 치면 最尖端 컴퓨터를 運用하며 戰略 시뮬레이션을 하는 房인 셈이다. 直觀的인 感이 아니라 바람과 潮流, 武器體系까지 徹底한 計算을 통해 짜내는 作戰 指揮所인 셈이다. 李舜臣은 운주당에서 階級章과 相關없이 어떤 下級 兵士도 찾아와 意見을 내고 討論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映畫 ‘閑散’에서도 李舜臣 將軍이 55隻의 艦船 指揮官의 武力과 心性까지 細密하게 살펴서 左右 날개에 세우는 鶴翼陣을 完成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場面이 나온다. 制勝堂은 말 그대로 ‘勝利를 만들어내는 집’이다. 英語 解說文에는 ‘the place where victory is made’라고 쓰여 있다. 李舜臣의 辭典에는 ‘싸워서 이긴다’는 法은 없었다. ‘싸우기 前에 먼저 確實히 이겨놓고’ 싸웠다. 이는 孫子兵法의 첫 番째인 ‘時計(始計)’ 兵法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最善이요, 싸워야 한다면 勝利가 確定된 狀況에서 最大限 빠르고 被害 없이 勝利를 거두어야 한다. 國家와 民草들의 삶에 莫大한 被害를 주고 난 다음에 이기는 勝利는 愛民(愛民)主義者 李舜臣의 머릿속에 없었다. 그러나 운주당의 ‘疏通의 文化’는 李舜臣이 罷職된 後 三道水軍統制使가 된 原菌에 依해 變質됐다. “元均은 愛妾을 데리고 운주당에 살면서 울타리를 두 겹으로 막아 놓아 장수들도 그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또 술을 좋아해 날마다 술酒酊을 하고 火를 냈으며, 刑罰을 내리는 데도 일정한 法度가 없었다. 그래서 兵士들은 倭敵을 만나면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서로 하면서 수군거렸다.”(서애 柳成龍의 ‘懲毖錄’) 結局 元均은 七千輛海戰에서 大敗해 160隻의 朝鮮 水軍 艦船의 大部分과 熟鍊된 軍士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閑山島의 운주당度 廢墟가 됐다. 李舜臣은 남은 12隻의 배를 가지고 다시 싸움을 이어 나간다. 英祖 15年(1739年)에 統制使 造景은 閑山島에 다시 制勝堂을 세웠다. ○바다를 건너는 활터制勝堂 近處에는 李舜臣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오르던 受漏(戍樓)도 復元돼 있다. 수루는 물가에 세운 樓閣(水樓)李 아니다. 軍隊가 駐屯하는 戍자리(兵營)에서 敵軍의 動態를 살피기 위해 세운 望臺다. 戍樓에 올라 보니 관암과 文魚脯 사이로 閑山島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只今은 平穩하지만 李舜臣에게는 애끓는 바다였을 것이다. “맑음. 늦게 가리포, 金甲, 南道, 사도, 여도가 보러 왔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이날 밤 바람은 몹시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이 낮과 같아 잠에 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밀었다.”(난중일기, 1595年 10月 20日) 制勝堂 아래쪽에는 ‘漢山停’이라는 활쏘기 訓鍊場이 있다. 李舜臣이 部下들과 함께 활쏘기를 硏磨하던 곳이다. 亭子에서 쏜 화살은 바다를 건너 約 150m 距離에 있는 과녁에 맞히도록 돼 있다. 요즘 韓國의 洋弓 國家代表팀이 野球場에서 騷音 適應 訓鍊을 하듯이 李舜臣은 海戰에 必要한 實戰 適應 訓鍊을 하기 위해 바닷물을 건너는 활터를 만들었던 것이다. 映畫 마지막 場面의 李舜臣의 멋진 활 솜씨를 보고 난 後라 더욱 意味 있게 다가왔다. 統營 市內에 있는 三道水軍統制營에도 李舜臣의 遺跡이 곳곳에 남아 있다. 統制營에 있는 가장 큰 建物인 ‘洗兵館(洗兵館)’은 戰爭이 끝나고 피 묻은 칼과 槍, 활, 甲옷과 같은 兵仗器를 씻는다는 意味다.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銀河水 물을 끌어다가, 甲옷과 武器를 깨끗이 씻어 永遠히 使用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詩人 杜甫의 ‘歲病魔行(洗兵馬行)’에서 따온 말로 平和를 念願하는 뜻이다. 洗兵館 周邊에 있는 ‘지寡聞(止戈門·戰爭을 그치게 하는 門)’, ‘掛弓亭(掛弓亭·활을 걸어두는 亭子)’도 平和를 念願하는 글句다. 偉大한 無人은 戰爭을 그치게 하는 사람이다. 또한 녹슬고 무디어진 兵仗器를 잘 씻고, 닦고, 訓鍊하며 平素에 安保에 對備해야 眞正한 平和를 누릴 수 있다는 意味가 담긴 懸板이기도 하다.○미역이 춤을 추는 賣物도, 紅島統營旅客船터미널에서 賣物道路 가는 뱃길에서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秀麗한 섬들을 구경할 수 있다. 두 個의 섬이 死球로 連結된 比珍島를 지난 배는 素地도, 소매물도, 燈臺섬을 보여준 뒤 1時間 半 만에 每勿島에 到着한다. 對抗港 앞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歲 仙女가 물 위에서 노니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三女度가 그림처럼 떠 있다. 每勿島와 小每勿島는 트레킹과 낚시, 다이빙으로 有名한 섬이다. 가장 有名한 다이빙 포인트는 每勿島에서 배를 타고 2時間 程度 걸리는 紅島다. 全南 新安郡 흑산면의 홍도와 이름이 같은 統營 홍도는 섬 全體가 天然記念物(第335號)로 指定돼 있다. 無人島인 홍도는 깎아지른 絶壁에 살고 있는 수많은 괭이갈매기가 섬의 主人이다. 每勿島와 紅島에서 스킨스쿠버 裝備를 갖추고 다이빙을 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니 靑줄돔이 서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며 舍廊놀이를 하고, 숲처럼 우거진 미역과 감태, 다시마 사이로 數百 마리의 자리돔 떼가 헤엄친다. 閑山大捷에서 敗한 倭將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朝鮮 水軍의 追擊을 避해 隣近 無人島에 숨어서 미역을 뜯어 먹으며 열흘을 버티다가 뗏木을 만들어 艱辛히 脫出했다. 恥辱을 잊지 않기 爲해 와키자카 집안은 한산大捷이 벌어졌던 날에 미역만 먹는 風習이 이어진다고 한다. 와키자카가 숨어 있던 섬은 아니지만 한산면에 屬해 있는 賣物도, 紅島 바닷속에서 미역과 감태, 모자반이 우거진 모습을 보니 感懷가 깊었다. 每勿島에서 550m 程度 떨어져 있는 小每勿島는 코발트색 淸明한 바다를 背景으로 우뚝 솟은 海蝕 絶壁 地形이 眞景을 이룬다. 이곳의 燈臺섬은 1980年代에 쿠크다스 菓子 CF의 背景이 돼 一名 ‘쿠크다스섬’으로 이름을 날렸다. 썰물 때면 小每勿島와 燈臺섬 사이에 열목개라 불리는 80m의 몽돌 바닷길이 열린다. 通行이 許容되는 2∼5時間 동안 探訪客들은 燈臺섬으로 건너가 하얀 燈臺와 푸른 草原 위에서 閑寂한 情趣를 滿喫할 수 있다.글·사진 統營=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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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디오니소스 劇場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絶壁 南쪽 아래에는 紀元前 6世紀에 建築된 디오니소스 劇場이 있다. 여기서 演劇과 술의 神인 디오니소스를 위한 祝祭를 연 게 西洋 演劇의 出發點이라고 한다. 1萬7000名 收容 規模의 劇場에선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等 傳說的 戱曲 作家들의 作品이 공연됐다. 圓形劇場 客席 첫 줄은 VIP席인데, 등받이가 있는 돌椅子에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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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쿠바의 올드카

    쿠바의 首都 아바나 市內에서는 形形色色의 올드카를 볼 수 있다. 1940, 50年代에 生産된 캐딜락, 뷰익, 포드 等이다. 올드카는 1959年 쿠바 革命 以後 1961年 美國과의 修交 斷絶로 생긴 遺産이다. 貿易制裁로 車輛 輸入이 禁止된 쿠바人들은 올드카의 部品을 直接 修理해 數十 年을 써왔다. 그래서 에어컨은 勿論이고 安全띠도 없고, 煤煙이 甚한 車들도 많다. 그래도 ‘올드카 투어’는 쿠바 最高의 人氣 觀光 商品이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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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觀世音菩薩은 왜 바닷가 近處에 살고있을까[전승훈의 아트로드]

