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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敎育 살리기 모델 火山中學校|新東亞

公敎育 살리기 모델 火山中學校

“엄마가 보고 있다. 熱工하리라”

  • 組成式│東亞日報 新東亞 記者 mairso2@donga.com│

    入力 2009-09-10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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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私敎育 없는 全國 最初 自律中學校
    • 全校生 70%가 外地 出身, 全員 寄宿舍 生活
    • 英語·數學 競試大會 휩쓸어
    • 英語·數學 水準別 移動授業, 放課 後 밤 9時까지 補充深化學習
    • 藝體能·特技敎育 活性化, 指導者 敎育 實施
    • 每日 運動場 두 바퀴 돌고 卒業 前까지 誘導 2段 따야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火山中學校 設立者인 심의두 校長(危). 火山中學校가 자랑하는 ‘잉글리시 카페’(아래).

    湖南高速道路를 달리다 論山 나들목에서 빠져나오면 全北의 北쪽 끝인 完州郡 화산면이다. 電柱에서 乘用車로 30分 距離인 火山은 韓牛團地와 붕어찜으로 이름난 곳이다. 하지만 火山을 더욱 有名하게 만든 것은 全國 最初의 自律中學校인 火山中學校다.

    高速道路에서 빠져나와 端正한 느낌의 片道 1車線 道路를 5分쯤 달리자 화산면 화평리에 位置한 火山中學校가 나타났다. 銀杏나무와 설송이 校正에 이르는 進入道路 兩옆으로 늘어서 있다. 왼便으로는 運動場이, 오른便으로는 寄宿舍 두 棟이 자리 잡고 있다. 파란 잔디로 뒤덮인 運動場 가장자리에는 우레탄 트랙이 만들어져 있다. 學校 入口 쪽으로 테니스場과 籠球場도 눈에 띈다. 3層 建物의 本館 屋上에는 한 時間에 20kW의 電氣를 生産하는 太陽熱 電池板이 設置돼 있다.

    放學이라 校庭은 텅 비어 있었다. 七旬의 심의두(沈宜斗·74) 校長이 玄關에서 記者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校長室에 設置된 大型 컴퓨터 모니터로 지난 6月 敎育放送 英語敎育채널인 EBSe가 放送한 ‘英語强國 코리아-火山中學校 篇’을 鑑賞했다. 토익(TOEIC) 955點을 받은 이 學校 3學年 金법창 君의 流暢한 會話 實力과 해맑은 微笑가 印象的이었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農樂을 배우는 火山中學校 學生들. 오른쪽은 컴퓨터室에서 英語 自習하는 光景.

    시골學校로 몰려든 大都市 아이들

    自律學校란 校長 任用, 敎育課程 運營, 敎科書 使用, 學生 選拔 等에서 自律性을 갖는 學校다. 自立型 學校와 달리 政府로부터 財政 支援을 받는다. 主로 農漁村 高等學校가 對象인데, 中學校로는 火山中이 1號다.



    自律學校는 全國에서 學生을 募集할 수 있다. 2009年 7月 現在 火山中 全體 學生數는 355名. 이 中 화산면 出身은 84名(23%)이다. 화산면에 所在한 火山初等學校와 三五初等學校 卒業生은 無條件 입학시켜야 한다. 電柱를 비롯한 全北 地域 出身이 全體의 31%(111名)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타(他) 試圖 出身이다. 出身 地域을 보면 서울(27名)을 비롯한 廣域市 以上의 大都市 出身이 57名이고, 京畿道에서 濟州島에 이르기까지 全國의 모든 試圖에 고루 分布해 있다.

    火山中의 學年當 學級 數는 4個 班, 한 學級 學生數는 30名이다. 이 자그마한 農村 시골學校에 大都市 學生들이 몰리는 理由가 뭘까.

    火山中이 學父母들의 關心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私敎育 狂風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 學校 學生들에게 私敎育은 남의 나라 얘기다. 모든 敎育이 學校에서 이뤄진다. 學生들의 工夫는 밤 9時까지 이어진다. 正規授業이 끝난 後 補充深化學習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全體 學生의 70%인 250名이 寄宿舍 生活을 한다. 學院이나 課外 等 私敎育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화산면에는 學院이 아예 없다.

