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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北 大學生 4人이 밝히는 北韓式 學習法, 韓國 大入(大入) 體驗|新東亞

脫北 大學生 4人이 밝히는 北韓式 學習法, 韓國 大入(大入) 體驗

“英語, 뼛속까지 分析하지 말고 그냥 달달 외우라이”

  • 李銀榮 / 新東亞 客員記者 donga4587@hanmail.net

    入力 2008-08-02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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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國 이기려면 無條件 말부터 克服해야 한다”
    • 2個國 以上의 ‘오랑캐 나라 말’ 할 줄 알아야 大學 들어가
    • 연개소문 英雄, 김유신 나쁜 놈, 李成桂 逆賊, 李舜臣 尊敬
    • 北韓 敎師의 힘, 金正日 다음으로 莫强
    • 課外 하다 걸리면 뼈도 못 추려, 學生들끼리 課外 해야
    • 韓國 大入, 영·數 良好했지만 言語·社會探究 領域에서 뒤져
    • 世界史·地理 제대로 배웠다면 서울대 들어갔을 것
    • 北韓 女學生들 사이에 裵勇浚·송윤아 팬클럽 생겨
    탈북 대학생 4인이 밝히는 북한식 학습법, 한국 대입(大入) 체험

    脫北者를 素材로 한 映畫 ‘크로싱’의 한 場面

    “왜남의 言語를 꼬장꼬장 解釋하는 거야. 니들이 뭘 안다고 解釋하고 따지려 들어. 그냥 달달 외워. 니들이 어릴 때 事物을 보면서 그냥 외웠지, 생각하고 解釋했어? (어릴 때) 뜻을 알고 말했냐고? 自動車, 구름, 하늘… 그냥 어른이 가르쳐주는 걸 외워뒀다가 자연스럽게 말하게 됐잖아. 言語는 외웠다가 꺼내 쓰면 되는 거야. 니들이 뭔데, 남의 나라 文法을 놓고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거야. 그냥 달달 외우라이.”

    脫北者 出身으로 서강대 經營學部에 다니는 이영미(假名·女·21)氏는 “北韓에서 英語 工夫를 어떻게 했느냐”는 記者의 質問에 “(北韓의) 英語先生님이 學生들에게 했던 말씀”이라면서 敎師의 말을 聲帶模寫로 들려줬다.

    李氏는 北韓에서 우리의 특목高에 該當되는 咸興外國語高等學校를 卒業한 後 金日成綜合大學(以下 김일성대) 法學部에 合格한 才媛이다. 그는 大學 入學 通知書를 받던 날 父母를 따라 豆滿江을 건넜다. 김일성대 校門에도 못 가본 것이다.

    韓國으로 와서 再修한 後 서강대에 入學한 그는 “社會探究 領域 內容이 北韓과 다르지만 않았다면 서울대에 入學하는 데 無理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北韓의 最高 一流大學 김일성대와 比較되는 서울대에 入學하지 못한 게 무척 안타까운 듯했다. 그는 北韓의 敎育方式을 궁금해 하는 記者에게 “英語敎育에 關한 限 北韓의 敎育方式을 一部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强調했다.

    “남의 나라 말을 왜 分析해”



    “北韓에선 英語를 스파르타式으로 가르쳐요. 北韓 外國語高等學校의 英語敎科書는 英國의 國語敎科書예요. 英語敎科書를 통째로 달달 외워야 했어요. 先生님이 회초리를 들고 다니면서 ‘言語를 왜 解釋하느냐’고 야단쳤어요. ‘남의 나라 말이니까 그냥 외우라’는 거였죠. ‘文法 같은 건 몰라도 된다. 言語가 입에서 境地에 오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했어요.

    敎科書를 통째로 외우던 어느 날 文法이 저절로 理解되었어요. 萬若에 처음부터 文法을 工夫했다면 어림도 없는 얘기겠지요. 日常生活에서 ‘할아버지가 오고 계신다’라는 말에 익숙해졌을 때 敬語法을 배운다면 理解가 빠른 것과 같은 效果겠지요.