    여름철에 바닷가를 찾으면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子息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처럼 苦痛받는 衆生들을 救濟한다는 자비로운 觀世音菩薩은 왜 바닷가 近處에 살고 있는 것일까. 韓國의 3代 觀音聖地는 慶南 南海 錦山 보리암, 仁川 江華 낙가산 普門寺, 講院 襄陽 洛山寺 紅蓮癌이 꼽혀 왔다. 이 밖에도 全南 麗水 향일암, 釜山 機長 解凍龍宮社 等 바닷가의 절에는 어김없이 觀音의 傳說이 내려온다. 해수관음상은 所聞난 祈禱處일 뿐 아니라 탁 트인 바다 風景을 眺望할 수 있는 最高의 포인트로 많은 旅行客들이 찾는다. ● 南海 보리암의 日出보리암은 南海의 名山인 錦山 正常 絶壁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서면 南海 尙州銀모래備置를 中心으로 糊塗, 哀悼, 海運山, 목도, 승치도, 삼여도, 所致도 等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떠다닌다. 해수관음상의 微笑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風景이다. 보리암 日出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錦山에 올랐다. 낮에는 錦山 入口부터 運行하는 査察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지만, 새벽에는 頂上 附近인 第2駐車場까지 乘用車로 올라갈 수 있다. 車에서 내린 後 錦山의 맑은 아침 空氣를 느끼며 15分 程度 걸으니 보리암 뒤便의 대장봉과 화엄봉, 刑吏癌의 깎아지른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의 第一 양지바른 곳, 南海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場所에 해수관음상과 三層石塔이 서 있다. 해 뜨기 前 새벽인데도,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塔돌이를 하고 있다. 大慈大悲한 觀世音菩薩에게 慈悲와 도움을 請하는 懇切한 몸짓이다. 華嚴經에 따르면 衆生이 온갖 苦惱에 시달릴 때 한마음으로 觀世音菩薩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苦痛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觀世音菩薩, 觀世音菩薩” 하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祈禱하는 사람들은 大部分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다. 해수관음상이 바닷가에 많이 세워진 까닭은 예로부터 觀音菩薩이 印度 南東쪽 海岸에 있는 ‘포탈라카’山의 窟속에 살고 있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佛敎가 印度에서 티베트를 거쳐 中國 韓國 日本으로 퍼져 나가면서, 民衆은 바닷가 山에 수많은 觀音信仰의 聖地를 만들었다. 티베트의 靈的 指導者인 달라이 라마도 觀世音菩薩의 化身으로 여겨진다. 달라이 라마의 執務室이 있는 라싸의 ‘布達拉宮’도 逋脫라카에서 由來한 이름이다. ‘달라이’는 ‘큰 바다’란 뜻이다. 逋脫라카는 中國으로 傳해지면서 ‘補陀落가(普陀落迦)’라는 漢字로 音借됐다. 中國 저장省 닝보(寧波) 隣近 푸퉈(普陀)山은 代表的인 觀音聖地다. 우리나라에서는 衣裳 大師가 新羅 文武王 11年(671年) 觀世音菩薩을 親見하고 觀音窟을 지었다는 襄陽 洛山寺 紅蓮癌을 最初의 本格 觀音道場으로 본다. 國內 3代 觀音聖地인 襄陽 洛山寺의 ‘駱山’, 强化 普門寺의 ‘낙가산’, 南海 보리암의 ‘步打電’ 等은 모두 ‘補陀落가’라는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리암이 있는 錦山의 風景은 季節에 따라 緋緞으로 수놓은 듯 變化無雙하게 變한다. 錦山을 오르다 보면 雙홍문, 望臺, 檀君聖殿, 坐禪對, 화엄봉과 같은 傳說과 이야기가 담긴 名所들이 櫛比하다. 高麗 末 李成桂가 보리암에서 百日祈禱를 하고 朝鮮王朝를 열었다는 祈禱處도 남아 있다. 特히 슬픈 사랑의 傳說이 담겨 있는 上司癌(想思巖) 絶壁은 보리암을 색다른 角度로 眺望하고, 파노라마처럼 바다 風景을 바라보며 思索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東아시아 海上 실크로드의 觀音聖地 江華 席毛島 낙가산 中턱에 자리한 普門寺 뒤便에는 ‘눈썹바위 磨崖觀音菩薩像’이 있다. 높이 9.2m, 幅 3.3m 規模의 巨大한 해수관음상이 낙가산 中턱에 가로로 길게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 그야말로 눈瞳子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仁慈한 微笑를 짓고 있는 磨崖佛은 暫時도 한눈을 팔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觀音像의 視線을 따라 내려다본 드넓은 西海 바다는 일찍이 强化 8頃으로 알려졌을 程度로 絶景이다. 新羅時代에 세워진 强化 普門寺는 高麗時代 때 觀音聖地로 크게 繁昌했다. 普門寺의 繁昌은 海上 貿易과 깊은 關聯이 있다. 印度를 出發해 믈라카 海峽과 베트남, 中國 광저우까지 進出한 印度 商人들이 中國 沿岸의 닝보를 거쳐 高麗의 首都 開京의 關門인 碧瀾渡까지 進出했다. 江華島는 碧瀾渡의 關門 役割을 하던 곳이다. 옛날에 배는 物件을 大量으로 輸送할 수 있는 長點이 있어 貿易에 적합한 手段이었다. 그러나 陸路에 비해 難破 等의 危險이 높아 航海는 늘 목숨을 건 冒險이었다. 사람들은 航海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神들에게 빌었다. 그中에 으뜸은 觀世音菩薩이었다. 그래서 東아시아 海上 실크로드를 오가던 뱃사람들은 中國 닝보, 江華島 等 바닷가의 山에 觀世音菩薩이 살던 引渡의 補陀落家産을 再現해 냈다. 强化 普門寺는 절 앞까지 버스가 到着한다. 그러나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해수관음상을 만나는 方法은 석모도의 解明産科 낙가산을 넘어서 普門寺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인 전득이고개에서 숲을 파고든 가파른 山길에 오른 지 10分 程度 지났을까. 갑자기 視野가 탁 트인다. 개펄을 쓰다듬는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無人島까지 西海 特有의 風景이다. 해명산에서 낙가산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稜線길은 順하다. 낙가산 正常 標識石을 지나 새가리고개를 넘자 普門寺의 殿閣들이 내려다보인다. 너럭바위 바로 아래가 海獸觀音像을 모신 눈썹바위지만, 낙가산 頂上에서 바로 내려갈 수는 없다. 다시 普門寺까지 내려와서 一柱門을 지나 階段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눈썹바위 磨崖觀音菩薩像에 다다랐다. 蓮꽃 위에 坐定하여 甘露水 甁을 든 普門寺 해수관음상 앞에는 所願을 담은 수많은 燃燈이 걸려 있다. 서울의 關門인 江華島는 宗敎를 비롯해 外來 文物 流入의 最前線이기도 했다. 1876年 江華島條約 以後 草創期 改新敎의 電波 過程에서 核心 役割을 한 곳도 江華島다. 1900年 지어진 强化 聖公會聖堂은 韓屋과 佛敎 寺刹, 西유럽 바실리카 樣式을 結合한 獨特한 建物이라 눈에 확 띈다. 英國 聖公會 宣敎師가 白頭山의 나무를 가져다 지은 이 聖堂은 佛敎의 寺刹처럼 一柱門과 梵鍾을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八作지붕 龍마루에 올라앉은 十字架, 八作지붕 合刻 아래 ‘天主聖殿(天主性展)’ 懸板, 기둥에 걸려 있는 ‘三位一體(三位一體)’ 柱聯, 祭壇 위에 새겨진 ‘萬有眞原(萬유진원)’ 等 漢字로 解釋한 聖經 句節이 聖堂임을 알게 해준다. 內部로 들어가면 古色蒼然한 샹들리에가 開化期 映畫 세트場에 온 느낌을 준다. 섬 旅行은 강화읍 香나무길 ‘朝陽紡織’ 카페에서 茶 한盞을 하며 마무리하면 좋다. 日帝强占期인 1933年 民族資本이 세운 紡織工場을 카페로 丹粧했다. 1958年 廢業한 뒤 60年假量 제대로 活用되지 않던 建物의 骨組를 그대로 살려 追憶 어린 옛 生必品과 藝術品을 陳列한 빈티지 美術館은 세련된 멋을 찾는 젊은이도, 追憶을 되새기는 어르신도 함께 즐기는 空間이 된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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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가 絶壁에 피어난 한 떨기 蓮꽃… 海水觀音의 微笑[전승훈 記者의 아트로드]

