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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戰跆拳道와 北韓跆拳道|新東亞

實戰跆拳道와 北韓跆拳道

異種格鬪 挑戰한 實戰跆拳道, 正統性 是非 휘말린 北韓跆拳道

  • 組成式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mairso2@donga.com

    入力 2008-08-04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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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을 主管하는 WTF(世界跆拳道聯盟) 跆拳道가 스포츠로 發展한 反面 ITF(國際跆拳道聯盟) 跆拳道는 武道精神과 實戰性을 重視한다. 世界跆拳道文化祝祭 마지막 날 國內 姨從格鬪技 選手들과 맞붙은 ITF 選手들은 實戰跆拳道의 威力을 限껏 誇示했다. ITF 總裁는 北韓의 장웅 IOC 委員. 하지만 大會에 參加한 選手들은 이와는 다른 ITF 所屬이다. ITF 紛亂에 얽힌 祕話. 南北 交流 내세운 ITF와 WTF의 ‘政治的 統合’ 論難. 正統性 是非에 휘말린 北韓 跆拳道의 앞날.
    실전태권도와 북한태권도
    아르헨티나 跆拳道 選手인 마티아스 라모스(20)가 링에 오를 때 그가 이길 것 같다는 豫感이 들었다. 戰績이 華麗하거나 剛해 보여서가 아니었다. 엉뚱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다른 出戰者들과 달리 登場音樂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것이 예사롭지 않아서였다.

    相對는 綜合格鬪技(MMA=Mixed Martial Arts) 選手인 韓國의 김형렬(19). 競技는 니킥(무릎攻擊)李 許容되는 立式打擊機 規則에 2分 2라운드로 進行됐다.

    땡. 공이 울리고 試合이 始作됐다. 라모스는 빠른 발차기로 相對를 攻掠했다. 뒤돌아 옆차기(뒤차기)로 腹部를 正確히 加擊하는 等 여러 次例 有效打가 나왔다. 跆拳道 選手의 脆弱點으로 꼽히는 接近前에도 强했다. 그는 悠然한 몸놀림과 날카로운 주먹 攻擊으로 相對를 蹂躪했다. 跆拳道 選手가 주먹을 잘 쓰는 것이 이채로웠다.

    하지만 弱點도 눈에 띄었다. 種種 옆차기 姿勢를 取했는데, 이것이 相對에게 逆襲의 機會를 提供했다. 또한 뒤돌려차기나 뛰어돌아 옆차기 같은 華麗한 발차기는 實속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成功率이 낮았다. 動作이 크기 때문에 相對가 붙으면 발이 돌아가다가 相對 팔이나 몸에 걸렸다. 더러 價格에 成功하더라도 破壞力이 弱했다. 어쨌거나 勝利는 豫想대로 라모스의 것이었다. 審判 全員 一致의 3代 0 判定勝.

    실전태권도와 북한태권도

    綜合格鬪技 選手들과 맞붙어 實戰跆拳道의 威力을 限껏 發揮한 ITF跆拳道 選手들. 주먹攻擊에도 能한 日本의 히로키 호리고메가 앞차기를 날리고 있다.(좌) 발차기 攻擊이 失敗한 直後 相對에게 밀려 넘어져 苦戰하는 아르헨티나의 아리엘 알리마노. (中) 이탈리아의 실비아 파리구는 점프 스트레이트, 뛰어돌아 옆차기 等 卓越한 技倆으로 勝利했다.(우) 지호영 記者

    날카로운 주먹 攻擊



    土曜日인 7月5日 午後 8時. 忠北 請願에 있는 忠淸大學校 野外音樂堂에서 벌어진 跆拳道 臺 綜合格鬪技의 對決은 始終 緊張感이 넘쳤다. 이날 試合은 7月1日부터 5日間 이 學校에서 열린 第10回 世界跆拳道文化祝祭의 마지막 行事였다.

    大會名은 ‘스페셜 배틀’. 實戰跆拳道를 標榜하는 國際跆拳道聯盟(ITF) 所屬 跆拳道 選手들과 國內 綜合格鬪技 大會인 스피릿MC에서 活動하는 格鬪技 選手들이 맞붙은 것이다. 跆拳道 選手들은 한 名만 빼고 모두 外國人이었다.

