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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쉬다가 …家族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週刊東亞

週刊東亞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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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쉬다가 …家族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 企劃·進行/ 최영철 記者 ftdog@donga.com

    入力 2003-09-03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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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 必要에 따라 만들어지고 新作路가 出現하면서 사라진다. 그것이 길의 運命이다. 비록 옛길이 됐지만 그 터에는 길손들의 哀歡과 事緣이 ‘晋州’처럼 숨어 있다. 褓負商의 땀과 눈물이, 때로는 民草들의 恨(恨)李 서려 있는 옛길. 그래서 옛 고개는 모두 ‘아리랑 고개’다.주간동아는 數千, 數百 年 동안 나그네의 사랑을 받아오다 이제는 登山路, 오솔길, 散策길로 남은 옛길 10곳을 嚴選해 踏査記를 싣고 各種 情報를 提供했다. 紹介된 10곳은 原形이 잘 保存된 길 中 周邊 景觀이 빼어나고 事緣이 있는 옛길로, 때로 山行을 해야 하는 길도 있지만 大部分 家族 單位로 便安하게 걷기에 無理가 없는 길이다. 걷기의 기쁨과 森林浴, 丹楓觀光 모두를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옛길에서 큰 滿足을 느낄 수 있으리라.

    麟蹄 새이령 - 길은 좁고 숲은 우거지고 …原始林이 따로 없네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原始林에 둘러싸인 새이령. 溪谷 周邊에 흐드러지게 핀 野生花 群落과 진흙집. 山林廳이 伐木에 나섰을 만큼 숲이 鬱蒼한 새이령길(位부터 時計 反對方向).

    講院 麟蹄郡 北面 용대리 蒼暗마을과 高城郡 토성면 入院리 사이에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옛길이 原形을 그대로 간직한 채 숨어 있다. 彌矢嶺과 陳富嶺 사이의 백두대간을 활 模樣으로 가르는 새이령(샛령·大間嶺) 옛길. 險峻한 백두대간의 고개答紙 않게 길이 워낙 부드럽게 이어져 1970年代 初盤 寒溪嶺에 道路가 생기기 以前까지 彌矢嶺, 陳富嶺, 九龍嶺 等 講院 北部의 東西를 連結하는 고개를 통틀어 가장 많이 愛用된 길이다. 하지만 只今은 一部 地域住民과 專門 山岳人이 아니면 길의 來歷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길로서의 機能을 喪失한 지 30餘年, 이곳은 完璧한 原始林으로 變해 있다. 이깔나무와 전나무, 丹楓나무 等 各種 針葉·闊葉樹林이 숲을 이루고 있어 길을 걷는 동안 햇빛 한 가닥이 그리울 程度. 原始林 속을 파고드는 한 가닥 햇빛이 마치 레이저 光線 같다. 溪谷 周邊의 양지바른 곳에 至賤으로 핀 온갖 野生花와 키높이만큼 자란 억새를 헤치며 나아가는 맛이 一品이다.

    길의 들머리는 용대리 蒼暗마을의 神仙峯農産物割引店 뒤便 軍事訓鍊場. 割引店 뒤便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면 射擊場 옆으로 廢타이어로 만든 階段이 나오고 이 길을 지나면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걸을 만한 흙길이 이어진다. 비록 原始林을 彷彿케 하는 숲길이지만 길을 찾는 데는 全혀 無理가 없다. 山岳人들이 곳곳에 리본을 매어둔 데다 길이 끊기면 溪谷 自體가 길이 된다. 길은 부드럽다 못해 싱겁다. 登山靴를 신고 걷는 게 머쓱할 程度.



    새이령 고갯길 踏査의 또 하나의 妙味는 개울 나들이다. 새이령 頂上까지 가는 3時間餘 동안 無慮 10次例나 개울을 건넌다. 건너기 좋게 바위를 옮겨다 놓은 옛 길손의 넉넉한 마음에 빙그레 微笑부터 짓게 된다. 시리도록 맑은 溪谷물에서는 말로만 듣던 山川魚와 熱目魚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소간령을 넘어서면 朝鮮時代 말들이 쉬어 갔다는 馬房터가 나오고 거기에는 아직도 귀틀집이 남아 있다. 電氣도 들어오지 않고 首都도 없는 이곳에서 뜻밖에 두 名의 男子가 길손을 반긴다(말만 잘하면 돌板에 구운 三겹살을 얻어먹을 수도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없는 게 없었다”는 鄭氏 할아버지는 “이 길이 言論에 자꾸 알려지면 안 되는데…”라며 ‘原始의 毁損’을 걱정했다.