    南쪽에 와보니 北韓의 英語 敎育이 ‘正말 괜찮고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韓國에선 會話 方式으로 가르친다고 해도 結局 文法을 자꾸 强調하거든요. (韓國 學生들은) ‘뼛속까지 解剖한 英語’ 뭐 이런 冊을 보던데, 남의 나라 말을 뼛속처럼 解剖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말을 생각해보세요. 冊을 많이 읽다 보면 讀解力이 늘고 글도 잘 쓰게 되고 말도 잘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國語를 語學的으로 分析해서 府使가 어떻고 名詞가 어떻고 이렇게 工夫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어요.

    (北韓의 高等中學校에선) ‘世界文學 英語版을 水準에 맞게 一週日에 10卷 以上 읽어라’고 强要해요. 스토리가 있는 英語冊이니 재미가 있어서 나중엔 골라가면서 읽게 되죠.

    제가 다닌 外高에서는 世界文學에 나오는 名文章 100個를 골라 달달 외우게 했어요. 例文을 애니메이션으로 거듭 보여주면서 외우게 했고요. (외우다가) 自然的으로 말이 나오도록 만드는 敎育이었어요. (北韓에선) 飜譯 段階를 거치지 않고 죽자 獅子 외우는 게 上策이었어요. (그날 課題를) 못 외우면 집에 안 보내주니, 12時 前에 집에 가려면 어쩔 수 없었지요.

    文法은 몰라도 問題를 보면 (答이) 입에서부터 줄줄 나오게 됩니다. 한番 해보세요. 南쪽에 와서 토익, 텝스 다 치렀는데 別問題가 없었거든요.

    國語를 例로 들면 ‘어제 비가 왔어요’라는 말이 그냥 입에서 나와야 하는 거지, ‘어제 비가 오네요’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過去形이니 ‘왔다’라고 해야 한다고 分析하지 않아도 아는 거죠. (北韓의 英語敎育은) 英語를 입에서 자연스럽게 맴돌게 하겠다는 戰略이죠.”

    그는 “英國式 英語를 北韓人을 통해 배웠기에 韓國에 온 後 發音과 스펠링이 달라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바로 適應했다”고 말했다. 記者가 만난 4名의 脫北 大學生은 共通的으로 “(韓國에서) 美國式 英語를 처음 接했지만, 6個月間 訓鍊하니 試驗問題를 充分히 풀 수 있는 水準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英語 敎育에 關한 限 北韓에서 배워야 할 部分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實際로 北韓 靑少年들의 英語會話 實力은 相當히 水準級이라고 所聞 나 있다. 지난해 2月, 美國 ABC放送에서 有名 앵커 디안 소이어가 ‘北韓 리포트’라는 題目으로 北韓의 一般 中學校를 紹介한 적이 있다.

    英語를 가르치는 北韓 敎師의 英語會話 實力은 水準級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記者가 묻는 말에 學生들이 自由自在로 對答했다는 것. “金髮머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質問에 “金髮은 韓國的인 것이 아니다. 韓國人은 검은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金髮을 가졌다는 건 外國人이라는 뜻이다”라고 對答했다. 마치 數學的 證明을 해내듯이 論理井然하게 對答을 해서 世界를 놀라게 했다.

    反面 “democracy(民主主義)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란 質問에 北韓 學生들은 正色을 하면서 “democratic의 名詞 形態”라고 짧게 對答해 話題가 되기도 했다. 北韓 學生들은 “美國에 對해 아는 바가 있느냐”라는 質問에 “美國에 關해서는 全혀 아는 바가 없으며, 美國 映畫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것이 全部다”라고 對答했다.

    反美(反美)를 내세우는 北韓이 英語를 徹底히 가르치는 理由는 뭘까? 李氏는 “英語를 배우는 目的이 뚜렷하기 때문에 英才를 모아놓은 特殊學校에서 그토록 集中的으로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先生님이 늘 强調했어요. ‘美國을 이기려면 一旦 그놈들 말을 잘해야 한다. 말에서 지면 絶對로 이길 수 없다. 그런 意味에서 우린 쌍놈 英語(美國式)를 배우지 않고 本土 英語(英國式 英語)를 배운다. 英語에서 落伍되면 죽을 때까지 外國 한 番 못 나가는 人民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英語를 잘해야 海外 留學도 갈 수 있고 北韓의 優秀性을 알릴 수 있다고 했어요.

