痲藥 中毒 治癒와 豫防을 위한 行事가 3日 서울 江南區 光臨敎會 社會奉仕館에서 열렸다. 이날 行事를 主催한 南景弼 前 京畿道知事는 “痲藥과 싸워 이기기 위해선 痲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에 제대로 工夫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말했다. [박해윤 記者]
痲藥 中毒의 實態를 알리고, 痲藥 中毒 治癒와 豫防을 爲한 方法을 論議하기 위한 포럼 ‘Never Give Up?恩惠를 救하다’가 4日 서울 江南區 光臨敎會 社會奉仕館에서 열렸다. 主催者는 지난해 여러 言論을 통해 ‘痲藥 治癒 運動家’를 自處한 南景弼 前 京畿道知事다. 그는 이番 行事로 痲藥 問題의 深刻性을 大衆에 알리고, 窮極的으로는 韓國 社會에서 痲藥을 退治하고자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날 그의 뜻을 支持하는 各 界 各 層 80餘 名이 한 자리 모였다. 組城南 前 國立法務病院 院長, 박상규 高麗大學校回 牧師, 양선영 基督敎痲藥中毒硏究所 所長, 이선민 基督敎痲藥中毒硏究所 理事長 等이 演士로 나섰다. 또 車仁杓, 신애라 夫婦와 高(故) 전두환 前 大統領 孫子 전우원 氏 等이 參席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行事에는 專 前 大統領 孫子 전우원 氏가 한 牧會者 因緣으로 參席했는데, 南 前 知事는 “우리 아들과 한 番 만나서 이야기 나눠도 좋을 것 같다”며 痲藥 中毒 治癒 過程에 있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開會辭에서 南 前 知事는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痲藥 治癒 運動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想像 못했다. 오랜 親舊인 차인표 氏와 組城南 院長, 박상규 牧師의 連絡을 받고 넷이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以後 여러 後援者와 專門家로부터 連絡을 받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됐다. 오늘 이 자리는 痲藥과 싸워 이기기 위해선 痲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에 제대로 工夫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說明했다.
3日 行事에는 故(故) 전두환 前 大統領 孫子 전우원 氏(뒷줄 왼쪽에서 두番째)가 한 牧會者와의 因緣으로 參席해 눈길을 끌었다. 南 前 知事는 痲藥 中毒 治癒 過程에 있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박해윤 記者]
첫 演士로 나선 組城南 前 國立法務病院 院長은 大韓民國이 이제는 痲藥에서 安全하지 않으며, 中毒 問題가 深刻한 狀態라고 거듭 强調했다. 그는 “人口 10萬 名當 摘發된 痲藥類 事犯 數가 20名을 넘으면 痲藥 安全地帶를 벗어났다고 보는데 우리나라는 2015年 20名을 넘었다. 痲藥事犯 統計를 보면 過去에는 40代가 많았으나 2021年부터는 20代가 가장 높아졌고, 10代는 每年 10%씩 늘어나는 趨勢”라고 實態를 告發했다. 그러면서 “痲藥은 두 種類로 나뉘는데 腦를 깨우는 覺醒劑와 腦를 쉬게 하는 抑制劑로 性質이 다르지만 둘 다 도파민을 活性化해 中毒性이 높다는 共通點이 있다. 펜타닐은 2mg만 들어가도 목숨이 危險한데 美國은 아시다시피 여러 都市의 거리가 焦土化됐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3年 前 昌原에서 高等學生 40餘 名이 펜타닐 패치에 中毒돼 摘發됐다”며 事態의 深刻性을 알렸다.
조 前 院長은 痲藥 中毒을 막기 위해서는 豫防이 가장 重要하다며 “痲藥은 한 番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番만 하는 사람은 없다. 快感의 記憶이 살아 있는 한 反復될 수밖에 없다. 한 番도 안 하도록 豫防이 가장 重要하고, 痲藥 中毒을 疾病으로 接近해서 初期에 治療를 해야 한다”고 强調했다.
大學街 痲藥 파티 橫行, 20代 痲藥事犯 늘어
3日 行事에는 南 前 知事의 뜻을 支持하는 各 界 各 層의 人士 80餘 名이 한 자리 모였다. [박해윤 記者]
이어 박상규 高麗大學校回 牧師는 大學街에 暗暗裏에 퍼진 痲藥 流通 實態를 알렸다. 그는 “지난해 내가 몸담은 캠퍼스에서 ‘도파민 파티’가 열린다는 傳單을 보고 問題의 深刻性을 認知해 傳單을 뜯고 다녔다. 고려대뿐 아니라 서울 여러 大學에 液狀大麻 販賣 傳單이 붙어 있는 것을 發見했다. 오늘날 大學生들이 露出된 文化는 健全하지가 않다. 술파티, 클럽파티가 無料로 열리는데 술 以外 痲藥 流通도 憂慮되는 狀況”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그는 大學에서부터 痲藥을 根絶하는 캠페인이 施行돼야 한다며 ‘大學을 위한 痲藥 및 中毒 豫防센터(DAPCOC)’ 設立 背景을 說明했다. DAPCOC는 大學生들에게 痲藥에 對한 一般 知識을 敎育하고, 배운 內容을 土臺로 意見을 討論하게 한 뒤, 文化 活動과 自願奉仕를 支援하고 窮極的으로 이들을 豫備 講師로 키워 中?高等學校 等에서 痲藥 豫防 敎育을 할 수 있도록 支援하는 센터다.
痲藥 中毒의 苦痛을 몸소 體感한 이들의 證言도 이어졌다. 現在 痲藥 中毒에서 벗어나 奉仕하며 살아가는 양선영 基督敎痲藥中毒硏究所 所長은 本人의 不遇한 家庭環境으로 因한 痲藥 中毒 事例와 藥에서 벗어나는 過程을, 痲藥中毒者의 家族으로 痲藥의 危險性에 對해 알리기 위해 나선 이선민 基督敎痲藥中毒硏究所 理事長도 아들이 痲藥에 빠진 事例와 克服 過程을 淡淡하게 告白했다.
南景弼 前 京畿道知事와 함께 行事를 主催한 俳優 차인표 氏는 “우리 社會가 中毒者들의 便에 서서 그들의 治癒를 도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해윤 記者]
行事에 끝까지 參席한 俳優 차인표 氏는 남 代表의 紹介로 演壇에 서서 自身이 왜 痲藥 中毒 治癒 運動에 함께하는지를 說明했다. 그는 “지난해 데뷔 30周年을 맞았는데 그間 運이 좋아서 잘 살았다. 只今까지 받은 것을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이 크던 車에 南景弼 代表님이 痲藥治癒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알고, 함께 하고 싶어졌다. 演藝界에도 痲藥에 빠진 이들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痲藥 患者들은 다른 患者들과 달리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러나 痲藥도 一般 疾病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이 必要하다. 우리 社會가 中毒者들의 便에 서서 그들의 治癒를 도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南 前 知事는 첫 演士인 組城南 前 院長의 講義 內容에서 中毒者 家族들의 事例를 例로 들며 所感을 말했다. 그는 “痲藥이 어떻게 한 家庭을 무너뜨리는지 그 過程을 曺 院長께서 紹介했는데, 多幸인 點은 우리 家族은 아직 風飛雹散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家族은 아들을 抛棄하지 않고 더욱 단단해졌으며, 이겨내고 있는 中”이라며 “남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重要한 일은 痲藥을 豫防하는 것이고, 中毒을 治癒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