    ■ 글·寫眞/ 최영철 記者

    ◈ Tips

    - 交通: 人制나 圓筒에서 陳富嶺 가는 버스를 타고 용대 三거리(46番 國道)에서 내려 彌矢嶺 方向(56番 地方도)으로 1.5km 假量 가면 옛길 入口인 神仙峯農産物割引店이 있다.

    - 宿泊·먹을거리: 仙女와 나무꾼(033-462-3957), 옥미정(033-462-7606)에서는 宿食이 모두 可能하다. 黃太찜, 土種닭, 마가목週, 머루酒가 一品이다.

    - 볼거리: 百潭寺, 麟蹄腸, 襄陽腸, 龍대산 自然休養林, 스키博物館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곧게 뻗은 소나무가 鬱蒼한 寒溪嶺 옛길. 寒溪嶺 옛길과 마주치는 한계천. 옛길 入口에 있는 ‘장수대 標돌’. 길이 끊어진 듯하지만 좁은 흙길이 이어져 있다(위부터 時計 反對方向).

    寒溪嶺 옛길은 圓筒長과 襄陽腸을 이어주던 길이다. 全國의 張을 찾아다니며 物件을 팔던 行商人의 一種인 ‘線質꾼’들이 襄陽腸을 出發해 寒溪嶺을 넘나들며 主로 利用했다. 옛길은 44番 國道 建設로 여러 군데 끊어져 있고 人跡이 드물어 流失된 部分도 적지 않다. 옛길은 크게 두 區間으로 나뉜다. 첫番째는 寒溪嶺 쇠리마을에서 장수대休憩所까지 區間이며 두 番째는 장수대休憩所에서 다시 寒溪嶺休憩所까지 區間이다. 하지만 첫番째 길은 44番 國道와 거의 一致한다. 寒溪嶺 道路가 開設되면서 옛길이 고스란히 道路에 編入됐기 때문이다. 두 番째 區間에서는 옛길의 情趣를 發見할 수 있다. 장수대休憩所 內部로 들어가면 500坪 程度 되는 널찍한 野營場이 있는데 李承晩 大統領 時節 前方 軍人들이 이곳에 와서 休養을 하기 始作하면서 ‘장수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野營場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이 옛길의 始作 地點이다.

    初入은 比較的 잘 整頓되어 있고 길을 따라 흐르는 한계천의 물 흐름이 시원해 고즈넉한 雰圍氣를 限껏 즐길 수 있다. 하지만 10分 程度만 걸어가면 이내 길의 痕跡이 사라져 唐慌하게 된다. 多幸히 마을사람들로부터 “電信柱를 따라가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艱辛히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2時間 假量 4km 程度를 따라가면 寒溪嶺休憩所가 나타난다. 注意할점은 마지막 10分 程度의 區間. 갑자기 길이 사라져 옆에 있는 溪谷을 타고 싶은 衝動이 생길 수도 있지만 가파른 비탈길을 곧장 따라 올라가야 寒溪嶺休憩所에 到達한다. 옛길度 情趣를 간직하고 있지만 장수대까지 찾아가는 44番 國道의 風景도 너무나 아름답다. 街路樹가 높게 솟아 있어 마치 꿈길을 달리는 듯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이곳 隣近에서 別味를 맛보기는 힘들다. 도시락을 싸 가거나 食道樂家라면 寒溪嶺 가는 곳곳에 있는 土俗飮食店에서 미리 食事를 解決하는 게 좋을 듯하다.

    ■ 글·寫眞/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交通: 乘用車로는 44番 國道를 타고 麟蹄邑內로 들어가지 말고 바로 寒溪嶺 쪽으로 가야 한다. ‘寒溪嶺 前 마지막 SK主要素’라는 標識를 지나면 바로 쇠리마을. 버스로는 인제 市外버스터미널에 到着한 後 용대리行 市內버스를 타면 장수대休憩所(033-463-4837)에 到着한다.

    - 宿泊·먹을거리: 쇠리마을과 장수대休憩所 마을 內에 內雪岳쉼터(033-463-3772) 等 여러 곳이 있다. 民泊집의 素朴한 食事와 休憩所 안에 設置되어 있는 賣店 및 食堂에 있는 먹을거리가 全部.

    - 볼거리: 장수대休憩所 直前 小公園 건너便에 石黃司터가 있다. ‘장수대 標돌’이 있는 이곳이 옛길의 出發地. 休憩所 맞은便 登山路를 따라가면 內雪岳 첫 고개인 대승령이 나온다.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 해서 대굴령이라고 불린 大關嶺 옛길. 第멩이 쪽 入口. 길은 굽이굽이 돌며 이어진다(위부터 時計 反對方向).

    소나무가 이처럼 곧고 키가 컸던가.

