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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못 마시고 일에만 沒頭, 머릿속에 檢察 責務만 있는 사람”|新東亞

“술 못 마시고 일에만 沒頭, 머릿속에 檢察 責務만 있는 사람”

尹錫悅 大統領과 正反對 이원석 檢察總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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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연 記者

    grape06@donga.com

    入力 2022-09-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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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도 좋은데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 默默히 맡은 일 하는 ‘學者 스타일’

    • “數抛者 될 뻔했는데 원석이가 도와줘 克服”

    • “被害者 保護에 關心 많은 人間的인 사람”

    • 24年間 要職 거친 ‘明晳한 實力派 特殊通’

    • 國政壟斷 때 박근혜 前 大統領 直接 調査

    • 尹錫悅 檢察總長 時節 企劃調整部長으로 補佐

    • 한동훈 法務長官과 硏修院 27期 動機

    • 親尹 檢察總長 憂慮 拂拭해야

    • “野黨 代表든, 大統領 配偶者든 嚴正하게 搜査해야”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가 9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뉴스1]

    이원석 當時 檢察總長 候補者가 9月 5日 서울 汝矣島 國會 法制司法委員會에서 열린 人事聽聞會에서 宣誓하고 있다. [뉴스1]

    第45代 檢察總長에 이원석 大檢察廳 次長檢事(53·司法硏修院 27期)가 任命됐다. 이 總長은 9月 16日 任命狀을 받고 尹錫悅 政府 初代 檢察 首長에 올랐다. 前任 金오洙 總長이 지난 4月 檢搜完剝 法案 沮止에 失敗하자 “責任을 痛感한다”는 見解를 밝히고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 總長은 5月 22日부터 歷代 最長인 133日間 檢察總長 職務代理를 맡아왔다.

    앞서 8月 中旬 檢察總長 候補群에 여환섭 法務硏修院長(24期), 김후곤 서울高檢長(25期), 이두봉 大田高檢長(25期) 等의 이름이 올랐다. 세 사람은 이 總長이 任命되자 곧바로 辭職書를 提出했다. 外部에서는 이 總長과 한동훈 法務部 長官이 27期 動機로 騎手가 낮은 탓에 檢察 組織의 融合을 위해서라도 檢察總長은 騎手가 相對的으로 높은 여환섭 法務硏修院長이 拔擢되리란 展望도 나왔다. 實際로 이 總長의 總長 職務代理 期間이 길어지는 것은 이와 關聯해 尹 大統領의 苦心이 깊기 때문이란 視角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總長 拔擢 直後 檢察 內部 反應은 “豫想했던 手順”이라는 게 支配的이었다. 이미 이 總長이 檢察總長 職務代理로서 굵직한 事件들의 搜査 方向을 指揮하고, 主要 日程을 遂行하고 있었기 때문. 首都圈 檢察廳에 勤務하는 한 檢事는 “한동훈 法務部 長官 任命 때부터 檢察 組織 年少化 바람이 불었고, 過去의 期數 文化가 漸次 退色하는 狀況에서 이원석 總長의 任命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며 “業務의 連續性 側面에서 混亂이 덜할뿐더러 檢察의 業務 遂行 動力을 높이는 人事라고 본다”고 말했다.

    實力派 特殊通, 朴槿惠 前 大統領 直接 調査

    이원석 總長 人選을 두고 檢察 內部 反對 異見이 거의 없는 것은 搜査 實力과 企劃 能力이 卓越하다는 것이 衆論이기 때문이다. 取材를 綜合하면 그는 한마디로 ‘明晳한 實力派 特殊通’이다. 實際로 그는 檢察에 在職하는 24年 동안 平檢事들의 로망인 大檢 中央搜査部 誇張과 서울중앙지검 特殊1部長 等 主要 補職을 두루 거쳤다. 特히 低年次 때부터 企劃 및 特殊 搜査에 頭角을 드러내 尹錫悅 大統領이 檢察에 몸담았던 時節 呼吸을 맞춰 굵직한 事件을 搜査했다. 尹 大統領이 總長에 오른 뒤에는 大檢 企劃調整部長으로서 그를 補佐해 代表的인 尹錫悅 師團으로 꼽힌다.

    이 總長은 光州에서 태어나 高等學校 2學年 때 서울로 移徙한 뒤 1987年 중동고를 卒業했다. 1991年 서울大 政治學科를 卒業하고 1995年 第37回 司法試驗에 合格, 司法硏修院 27基를 마치고 서울地檢 東部支廳에서 檢査 生活을 始作했다. 以後 釜山地檢, 서울中央地檢, 水原地檢 等을 거쳐 2015年 大檢 搜査指揮課長, 2016年 서울중앙지검 特殊1部 部長에 올랐다. 2018年에는 大檢 海外不法財産還收 合同調査團 團長을 맡아 成果를 냈고, 이듬해 大檢 企劃調整部長(檢査場級)으로 昇進했다. 2020年 水原高檢 次長, 2021年 濟州地檢 檢事長을 거쳐 5月 大檢 次長檢事(高檢長級)에 任命돼 檢察總長 職務代理로 일했다.