    (韓國에 와보니) ‘反美主義 國家 北韓에서 웬 英語를 俳優냐?’고 疑訝해 하더군요. 그게 南쪽 學生들의 限界인 것 같아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거죠. 北韓에선 英語뿐 아니라 第2 外國語로 러시아語, 中國語, 日本語, 프랑스語 中 하나를 選擇해 通達해야 大學에 거뜬히 들어갈 수 있어요. 韓半島에 눈毒 들이는 오랑캐 나라 2個國 以上의 言語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배고픈 平凡한 人民으로 살아야 한다고 怯을 줘요.”

    英語로 每日 日記 써야

    實際로 北韓 學生의 토플 成績을 韓國 學生과 比較하면 2006年의 境遇 120點 滿點에 平均 69點으로 南韓의 72點과 큰 差異가 없다. 日本의 65點보다는 오히려 높았다. 文法보다는 말하기와 쓰기 같은 實用英語 中心으로 敎育하다 보니 토플과 토익에서 좋은 點數를 얻는다는 것이 專門家들의 分析이다.

    연세대 經營學部 박성호(假名·22)氏는 “英語敎育은 北韓의 커리큘럼이 韓國의 注入式 敎育보다 더 效率的이다”라고 했다. 勿論 영재를 모아놓은 特殊學校에 局限된 境遇다.

    “(特殊學校에서는) 알파벳을 가르친 다음 바로 이야기式 授業을 했어요. 英語로 日記를 每日 써서 提出해야 했습니다. 英語辭典을 뒤적거리면서 日記를 쓰니 今方 英語가 익숙해졌어요. 內容이 ‘사랑하는 김정일 首領님’이어서 그렇지, 英語로 말하고 쓰는 데 問題가 없었죠. 前 제1고등중학교를 다녔는데, 中等課程(中學生) 初期에 이미 英語로 日記 쓰기와 말하기가 完璧한 水準에 이르렀어요.”

    反面 北韓의 一般 高等中學校 出身으로 한양대 經營學部에 在學 中인 女大生 김성아(假名·21)氏는 “(北韓의) 一般 高等中學校 英語敎育 水準은 형편없다”고 했다.

    “내가 北韓에 있을 때 다닌 혜산시 一般 高等中學校는 英語를 積極的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反面 數學 敎育에 對한 熱意가 대단했어요. 南韓의 數學用語는 漢文이지만 北韓의 數學用語는 우리말로 풀어쓴 것입니다. ‘같기式(等式)’ ‘거꿀數(曆數)’ ‘더덜기法(加減法)’… 이런 式이었어요. ‘減少 函數’는 ‘주는 函數’, ‘孤立點’은 ‘외딴點’, ‘公約數’는 ‘共通約數’였어요. 數學이 우리나라 말로 仔細히 풀이되니 재미가 있었고 敎師들 熱意도 대단했어요.

    反面 英語는 宿題도 없었고 (英語) 成績에도 關心을 두지 않았어요. 英語보다는 革命 歷史를 더 많이 가르쳤고, 그것을 暗記하기 前까지는 집에 갈 수 없게 했어요.”

    金氏는 高等學校 3學年 때 北韓을 脫出해 韓國에 入國한 뒤 1年 만에 大學에 入學했다. ‘在外國民·外國人特別銓衡’에 應試했고, 英語 代身 中國語를 選擇해 入學하는 데 別問題가 없었다고 한다.

    “다들 놀라워해요. ‘特別銓衡’이라고 해도 筆答考査에서 國語 外國語 數學 試驗을 다 쳤어요. 決코 쉽지는 않았어요. 外國語로 英語 代身 中國語를 選擇했을 뿐이죠. 1年 만에 大入에 成功한 건 北韓에서 ‘基本技’를 다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韓國에서 工夫하는 건 別로 어렵지 않았어요. 私敎育이 잘 發達해 도움을 받았어요. 韓國 授業은 北韓 授業과 달라요. 韓國에서는 學生이 스스로 생각하고 分析하기도 前에 先生이 다 풀어서 머리에 쏙쏙 넣어주는 式이지만 北韓에선 그렇지 않거든요. 韓國에선 正말 쉽게 工夫할 수 있어요.”