    元來는 8競技가 치러질 豫定이었으나 跆拳道 選手 한 名이 負傷으로 不參하는 바람에 한 競技가 取消됐다. 立式打擊機 規則으로 進行된 5競技에서는 跆拳道가 3對 2로 앞섰다. 하지만 그래플링(grappling·붙잡거나 뒤엉켜서 싸우는 것) 2競技에서 完敗하는 바람에 綜合戰績 3代 4로 졌다. 綜合格鬪技 選手 中에는 世界的 이종격投機 大會인 프라이드FC에서 活躍한 최무배度 包含돼 있었다. 이날 아르헨티나 跆拳道 選手 가르시아 크리스티안과 맞붙은 최무배는 癌바(arm bar·다리로 相對의 팔을 固定시켜 關節 꺾기)로 勝利를 따냈다.

    觀衆席 곳곳에 外國人이 앉아 있었다. 世界跆拳道文化祝祭에 參加한 選手들과 그 家族, 親舊들이었다. 이들은 ‘스페셜 배틀’에 出戰한 跆拳道 選手들을 熱烈히 應援했다. 발차기 有效打나 華麗한 攻擊이 나올 때마다 熱狂的으로 歡呼하면서 拍手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競技의 觀戰 포인트는 跆拳道의 實戰性. 實戰에 弱하다고 評價받는 跆拳道가 果然 綜合格鬪技界에서 통하느냐는 것. 相當數 言論이 이 大會를 紹介하는 記事를 내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出戰 選手들이 世界跆拳道聯盟(WTF)李 아닌 國際跆拳道聯盟 所屬이라는 點도 눈길을 끄는 데 한몫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世界 跆拳道界는 韓國이 主導하는 世界跆拳道聯盟과 北韓이 關聯된 國際跆拳道聯盟으로 兩分돼 있다. 勿論 主流는 올림픽 跆拳道 競技를 主管하는 世界跆拳道聯盟이다. 國際跆拳道聯盟은 韓國 政府에 依해 親北人士로 낙인찍혔던 고(故) 최홍희氏가 創立한 團體다.

    스포츠的 要素가 剛한 WTF 跆拳道에 비해 ITF 跆拳道는 武道精神과 實戰性이 두드러진다는 評을 받고 있다. 外形上 가장 큰 差異點은 발차기 못지않게 주먹技術이 發達한 것. 實戰跆拳道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페셜 배틀’은 밤 10時 넘어 끝났다. 一般的 豫想과 달리 ITF 跆拳道 選手들이 宣傳한 便이었다. 跆拳道의 새로운 可能性과 더불어 ‘華麗한 발차기는 實戰에서 禁物’이라는 格鬪系의 ‘常識’李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試合이었다.

    競技가 끝난 後 컨벤션센터 會議室에서 試合에 出戰했던 跆拳道 選手 7名 中 3名과 인터뷰를 했다. 이긴 選手, 진 選手 한 名씩에 女子 選手 한 名이었다.

    選手들은 지친 氣色이 뚜렷했지만 比較的 성실한 姿勢로 인터뷰에 應했다. 먼저 勝者인 日本의 히로키 호리고메. 相對 選手는 格鬪技 戰績 4戰 全勝의 고종현. 히로키는 발차기보다는 주먹 攻擊으로 키가 6㎝ 더 큰 相對를 壓倒했다. 여러 次例 얼굴에 주먹을 꽂았고 훅으로 다운까지 빼앗아냈다.

    실전태권도와 북한태권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히로키는 競技 所感을 묻자 “跆拳道가 綜合格鬪技 大會에서 통한다는 걸 立證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주먹 攻擊이 奏效했던 것 같다.

    “ITF 跆拳道는 주먹과 발을 對等하게 使用한다. 平素 訓鍊도 그렇게 한다. K-1(日本에서 열리는 立式打擊 이종격投機 大會)에 影響을 받아 2年 前부터 킥복싱 試合에 參加하고 있다. 그런 經驗이 勝利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발차기 後 곧바로 逆攻을 當하는 境遇가 많았는데.