    私敎育이 없다고 大都市 學生들에 비해 實力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誤算이다. 絶對的인 指標는 아니겠지만, 火山中 學生들은 全國 單位 各種 學歷競試大會에서 優秀한 成跡을 올려왔다.

    MBC아카데미·中央日報 主催 數學學力評價 競試大會에서 對象을 받은 것을 비롯해 韓國生物올림피아드大會 銅像, 國際英語大會(IET) 銅像, 全國 中古 外國語競試大會 奬勵賞 等 受賞 實績이 華麗하다. 特히 지난해 ‘第11回 MBC아카데미 全國 初·中 英語數學 學歷評價’에서는 火山中 學生 43名이 對象, 金·銀·銅像, 奬勵賞을 휩쓸었다. 또한 해마다 서울을 비롯한 大都市 名門高에 多數 進學해 學校의 聲價를 높이고 있다.

    火山中의 敎育課程은 一般 中學校와 어떻게 다른가. 먼저 學習時間을 보자. 正規授業은 午後 5時에 끝난다. 저녁食事 後 6時15分부터 放課後 學習이 始作돼 9時까지 이어진다. 이때 一般 學級 學生들은 授業은 한 時間만 하고 나머지 時間에는 自律學習을 한다. 反面 수월性半(英才學級) 學生들은 3時間 내내 授業을 받는다.

    수월性半은 編制에 있는 學級이 아니라 英語·數學 深化學習 對象者를 모아 臨時로 編成한 學級이다. 수월性半 學生은 學年當 20名. 每 學期 初 4個 班에서 試驗成績이 優秀한 上位 20名이 選拔돼 特別授業을 받는다. 이들은 一般 授業은 다른 學生들과 똑같이 받으면서 英語·數學科 夜間 深化學習을 할 때만 수월性班에 編成된다. 火山中이 자랑하는, 이른바 英語·數學 水準別 移動授業이다. 말하자면 各 班 秀才들이 英語·數學을 배울 때만 特定 敎室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다. 마치 大學生들이 講義室을 찾아가듯 말이다.

    夜間 深化學習은 영·數 爲主로 進行되지만 科學과 國語도 一週日에 한 時間씩 배운다. 寄宿舍에서 지내는 學生들은 大部分 밤 11時까지 自律學習을 한다. 敎師들이 寄宿舍에 常住하며 이들의 學習을 돕는다.

    火山中의 入試要綱엔 英才學級 學生 選拔이 包含돼 있다. 志願者 中 敎育廳에서 主管하는 數學試驗을 通過한 20名을 特別銓衡으로 뽑는 것이다. 이들은 1學年 數學 過程에 한해 英才班으로 編成되는데, 實際로는 수월性半 學生들과 겹치게 된다.

    火山中 學生들의 外國語 學習은 英語로 끝나지 않는다. 第2外國語로 中國語와 日本語 中 하나를 골라 배워야 한다. 深化學習 科目에는 漢文도 있다. 全校生이 漢字 級數 試驗을 볼 程度로 漢字 敎育이 세다.

    그렇다고 工夫만 죽어라 시키는 學校로 誤解하면 困難하다. 火山中은 學生들의 藝體能과 特技 活動에도 적지 않은 投資를 하고 있다. 專門講師를 招聘해 피아노 바이올린 伽倻琴 等 다양한 樂器를 배우게 하고, 臟器·바둑도 가르친다. 이를 包含해 이 學校에서 가르치는 特技 種目은 44個나 된다. 武術로는 跆拳道와 柔道를 배우는데, 特히 柔道의 境遇 모든 學生이 卒業 前까지 2段 以上을 따야 한다. 이는 護身術로는 誘導가 가장 좋다는 沈 校長의 信條에 따른 것이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火山中學校 前景. 運動場엔 파란 잔디가 깔려 있다.

    每日 運動場 2바퀴 돌아

    이와 關聯해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運動場 돌기다. 火山中 學生들은 每日 아침과 저녁 두 次例 運動場을 2바퀴씩 돌고 있다. 이 또한 沈 校長의 걷기 哲學에 따른 것이다.