    現在 脫北住民이 國內 大學에 入學할 수 있는 方法은 딱 하나다. 全體 入學生의 2% 未滿을 割當하는 ‘在外國民·外國人 特別銓衡’ 分野에서 ‘外國人 特別銓衡’에 應試해 合格하는 것이다. 脫北住民은 外國人으로 ‘分類’되기 때문이다. 2009學年度 入試에서는 全國 137個 大學에서 ‘外國人 特別銓衡’을 거쳐 脫北住民 入學生을 選拔할 豫定이다. 銓衡 方法은 大學마다 差異가 있는데, 書類와 面接 或은 書類 面接 筆答이 混合돼 있다. 서울市內 主要 4年制 大學에 入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筆答考査를 거쳐야 한다.

    延世大 敎務處 關係者는 “웬만하면 다 合格하는 在外國民 特別銓衡과 달리 脫北者가 主 對象인 外國人 特別銓衡은 까다롭다”고 밝혔다. 記者가 만난 4名의 學生 中 3名은 모두 再修해서 大學에 들어갔다. 다들 서울대에 應試했다가 떨어진 것. 이들은 外國語 領域과 數理 領域에서는 優秀한 點數를 받았지만, 言語 領域(國語)과 社會探究 領域에서 크게 뒤졌다고 한다. 北韓에서 배운 內容과 워낙 差異가 났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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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 經營學部에 在學 中인 이영미(假名)氏는 “北韓의 英語敎育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主張했다. 연세대 經營學部에 다니는 박성호(假名)氏는 北韓의 學院非理에 對해 털어놓았다. (왼쪽부터)

    脫北者 出身으로 韓國에 와서 大學에 다니거나 卒業한 사람은 全國的으로 500餘 名에 이른다. 그中 이른바 ‘스카이’大學(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在學하거나 卒業한 學生은 20餘 名밖에 안 된다. 또 서울市內 主要 4年制 大學에 다니거나 卒業한 學生은 100餘 名에 達한다.

    失鄕民 出身 김익진氏가 1998年 設立認可를 낸 천일奬學財團에서 脫北 大學生들을 後援하고 있다. 脫北 大學生의 折半 以上이 千日奬學會에서 登錄金을 支援받고 있다.

    脫北 大學生 中 現在 서울市內 主要 4年制 大學에 다니는 學生은 30餘 名. 이들 中 相當數는 北韓에서 特殊學校인 外國語高等學校나 第1高等中學校를 卒業했다. 이들은 北韓을 脫出해 國內에 入國함과 同時에 大學入試를 치러야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北韓에서 歪曲된 社會倫理와 韓國史를 배웠고, 世界史를 배우지 않아 올바른 世界觀이 形成되기도 前에 (韓國에서) 大入 試驗을 치러야 해 正말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南北이 가르치는) 韓國史의 內容이 달라요. 北韓과 韓國이 正말 같은 핏줄인지 의심스러울 程度입니다. (韓國에 와서) 大學에 들어가기 위해 急하게 달달 외우긴 했지만 아직도 혼란스러워요. 北韓에선 高句麗가 三國統一을 했다고 배웠어요. (敎科書에) 淵蓋蘇文이 三國을 統一했다고 적혀 있었고요.

    新羅의 金庾信은 正말 나쁜 놈이라고 했어요. 高句麗 歷史에 對한 自矜心이 대단하거든요. (高句麗史뿐 아니라) 渤海史에 對해서도 자랑스럽게 敎育했어요. 제가 韓國에 넘어올 무렵 韓國 TV에서 ‘朱蒙’이라는 드라마를 放映했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北韓에서는 또 高麗의 太祖 王建은 後三國의 混亂을 平定하고 統一한 훌륭한 人物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朝鮮을 세운 李成桂는 韓半島 歷史의 가장 큰 逆賊이라고 했어요. 倭寇를 무찌른 李舜臣은 尊敬했고요.”(서강대 이영미氏)

    그들의 말을 綜合하면 英語 數學 物理 化學 같은 基礎科目의 境遇 北韓에서 배운 知識이 韓國에서 充分히 통했지만 社會探究 分野에서는 內容이 달라 工夫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經濟 쪽은 뜻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외울 수밖에 없었어요. 例를 들어 北韓에서 經濟를 가르친다면 ‘限界效用體感의 法則’을 이렇게 反語法으로 가르칠 걸요. ‘김일성 首領님이 주신 菓子는 100個를 다 먹어도 고맙고 맛있다’라고. 世界史도 가르치긴 했지만, 19世紀 以後 歷史에 對해서는 政策上 블록을 쌓았어요. 아예 가르치지 않은 거죠. 地理도 마찬가지였어요. 韓半島를 크게 그려 넣은 世界地圖를 놓고 배웠으니 말 다했죠.”(서강대 이영미氏)