    “타이밍은 괜찮았다고 본다. (발차기로) 相對를 눕힐 수 있도록 더 訓鍊하겠다.”

    히로키는 “世界에서 가장 剛한 選手와 싸우고 싶다”며 “‘ITF의 사무라이’를 잊지 말라”고 豪氣를 부렸다.

    다음은 敗者인 아리엘 알리마노. 아르헨티나 國籍인 그는 유우성과 5分 2라운드의 綜合格鬪技 規則으로 맞붙었다. 1라운드 初盤에 活潑하게 발차기 攻擊을 펼치다 유우성의 서브미션(submission·相對의 降伏 信號를 받기 위해 關節을 꺾거나 頸動脈 等을 조르는 行爲) 技術인 하이 키 落(high key lock·팔을 위로 비틀어 어깨 꺾기)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레슬링과 킥복싱을 硏磨한 유우성의 格鬪技 戰績은 8戰 6勝 2敗.

    -발차기 攻擊을 잘못한 後 곧바로 相對의 힘에 밀려 넘어졌고 그대로 競技가 끝났다. 잡히는 瞬間 느낌이 어땠나.

    “두려웠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손목을 잡히는 瞬間 相對의 힘이 나보다 훨씬 세다고 느껴졌다.”

    -다양한 발차기를 선보였는데, 別 效果가 없었던 것 같다.

    “MMA 룰로 처음 해본 競技라 感을 못 잡았다. 같은 발차기라도 狀況에 따라 좋은 발차기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발차기가 될 수도 있다. 經驗을 더 쌓으면 나아질 것이다.”

    -오늘 競技로 봐선 아무리 跆拳道를 잘해도 綜合格鬪技 規則으로 붙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일정한 距離를 維持하면 跆拳道가 有利하다. 다음엔 距離 維持에 더욱 神經을 쓸 것이다. 잡히지만 않으면 勝算이 있다. 그래플링에 對備해 派韻딩(pounding·누워 있는 相對에 올라타 펀치를 날리는 것) 技術을 補强하겠다.”

    스텝보다 呼吸 重視

    마지막으로 唯一한 女性 選手인 실비아 파리區. 이탈리아 胎生인 그의 相對는 格鬪技 全的 12錢 8勝 4敗의 손나영이었다. 킥복싱과 무에타이를 익힌 손나영의 特技는 니킥. 하지만 이날 京畿에서는 單 한 次例도 니킥을 試圖하지 못했다. 점프 스트레이트, 뛰어돌아 옆차기 等 卓越한 技倆을 갖춘 파리謳歌 徹底하게 距離를 維持해 파고들어갈 空間을 全혀 내주지 않았기 때문. 結果는 파리區의 審判 全員 一致 判定勝. 스물두 殺人 파리구는 인터뷰 내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발차기 技術이 다양하고 的中率도 높았다. 하지만 相對에게 큰 衝擊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 次例 큰 打擊을 입혔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跆拳道學校에서 뒤돌아 옆차기 訓鍊을 많이 했다.”

    -競技 內容에 아쉬운 點은 없나.

    “競技를 즐겼다. 幻想的인 試合이었다. 발차기와 펀치 모두 完璧했다.”

    -跆拳道라는 武術을 어떻게 생각하나.

    “跆拳道는 完全한 無挑다. 이탈리아에서 跆拳道를 배우는 사람들은 다 敎育받은 사람이다. 跆拳道는 내 삶의 方式이자 全部다.”

    競技 始作 前 “宏壯히 不安하다”라고 競技 結果를 展望했던 ITF大寒跆拳道聯盟 오창진 事務總長은 競技가 끝난 後 “期待 以上의 結果”라며 洽足해했다.