    大關嶺에 올랐다. 東海가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고 소나무가 絨緞처럼 펼쳐진다. 백두대간의 朔風에 堂堂하게 맞서온 소나무는 剛健하다. 矮小하거나 굽지 않은 것은 찬 北西風에 꺾이지 않은 소나무의 剛斷 德이다. 소나무의 壯大한 氣像은 굽은 ‘나’를 걷어내고 堂堂한 ‘自我’를 되찾게 한다.

    옛 嶺東高速國道 大關嶺길 대관령휴게소에서 江陵 쪽으로 500m 假量 내려가면 ‘大關嶺 옛길 反正(反젱이·反程)’이라고 씌어진 碑石이 있다. 옛길 入口. 옛날 師任堂 申氏가 아들인 栗谷 李珥의 손을 잡고 넘었던, 더 옛날 弓裔가 명주성(江陵)을 차지하기 위해 軍士를 몰았던 바로 그 ‘眞짜’ 大關嶺이다. 大關嶺의 本디 이름은 ‘대굴령’.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 해서 그렇게 불렸단다. 대굴령을 漢字로 적은 게 大關嶺이다.

    옛길이 남아 있는 區間은 反젱이에서 第멩이(강릉시 성산면 어흘리)까지 5km. 嶺東高速國道 大關嶺 區間이 直線化하면서 옛길은 高速國道에 막혀 또다시 半으로 끊겼다. 反젱이에서 始作해 半을 걷고, 反對便 어흘리부터 다시 半을 올라야 한다. 길은 대여섯 사람이 이야기를 하며 걸을 수 있는 너비. 東海에서 난 海産物은 이 길을 따라 英書로 넘어가고 뭍에서 만든 工産品은 괴나리褓짐에 실려 江陵 舊山莊 年工場 牛溪張에 넘쳐났다.

    옛길을 지나는 물빛과 바람결이 어느덧 가을을 느끼게 한다. 물氣를 품은 선들바람은 가을의 傳令이라 했다. 어흘리 사람들은 大關嶺 옛길의 眞正한 風趣는 가을과 겨울에 느낄 수 있다 한다. 가을 소나무는 비바람이 불어야 제格이다. 솔바람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頌聲(松聲)이니 宋雲(松韻)이니 하는 祖上들의 말이 허튼소리는 아닌가 보다. 빗소리에 運을 맞춘 솔숲 소리가 爽快하기 그지없다.

    걷기에, 大關嶺 옛길은 쉽지 않다. 대굴령이란 이름이 공연히 붙여진 것은 아닐 터. 師任堂 申氏는 아흔아홉 구비구비 大關嶺을 넘으며 이렇게 읊었다. ‘늙으신 어머님을 江陵에 두고/ 이 몸은 홀로,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北村은 아득한데/ 흰 구름만 저문 山을 날아 내리네.’

    ■ 글·송홍근 記者 / 寫眞·박해윤 記者

    ◈ Tips

    - 交通: 汽車, 高速버스를 利用해 江陵에 到着한 뒤 市內버스와 市外버스를 利用. 市內버스: 江陵-어흘리(午前 6時~午後 10時), 市外버스: 江陵-횡계(午前 5時30分~午後 8時)

    - 宿泊·먹을거리: 나무로 지은 오두幕人 옛길쉼터(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033-641-9402)에서는 食事도 可能하다. 옛길농원(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033-641-9594)에서는 主人이 直接 기른 오리로 만든 오리料理가 一品.

    - 볼거리: 普賢寺, 溟州郡王陵, 申師任堂私親非, 大關嶺 自然休養林, 大關嶺博物館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들꽃과 숲이 어우러진 고치령 옛길. 소에게 먹일 꼴을 지고 가는 마을 老人. 人跡 드문 이 길 위에는 端宗의 한 맺힌 歷史가 쌓여 있다(위부터 時計 反對方向).

    이 땅에 이처럼 아름다운 길이 또 있을까. 고치령(高칫재) 고개를 넘는 이라면 누구나 自身도 모르게 이 같은 驚歎을 吐해낼 듯하다. 限없이 透明해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맑은 하늘, 짙푸르게 우거진 나무 숲, 그 사이로 끊어질 듯 아련하게 이어지는 한 口碑 옛길.

    忠北 丹陽郡 영춘면 의풍리에서 慶北 榮州市 단산면 좌석리로 이어지는 고치령길 22.5km는 우리 길이 가진 아름다움의 極限을 보여준다. 이 길은 素朴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고요하지만 외롭지 않다.

    가파른 외길도, 險한 골짜기도 없는 素朴한 아름다움. 그리고 끝없는 고요함. 大部分의 사람들은 고치령을 넘는 7時間 동안 單 한 名의 同行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따금 좁은 非鋪裝道路를 지나느라 甚하게 搖動치는 自動車가 곁을 스치겠지만 周圍를 둘러싼 巨大한 고요를 무너뜨리기에는 力不足이다.