    《여름철에 바닷가를 찾으면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子息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처럼 苦痛받는 衆生들을 救濟한다는 자비로운 觀世音菩薩은 왜 바닷가 近處에 있는 것일까. 韓國의 3代 觀音聖地는 慶南 南海 錦山 보리암, 仁川 江華 낙가산 普門寺, 講院 襄陽 洛山寺 紅蓮癌이 꼽혀 왔다. 이 밖에도 全南 麗水 향일암, 釜山 機長 解凍龍宮社 等 바닷가의 절에는 어김없이 觀音의 傳說이 내려온다. 해수관음상은 所聞난 祈禱處일 뿐 아니라 탁 트인 바다 風景을 眺望할 수 있는 最高의 포인트로 많은 旅行客들이 찾는다.》● 南海 보리암의 日出보리암은 南海의 名山인 錦山 正常 絶壁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서면 南海 尙州銀모래備置를 中心으로 糊塗, 哀悼, 海運山, 목도, 승치도, 삼여도, 所致도 等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떠다닌다. 해수관음상의 微笑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風景이다. 보리암 日出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錦山에 올랐다. 낮에는 錦山 入口부터 運行하는 査察 버스(午前 8時∼午後 4時 運行)를 타고 올라가야 하지만, 새벽에는 頂上 附近인 第2駐車場까지 乘用車로 올라갈 수 있다. 車에서 내린 後 錦山의 맑은 아침 空氣를 느끼며 15分 程度 걸으니 보리암 뒤便의 대장봉과 화엄봉, 刑吏癌의 깎아지른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의 第一 양지바른 곳, 南海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場所에 해수관음상과 三層石塔이 서 있다. 해 뜨기 前 새벽인데도,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塔돌이를 하고 있다. 大慈大悲한 觀世音菩薩에게 慈悲와 도움을 請하는 懇切한 몸짓이다. 華嚴經에 따르면 衆生이 온갖 苦惱에 시달릴 때 한마음으로 觀世音菩薩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苦痛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觀世音菩薩, 觀世音菩薩” 하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祈禱하는 사람들은 大部分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다. 해수관음상이 바닷가에 많이 세워진 까닭은 예로부터 觀音菩薩이 印度 南東쪽 海岸에 있는 ‘포탈라카’山의 窟속에 살고 있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佛敎가 印度에서 티베트를 거쳐 中國 韓國 日本으로 퍼져 나가면서, 民衆은 바닷가 山에 수많은 觀音信仰의 聖地를 만들었다. 티베트의 靈的 指導者인 달라이 라마도 觀世音菩薩의 化身으로 여겨진다. 달라이 라마의 執務室이 있는 라싸의 ‘布達拉宮’도 逋脫라카에서 由來한 이름이다. ‘달라이’는 ‘큰 바다’란 뜻이다. 逋脫라카는 中國으로 傳해지면서 ‘補陀落가(普陀落迦)’라는 漢字로 音借됐다. 中國 저장省 닝보(寧波) 隣近 푸퉈(普陀)山은 代表的인 觀音聖地다. 우리나라에서는 衣裳 大師가 新羅 文武王 11年(671年) 觀世音菩薩을 親見하고 觀音窟을 지었다는 襄陽 洛山寺 紅蓮癌을 最初의 本格 觀音道場으로 본다. 國內 3代 觀音聖地인 襄陽 洛山寺의 ‘駱山’, 强化 普門寺의 ‘낙가산’, 南海 보리암의 ‘步打電’ 等은 모두 ‘補陀落가’라는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리암이 있는 錦山의 風景은 季節에 따라 緋緞으로 수놓은 듯 變化無雙하게 變한다. 錦山을 오르다 보면 雙홍문, 望臺, 檀君聖殿, 坐禪對, 화엄봉과 같은 傳說과 이야기가 담긴 名所들이 櫛比하다. 高麗 末 李成桂가 보리암에서 百日祈禱를 하고 朝鮮王朝를 열었다는 祈禱處도 남아 있다. 特히 슬픈 사랑의 傳說이 담겨 있는 上司癌(想思巖) 絶壁은 보리암을 색다른 角度로 眺望하고, 파노라마처럼 바다 風景을 바라보며 思索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東아시아 海上 실크로드의 觀音聖地 江華 席毛島 낙가산 中턱에 자리한 普門寺 뒤便에는 ‘눈썹바위 磨崖觀音菩薩像’이 있다. 높이 9.2m, 幅 3.3m 規模의 巨大한 해수관음상이 낙가산 中턱에 가로로 길게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 그야말로 눈瞳子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仁慈한 微笑를 짓고 있는 磨崖佛은 暫時도 한눈을 팔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觀音像의 視線을 따라 내려다본 드넓은 西海 바다는 일찍이 强化 8頃으로 알려졌을 程度로 絶景이다. 新羅時代에 세워진 强化 普門寺는 高麗時代 때 觀音聖地로 크게 繁昌했다. 普門寺의 繁昌은 海上 貿易과 깊은 關聯이 있다. 印度를 出發해 믈라카 海峽과 베트남, 中國 광저우까지 進出한 印度 商人들이 中國 沿岸의 닝보를 거쳐 高麗의 首都 開京의 關門인 碧瀾渡까지 進出했다. 江華島는 碧瀾渡의 關門 役割을 하던 곳이다. 옛날에 배는 物件을 大量으로 輸送할 수 있는 長點이 있어 貿易에 적합한 手段이었다. 그러나 陸路에 비해 難破 等의 危險이 높아 航海는 늘 목숨을 건 冒險이었다. 사람들은 航海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神들에게 빌었다. 그中에 으뜸은 觀世音菩薩이었다. 그래서 東아시아 海上 실크로드를 오가던 뱃사람들은 中國 닝보, 江華島 等 바닷가의 山에 觀世音菩薩이 살던 引渡의 補陀落家産을 再現해 냈다. 强化 普門寺는 절 앞까지 버스가 到着한다. 그러나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해수관음상을 만나는 方法은 석모도의 解明産科 낙가산을 넘어서 普門寺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인 전득이고개에서 숲을 파고든 가파른 山길에 오른 지 10分 程度 지났을까. 갑자기 視野가 탁 트인다. 개펄을 쓰다듬는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無人島까지 西海 特有의 風景이다. 해명산에서 낙가산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稜線길은 順하다. 낙가산 正常 標識石을 지나 새가리고개를 넘자 普門寺의 殿閣들이 내려다보인다. 너럭바위 바로 아래가 海獸觀音像을 모신 눈썹바위지만, 낙가산 頂上에서 바로 내려갈 수는 없다. 다시 普門寺까지 내려와서 一柱門을 지나 階段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눈썹바위 磨崖觀音菩薩像에 다다랐다. 蓮꽃 위에 坐定하여 甘露水 甁을 든 普門寺 해수관음상 앞에는 所願을 담은 수많은 燃燈이 걸려 있다. 서울의 關門인 江華島는 宗敎를 비롯해 外來 文物 流入의 最前線이기도 했다. 1876年 江華島條約 以後 草創期 改新敎의 電波 過程에서 核心 役割을 한 곳도 江華島다. 1900年 지어진 强化 聖公會聖堂은 韓屋과 佛敎 寺刹, 西유럽 바실리카 樣式을 結合한 獨特한 建物이라 눈에 확 띈다. 英國 聖公會 宣敎師가 白頭山의 나무를 가져다 지은 이 聖堂은 佛敎의 寺刹처럼 一柱門과 梵鍾을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八作지붕 龍마루에 올라앉은 十字架, 八作지붕 合刻 아래 ‘天主聖殿(天主性展)’ 懸板, 기둥에 걸려 있는 ‘三位一體(三位一體)’ 柱聯, 祭壇 위에 새겨진 ‘萬有眞原(萬유진원)’ 等 漢字로 解釋한 聖經 句節이 聖堂임을 알게 해준다. 內部로 들어가면 古色蒼然한 샹들리에가 開化期 映畫 세트場에 온 느낌을 준다. 섬 旅行은 강화읍 香나무길 ‘朝陽紡織’ 카페에서 茶 한盞을 하며 마무리하면 좋다. 日帝强占期인 1933年 民族資本이 세운 紡織工場을 카페로 丹粧했다. 1958年 廢業한 뒤 60年假量 제대로 活用되지 않던 建物의 骨組를 그대로 살려 追憶 어린 옛 生必品과 藝術品을 陳列한 빈티지 美術館은 세련된 멋을 찾는 젊은이도, 追憶을 되새기는 어르신도 함께 즐기는 空間이 된다.남해·강화=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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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팽의 손가락[바람개비/전승훈]