    “젊은 跆拳道人들이 願하는 게 뭔가. 바로 跆拳道가 變해야 한다는 것이다. 武道精神을 毁損하지 않는 線에서 時代에 맞게 變해야 한다. 이 競技는 그런 點에서 意味가 크다. MMA 룰로 붙어도 이길 수 있다. 南美 쪽 跆拳道 選手들 中엔 柔術(柔術)에 能한 選手가 많다. 이番 試合엔 두 가지 問題點이 있었다. 첫째, 選手 選拔 幅이 좁았다. 世界跆拳道文化祝祭에 參加한 選手들 中에서 뽑자니 限界가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祝祭期間에 벌어진 跆拳道 試合에 參加한 터라 體力이 枯渴된 狀態였다. 둘째는 保護區 着用이다. 衝擊을 줄이기 위해 무거운 글러브를 끼고 발등에 保護臺를 찼다. 保護臺나 글러브가 없었다면 발차기나 주먹 攻擊이 훨씬 더 威力的이었을 것이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마티아스 라모스나 실비아 파리구는 實戰跆拳道의 名聲에 걸맞은 實力을 보여줬다. 비록 발차기 攻擊의 限界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올림픽 跆拳道에서는 찾기 힘든 實戰性이 돋보였다. 特히 拳鬪와는 또 다른 맛의 주먹技術이 魅力的이었다. 吳 事務總長은 “K-1 選手 中에 바다 하리를 비롯해 ITF 跆拳道 有段者가 6名이나 있다”고 자랑했다. K-1 헤비級 챔피언인 바다 하리는 요즘 最高 人氣를 누리는 모로코 胎生의 格鬪가. 强力한 스트레이트 펀치와 더불어 뒤돌아 옆차기 等 跆拳道 발차기가 主武器다.

    跆拳道 創始者의 政治的 亡命

    實戰跆拳道를 追求하는 ITF 跆拳道는 WTF 跆拳道와 여러 面에서 差異가 있다. 技術 面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먹으로 얼굴을 치는 것이 許容된다는 點. 當然히 주먹技術이 發達해 있다. 實際로 ‘스페셜 배틀’에 出戰한 ITF 跆拳道 選手들은 잽과 스트레이트는 勿論 훅度 곧잘 的中시켰다.

    反面 발차기 技術에서는 WTF가 앞선다는 게 一般的인 評價다. 올림픽 스포츠로 發展하면서 빠르고 섬세한 技術이 發達했다는 것. 이에 비해 ITF 발차기는 動作이 크고 무겁다는 評을 듣고 있다.

    兄(型)도 差異가 난다. 于先 用語부터 다르다. WTF 跆拳道에서는 품새라 하고, ITF에서는 틀이라고 한다. WTF 품새는 ‘太極 1~8張’을 비롯해 16가지다. ‘天地’로 始作돼 ‘統一’로 끝나는 ITF 틀은 24가지로 構成돼 있다. ITF 側은 “WTF 跆拳道人들度 兄만큼은 ITF가 낫다고 認定한다”고 主張한다. ITF 틀에서는 呼吸法을 重視한다.

    競技 規則도 다르다. WTF 競技場 넓이는 12×12m이고 ITF는 9×9m다. 體級은 WTF가 8個, ITF가 5個다. 競技場 規模나 體級을 보더라도 ITF 跆拳道가 더 實戰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오창진 ITF大寒跆拳道聯盟 事務總長은 “WTF 選手들은 絶對로 (이종격投機) 링에서 뛸 수 없다”며 自信滿滿해했다.

    “나도 WTF 쪽에서 運動을 해봐 안다. 그쪽 跆拳道는 오로지 競技에서 點數를 따는 데 焦點이 맞춰져 있다. 得點에 有利한 스텝이란 게 따로 있다. WTF 選手들은 그런 것에만 익숙하다. 그런데 四角의 좁은 링에선 스텝이 제대로 안 된다. 反面 우리는 스텝보다 呼吸을 重視하기 때문에 實戰에서 有利하다.”

    ITF 跆拳道가 北韓跆拳道로 알려진 것은 跆拳道 創始者인 최홍희氏의 ‘親北’ 行跡과 關係 있다. ITF 歷史는 곧 崔氏의 跆拳道 開拓史이기도 하다. 世界的으로 權威를 인정받는 브리태니커 百科事典과 기네스북에도 崔氏가 跆拳道 創始者로 記錄돼 있다.