    이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은 燦爛한 나뭇잎과 躊躇 없이 지저귀는 새들, 그리고 이 길에 쌓인 피맺힌 歷史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自體만으로도 이 길을 限없이 魅力的으로 만든다.

    고치령은 朝鮮時代 癸酉靖難 以後 寧越에 流配된 少年王 端宗의 復位를 꿈꾼 이들이 넘나들던 길. 當代의 ‘革命家’들은 端宗을 지키려다 순흥에 流配된 그의 叔父 錦城大君의 消息을 斷種에게 傳하기 위해 이 길에 숨어들었다. 復位運動이 끝내 失敗로 돌아간 後 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지만 端宗의 寧殷 太白山 神靈이 되고, 錦城大君은 小白山 神靈으로 살아 두 山을 잇는 고갯마루 고치령을 지키고 있다.

    緩慢한 오르막이 끝나는 고치령 頂上에는 이들을 기리는 山嶺角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단산면 마락리에서 43年째 살고 있다는 정인흠氏(69)는 “오랜 歲月이 지나는 동안 山嶺角은 불타 없어져 버렸지만 마락리 住民들은 只今도 每해 正月 大보름이면 이곳에서 재를 올리며 두 분의 넋을 기린다”고 傳했다. 고개가 끝나는 곳에는 이들이 몸을 避했던 피바위, 望을 보았다는 網바위가 서서 지난 歷史를 默默히 傳해준다. 길의 끝에서 멀지 않은 두렛골에는 錦城大君을 모신 서낭堂度 남아 있다.

    ■ 글·송화선 記者 / 寫眞·지재만 記者

    ◈ Tips

    - 交通: 迎春에서 의풍리로 들어가는 마을버스가 영춘면 區 信協 앞에서 午後 1時30分과 5時30分, 하루 두 番 出發한다. 나오는 時間은 午後 3時, 7時.

    - 宿泊: 의풍리 담배가겟집(043-422-6309), 좌석리 高칫재 民泊(054-638-4544)

    - 볼거리: 고치령 山嶺角 터, 연화瀑布, 網바위, 두렛골 금성대군 서낭堂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文明의 자취라곤 찾아볼 수 없는 竹嶺 옛길. 竹嶺 옛길 初入에 서 있는 장승들(位부터).

    慶北 영주시 풍기읍과 丹陽郡 대강면의 境界에 位置한 ‘竹嶺 옛길’은 無慮 2000餘年의 長久한 歷史를 자랑한다. ‘三國史記’에는 ‘阿達羅王 5年(西紀 158年)에 비로소 竹嶺길이 열렸다’고 記錄돼 있고, 1910年代까지 慶尙道 東北地方에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主로 서울로 科擧 보러 올라가는 선비와 公務를 띤 官員들이 이곳의 客店과 馬房(馬房)을 利用했다고 한다. 特히 이 길은 秋風嶺, 聞慶새재와 더불어 三國時代 軍事的 要衝地이자 嶺南圈과 畿湖地方(畿湖地方)을 連結하는 3大 觀門의 하나로 여겨져 사람들의 往來가 많았던 길이다.

    近代에 들어 利用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自然 流失된 곳이 많아졌지만, 最近 영주市廳과 풍기읍이 이를 復元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길의 出發地點은 희방사역 뒤便으로 300餘m 이어진 아스팔트 길을 지나면 天下大將軍과 地下女將軍이 옛길의 始作을 알린다. 案內板이 곳곳에 設置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옛길을 찾을 수 있다. 大部分의 옛길이 그렇지만 이곳 또한 옛 情趣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文明의 자취라고는 電報대뿐이고, 물소리와 새소리만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比較的 널찍한 길이라 두 名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程度로 여유롭고 군데군데 자라난 雜草들이 발걸음을 한결 가뿐하게 해준다. 初入에서부터 고갯마루까지 1時間30分 假量 걸리며, 고개 頂上에서 다시 丹陽郡 용부원리까지 가려면 2時間을 걸어야 한다. 下山길에 죽령산新黨에 들르면 옛길에 얽힌 傳說과 民譚을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風紀까지는 乘用車로 2時間30分 假量 걸린다. 아침 7時頃 서울을 出發, 午前 11時頃부터 옛길을 타기 始作해 竹嶺酒幕에서 點心을 解決하고 내려오면 當日에 充分히 다녀올 수 있다.