    프랑스 파리 ‘로맨틱 生活 博物館’에 가면 作曲家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의 하얀 손가락을 만날 수 있다. 1838年 쇼팽의 戀人 조르주 상드가 親舊에게 付託해 쇼팽의 손가락을 石膏로 떠 놓은 것. “皮膚의 땀구멍으로 賤한 것은 모두 蒸發된 듯하다.” “쇼팽의 손이 鍵盤의 3分의 1을 덮을 程度로 벌려질 때면 커다란 毒蛇가 토끼를 한입에 삼키려는 모습 같았다.” 쇼팽의 손가락에 對해서는 많은 이들이 記錄을 남겼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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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리 治療받고 눈물로 고마워하시던 시골 할머니에 큰 感動”

    “99歲까지 88(팔팔)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릎과 허리, 발목 等 뼈와 關節에 對한 管理가 重要하지요. 나이가 들어도 親舊를 만나고, 社會生活을 하고, 運動을 하며 사는 삶이 요즘 幸福의 트렌드이기 때문이죠.” ENA 채널 ‘임채무의 浪漫닥터’는 全國 坊坊曲曲을 돌아다니며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을 無料로 治療해주는 ‘流浪 診療’ 프로그램이다. 俳優 임채무, 이문식 氏 等이 出演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整形外科 專門醫인 이태훈 9988病院 (서울 성동구 往十里)院長이 늘 함께한다. 浪漫닥터 出演陣은 올 3月부터 慶北 榮州 무섬마을, 講院 寧越, 忠南 論山, 全北 鎭安, 完州 비비정마을 等 20곳이 넘는 시골마을을 찾아 診療를 펼쳐왔다. “大部分 病院에 가려면 한두 時間 以上 걸리는 奧地를 찾아갑니다. 平生 밭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해 오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허리와 무릎, 어깨, 발목, 股關節이 안 좋으신 境遇가 많아요. 天幕 診療所에서 엑스레이와 注射治療를 하고, 캠핑카 안에서는 物理治療, 徒手治療를 해드립니다.” 그는 바쁜 가운데서도 隔週 金, 土 1泊 2日 동안 看護師와 總務課 職員 等 5, 6名과 함께 浪漫닥터 流浪診療에 나선다. 金曜日 새벽부터 土曜日 해 질 녘까지 하루 平均 25∼30名의 患者를 治療해주는 强行軍을 펼쳐야 한다. 마을마다 症勢가 深刻한 어르신 中 한 名은 서울로 招請해 無料로 關節 手術과 治療를 해주기도 한다. “시골의 할머니께서 治療를 받으신 後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살다가 이렇게 큰 裝備를 싣고 온 醫師에게 專門治療를 받은 건 처음이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萬 원짜리 몇 張을 꺼내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주셔서 기다리는 어르신들과 스태프들이 시원하게 먹었던 記憶이 第一 오래 남습니다.” ‘健康 품앗이 旅行’을 모토로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는 浪漫닥터 팀이 治療를 해주면 어르신들이 地域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가져와 點心을 함께 해 먹기도 한다. 그는 慶北 尙州에서 할아버지가 가져다 준 ‘곶감 껍질을 먹여 키운 韓牛’, 忠北 堤川 山茱萸 마을에서 먹은 도토리묵, 全北 鎭安에서 맛본 高冷地 수박의 기막힌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임채무 先生이 부른 노래 中에 ‘區區팔팔 내 人生, 이제부터 始作이다∼’라는 曲이 있었습니다. 제가 2017年 開院하면서 特色 있는 이름을 짓고 싶어서 ‘9988病院’이라고 지었습니다. 어느 날 임채무 先生이 지나가다가 病院에 들어오셔서 ‘왜 나한테 商標 許諾도 안 받고 이름을 지었냐’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 그건 弄談이었고, 事實은 어깨가 아프셔서 오셨더군요. 磁氣共鳴 映像(MRI)을 찍어보니 어깨 회전근이 破裂돼 제가 縫合手術을 해드린 因緣으로 親해졌습니다.” 그는 “林 先生은 아이들을 위한 ‘두리랜드’를 오랫동안 運營해 왔는데 나이 들면 醫療奉仕를 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며 “結局 저랑 意氣投合해서 ‘浪漫닥터’를 始作했다”고 말했다. 現在까지 21回가 進行됐는데, 出演陣人 俳優 이문식 氏랑 ‘앞으로 500回까지 해보자’고 決意했다고 한다. 李 院長은 “많은 분들의 同參으로 醫療 奉仕活動이 1000回까지 繼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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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全國 오지 찾아가 어르신들께 醫療 奉仕…健康을 품앗이하죠”

    “99歲까지 88(팔팔)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릎과 허리, 발목 等 뼈와 關節에 對한 管理가 重要하지요. 나이가 들어도 親舊를 만나고, 社會生活을 하고, 運動을 하며 사는 삶이 요즘 幸福의 트렌드이기 때문이죠.” ENA 채널 ‘임채무의 浪漫닥터’는 全國 坊坊曲曲을 돌아다니며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을 無料로 治療해주는 ‘流浪 診療’ 프로그램이다. 俳優 임채무, 이문식 氏 等이 出演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整形外科 專門醫인 이태훈 9988病院 院長(서울 성동구 왕십리)李 늘 함께 한다. 浪漫닥터 出演陣은 지난 3月부터 慶北 榮州 무섬마을, 講院 寧越, 忠南 論山, 全北 鎭安, 完州 비비정마을 等 20곳이 넘는 시골마을을 찾아 診療를 펼쳐왔다. 캠핑카에 엑스레이 撮影 裝備, 超音波 衝擊波, 物理治療 機械, 徒手治療 裝備, 血壓計 等 各種 醫療裝備를 가득 싣고 바닷가나 논두렁에 커다란 天幕을 치고 진료해주는 奉仕活動 現場 프로그램이다. “大部分 專門病院에 가려면 한두時間 以上 걸리는 奧地를 찾아갑니다. 平生 밭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해오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大部分 허리와 무릎, 어깨, 발목, 股關節이 안좋으신 境遇가 많아요. 天幕 診療所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注射治療를 하고, 캠핑카 안에서는 物理治療, 徒手治療를 해드립니다.” 이 院長은 激務로 金, 土 1泊2日 동안 病院의 看護師와 物理治療師, 徒手治療社, 總務課 職員 等 5,6名과 함께 同行을 한다. 마을마다 症勢가 深刻한 할머니, 할어버지 中에는 서울로 招請해 無料로 關節 手術과 治療를 해주기도 한다. 金曜日 새벽부터 土曜日 해질녘까지 하루 平均 25~30名의 患者를 治療해주는 强行軍을 펼쳐야 한다. “시골의 할머니께서 治療를 받으신 後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살다가 이렇게 큰 裝備를 싣고 온 醫師에게 專門治療를 받은 건 처음이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萬원짜리 몇張을 꺼내시는거예요. 그 마음이 傳達돼서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기다리는 어르신들과 스태프들이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던 記憶이 第一 오래 남습니다.” ‘健康 품앗이 旅行’을 모토로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는 浪漫닥터팀이 治療를 해주면 어르신들이 地域에서 나는 수박, 버섯, 도토리묵 같은 먹을거리를 가져와 셰프가 料理해 點心을 함께 먹기도 한다. 