    反面 社會探究에 對해선 얘기가 달랐다. “社會探究를 뒤늦게 始作했지만, (北韓에서) 主觀式 試驗에 對備한 工夫法에 익숙했던 터라 (韓國 學生보다) 더 깊이 理解하는 便이었다”고 했다.

    “北韓에선 試驗을 主觀式으로 치렀어요. 例를 들어 ‘朱蒙이 繫留勢力을 바탕으로 卒本을 統一했던 過程을 적어라’ 하는 式입니다. 그걸 적으려면 內容을 다 理解하고 외우고 있어야 하잖아요. 初等學校 때부터 主觀式 問題를 풀었으니 생각 없이 달달 외우는 式은 통할 수 없었죠. 南쪽에 오니 無條件 외우더라고요. 또 論述試驗에 對備한답시고 知識을 마구 머리에 쑤셔 넣더라고요. 비록 北韓에선 革命授業의 主題가 ‘尊敬하는 김일성 首領 아버지 禮讚’이긴 했지만 討論하고 發表하고 主觀式 問題에 答하는 것이 日常的으로 訓鍊돼 있어요.

    韓國에 와서 新聞을 보니 다양한 論理에 얘깃거리가 豐富하더라고요. (저는) 新聞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인터넷과 冊을 뒤져가면서 하나하나 意味를 찾아요. 親舊들이 ‘왜 그렇게 힘들게 新聞을 읽느냐’고 해요. 主觀式 試驗에 鍛鍊되다 보니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아는 單語가 나오면 辭典을 뒤져서라도 完璧하게 理解해야 하거든요.”(고려대 人文學部 최재일(假名·20)氏)

    支配層 子女의 學院非理

    北韓의 敎育理念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바탕으로 한 主體思想을 基本 틀로 삼고 있다. 脫北 大學生 中에는 “김일성은 ‘敎育 部門에서는 社會主義 敎育學 原理를 徹底히 具現해 모든 學生을 우리 黨의 革命思想으로 튼튼히 武裝하고, 지·德·體를 兼備한 社會主義, 共産主義 建設의 믿음직한 役軍으로 키워야 할 것이다’라고 指示했다”면서 北韓을 脫出한 지 몇 年이 지난 只今까지 외우는 이도 있었다. 한마디로 北韓의 敎育은 “‘하나는 全體를 위하여, 全體는 하나를 위하여’를 實現하기 위해 鬪爭하는 革命家를 養成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北韓에서는 大學 敎育까지 全額 無料지만 義務敎育은 高等學校까지다. 幼稚園 2年 過程, 小學校(舊 人民學校) 4年 過程, 中學校와 高等學校를 합친 ‘高等中學校’ 6年 過程으로 韓國의 12年 過程과 비슷하다. 現在 北韓에선 360餘萬名의 學生이 6萬餘 幼稚園에 다니고 있다.

    “幼稚園에는 ‘낮은 反’ ‘높은 反’李 있어요. (幼稚園이) 2年制인 셈이죠. 幼稚園 ‘높은 反’ 때 한글을 다 깨우치는 便입니다. 小學校에선 內申이 좋으면 先生님의 推薦을 받아 외고나 第1高等學校에 入學할 수 있어요. 英才만 따로 모으는 거죠. 韓國으로 치면 特目高죠. 北韓의 특목高는 藝術高等學校와 第1高等學校, 外國語高等學校로 나누어져 있어요. 各 道에 하나씩 있죠. 外國語高等學校는 言語領域 쪽 英才가 들어가고, 第1高等學校는 數學·科學 英才가 들어가요. 어느 都市든 외고나 第1高等學校를 다닌다면 英才인 거죠.”(서강대 이영미氏)

    北韓에선 學生 스스로 進路를 決定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연세대 經營學部 박성호氏는 “(北韓에선) 應試大學을 決定하는 敎師의 權力이 絶對的이다”라고 했다. 그는 “(北韓에서) 좋은 大學에 들어가려면 大學別 支援割當 範圍에 들어가야 하는데, 支配層 子女가 平凡한 人民의 子女보다 거기에 包含될 確率이 높다”며 社會主義에서도 學院非理가 있음을 指摘했다.