    이 總長은 平檢事 時節부터 ‘일 잘하는 엘리트’로 이름을 알렸다고 한다. 그의 한참 先輩인 서울중앙지검 特殊部長 出身의 한 辯護士는 “特殊 搜査는 알다시피 權力型 非理, 大型 經濟犯罪 等 事件의 複雜한 利害關係를 正確히 把握하고 迅速하게 搜査해야 하기 때문에 일 잘하는 檢査가 貴하다. 이원석 總長이 平檢事 때부터 스마트한 檢事라고 定評이 나 있어서 特殊部에 迎入됐던 것으로 記憶한다”고 말했다.

    이 總長이 特殊通으로 이름났던 尹 大統領과 因緣을 맺은 것도 2005年 서울중앙지검 特殊部에서 일하면서부터다. 當時 이 總長은 三星에버랜드 轉換社債 事件과 三星 X파일 事件 等을 搜査하고 있었다. 그는 當時 大檢 檢察硏究官이던 尹 大統領과 함께 이학수 三星그룹 副會長과 홍석현 中央日報 會長을 直接 調査했다. 以後 이 總長은 三星에버랜드 轉換社債 事件 抗訴審에서 1審보다 무거운 刑을 이끌어내는 成果를 올린 一等 功臣으로 꼽혔다.

    이 總長은 權力型 非理 事件 搜査에도 頭角을 드러냈다. 2016年 서울중앙지검 特殊1部長 때 李明博 政府의 4大江 事業 非理 疑惑과 資源外交 搜査를 맡았다. 이듬해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搜査를 위해 꾸려진 檢察 特別搜査本部에서 被疑者 身分으로 召喚된 朴槿惠 前 大統領을 直接 調査하기도 했다. 當時 尹 大統領은 特檢팀 首席 派遣 檢事로 搜査 全體를 指揮했다. 이 總長은 三星, 롯데, SK等 大企業 賂物 嫌疑를 搜査하면서 최순실 氏와의 聯關性을 밝혀내 關聯者들을 起訴하는 成果를 거뒀다.

    尹錫悅 大統領의 이원석 總長에 對한 信任이 두터웠음은 두말할 必要도 없다. 2019年 尹 大統領이 檢察寵章으로 就任한 直後 斷行한 人事에서 이 總長은 大檢 企劃調整部長으로 昇進했다. 그러나 2020年 1月 秋美愛 法務部 長官 就任과 同時에 이른바 ‘尹錫悅 師團’으로 불리던 이들은 줄줄이 左遷됐고, 이 總長 亦是 水原高檢 次長으로 發令받았다. 이어 2021年 6月에는 濟州地檢 檢事長으로 내려가는 等 挫折을 겪기도 했다.

    똑똑하고 부지런해, 맡은 搜査는 끝까지 파헤쳐

    이원석 總長에 對한 檢察 內部 評價는 한결같다. 日的으로도 私的으로도 欠缺이 없다는 것. 이 總長 밑에서 일한 적 있는 한 副部長級 檢事는 “머리도 좋은데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評價가 좋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評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程度로 每日같이 일에만 沒頭하는 분이었다. 平檢事들 사이에서 밤늦게까지 請에 남아 業務를 보는 분으로 有名했다. 똑똑한 사람이 일을 熱心히 하면 結果가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또 술 마시는 걸 別로 좋아하지 않아서 會食 자리에서 술을 안 마실뿐더러 後輩들에게 勸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가끔 會食을 하면 個人的인 이야기보다는 일과 關聯된 생각을 묻고 對話하는 걸 좋아했다. 머릿속에 檢察의 責務와 檢事의 役割에 關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이 總長은 一般人들이 檢査에 對해 갖는 固定觀念에서 相當히 벗어난 人物이란 評價가 많았다. 大槪 檢事들은 大型 搜査를 통해 立身揚名하길 願하거나, 組織 內 政治를 통해 昇進을 꿈꿀 것으로 豫想된다. 그러나 이 總長은 그런 類型의 檢査는 아니었다고 한다. 檢察 內部에서는 이 總長에 對해 “默默히 自己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해내며 組織 內 自己 技能을 해내는 데 集中한 學者 스타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副部長級 檢事는 “平素 말씀 中에 中國 故事를 많이 引用하고, 讀書量이 相當해 博學多識한 敎授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自己管理度 徹底해서 24年 檢察에 在職하는 동안 口舌에 오른 일이 한 番도 없다고 한다. 大檢硏究官으로 일하는 한 檢事는 그에 對해 “지난달 總長 下馬評에 올랐을 때 다들 ‘이 總長은 自己管理를 워낙 잘해 人事 檢證 過程에서 個人的인 일로 問題가 될 內容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豫想했다”고 말했다. 實際로 9月 初 열린 人事聽聞會에서 이원석 總長은 앞선 內閣 官僚 人事聽聞會에서 심심찮게 불거졌던 子息·不動産·飮酒 問題 等의 非違가 없었다.