그는 慶北 尙州에서 할아버지 患者가 가져다 준 ‘곶감 껍질을 먹여 키운 韓牛’, 堤川 山茱萸 마을에서 먹은 도토리묵, 全北 鎭安에서 맛본 高冷地 수박의 기가막힌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鎭安에서는 20年 前에 歸鄕한 畫家가 허리 治療를 받고, 卽席에서 梅花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李 院長은 “貴重한 그림을 額子에 넣어서 病院 로비에 걸어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俳優 임채무 氏와의 因緣은. “임채무 先生이 부른 노래 中에 ‘區區팔팔 내 人生, 이제부터 始作이다~’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제가 2017年 開院하면서 特色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아내가 ‘9988病院’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開院 後 임채무 先生이 車타고 지나가다가 病院 이름을 보시고 들어오셔서 ‘왜 나한테 商標 許諾도 안받고 이름을 지었냐’고 하셨어요. 알고보니 그건 弄談이었고, 事實은 어깨가 아프셔서 오셨더군요. MRI를 찍어보니 어깨 회전근이 破裂돼 제가 縫合手術을 해드린 因緣으로 親해졌습니다.” ―‘浪漫닥터’ 醫療奉仕를 하게 된 契機는. “임채무 先生은 아이들을 위한 ‘두리랜드’를 오랫동안 運營해왔는데 나이들면 醫療奉仕를 하는 게 버킷 리스트였다고 합니다. 結局 저까지 意氣投合해서 ‘浪漫닥터’를 하게 됐습니다. 올해 21回가 進行됐는데, 함께 出演하는 이문식 俳優가 ‘앞으로 500回까지 해보자’고 하셨어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坊坊曲曲 流浪診療 奉仕活動이 500回, 1000回까지 繼續되길 祈願합니다.”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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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땡땡의 冒險’의 故鄕

    벨기에 브뤼셀에 가면 스머프와 땡땡과 같은 人氣 漫畫의 故鄕이라는 事實을 實感하게 된다. 곳곳의 壁畫와 博物館, 記念品 숍에서 캐릭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漫畫家 에르제의 ‘땡땡의 冒險’은 1929年 以後 100個 以上의 言語로 出刊된 유럽 漫畫의 古典이다. 東西洋은 勿論 沙漠, 極地方, 甚해, 宇宙까지 아우르는 ‘땡땡의 冒險’은 世界 歷史와 文化의 百科事典으로 불린다. 1953年에는 달 探險을 생생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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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와 海草로 끼니 때웠지만…이중섭이 사랑했던 섶섬 風景[전승훈의 아트로드]

    濟州 西歸浦 앞바다에는 無人島 三兄弟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濟州島를 만든 神이 아름다운 提州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火가 나서 漢拏山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汎섬이 됐다고 한다. 漢拏山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白鹿潭이 됐다. 西歸浦 세 섬은 유네스코 登錄遺産이자 生物圈 保全地域으로 指定된 天惠의 祕境이다. 바닷속은 ‘珊瑚庭園’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世界的인 연산호 群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聖地이기도 하다. 畫家 李仲燮(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家族들과 살았던 가장 幸福했던 瞬間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 그리운 섶섬 風景濟州 西歸浦에 있는 李仲燮美術館 屋上에 올라가면 西歸浦 앞바다가 보인다. 畫家 李仲燮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風景’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黃土빛 길과 羅牧, 草家지붕 風景은 콘크리트 빌딩과 道路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門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風景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風景‘은 現在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展示되고 있는 故 李健熙 會長 寄贈 1周年 記念展人 ’어느 蒐集家의 招待‘에서 볼 수 있다. 黃土빛 草家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色 濟州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色彩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西歸浦 生活은 중섭에게 人生의 가장 아름다운 時節이었을 것이다. 1951年 1·4後退 當時 元山에 살던 李仲燮은 家族을 이끌고 避亂해 濟州 西歸浦까지 내려온다. 李仲燮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坪짜리 單칸房을 얻어 산다. 實際로 李仲燮 美術館 아래 草家집에는 李仲燮 家族이 머물던 房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配給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李仲燮은 西歸浦 海邊으로 내려가 海草를 뜯어 粥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飯饌을 해 먹었다고 한다. 西歸浦 七十里로 자구리海邊에 가면 展望 좋은 카페와 食堂이 있는 距離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李仲燮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濟州島 風景‘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文化藝術公園에는 담뱃匣 속 包裝知人 은지에 鉛筆로 그림을 그리는 畫家의 커다란 손이 形象化된 彫刻品이 있다. 李仲燮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作家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作品이다. 그러나 李仲燮은 濟州島에 到着한 그해 12月 가난을 解決하지 못해 1年도 채 안 돼 釜山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以後 아내와 아이들도 日本으로 떠나보냈다. 1956年 世上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銀箔紙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風景, 銀箔紙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李仲燮美術館에서 西歸浦 올레市場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畫家들의 作業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尙州 藝術家들이 그린 壁畫를 鑑賞한다. 섶섬과 문섬의 風景을 보기엔 西歸浦 正房瀑布 옆에 있는 이왈종美術館도 좋은 포인트다. 畫家 이왈종은 1990年 大學敎授職을 박차고 濟州로 내려왔다. 民畫的인 色彩와 道上으로 構成된 그의 作品 世界는 團欒하다. ’濟州 生活의 中道‘ 聯作에는 冬柏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濟州의 悠悠自適한 風景이 살아 숨쉰다.● 바닷속 곶자왈, 珊瑚庭園 섶섬은 스킨스쿠버 名所다. ’小天地‘와 ’작은 한開創‘, ’큰 한開創‘(濟州 方言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地形을, ’開創‘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地形이라고 한다) 等 有名한 다이빙 포인트가 櫛比하다. 섬이나 바닷가 旅行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地域을 立體的으로 鑑賞하는 效果를 얻을 수 있다. 西歸浦港에서 出發하는 배를 타고 5分쯤 가니 섶섬에 到着했다. 