    ■ 글·寫眞/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交通: 乘用車로는 중앙고속도로 風紀IC에서 내려 희방사역을 찾으면 되고, 버스를 利用할 때는 風奇行 市外버스나 高速버스로 風紀에 到着 後 市內버스터미널(054-636-3848)에서 喜方寺行 市內버스를 利用한다. 汽車는 서울 청량리역에서 喜方寺까지 가는 汽車가 15時에 한 次例 運行된다.

    - 宿泊·먹을거리: 희방사역 앞에 民泊이 있지만 풍기읍內에 있는 皇帝모텔(054-633-0494)이나 風紀호텔(054-637-8800)을 利用하는 게 좋다. 風紀邑內의 風紀돼지갈비(054-637-4830)는 地域特産物人 風紀人蔘을 넣어 熟成시킨 別味 돼지갈비로 有名하다. 竹嶺고개의 竹嶺酒幕(054-638-6151)과 竹嶺休憩所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도 좋다.

    - 볼거리: 竹嶺 옛길 고개에서 대강면 샛골로 가는 길에 ‘머리 없는 佛像’인 보국사 彌勒佛(新羅時代)이 있다.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말구리再 頂上에서 바라본 風景. 間間이 섞여 있는 針葉樹林이 재를 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가좌목에서 始作하는 말구리再 入口.널찍한 굽이길이 印象的이다(위부터 時計 反對方向).

    말구리재는 고요하다. 自身의 옛 映畫를 追憶하는 양 쓸쓸하게 그냥 거기 存在한다. 이제 이 길을 통해 忠州, 淸州 或은 京城으로 발길을 다잡는 나그네는 없다.

    都市 이름부터 淳朴한 聞慶 店村. 1970年代 石炭 鑛山으로 興하여 ‘慶北 店村에서 돈자랑 하지 말라’던 所聞은 오간 데 없다. 店村에서 出發한 버스가 街座目에 이르자 食堂 하나 없는 素朴함에 놀라게 된다. 街座目(佳佐目)은 紅巾賊의 侵攻을 받아 伏誅로 避難 온 高麗 恭愍王이 이곳의 山水가 秀麗하고 住民들의 精誠이 至極하다 하여 붙인 이름.

    “總角이래요, 아저씨래요? 總角이면 사위 삼으려고 그래요. 우리 집에서 자고 가래요.” 마을 어귀에 모여 있는 中年 아낙들이 짓궂은 弄을 걸어온다.

    行政區域上 慶尙道지만 江原道 사투리가 살포시 묻어나온다. 구비구비 民家를 지나 말구리再 入口에 當到하니 豫想치 못한 規模에 마음을 뺏긴다. 탁 트인 展望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굽이길. 人跡 없는 山中에 펼쳐져 있는, 2車線 道路를 내고도 남을 만큼 널찍한 옛길은 놀라움 그 自體다. 문경시 산북면 가좌목에서 문경읍 갈평리까지 6.8km에 이르는 말구리재는 新羅時代부터 이웃한 하늘재(2km)와 함께 널리 愛用되던 길이다. 말구리재는 마전령(馬轉嶺)이라 불릴 程度로 말이 달리기 좋게 包裝되어 걷기에도 그만이다.

    1時間 남짓 繼續 걸으니 말구리再 情狀에 다다른다. 四方天地가 온통 綠色인데 人跡은 없고 昆蟲들만이 異邦人을 반긴다.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를 3時間 남짓 繼續 가니 民家가 나타난다. 바로 말구리裁可 끝나는 갈坪마을. 물소리로 뒤덮인 마을에는 謝過 香내가 그윽하다. 관음리에서 始作하는 하늘목이 저만치 눈에 들어온다. 말구리材에 滿足 못하는 이라면 하늘재에 가보는 것이 좋다. 관음리까지의 距離가 가까운 便은 아니지만 交通便이 如意치 않다면 걸어가는 것도 좋다. 하늘재는 韓半島 最初로 뚫린 고갯길로 新羅 第8代 阿達羅王(西紀 156年)李 北進을 위해 開拓했다고 한다. 깨끗하게 包裝돼 있는 것이 아쉬울 程度로 新羅의 情趣가 정겹게 펼쳐진다.

    ■ 글·寫眞/ 정호재 記者

    ◈ Tips

    - 交通: 大衆交通을 利用해 聞慶市(店村)에 到着한 뒤 터미널 앞에서 가좌목行 市內버스를 탄다(하루 5回: 午前 7時10分 以後 2時間30分 間隔). 갈평리行 버스는 하루 20回 運行한다(오전 7時30分~午後 6時35分).

    - 宿泊·먹을거리 : 김룡 松魚長 가든(김룡사 入口 043-553-2211), 새재骨(갈평리에서 문경읍 가는 길에 位置, 043-571-9980)은 나물 맛이 一品.