    1950年代 跆拳道 誕生에 이바지한 武術人들은 大部分 日本 가라데를 배운 사람이었다. 崔氏 亦是 가라데 有段者였는데, 가라데를 變形해 獨自的인 武術을 만들었다. 이것이 跆拳道의 圓形이다. 1955年 陸軍 將星이던 崔氏는 ‘韓國型 가라데’에 跆拳道라는 名稱을 붙여 李承晩 大統領에게 認可를 받았다. 以後 國內 無道系에서 跆拳道라는 名稱이 公式 使用됐고, 郡에는 崔氏의 號를 딴 ‘창헌류’ 跆拳道가 빠르게 普及됐다.

    1959年 崔氏의 主導로 大韓跆拳道協會가 創設됐다. 崔氏는 初代 會長과 3代 會長을 歷任했다. 1966年엔 國際跆拳道聯盟을 創立했다.

    崔氏의 牙城이 흔들린 것은 1969年 大統領警護室 出身의 김운용氏가 大韓跆拳道協會長에 就任하면서. 維新 反對 等으로 朴正熙 政權과 葛藤을 겪은 崔氏는 結局 1972年 캐나다로 亡命했다. 이듬해 서울에서는 世界跆拳道聯盟이 創立됐고 김운용氏가 初代 總裁를 맡았다. 金氏는 또 初代 國旗院長에도 就任해 跆拳道界의 絶對 權力者로 떠올랐다.

    跆拳道 統合의 虛와 實

    1980年 崔氏는 15名의 事犯段을 이끌고 北韓에 건너가 跆拳道 示範을 했다. 이것이 ITF가 北韓과 因緣을 맺은 契機였다. 以後 崔氏는 여러 次例 訪北해 北韓에 跆拳道를 普及했다. 이 때문에 韓國 政府에 依해 親北人士로 낙인찍혔다. 1985年엔 畢生의 力作인 跆拳道百科事典을 完刊했고, 캐나다에 있던 ITF 本部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겼다.

    ITF는 北韓과 南美, 東歐圈을 中心으로 世界跆拳道大會를 여는 等 勢力을 擴張했으나 國際올림픽委員會(IOC)가 WTF를 公式 國際 跆拳道 機構로 認定하면서 打擊을 받았다. WTF 跆拳道가 올림픽 種目으로 採擇된 以後로는 跆拳道界에서 차지하는 影響力이 크게 줄었다.

    咸鏡北道에서 태어난 崔氏는 平素 “北韓 땅에서 눈을 감겠다”고 말했다. 2002年 6月 그는 平壤에 胃癌手術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病院에서 死亡했다. 享年 84歲.

    創始者가 死亡한 以後 國際跆拳道聯盟은 같은 이름을 쓰는 세 團體로 分裂됐다. 外形上 최홍희氏의 後繼者는 北韓의 IOC 委員인 장웅이다. 張 委員은 2002年 9月 平壤에서 열린 ITF 特別總會에서 새 總裁로 推戴됐다. 北韓 當局이 公開한 崔氏의 遺言狀에는 張 委員을 後任 總裁로 指名하는 듯한 發言이 담겨 있다.

    그러자 崔氏의 長男으로 IFF 事務總長을 歷任한 최중화氏를 支持하는 勢力이 反撥했다. 이들은 北韓이 公開한 創始者의 遺言狀이 捏造됐다며 그해 11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따로 總會를 열고 崔氏를 總裁로 選出했다. 이들은 崔氏 死亡 當時 平壤에 있었던 崔氏 딸의 證言을 바탕으로 北韓 當局이 崔氏를 安樂死시켰다는 疑惑도 提起하고 있다. 이番에 世界跆拳道文化祝祭에 參加해 이종격投機 試合을 벌인 國際跆拳道聯盟은 바로 최중화氏가 이끄는 團體다.

    2003年 6月엔 또 한 名의 ITF 總裁가 誕生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ITF 總會에서 베트남 出身 캐나다人 트란 콴이 總裁가 된 것. 트란 콴은 최홍희 總裁 時節 ITF 事務局 幹部로 活動했다.