    “小學校 때 先生님이 ‘너는 어느 쪽이 뛰어나니 이것을 해라’고 情해줘요. 適性에 맞도록 試驗을 치게 하는 거죠. (北韓의) 擔任先生님은 學生에 對해 모르는 게 없어요. 집에 숟가락이 몇 個 있는지도 알 程度예요. 한 學生을 數年씩 맡으니 그 아이에 對해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거지요. 제 境遇엔 擔任先生님이 ‘또박또박 思想을 잘 表現하고 글을 잘 쓰니까 外高를 志望하라’고 勸하셨어요.

    北韓에선 敎師 權威가 대단해요. 學生 한 名 한 名의 素質과 適性을 찾아주고 英才 끼가 있으면 ‘어떤 分野의 特殊學校에 志願할 資格이 있다’고 推薦해주거든요. 學生이 先生님 말씀이라면 絶對 服從할 수밖에 없는 理由입니다.

    小學校 4學年 때 全國的으로 一齊히 試驗을 쳤어요. 先生님이 一齊考査 點數를 놓고 一般 高等中學校냐 특목高에 支援하느냐를 決定해줬습니다. 韓國에선 進路를 스스로 또는 父母와 함께 苦悶하는데 北韓에선 小學校 擔任이 學生의 細部 專攻까지 정해주니 便한 點도 있어요. 未來의 職業까지 決定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試驗에 合格하는 건 學生 몫이죠.

    大學에 進學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每年 各 高等學校의 大學 支援 割當 人員이 定해집니다. 김일성대에 試驗을 칠 수 있는 資格을 A外高에는 10名을 주고, B製1高等에는 5名을 割當하는 式입니다. 割當 人員이 定해지면 先生님들이 會議를 해요. ‘A君은 김일성대에, B君은 김책공대에 各各 支援하게 하자’고 決定하는 거죠. 이 때문에 學父母들은 子息이 工夫를 잘한다 해도 一流大學 應試 資格을 配定받기 위해 ‘賂物’을 들고 설치기도 했어요. 平素 敎師와 親해야 김일성대를 支援할 수 있기 때문에 敎師에게 절절맸지요.”

    脫北 大學生들은 韓國에 와서 가장 놀란 것 中 하나가 “親舊 間에도 노트를 빌려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北韓에선 課外가 없어요. 돈을 주고 課外를 한다는 건 北韓의 義務敎育 自體를 否定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課外 받다가) 걸리면 뼈도 못 추려요. 代身 學生들끼리 課外를 해야 해요. 저도 課外를 해줬거든요. 成績이 優秀한 學生이 工夫 못하는 學生을 책임지고 가르쳐야 했어요. 그건 學生의 義務이기 때문에 無條件 해야 했습니다. 冊床 하나에 둘씩 앉는데 잘하는 學生과 못하는 學生을 나란히 앉혀요. 그래야 서로 發展한다는 거죠. 짝의 成績이 몇 달 동안 안 오르면 先生님께 불려가서 惹端을 들어야 했어요. 個人主義的인 韓國社會에서는 到底히 理解가 안 되는 일일 거예요.”(서강대 이영미氏)

    北韓에서도 課外授業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一部 幹部層에서 子息을 특목高에 보내기 위해 膳物을 주면서 課外를 시킨다는 것. 하지만 그 數가 微微할 뿐 아니라 試驗問題가 거의 敎科書에서 出題되기 때문에 말 그대로 學業成績이 不振한 支配層 學生들이 成跡을 올리기 위한 臨時方便이라고 한다.

    고려대 人文學部 최재일氏는 “公敎育의 權威가 莫强하기 때문에 가난한 人民의 處地에선 北韓의 敎育環境이 南韓보다 훨씬 더 有利하다”고 强調했다. 敎科 成績만 優秀하면 國家가 大學敎育까지 100% 責任지는 시스템이고 누구든지 돈 걱정 없이 大學에 入學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社會主義 敎育의 長點을 强調했다.