    - 볼거리 : 김룡사, 갈평리 五層石塔, 관음리 石佛立像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第1關門 ‘主屹關’. 第1關門 앞에는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溪谷과 어우러진 第2關門. KBS 드라마 撮影場. 第3關門으로 向하는 그림 같은 숲길(位부터 時計 反對方向).

    朝鮮時代 嶺南과 漢陽을 잇던 嶺南大路. 이中에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고개, 聞慶새재에는 過去를 보기 위해 漢陽으로 向하던 선비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KBS드라마 세트場이 들어서 볼거리가 더욱 豐盛해진 聞慶새재는 ‘옛길의 자연스러움’과 ‘整頓된 人工美’를 同時에 자랑한다.

    駐車場을 가득 메운 自動車와 ‘援助’를 내세우는 飮食店들의 搖亂한 看板. 聞慶새재 初入에서는 全혀 예스러움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第1關門, 主屹關에 들어서면 21世紀 聞慶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數百年 歷史를 지닌 옛길의 風貌가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거진 숲은 따가운 햇살을 가린 채 活力을 담은 香氣를 뿜어낸다. 溪谷을 타고 힘차게 흐르는 물줄기 소리는 屛風처럼 둘러싼 山자락의 고요함과 完璧하게 協演한다. KBS 드라마 ‘武人時代’의 세트場을 벗어난 뒤 신발을 벗어 들고 고운 흙길 위에 맨발을 내딛는다.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흙의 感觸이 온몸으로 傳해져 온다.

    第1關門을 지나며 만나는 반가운 空間은 祖靈원터. 길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旅館’ 役割을 했던 곳이다. 只今은 돌담만이 남은 그곳에 드라마 세트場이 자리잡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酒幕과 建立 年代를 알 수 없는 ‘山불됴심비’를 지나면, 忠州 사람 臣忠怨이 築造했다는 제2관문 鳥谷關이 나온다. 特히 第2關門을 지나면 民衆의 恨이 서린 歷史가 곳곳에 스며 있다. ‘聞慶새재 아리랑非’와 壬辰倭亂 當時 申砬 將軍이 農民軍 第2陣을 設置했던 ‘이陣터’에 이르면, 가슴 한구석이 肅然해진다.

    第3關門 鳥嶺關까지 가는 길은 보다 가파르다. 쭉 뻗은 잘생긴 전나무가 나그네의 길동무가 되어준다. 鳥嶺關을 지나 慶北 聞慶과 忠北 槐山의 境界를 밟으면서 3 時間에 걸친 옛길 旅行은 끝이 난다. 漢陽에 한 걸음 가까워진 나그네는 安堵의 한숨을 쉬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친다.

    ■ 글·이남희 記者/ 寫眞·조영철 記者

    ◈ Tips

    - 交通: 聞慶새재를 찾아가는 데는 汽車보다 高速버스가 便利하다. 店村에서 市外버스로 40分.

    - 宿泊·먹을거리: 聞慶市內에 있는 문경觀光호텔(054-571-8001)李 便安한 잠자리를 提供하고, 營養가마솥밥을 專門으로 하는 새재 이화정(054-571-8553)의 飮食이 입맛을 돋운다.

    - 볼거리: 聞慶觀光射擊場, 聞慶滑空랜드, 佛頂自然休養林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淮南재에서 바라본 河東郡 一帶. 回南在 中에서 가장 緩慢한 길. 회남재에서는 小說 ‘토지’의 舞臺인 평사리가 훤히 보인다(위부터 時計 反對方向).

    慶南 河東의 回南在는 小說 ‘토지’의 舞臺가 됐던 地域이다. ‘智異山으로 곧장 連結된 마을’이라는 地域的 特性 때문에 빨치산의 物資補給路 役割을 했다. 回南在의 出發地는 악양면 덕기마을이고 終着地는 청암면 묵계리. 이 길은 默契 사람들이 하동장에 오는 길이자 악양면에서 청학동으로 갈 수 있는 唯一한 길이기도 했다. ‘淮南(回南)再’란 이름은 南冥 曺植 先生이 이 터를 보고 골이 좁고 물이 蟾津江으로 곧장 빠져 ‘길지(吉地)’가 아니라고 判斷하고 돌아섰다는 逸話에서 由來했다.

    악양면 덕기마을 끝자락에 있는 療養施設 ‘사랑의 집’ 바로 옆길이 옛길 出發地. 傾斜가 가팔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세 番씩 숨을 쉬어야 한다 하여 ‘三椏令(三阿嶺)’이라 불리는 곳이다. 實際 이곳의 傾斜度는 40度가 넘는 듯하다. 사랑의 집에서 400餘m 程度는 道路가 包裝되어 있어 그나마 견딜 만하지만 實際 옛사람들이 거닐었다는 길은 그야말로 險하다. 키만큼이나 자란 雜풀들 사이로 실낱처럼 남은 옛길이 그나마 慰安을 준다. 빨치산 遊擊隊의 機敏함과 敏捷함이 必要한 區間. 그 길을 따라 ‘忍耐의 1時間’을 지나면 淮南재다.