스쿠버다이빙 裝備를 着用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浮力調節裝置(BCD)의 空氣를 排出시키며 徐徐히 下降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陸上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程度로 나무가 빽빽한 濟州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類(soft coral)인 粉紅色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珊瑚, 하얀色 海松까지 地球에 存在하는 모든 珊瑚를 모아놓은 듯하다. 粉紅色, 노란色, 草綠色, 흰色 等 總天然色 ’珊瑚庭園‘이다. 알록달록 華麗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一名 라이언피시)李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餘裕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向해 내려가는 동안 强烈한 原色의 亞熱帶 魚種들이 次例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靑줄돔, 파랑돔, 琥珀돔, 아홉동가리, 黃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群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共生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等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主人公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向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運이 좋으면 龍王의 使臣인 바다거북, 大型 가오리度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代表(다이빙 講師)는 “섶섬 앞바다에는 海松이 많고, 문섬 새끼섬 職壁에는 노란色 연산호가 많다”며 “西歸浦 앞바다는 世界的인 天惠의 珊瑚庭園”이라고 말했다. ● 方舟敎會 & 本態美術館西歸浦港에서 乘用車로 30餘 分 距離에 있는 서귀포시 安德面으로 가서 美術과 建築 旅行을 이어간다.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建築한 ’本態美術館‘과 在日 韓國人 建築家 이타미 준(유동룡)이 設計한 ’方舟敎會‘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空間이다. 方舟敎會는 舊約聖書에 나오는 노아의 方舟 模樣으로 세워진 敎會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方舟처럼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方舟敎會는 지붕의 三角形 金屬조각이 反射하며 빛의 洪水를 만들어낸다. 敎會 周邊은 야트막한 蓮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方舟의 形象이다. 內部로 들어가면 배의 骨格을 본떠 기둥 없는 五角形 돔 構造로 簡潔하다. 壁面 아래쪽에 있는 琉璃窓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操舵室에 該當하는 正面에 十字架가 서 있고, 琉璃窓에서는 强烈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希望의 窓門‘이다. 50名 程度가 앉을 수 있는 작은 敎會지만 누구라도 敬虔해지지 않을 수 없는 宗敎的 雰圍氣가 가득한 空間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本態博物館은 露出 콘크리트 建物로, 韓國의 傳統 흙담 및 庭園과 잘 어우러진다. 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景致가 아름답다. 透明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建物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內部에 들어가면 白南準,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高麗靑瓷와 白瓷, 小盤, 조각褓 等 東西洋 美術의 다양한 컬렉션을 鑑賞할 수 있다. 전승훈記者 raphy@donga.com}

    •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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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와 海草로 끼니 때웠지만…이중섭이 사랑했던 섶섬 風景[전승훈의 아트로드]

    濟州 西歸浦 앞바다에는 無人島 三兄弟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濟州島를 만든 神이 아름다운 提州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火가 나서 漢拏山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汎섬이 됐다고 한다. 漢拏山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白鹿潭이 됐다. 西歸浦 세 섬은 유네스코 登錄遺産이자 生物圈 保全地域으로 指定된 天惠의 祕境이다. 바닷속은 ‘珊瑚庭園’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世界的인 연산호 群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聖地이기도 하다. 畫家 李仲燮(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家族들과 살았던 가장 幸福했던 瞬間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 그리운 섶섬 風景 濟州 西歸浦에 있는 李仲燮美術館 屋上에 올라가면 西歸浦 앞바다가 보인다. 畫家 李仲燮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風景’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黃土빛 길과 羅牧, 草家지붕 風景은 콘크리트 빌딩과 道路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門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風景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風景’은 現在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展示되고 있는 故 李健熙 會長 寄贈 1周年 記念展人 ‘어느 蒐集家의 初代’에서 볼 수 있다. 黃土빛 草家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色 濟州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色彩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西歸浦 生活은 중섭에게 人生의 가장 아름다운 時節이었을 것이다. 1951年 1·4後退 當時 元山에 살던 李仲燮은 家族을 이끌고 避亂해 濟州 西歸浦까지 내려온다. 李仲燮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坪짜리 單칸房을 얻어 산다. 實際로 李仲燮 美術館 아래 草家집에는 李仲燮 家族이 머물던 房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配給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李仲燮은 西歸浦 海邊으로 내려가 海草를 뜯어 粥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飯饌을 해 먹었다고 한다. 西歸浦 七十里로 자구리海邊에 가면 展望 좋은 카페와 食堂이 있는 距離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李仲燮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濟州島 風景’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文化藝術公園에는 담뱃匣 속 包裝知人 은지에 鉛筆로 그림을 그리는 畫家의 커다란 손이 形象化된 彫刻品이 있다. 李仲燮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作家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作品이다. 