    歲 ITF 中 國際的인 位相이 돋보이는 것은 장웅 總裁가 이끄는 ITF다. WTF와 跆拳道 技術 및 機構 統合을 두고 몇 年째 協商을 벌이고 있다. 두 團體의 跆拳道 統合 論議는 ‘南北跆拳道 統合’으로 불리며 跆拳道人들의 關心을 끌고 있다. 하지만 技術的 統合이 쉽지 않은 데다 또 다른 2個의 ITF 團體가 있다는 點에서 實效性 없는 ‘政治的 쇼’라는 批判도 받고 있다.

    “大韓民國으로 들어가라”

    WTF와 ITF의 統合 論議는 IOC를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몇 年間 IOC 周邊에서는 跆拳道가 올림픽 種目에서 빠질지 모른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지나친 點數 爲主 競技로 大衆的 興味가 떨어진다는 理由에서다. 이것이 ITF와 統合할 必要性을 別로 느끼지 않던 WTF를 協商 테이블로 나오게 한 背景이다.

    ITF 장웅 總裁가 IOC 委員이다 보니 自然스럽게 IOC의 입김도 作用했다. 거기에 南北 스포츠 交流라는 名分이 加勢했다. 事實 張 總裁가 이끄는 ITF는 다른 두 ITF보다 勢力이 弱하다. 統合 論議를 통해 國際的 位相을 높이려는 ITF와 올림픽 退出 危機를 解消하려는 WTF의 利害關係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WTF 側도 統合 論議에 ‘政治論理’가 介入됐음을 굳이 否認하지 않는다. 統合 實務會談 主役인 최만식 WTF 事務次長은 “ITF 總裁가 IOC 委員이라는 點을 無視할 수 없다”며 “IOC 委員長의 統合 勸告도 影響을 끼쳤다”고 밝혔다.

    崔 事務次長에 따르면 兩 機構는 “재미있는 競技를 만들자”는 共感帶를 바탕으로 技術統合 原則에는 合意했지만, 具體的인 方案과 行政統合 問題를 두고 陣痛을 겪고 있다. 그는 “南北跆拳道 統合이라기보다는 IOC가 關與하는 國際機構 代 國際機構의 統合으로 보는 게 맞다”고 强調했다.

    이종격投機 試合이 附錄처럼 끼어든 第10回 世界跆拳道文化祝祭는 平素 疏遠한 關係인 WTF와 ITF가 처음으로 함께 參加한 跆拳道大會라는 點에서도 注目을 받았다. 하지만 崔 事務次長은 “世界跆拳道文化祝祭는 WTF나 大韓跆拳道協會에서 承認하지 않은 大會”라며 關聯性을 否認했다. WTF 所屬 一部 選手가 大會에 參加한 것에 對해서는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線을 그었다.

    WTF의 公式 會員國은 188個. ITF는 그보다 會員國 數가 훨씬 적다. ITF 歲 機構는 서로 自身의 勢力이 가장 크다고 主張한다. 客觀的인 基準은 加入 會員國 數. 세 機構 모두 100個國이 넘는다고 主張한다. 하지만 세 機構의 會員國이 겹치는 데다 나라가 아닌 團體를 包含시키기도 해 實際 會員國 數는 그보다 적다는 게 定說이다.

    歲 ITF는 모두 韓國에 支部를 設立해 놓았다. 장웅 側은 ITF大韓民國跆拳道協會, 최중화 側은 ITF大寒跆拳道聯盟, 트란 콴 側은 ITFKOREA라는 名稱을 쓴다.

    최중화 ITF 側은 北韓이 ITF를 主導하는 데 對해 甚한 拒否感을 갖고 있다. 오창진 事務總長의 말이다.

    “北韓이 主導하는 ITF는 그間 無理한 돈 要求, 공(空)段症 濫發 等으로 跆拳道人들로부터 外面받아왔다. 南美와 東歐圈 國家들도 다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더는 설 자리가 없으니 WTF와 機構 統合을 하려는 거다. 우리는 그런 統合에 反對한다. 跆拳道가 政治的으로 놀아나면 안 된다. 跆拳道의 宗主國은 어디까지나 韓國이다. 萬若 최중화 總裁가 北韓으로 넘어갔다면 곧바로 自己네가 跆拳道 宗主國이라고 主張했을 거다. 創始者(최홍희)께서는 죽기 前 ITF 跆拳道人들에게 ‘大韓民國으로 들어가라’는 遺言을 남겼다. 우리는 그 證書를 保管하고 있다. 타이핑 글에 創始者의 사인이 들어간 文書다.”