    工夫를 잘하기 위해서는 施設도 좋아야 한다. 火山中처럼 公敎育으로 勝負를 거는 學校라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 火山中은 寄宿舍인 문무숙(文武塾) 3洞과 室內體育館(文武官·文武館), 人性敎育觀을 갖추고 있다.

    記者는 沈 校長의 案內를 받아 校內 곳곳을 둘러봤다. 먼저 寄宿舍인 문무숙. 기숙施設과 더불어 自習室이 자리 잡고 있다. 한 放에 4~5名이 잔다. 溫突房이고, 房마다 化粧室 옷欌 洗濯機가 갖춰져 있다. 暖房은 구들 밑에 깔린 자갈을 電氣로 달궈 한다. 地下層엔 卓球臺가 놓여 있다.

    문무숙 3個 洞에 있는 自習室은 모두 360席. 밤 10時 以後 利用할 수 있으며 大體로 새벽 2時쯤 門을 닫는다. 自習室 冊床엔 使用者의 이름標와 함께 各自의 다짐이나 覺悟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中 ‘엄마가 보고 있다. 熱工하리라’는 文句를 보고 記者는 가슴이 찡해졌다.

    火山中을 支援한 學生들은 書類審査와 深層面接 2段階를 거쳐야 한다. 書類審査에서는 토익과 토플 成績 優秀者, 各種 受賞經歷이 있는 學生이 유리하다. 自己紹介書를 잘 써내는 것도 重要하다. 大體로 入學定員의 2배수인 240名이 1次 關門을 通過한다. 深層面接에서도 英語·數學·漢文 優秀學生은 優待를 받는다. 그밖에 指導者로서의 資質과 品性, 健康 狀態 等을 본다. 全國에서 志願者가 몰리다보니 얘깃거리가 많다. 沈 校長의 回顧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寄宿舍 複道.

    “蔚山의 한 女學生은 6個月間 父母를 說得한 끝에 우리 學校에 올 수 있었다. 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父母가 反對한 탓이었다. 이 學生은 우리 學校의 잔디運動場을 비롯한 親環境的 施設과 홈페이지에 있는 校長 人事말이 맘에 들어 支援했다고 했다. 江原道 出身으로 유난히 키 작은 女學生은 오리엔테이션에 혼자 參席했다. 버스를 6~7次例 갈아타고 왔다는 그에게 ‘父母가 안 왔느냐’고 묻자 ‘왜 혼자 못 오느냐’고 대차게 되물었다. 이 學生은 卒業 後 내게 와이셔츠를 膳物했다. 面接에서 ‘내가 大統領이 꿈인데 왜 안 뽑으려 하느냐’고 따지던 男學生도 기억난다.”

    工夫 잘하면 奬學金 듬뿍

    現在 火山中의 敎員 數는 44名. 正式敎師가 23名, 講師가 21名이다. 全體 學生 數가 355名이니 數値로만 따지면 學生 8名當 敎師 한 名인 셈이다. 敎師는 俸給 外에 夜間授業 手當을 받는데, 時間當 3萬~7萬원까지 能力에 따라 金額이 다르다. 講師는 月 平均 220萬원을 받는다. 英語敎師들은 하나같이 海外硏修를 한 實力派. 原語民 敎師도 한 名 있다.

    火山中은 獨特한 奬學制度를 갖고 있다. 1等으로 入學한 學生에게는 100萬원의 奬學金을 支給한다. 2等에겐 50萬원, 3等에겐 30萬원을 준다. 每 學期 平均 95點 以上의 成跡을 내면 10萬원씩 支給한다. 現在 한 學年에 15名 程度가 이 奬學金을 받고 있다. 民族史觀高等學校나 釜山科學英才學校에 合格하면 100萬원의 奬學金을 支給함과 同時에 早期卒業 시킨다. 뒷날 서울대나 司法試驗, 行政考試에 合格해도 100萬원을 支給한다.