    一見 선비 같은 檢査로 비치지만 搜査에 關해서는 讓步가 없다는 評價다. “한番 레이더網에 들어온 事件에 對해서는 끝까지 파헤치고 책임지려는 끈질김이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現職에 있는 한 部長檢事는 “過去 自身이 搜査했던 부산저축은행 事件의 終止符를 찍기 위해 끝까지 努力하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말하며 關聯 逸話를 들려줬다.

    이 總長은 2011年 大檢 中搜部 檢察硏究官으로 일하던 中 尹 大統領이 있던 中搜部로 派遣을 가 부산저축은행 事件 搜査를 함께 했다. 當時 檢察이 8個月間 끈질기게 搜査한 끝에 부산저축은행 그룹의 6兆 원臺 不法 貸出과 3兆 원臺 粉飾會計 嫌疑를 摘發한 事件이었다. 非理는 밝혀냈지만 갑작스러운 營業停止로 銀行에 돈을 맡겨놨던 庶民들은 救濟를 받지 못하고 被害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이 總長은 被害者들의 鬱憤이 담긴 이 事件을 오랜 時間 마음에 담아뒀다고 한다. 2018年 海外不法財産還收 合同調査團 團長으로 赴任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부산저축은행 事件 關聯 被害者 救濟였다. 이 總長은 예금보험공사에 不法 財産 還收 關聯 아이디어를 提案했고, 캄보디아 大使를 만난데 이어 프놈펜으로 날아가 現地 政府 關係者들과 論議하는 等 事件을 매듭지으려는 熱意를 보였다. 結局 그는 2019年 釜山貯蓄銀行으로부터 投資를 받은 施行社 代表 吳某 氏를 國內로 送還해 6500億 원臺 財産을 還收하는 데 決定的 役割을 했다.

    이 逸話를 傳해 준 部長檢事는 “特殊部 檢事들은 高位職이나 社會指導層 人士를 搜査해 成果를 내는 것에 關心이 많은 便인데 이원석 總長은 被害者와 庶民을 保護하려는 데 더 關心이 많은 人間的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원석 검찰총장이 9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尹錫悅 大統領과 이원석 檢察總長이 9月 16日 서울 龍山 大統領室에서 任命狀 授與式을 마친 뒤 記念撮影을 하고 있다. [뉴시스]

    “自己 時間 쪼개 남 도운 착한 親舊”

    이원석 總長의 學窓 時節 逸話도 檢察 內部 評價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全校 1·2等을 도맡아 할 程度로 頭腦가 明晳하고, 弱한 親舊를 保護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라는 後聞이다. 그는 光州에서 태어나 동산초·동성중을 卒業하고, 高等學校 2學年 때 서울 중동고로 轉學했다. 이 總長은 중동고가 종로구 수송동 時代를 마감하고, 1984年 강남구 일원동으로 移轉해 처음 入學한 騎手와 學窓 時節을 함께 보냈다.

    중동고는 名門 私學으로 有名한 學校로, 卒業生 가운데 相當數가 有名 人士다. 情·財界에는 이병철 삼성그룹 創業主, 金武星 國民의힘 常任顧問 等, 文化·藝術界에는 金芝河 詩人, 映畫俳優 이병헌·김수현 氏, 개그맨 심현섭 氏 等이 있다. 이番 檢察 人事에서 서울中央地檢 檢事長에 오른 송경호 地檢長은 이원석 總長의 2年 後輩다.

    江南 8學群의 錚錚한 學生들 가운데서도 地方에서 轉學 온 이원석 總長은 곧바로 全校 1等을 차지하며 頭角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總長과 2學年 때 같은 班이었던, 삼성물산에서 退職한 뒤 物流會社를 運營 中인 80回 卒業生 同期會長 박세영 氏는 “南道 사투리로 親舊들을 웃기고 장난도 잘 치던 원석이가 轉學 後 처음 치른 試驗에서 全校 1等을 했을 때 先生님도 우리도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쉬는 時間에도 조용히 工夫만 하던 江南키즈보다 成績이 잘 나와서 원석이를 보는 눈이 다들 달라졌다. 원석이가 工夫하는 티를 내는 그런 답답한 범생이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만 授業 時間만큼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先生님 말씀에 조용히 集中해 따라가는 便이었다. 性格이 밝고 弄談도 잘하는 親舊여서 같이 있으면 즐거웠다.”