    실전태권도와 북한태권도

    “國際跆拳道聯盟(ITF)이 韓國으로 歸還해야 한다”고 主張하는 ITF大寒跆拳道聯盟 오창진 事務次長.

    전두환 大統領 暗殺未遂事件

    장웅 ITF 側 說明에 따르면 韓國은 跆拳道 宗主國이고, 北韓은 跆拳道 主導國이다. 韓國支部人 ITF大韓民國跆拳道協會 金薰 事務總長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라며 최중화 ITF 側 主張을 反駁했다. 金 事務總長은 張 總裁의 特別補佐官이기도 하다.

    “그쪽(최중화 ITF)이 主催하는 大會와 우리가 主催하는 大會를 比較해보면 안다. 그쪽은 世界大會를 열지 못한다. 勢力으로 치면 오히려 트란 콴 쪽이 더 크다. 트란 콴 ITF는 유럽에서 큰 規模로 世界跆拳道大會를 열고 있다. 최중화는 創始者가 살아 계실 때 總會에서 除名당했다. 跆拳道를 비즈니스로 키우려 했기 때문이다. 최중화는 除名 措置에 反撥해 ‘뉴 ITF’를 만들어 맞섰다. 그런데 創始者가 죽은 다음엔 말을 바꿨다. 同調者를 모아 別途의 總會를 열어 總裁가 됐다. 어쨌든 重要한 건 그게 아니다. 國際舞臺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重要하다. IOC에서 認定하는 ITF는 우리밖에 없다.”

    金 事務總長은 예전에 記者와 만나 跆拳道 統合에 對한 WTF의 ‘無誠意’한 態度에 깊은 失望感을 드러낸 바 있다. ITF 側이 具體的인 統合方案을 提示하는 反面 WTF 側은 아무런 準備도 없이 協商場에 나타나 實際로 統合 意志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 最近 北韓에 다녀왔다는 그는 “北韓도 더는 跆拳道 統合에 戀戀하지 않겠다는 方針을 세웠다”고 傳했다.

    韓國 處地에서는 國際舞臺에서 跆拳道 主導權 다툼을 벌이는 장웅 ITF보다는 ‘宗主國으로의 歸還’을 내세우는 최중화 ITF가 더 반갑고 가까울 법하다. 하지만 現實은 그 反對다. 장웅 ITF가 韓國이 이끄는 WTF의 公式 協商파트너로 尊重받는 反面 최중화氏는 韓國 入國이 禁止돼 있다. 跆拳道를 北韓에 普及한 ‘親北行爲’와 전두환 前 大統領 暗殺 未遂事件 때문이다.

    崔氏가 專 前 大統領 暗殺을 꾸민 契機는 1980年 新軍部의 ‘光州 虐殺’이었다. 캐나다 TV를 통해 武裝한 軍人들이 市民을 殺傷하는 光景을 지켜 본 崔氏는 ‘義俠心’에서 전두환 大統領 暗殺을 計劃했다고 한다. 1981年 前 大統領의 訪問 豫定地인 필리핀의 한 골프場에서 射殺하려 했으나 事前에 캐나다 警察에 發覺돼 未遂에 그쳤다.

    1982年 前 大統領의 캐나다 訪問을 앞두고 캐나다 警察이 이 暗殺未遂事件을 本格 搜査하자 崔氏는 北韓으로 避했다. 以後 체코, 폴란드 等 東유럽을 떠돌다가 父親의 勸誘로 1991年 10年 만에 캐나다로 돌아와 自首했다. 캐나다 法院은 그에게 6年型을 宣告했다. 그는 1年을 服役한 後 模範囚로 出所했다.

    오창진 ITF大寒跆拳道聯盟 事務總長은 “崔 總裁는 언젠가 韓國으로 歸還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홍희 富者의 ‘親北 足鎖’가 풀릴 때 世界 跆拳道界는 새로운 轉機를 맞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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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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