    寄宿舍와 優秀한 敎師 確保 等 水準 높은 學習環境을 갖추고 維持하려면 돈이 들 수밖에 없다. 中學課程은 義務敎育이므로 學生들이 授業料를 내지 않는다. 運營에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國庫支援만으로는 턱도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火山中 英語 敎師는 모두 7名인데, 그中 政府支援 對象 敎師는 學年에 한 名씩 3名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4名의 敎師에게 給與를 주기 위해서는 自體的으로 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탓에 火山中은 外地 學生들에게 講師비로 한 달에 13萬원씩 걷는다. 寄宿舍를 쓰는 學生들은 宿食費와 施設 利用費로 月 42萬원을 낸다. 처음 寄宿舍에 들어갈 때는 一種의 入會費人 學校發展基金을 낸다. 各自 형편껏 50萬~100萬원을 내는데, 내지 않는 學生에게 强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學習施設 中에는 컴퓨터室과 5000餘 卷의 藏書가 備置된 圖書館, 英語會話 專用敎室인 멀티미디어室 等이 눈길을 끈다. 指導者 세미나室이라는 門牌가 붙은 敎室도 있다. 社會 指導者로 成長하라는 뜻에서 만든 이 敎室에서 學生들은 社會 이슈와 關聯해 自身의 主張을 發表한다. 이 房은 學校를 訪問한 外國學生들과 敎育關聯 人士들의 討論會 場所로도 活用된다.

    本館 옆에 새로 짓고 있는 4層짜리 建物에는 現在의 비좁은 圖書館을 옮겨 넓게 쓸 豫定이다. 이 建物엔 中國 政府의 支援을 받는 孔子學堂度 들어선다. 火山中은 中國 吉林제일고와 姊妹結緣을 한 狀態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寄宿舍 自習室.

    마지막으로 講堂을 둘러봤다. 1000名을 收容할 수 있는 이 커다란 講堂에서 沈 校長은 每週 月曜日 아침 30分씩 訓話를 한다. 一種의 精神敎育이다. 講堂 前面엔 ‘天地開闢’이라는 글이 적힌 懸板이 걸려 있다. 沈 校長은 “어떤 일을 하든지 天地開闢 하듯이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說明했다.

    自律學校는 3年마다 새로 指定된다. 關聯法이 바뀌어 올해부터는 地域 學生들만 뽑을 수 있다. 예컨대 全北에 있는 自律中學校는 全北 所在 初等學校 卒業生만 받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새로 自律學校로 指定된 火山中學校는 2年 後부터 이 法을 適用받게 된다. 沈 校長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政策”이라고 批判했다.

    “地域人材를 養成하라는 趣旨인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政策이다. 한 地域에서만 받으면 指導者를 키우는 意味가 없다. 外國 가는 건 놔두면서 타(他)지역으로 가는 걸 막는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敎育當局을 說得해 法을 다시 바꾸도록 하겠다.”

    ****************************

    火山中이 全國에서 손꼽히는 自律中學校로 우뚝 선 데는 이 學校 設立者인 沈 校長의 공이 絶對的으로 크다. 火山中의 歷史는 敎育에 平生을 바친 沈 校長의 人生行路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信義를 지키고 誠實히 努力하는 사람이 되자’는 이 學校의 設立理念은 沈 校長의 人生哲學이기도 하다. 2000年 學生數 急減으로 廢校 危機에 몰린 火山中을 살려낸 사람도 바로 沈 校長이다. 그가 이제껏 火山中에 쏟아 부은 私財(私財)는 70億원에 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火山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沈 校長의 삶을 알아야 한다.

    火山面이 故鄕인 沈 校長은 初等學生 時節 꿈이 校長이었다. 敎師가 아니라 校長이라니. 그 事緣이 재미있다. 日帝 强占期, 少年 심의두는 火山初等學校를 다녔다. 敎師들은 日本말을 잘 못한다는 理由로 툭하면 아이들에게 매질을 했다. 그는 이 世上에서 先生이 가장 높은 줄 알았고, 나중에 크면 先生이 되겠다고 맘먹었다. 그런데 열두살 때 일어난 事件이 그의 꿈을 先生에서 校長으로 바꾸었다.