그러나 李仲燮은 濟州島에 到着한 그해 12月 가난을 解決하지 못해 1年도 채 안 돼 釜山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以後 아내와 아이들도 日本으로 떠나보냈다. 1956年 世上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銀箔紙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風景, 銀箔紙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李仲燮美術館에서 西歸浦 올레市場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畫家들의 作業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尙州 藝術家들이 그린 壁畫를 鑑賞한다. 섶섬과 문섬의 風景을 보기엔 西歸浦 正房瀑布 옆에 있는 이왈종美術館도 좋은 포인트다. 畫家 이왈종은 1990年 大學敎授職을 박차고 濟州로 내려왔다. 民畫的인 色彩와 道上으로 構成된 그의 作品 世界는 團欒하다. ‘濟州 生活의 中道’ 聯作에는 冬柏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濟州의 悠悠自適한 風景이 살아 숨쉰다. ● 바닷속 곶자왈, 珊瑚庭園 섶섬은 스킨스쿠버 名所다. ‘小天地’와 ‘작은 한開創’, ‘큰 한開創’(濟州 方言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地形을, ‘開創’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地形이라고 한다) 等 有名한 다이빙 포인트가 櫛比하다. 섬이나 바닷가 旅行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地域을 立體的으로 鑑賞하는 效果를 얻을 수 있다. 西歸浦港에서 出發하는 배를 타고 5分쯤 가니 섶섬에 到着했다. 스쿠버다이빙 裝備를 着用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浮力調節裝置(BCD)의 空氣를 排出시키며 徐徐히 下降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陸上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程度로 나무가 빽빽한 濟州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類(soft coral)인 粉紅色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珊瑚, 하얀色 海松까지 地球에 存在하는 모든 珊瑚를 모아놓은 듯하다. 粉紅色, 노란色, 草綠色, 흰色 等 總天然色 ‘珊瑚庭園’이다. 알록달록 華麗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一名 라이언피시)李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餘裕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向해 내려가는 동안 强烈한 原色의 亞熱帶 魚種들이 次例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靑줄돔, 파랑돔, 琥珀돔, 아홉동가리, 黃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群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共生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等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主人公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向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運이 좋으면 龍王의 使臣인 바다거북, 大型 가오리度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代表(다이빙 講師)는 “섶섬 앞바다에는 海松이 많고, 문섬 새끼섬 職壁에는 노란色 연산호가 많다”며 “西歸浦 앞바다는 世界的인 天惠의 珊瑚庭園”이라고 말했다. ● 方舟敎會 & 本態美術館 西歸浦港에서 乘用車로 30餘 分 距離에 있는 서귀포시 安德面으로 가서 美術과 建築 旅行을 이어간다.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建築한 ‘本態美術館’과 在日 韓國人 建築家 이타미 준(유동룡)이 設計한 ‘方舟敎會’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空間이다. 方舟敎會는 舊約聖書에 나오는 노아의 方舟 模樣으로 세워진 敎會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方舟처럼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方舟敎會는 지붕의 三角形 金屬조각이 反射하며 빛의 洪水를 만들어낸다. 敎會 周邊은 야트막한 蓮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方舟의 形象이다. 內部로 들어가면 배의 骨格을 본떠 기둥 없는 五角形 돔 構造로 簡潔하다. 壁面 아래쪽에 있는 琉璃窓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操舵室에 該當하는 正面에 十字架가 서 있고, 琉璃窓에서는 强烈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希望의 窓門’이다. 50名 程度가 앉을 수 있는 작은 敎會지만 누구라도 敬虔해지지 않을 수 없는 宗敎的 雰圍氣가 가득한 空間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本態博物館은 露出 콘크리트 建物로, 韓國의 傳統 흙담 및 庭園과 잘 어우러진다. 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景致가 아름답다. 透明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建物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內部에 들어가면 白南準,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高麗靑瓷와 白瓷, 小盤, 조각褓 等 東西洋 美術의 다양한 컬렉션을 鑑賞할 수 있다. 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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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섶섬이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李仲燮의 그리움처럼[전승훈 記者의 아트로드]

    《濟州 西歸浦 앞바다에는 無人島 三兄弟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濟州島를 만든 神이 아름다운 提州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火가 나서 漢拏山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汎섬이 됐다고 한다. 漢拏山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白鹿潭이 됐다. 西歸浦 세 섬은 유네스코 登錄遺産이자 生物圈 保全地域으로 指定된 天惠의 祕境이다. 바닷속은 ‘珊瑚庭園’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世界的인 연산호 群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聖地이기도 하다. 畫家 李仲燮(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家族들과 살았던 가장 幸福했던 瞬間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그리운 섶섬 風景濟州 西歸浦에 있는 李仲燮美術館 屋上에 올라가면 西歸浦 앞바다가 보인다. 畫家 李仲燮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風景’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黃土빛 길과 羅牧, 草家지붕 風景은 콘크리트 빌딩과 道路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門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風景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風景’은 現在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展示되고 있는 故 李健熙 會長 寄贈 1周年 記念展人 ‘어느 蒐集家의 初代’에서 볼 수 있다. 