    西江大 이영미氏는 “咸興外高에서 全校 會長을 지낼 때 있었던 日”이라면서 이런 逸話를 紹介했다.

    “제가 全校 會長을 해서 생생하게 기억나요. 高等中學校 6學年 全校生이 667名이었어요. 咸鏡道 내 小學校에서 選拔된 水災가 다 모인 거죠. 全校 會長은 新入生을 一一이 다 챙겨야 했어요. 한番은 다 떨어진 신발을 고무줄로 묶어 申告 試驗을 치러 온 學生이 있었어요. 學生을 데리고 온 어머니는 正말 남루한 차림이었어요.

    그런데 試驗 結果 그 學生이 滿點을 받았어요. 어머니가 떡 장사를 했대요. 떡에 바르는 종이를 모아 空冊을 만들어 썼다고 하더군요. 또 남이 쓰던 空冊을 훔쳐 지우개로 지워가면서 使用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2年間 注視했는데 무섭게 工夫하더라고요. 北韓은 義務敎育이라 敎科課程에 忠實하면 最高가 될 수 있어요. 實際로 咸興外高에서는 그런 學生이 김일성대에 入學하는 例가 每年 있었어요.”

    北韓 特目高 敎育方式에서 特記할 만한 것은 ‘人民裁判’을 敎育 現場에까지 導入한다는 點이다.

    “試驗을 每週 봤어요. 試驗 날짜가 公告되고 試驗을 치고 나면 點數가 公開됐어요. 1等에서 꼴等까지 次例대로 적어 榜을 붙이는 式으로 公開해요. 또 運動場에 成績別로 집합시켜놓는답니다. 學年別로 ‘最優等’ ‘優等’ ‘普通’ ‘落第’로 나눠 줄을 서라고 해요. ‘落第生’은 看板(피켓)을 손에 들고 무리를 지어 運動場을 돌아야 했습니다. (運動場에는) 校長을 비롯해 各 科目 敎師들이 나와 서 있고 모든 學生이 지켜보는데 看板을 들고 ‘나는 落第生이다’라는 口號를 외치면서 運動場을 돌게 만들었어요. 想像을 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했겠어요. 各 道에서 水災로 뽑혀 外高에 入學했다는 自尊心이 强했는데, ‘落第生’이라는 口號를 외치면서 運動場을 돌면 눈물 콧물이 뒤범벅될 테고 또 그 侮蔑感은 어떻겠어요. 다음달 試驗 때는 絶對 落第 그룹에 안 들어가죠. 落第生 무리의 얼굴이 每달 달라지는 거죠.”

    “돈이 있어야 完全한 自由를”

    北韓의 高等中學生은 얼마나 大學에 들어갈까.

    “(北韓에서도) 특목高에 다니면 大學에 거의 다 갑니다. 어느 大學을 가느냐가 問題지요. 외고나 第1高等中學校의 境遇 김일성대는 全校에서 1~5名 갔어요. 一般 高等中學校 學生의 30%는 大學에 進學한다고 들었어요. 學生들이 進學할 科를 定하기 위해 先生님이 모여 敎師會議를 해요. A라는 學生이 數學을 잘한다 싶으면 數學에 關聯된 科를 選擇하게 하는 式이죠. 國家에서 修能 같은 試驗을 친 結果를 놓고 敎師들이 팽팽하게 맞서는 거죠. 北韓은 뭐든 割當制니까 學生 處地에선 抑鬱할 때가 더 많아요. (北韓 學生들은) 個性과 自我가 없다고 봐야죠.”(연세대 박성호氏)

    한 가지 놀라운 事實은 4名의 脫北 大學生이 하나같이 “韓國에 오기 前 이미 南韓에 對해 잘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는 點이다. 咸興에서 外高를 다닌 이영미氏는 “大都市 外高에 다니는 學生들 사이에선 暗暗裏에 韓國 드라마를 담은 DVD가 돌았다”면서 “배용준과 송윤아의 熱烈한 팬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2003年 北韓에선 배용준이 나오는 드라마 ‘호텔리어’가 DVD로 돌았어요. 外高에 다니는 애들은 집에 어지간하면 英語敎育用 DVD 가 있거든요. (호텔리어를 본) 北韓의 特目高 女學生들 中에는 裵勇浚 팬이 많았어요.