    “어느 날 親舊들과 함께 校長室을 淸掃하다 校長先生님의 回轉椅子에 앉아 봤다. 어디선가 週番敎師가 나타나 ‘꼬마 校長先生님이 赴任하셨네’ 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週番敎師는 ‘그 椅子가 얼마나 重要한지 아느냐’면서 엄청 두들겨 팼다. 아버지께서 ‘男子는 팔다리 부러지기 前에는 울면 안 된다’고 하셨기에 눈물을 꾹 참았다. 그때 다짐했다. ‘내가 只今 맞고 있지만 반드시 當身보다 높게 되겠다. 꼭 校長이 되겠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심의두 敎藏의 꿈은 火山中學校를 韓國의 이튼스쿨로 키우는 것이다.

    심의두가 사는 火山엔 中學校가 없었다. 50里 떨어진 完州中學校에 進學한 그는 往復 100里 길을 每日 걸어서 通學했다. 새벽 5時 집에서 出發하면 午前 9時 學校에 到着했다. 그 時節 그는 中學校 設立을 一生의 目標로 삼았다. ‘내 後輩들한테는 이런 苦生을 안 시키겠다’고 다짐하면서.

    ‘아, 참으세요’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高等學校에 갈 與件이 안 됐다. 그는 中學校를 卒業한 後 自立을 決心했다. 서울에 가서 成功해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父親은 苦生길이 훤한 어린 子息에게 쌀 한 가마니 값을 주면서 ‘돈 떨어지면 돌아오라’고 했다. 生前 울지 않던 분이 처음으로 子息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父親은 “사람關係에서 信義를 꼭 지켜라”라고 當付했다. 심의두는 “高等學校와 大學校 卒業狀을 따기 前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故鄕을 떠났다.

    서울에 올라온 지 사흘 만에 그는 가진 돈을 다 鍾路깡牌들한테 빼앗겼다. 죽을 程度로 두들겨 맞고 鍾路에서 往十里 自炊房까지 기어갔다. 一週日 동안 굶고 난 뒤 죽으려고 漢江에 갔다. 얼마나 自殺하는 사람이 많은지, 江邊에 ‘아, 참으세요’라는 牌말이 있었다. 막상 죽으려니 아홉살 때 여읜 어머니의 무덤과 아버지와 한 約束이 생각났다.

    이를 악물고 발길을 돌린 심의두는 行商을 始作했다. 그와 함께 한집에서 自炊하던 女性이 그의 處地를 딱하게 여겨 5000원을 빌려줬다. 그는 또 같이 上京한 故鄕親舊 세 名에게 2000원씩 모두 6000원을 빌렸다. 비누 齒솔 齒藥 실 바늘 성냥 초 따위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팔았다.

    高等學校에 進學한 그는 學費를 벌기 위해 컴퍼스 만드는 工場에 就職했다. 성실함과 信義를 認定받아 同僚들보다 月給을 2倍 더 받기도 했으나 컴퍼스를 밖으로 빼돌리는 同僚들의 不正行爲에 落膽해 會社를 그만뒀다. 以後 家庭敎師를 해서 學費를 解決했다.

    高校를 卒業한 지 2年 後인 1959年 심의두는 軍에 入隊했다. 軍 服務 中 전북대 分校가 部隊 隣近으로 옮겨왔다. 師團長은 下士官 以下의 軍人이 入試에 合格하면 大學을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 德分에 그는 大學生이 됐다. 軍人 身分이라 授業料도 免除받았다.

    1963年 4月, 그는 만기제대했다. 그가 敎育者의 길을 걷기 始作한 것은 그해 10月. 大學 4學年 2學期 때였다. 火山面事務所 會議室을 빌려 中學校에 가지 못한 靑少年 7名을 對象으로 成人敎育을 實施했다. 이것이 火山中의 起源이다. 그의 나이 28歲 때였다.

    공교육 살리기 모델 화산중학교

    火山中 學生들은 卒業 前까지 柔道2段을 따야 한다.