黃土빛 草家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色 濟州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色彩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西歸浦 生活은 중섭에게 人生의 가장 아름다운 時節이었을 것이다. 1951年 1·4後退 當時 元山에 살던 李仲燮은 家族을 이끌고 避亂해 濟州 西歸浦까지 내려온다. 李仲燮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坪짜리 單칸房을 얻어 산다. 實際로 李仲燮 美術館 아래 草家집에는 李仲燮 家族이 머물던 房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配給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李仲燮은 西歸浦 海邊으로 내려가 海草를 뜯어 粥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飯饌을 해 먹었다고 한다. 西歸浦 七十里로 자구리海邊에 가면 展望 좋은 카페와 食堂이 있는 距離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李仲燮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濟州島 風景’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文化藝術公園에는 담뱃匣 속 包裝知人 은지에 鉛筆로 그림을 그리는 畫家의 커다란 손이 形象化된 彫刻品이 있다. 李仲燮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作家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作品이다. 그러나 李仲燮은 濟州島에 到着한 그해 12月 가난을 解決하지 못해 1年도 채 안 돼 釜山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以後 아내와 아이들도 日本으로 떠나보냈다. 1956年 世上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 銀箔紙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風景, 銀箔紙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李仲燮美術館에서 西歸浦 올레市場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畫家들의 作業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尙州 藝術家들이 그린 壁畫를 鑑賞한다. 섶섬과 문섬의 風景을 보기엔 西歸浦 正房瀑布 옆에 있는 曰種美術館도 좋은 포인트다. 畫家 이왈종은 1990年 大學敎授職을 박차고 濟州로 내려왔다. 民畫的인 色彩와 道上으로 構成된 그의 作品 世界는 團欒하다. ‘濟州 生活의 中道’ 聯作에는 冬柏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濟州의 悠悠自適한 風景이 살아 숨쉰다.○ 바닷속 곶자왈, 珊瑚庭園 섶섬은 스킨스쿠버 名所다. ‘小天地’와 ‘작은 한開創’, ‘큰 한開創’(濟州 方言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地形을, ‘開創’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地形이라고 한다) 等 有名한 다이빙 포인트가 櫛比하다. 섬이나 바닷가 旅行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地域을 立體的으로 鑑賞하는 效果를 얻을 수 있다. 西歸浦港에서 出發하는 배를 타고 5分쯤 가니 섶섬에 到着했다. 스쿠버다이빙 裝備를 着用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浮力調節裝置(BCD)의 空氣를 排出시키며 徐徐히 下降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陸上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程度로 나무가 빽빽한 濟州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類(soft coral)인 粉紅色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珊瑚, 하얀色 海松까지 地球에 存在하는 모든 珊瑚를 모아놓은 듯하다. 粉紅色, 노란色, 草綠色, 흰色 等 總天然色 ‘珊瑚庭園’이다. 알록달록 華麗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一名 라이언피시)李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餘裕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向해 내려가는 동안 强烈한 原色의 亞熱帶 魚種들이 次例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靑줄돔, 파랑돔, 琥珀돔, 아홉동가리, 黃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群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共生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等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主人公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向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運이 좋으면 龍王의 使臣인 바다거북, 大型 가오리度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代表(다이빙 講師)는 “섶섬 앞바다에는 海松이 많고, 문섬 새끼섬 職壁에는 노란色 연산호가 많다”며 “西歸浦 앞바다는 世界的인 天惠의 珊瑚庭園”이라고 말했다.○방주교회 & 本態博物館西歸浦港에서 乘用車로 30餘 分 距離에 있는 서귀포시 安德面으로 가서 美術과 建築 旅行을 이어간다.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建築한 ‘本態博物館’과 在日 韓國人 建築家 이타미 준(유동룡)이 設計한 ‘方舟敎會’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空間이다. 方舟敎會는 舊約聖書에 나오는 노아의 方舟 模樣으로 세워진 敎會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方舟처럼 漢拏山 中턱에 자리 잡은 方舟敎會는 지붕의 三角形 金屬조각이 反射하며 빛의 洪水를 만들어낸다. 敎會 周邊은 야트막한 蓮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方舟의 形象이다. 內部로 들어가면 배의 骨格을 본떠 기둥 없는 五角形 돔 構造로 簡潔하다. 壁面 아래쪽에 있는 琉璃窓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操舵室에 該當하는 正面에 十字架가 서 있고, 琉璃窓에서는 强烈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希望의 窓門’이다. 50名 程度가 앉을 수 있는 작은 敎會지만 누구라도 敬虔해지지 않을 수 없는 宗敎的 雰圍氣가 가득한 空間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本態博物館은 露出 콘크리트 建物로, 韓國의 傳統 흙담 및 庭園과 잘 어우러진다. 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景致가 아름답다. 透明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建物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內部에 들어가면 白南準,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高麗靑瓷와 白瓷, 小盤, 조각褓 等 東西洋 美術의 다양한 컬렉션을 鑑賞할 수 있다. 글·寫眞 西歸浦=전승훈 記者 raphy@donga.com}

    •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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