    그런데 드라마에 나타난 華麗한 南韓 風景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어요. ‘南韓은 저렇게 사는구나. 北韓은 落後되었네. 하지만 우린 北韓에 順從하면서 살자’고들 했지요. 熱心히 工夫해서 北韓의 支配層이 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確信이 있었거든요.”

    大部分의 脫北 大學生은 自身의 意志와는 相關없이 父母를 따라 韓國에 入國했다. 엉겁결에 豆滿江을 건너와 韓國 學生이 되어버린 것이다. 果然 그들은 幸福할까? 인터뷰에 應한 4名의 學生은 “韓國의 敎育現實이 너무 어지럽다”면서 “北韓에서조차 하지 않는 敎育 平準化를 부르짖고, 公敎育은 亡해가고 있고, 知識을 구겨 마구잡이로 집어넣는 私敎育이 蔓延하다”고 한목소리로 안타까워했다.

    연세대 經營學部 박성호氏는 “韓國과 같은 資本主義 나라에서 完全한 自由를 누리려면 結局 돈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비록 北韓에서 살았지만 幸福指數가 높았어요. ‘自由’가 幸福의 尺度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自由만 주어지면 뭘 해요. 人間은 自己가 살고 있는 社會 속에서 제대로 된 所任을 다할 때 幸福한 겁니다. 北에서 넘어온 大學生들은 韓國에 와서도 果然 自由가 좋은 건지 헷갈린다고 해요. 北韓에서도 工夫 때문에 圖書館과 집만 왔다갔다했는데 서울에 와서도 마찬가지인 걸요. 自由는 資格이 있는 사람이라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北韓에서도 保衛部 公務員이 되면 자유롭지 않을 것도 없어요. 北韓에선 똑똑하고 머리가 좋고 政府 公務員으로 認定받으면 자유로워요. 資本主義 社會에선 돈이 있어야 完全한 自由를 누릴 것 같아요. 하다못해 돈 걱정이 없어야 스파게티 하나를 먹어도 골라서 먹을 수 있죠. (韓國에선) 잘사는 學生과 못사는 學生이 全혀 다른 世上을 사는 것 같아요.

    北韓 外高 出身으로 괜찮은 大學에 다니는 脫北 大學生들은 大部分 課外를 하고 있어요. 父母님을 經濟的으로 도우면서 用돈을 餘裕 있게 벌어 쓸 수 있는 唯一한 方法이거든요. 우리끼리 모이면 돈 많이 버는 方法에 對해 얘기합니다. 漸漸 純粹함을 잃는 것 같아요. 北韓에선 純粹했고 希望이 있었어요. ‘工夫를 熱心히 하면 조선인민공화국에서 大學工夫를 시켜줄 것이고 政府의 높은 官僚가 될 수 있다’는 게 큰 希望이었어요.

    (南韓사람들이) 저에게 ‘韓國에 오니 자유스럽고 좋으냐?’고 물어요. 自由가 좋긴 한데, 未來에 對한 不安 때문에 혼란스럽다고 對答합니다. 北韓에선 國家 公務員은 참으로 명예로운 職業인데 南쪽에선 도둑놈 取扱을 當하더라고요. 理由를 모르겠어요.

    脫北 大學生들은 김정일이 나쁜 줄 알지만 辱하지는 않아요. 누워서 침 뱉기잖아요. 北韓이 말이 안 통하는 共産主義 國家인 건 맞아요. 하지만 누구든지 머리 좋고 工夫 잘하면 大學登錄金 걱정 없이 大學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에요. (北韓의) 가난하고 平凡한 多數의 人民이 社會主義 敎育方式에 大體로 滿足하는 理由 中에는 子息의 앞날을 國家가 擔保해주고 있다는 點도 있을 겁니다.

    黨 幹部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南朝鮮에 가봐라. 大學登錄金 때문에 父母들이 食母살이를 나선다. 돈 없으면 課外도 못 받고 大學 가기 힘들다’라고. 實際로 韓國에선 시골에 사는 中學生이 純粹하게 工夫만 잘해서는 특목高에 合格하기가 힘들지 않나요. 하지만 北韓에선 可能하거든요. (韓國은) 敎育의 質이 돈과 比例하는 社會로 變하는 것 같아요. 勿論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건 ‘北韓으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絶對로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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