    말이 學校지 敎室이라고는 面事務所 會議室과 天幕敎室이 모두였다. 敎室을 마련하는 게 急先務였다. 沈 校長은 父親이 떼준 1976㎡(590坪)의 땅을 開墾해 두 倍로 불렸다. 고추農事로 돈을 벌어 學校 敷地를 샀다. 2年째가 되면서 1學年 52名, 2學年 33名으로 學生이 늘었다. 敎師라고는 沈 校長밖에 없었다. 全 科目을 맡아 週當 72時間까지 가르쳤다. 이듬해 6個 敎室을 짓고 火山高等公民學校를 세웠다. 學校 施設을 늘리는 데 必要한 費用은 오로지 沈 校長의 몫이었다. 그는 사슴과 오소리를 키우고 結婚半指와 裁縫틀까지 팔아 財源을 마련했다. 1969年 12月 마침내 火山中이 誕生했다.

    하지만 사재만으로 시골 私立中學校를 運營하는 데는 限界가 있었다. 公立보다 給與를 더 줘야 敎師를 誘致할 수 있었으나 到底히 그럴 形便이 안 됐다. 살길은 義務敎育밖에 없었다. 이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 그는 1969年부터 1985年까지 문교부와 靑瓦臺를 줄기차게 찾았다. 靑瓦臺 敎育政策諮問委員을 맡으면서 周邊의 도움으로 朴正熙 大統領과 面談까지 했다. 그 時節 그는 새마을運動 講師로도 活躍했다.

    “짐승처럼 스스로 剛해져야”

    1985年 그는 전두환 大統領을 面談해 中學校 義務敎育 實施를 建議했다. 이를 받아들인 前 大統領의 指示로 그해부터 中學校 義務敎育과 더불어 私立學校 施設費 支援政策이 實施됐다. 全國 最初로 火山中을 비롯한 3個 中學校가 義務敎育 示範學校로 選定됐다. 以後 中學校 義務敎育은 漸次 擴大되어 2002年에 이르러 全國의 모든 中學校가 義務敎育을 하게 됐다.

    “世上에 태어나 내가 할 게 뭔가. 農村을 中興시키는 일을 나의 所任으로 여겨왔다. 農村은 뿌리고 都市는 꽃이다. 꽃을 피우려면 뿌리가 단단해야 한다. 農村을 살리려면 敎育을 살려야 했다. 敎育 때문에 다들 떠나기 때문이다.”

    1995年 全北 敎育委員에 選出된 沈 校長은 敎育委員會 議長과 全州중앙여자고등학교 校長을 거쳐 1999年 9月 火山中 校長으로 復歸했다.

    外換危機로 나라가 휘청거리던 2000年 火山中은 創立 以來 最大 危機를 맞았다. 管內 7個 初等學校 中 6個가 廢校되면서 全校生이 54名으로 줄어든 것. 그해 入學한 學生이 17名에 지나지 않았다. 한때는 全校生이 900名에 達했던 學校가 그 地境이 된 것은 深刻한 離農(離農)現象과 그에 따른 農村人口의 急減 탓이었다.

    이때부터 沈 校長은 第2의 個校를 위해 뛰었다. 私財를 털어 現代式 寄宿舍와 體育館을 짓고 英才敎育 프로그램 等 敎科課程을 새로 編成해 學校의 競爭力을 높였다. 外地 學生과 學父母들이 關心을 갖기 始作했다. 2005年 5月 敎育當局은 火山中을 國內 最初의 自律中學校로 指定했다. 이때부터 全國 各地의 優秀한 學生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2006年 入學競爭率이 10代 1에 達했고 學生 數는 300名을 넘어섰다.

    沈 校長의 꿈은 英國 指導者의 産室이라는 이튼스쿨처럼 火山中에서 우리 社會를 이끌어나갈 指導層 人士를 많이 輩出하는 것이다. 火山中이 내건 指導者 敎育의 3代 要諦는 繼承, 改革, 創造다. 每日 새벽 6時면 學校에 나와 밤 12時에 退勤한다는 沈 校長은 火山中 아이들에게 餘生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짐승처럼 스스로 剛해져야 한다. 일찍부터 父母와 떨어져 自生力을 키워야 한다. 어릴 때 習慣을 어떻게 들이느냐가 重要하다. 英語 單語 외우는 것보다 더 重要한 건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생각의 힘이 世上을 바꾼다. 아이들은 사랑과 稱讚을 먹고 자라난다. 나는 學生들에게 訓化할 때 늘 ‘火山中學校 指導者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人事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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