    올라가는 길과 달리 고개 頂上에는 사람들의 往來가 잦아 回南在의 歷史와 由來를 알리는 案內 그림板이 세 個나 서 있다. 구름에 걸려 바라보이는 河東과 默契의 風光이 올라올 때의 苦生을 單숨에 잊게 한다. 蟾津江과 岳陽들판을 바라보며 먹는 點心은 너무나 맛있다. ‘옛사람들은 주먹밥을 먹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默契로 내려가는 淮南이골은 80餘m쯤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그 다음부터는 緩慢한 대나무숲 오솔길이다. 서걱서걱 내려오다 보면 귀틀집 한 채만 겨우 남은 淮南이 마을을 지나 어느덧 默契에 到着한다. 해마다 큰 暴雨가 쏟아져 냇물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默契(默溪). 올라오는 길이 워낙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묵계마을의 沈默 때문일까. 길손들은 말이 없다.

    ■ 글·寫眞/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交通: 慶南 河東에서 19番 國道를 타고 등촌리 덕기마을에 到着한 後 車가 갈 수 있는 마지막 地點이 出發地點. 河東 市外버스停留場(055-883-2662)에서 약수장行 완행버스를 타고 20分 가면 到着.

    - 宿泊·먹을거리: 19番 國道에 位置한 告訴性 食堂(055-883-6642)이 有名하다. 닭도리탕, 닭白熟, 香魚會, 고로쇠 藥水 等을 파는 악양면 內의 三거리食堂슈퍼(055-882-7087) 等 작은 民泊집이 있지만 좀더 便安한 잠자리를 願한다면 河東에 가야 한다.

    - 볼거리: 小說 ‘토지’에 나오는 평사리 崔參判宅, 寒山寺, 告訴山城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굴목理財에는 나무로 둘러싸인 아치형 길이 많다.옛길 들머리에 있는 仙巖寺 一柱門. 南道의 香臭가 傳해져 오는 굴목이재의 대나무 숲길(位부터 時計 反對方向).

    全南 順天의 曹溪山은 古色蒼然한 大寺刹과 鬱蒼한 숲의 情趣를 한 걸음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높이 884m의 높지 않은 山이 桐·西쪽 자락으로 펼쳐져 千年古刹 仙巖寺와 松廣寺를 품고 있고 절을 지나 山으로 들어서는 숲길은 옛 情趣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曹溪山 자락 仙巖寺-腺癌 굴木材-송광 굴木材-松廣寺에 이르는 옛길은 總 6.8km. 길 中間에서 벗어나 山 頂上까지 올라가봐야 總 길이가 1.8km밖에 안 돼 暫時 ‘外道’할 만하다.

    出發地인 仙巖寺는 고풍스럽고 慇懃한 멋을 자랑한다. 特히 절 앞에 아름답기로 이름난 승선교가 있는데 只今은 補修中이라 볼 수 없어 아쉽다. 道詵國師가 팠다는 작은 蓮못 三人黨과 仙巖寺 第2 不渡밭을 지나면 蓮못 맞은便에 位置한 茶집 뒷길이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이다. 거기엔 60~70年 된 杉나무와 편백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숲이 펼쳐져 있고 풀섶엔 노란 피나물꽃들이 至賤으로 피어 있다. 單, 毒性이 있어 함부로 만지면 큰일을 當할 수 있으니 操心해야 한다.

    仙巖寺와 松廣寺를 이어주는 山길이 굴목理財다. 仙巖寺 쪽의 腺癌 굴목理財(큰 굴목理財)와 松廣寺 쪽의 송광 굴목理財(작은 굴목理財)로 나뉘는데 작은 굴목理財에는 將軍峯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숲이 아늑하고 길이 險하지 않아 戀人이나 家族이 山行하기에 安城맞춤. 우리 歷史와 自然을 津하게 맛볼 수 있는 코스다.

    송광 굴목理財부터 松廣寺까지는 줄곧 내리막 돌밭 길이라 뛰어다니다 발목을 다칠 수 있으니 操心해야 한다. 작은 待避所를 지나 참나무 우거진 시누대밭길로 내려가면 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松廣寺 옆길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松廣寺는 國史와 殿閣, 寶物이 많다고 해 三多寺刹로 불려질 만큼 볼거리가 많은 名札이다.

    ■ 글·寫眞/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交通: 乘用車로는 南海高速道路 僧主 나들목에서 857番 地方道를 利用한다. 大衆交通은 各 大都市에서 버스(30~40分 間隔)를 利用해 順天에 到着한 뒤 腺癌蛇行(1番, 111番) 市內버스를 타면 된다.

    - 宿泊·먹을거리: 仙巖寺 들머리에 位置한 아젤리아호텔(061-754-6000)李 머물기에 便하다. 腺癌 굴목이재와 송광 굴목理財 사이에 位置한 曹溪山 보리밥집(061-754-3756)의 푸짐한 보리밥과 도토리묵, 野菜巴戰, 동동酒는 배고픈 길손에겐 最高의 食事다. 仙巖寺와 松廣寺 初入에서 맛볼 수 있는 5000원짜리 山菜비빔밥度 虛飢를 달래주는 데는 滿點.

    - 볼거리: 낙안읍성, 금둔사, 桐華寺, 검단산性, 주암호便 고인돌公園 等. 순천시가 運營하는 無料 시티 투어 버스를 利用한다(061-749-3328).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海南 띠밭材에서 바라본 大芚山 두輪棒. 옛길 어귀에 세워진 大芚寺 一柱門. 띠밭再 고개 頂上(왼쪽부터 時計 方向).

    全南 海南에서 12km 떨어진 곳에 位置한 名山 大芚山. 奇巖들이 山꼭대기를 에워싸고 있어 마치 山이 머리에 王冠을 쓴 듯하다 해서 頭輪山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北쪽으로는 腸秋舊曲이 펼쳐져 있고 東·西·南쪽 모두 발굽 形態로 둥글게 連結돼 있다.

    그 南쪽 자락에 千年古刹 ‘대둔사(大興寺)’가 있다. 이곳은 朝鮮時代 西山大師가 戰爭을 비롯한 三災가 미치지 않고 1萬年 동안 마르지 않을 땅이라며 明堂 터로 指目한 곳. 또한 濟州島나 南道의 외딴섬으로 流配길에 올랐던 옛 선비들이 거쳐간 곳으로도 有名하다. 이곳에서 濟州島로 가려면 海南郡 북평면의 이진항을 利用해야 했는데, 바로 띠밭裁可 그 連結通路 役割을 했다. 북평면 住民들이 大興寺 行事에 參與하려면 반드시 이 길을 거쳤다. 대둔사에는 大雄寶殿을 비롯해 冥府殿 白雪當, 千佛殿, 용화당, 表忠寺 等의 建物이 두 區域으로 나뉘어 자리잡고 있다. 大芚寺에서 山길을 20餘分 오르면 일지암에 이른다. 우리나라 茶文化의 産室로 이름 높은 이곳은 초의禪師가 김정희, 丁若鏞 等과 함께 茶道를 즐겼던 곳으로 有名하다. 秋史 金正喜와 초의禪師의 友情이 숨쉬는 곳인 띠밭再 옛길은 表忠寺 오른쪽 담벼락을 끼고 도는 길에서 出發한다. 물소리와 숲 香氣 가득한 길이 1.9km 假量 이어진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은 한낮에도 어둑어둑한 새벽 雰圍氣를 내며 나그네의 마음을 이끈다.

    물桶거리골과 가파른 비탈길, 溪谷길을 따라가다 보면 진불암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세 갈래로 갈라진 콘크리트 길 가운데 오른쪽 길로 50餘m 假量 가다 곧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띠밭裁可 나온다. 大芚寺에서 秋史 金正喜의 親筆을 구경하고, 이곳에 올라 多島海의 絶景을 바라보며 金正喜의 流配길을 吟味해보자. 길이 그리 險하거나 길지 않아 當日에 周邊 觀光地까지 모두 구경할 수 있다.

    ■ 글·寫眞/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交通: 海南郡까지 가는 데는 光州를 거치는 汽車보다 高速버스를 利用하는 것이 便利하다. 海南 버스터미널(061-534-0881)에서 30分 間隔으로 大芚寺 入口行 郡內버스가 運行된다.

    - 宿泊·먹을거리: 大芚山 初入에 海南 유스호스텔(061-533-0170)과‘남도음식축제’에서 對象을 받은 全州食堂(061-532-7696)이 있다. 海南의 特産物인 ‘땅끝햇쌀’로 지은 기름진 밥에 各種 山나물을 곁들인 山菜定食이 別味다.

    - 볼거리: 大芚寺에서는 當日코스의 旅行地가 많다. 主要 觀光地로는 땅끝마을(30分), 송호海水浴場(25分), 달마산 美黃寺(30分), 茶山草堂(50分), 우항리 恐龍化石地(30分) 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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