    全校 1等을 차지했다고 으스대는 性格도 全혀 아니었다. 오히려 周邊 親舊들이 工夫로 苦心할 때면 自己 時間을 쪼개 도움을 주는 쪽이었다고 한다. 試驗이 끝나면 모두 이 總長에게 뛰어가 正答을 確認했는데, 틀린 걸 물어보는 親舊에게 一一이 說明해 줬다고 한다.

    2學年 때 이 總長과 같은 班이었던 現職 국민은행 支店長인 이형구 氏는 “數學이 어려워 數抛者가 될 뻔했는데 원석이 德分에 克服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원석이가 그렇게 工夫를 잘하는 줄 몰랐다가 成績이 發表된 後 원석이에게 數學 苦悶을 털어놨는데 쉬는 時間 틈틈이 自尊心 傷하지 않게 個人 課外를 해줬다. 쉬는 時間에는 놀고 싶었을 텐데 自己 時間을 내줘 너무 고마웠다. 以外에도 大學 卒業하고 行員으로 일할 때 新任 檢事이던 원석이에게 苦悶 끝에 商品 加入書를 내밀었는데 自己가 加入하는 것은 勿論 同僚 檢事를 紹介해 준 일도 只今까지 고마워하고 있다.”

    남을 생각하고 配慮하는 마음이 學窓 時節 내내 두드러졌다고 한다. 이 總長이 3學年이던 1986年 當時 後輩로 개그맨 심현섭 氏가 入學했는데 學期 初에 擔任先生님이 “新入生 中에 아버지가 1983年 아웅산 事態로 殉職하신 심상우 氏(當時 민정당 總裁 祕書室長)의 아들이 있으니 오며가며 만나게 되면 따듯한 말 한마디라도 해줘라”고 當付했다고 한다. 이 總長은 이 말을 듣고 規律部長이던 動機 박세영 氏에게 “네가 後輩들을 잘 아니 그 親舊를 나랑 좀 같이 만나자”며 1學年 敎室로 갔다.

    “쫄아 있던 新入生들 앞에서 원석이는 ‘느그 班에 이 親舊의 아부지가 아웅산 事態 때 돌아가신 아주 훌륭한 분의 子弟이니 親舊들끼리 잘 寶覃어 주면서 지내길 바란다’며 同期 間 友愛를 强調했다. (審)現섭이는 只今도 ‘3學年 兄들이 갑자기 敎室에 들어와서 엄청 緊張했다’며 그때 일을 回想한다.”

    9月 이 總長이 檢察寵章으로 拔擢됐을 때 同窓들은 하나같이 “드디어 될 사람이 됐다”는 反應이었다고 한다. 박세영 氏는 “원석이는 强烈한 카리스마가 있거나 獨不將軍 스타일의 리더는 아니다. 自身의 생각을 條理 있게 말하며 相對方을 說得하는 和合型 리더에 가깝다. 同窓이라 應援하는 것이 아닌 資質과 能力, 人性에 비춰볼 때 組織을 잘 이끌 適任者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원석 總長이 사는 法

    只今 檢察은 巨大한 外部 소용돌이에 휩쓸린 狀態다. 9月 10日부터 施行된 檢搜完剝法에 따라 檢察이 直接 搜査할 수 있는 範圍가 줄었다. 한동훈 法務部 長官은 施行令을 통해 搜査 範圍를 넓혔으며 檢搜完剝 法案의 違憲 與否를 놓고 憲法裁判所에 訴를 提起해 ‘檢修員服’을 推進하고 있다. 이런 渦中에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代表와 關聯된 쌍방울 非理 搜査와 김혜경 氏 法人카드 流用 疑惑, 城南FC 後援金 疑惑 事件 等을 搜査하고 있다. 나아가 野黨은 大統領 夫人 김건희 女史의 各種 非理와 關聯해 特檢法 發議를 準備하고 있다.

    檢察의 搜査와 그 結果에 여느 때보다 關心이 쏠리는 只今, 檢事 出身 大統領이 이끄는 政府가 檢察에 友好的인 스탠스를 取해 檢察을 向한 國民의 視線에 疑心이 섞인 것이 事實이다. 特히 이원석 總長이 代表的 親尹 檢事였다는 事實이 알려져 있는 터라 ‘大統領 입맛에 맞는 搜査’를 하게 될 것이라는 憂慮도 나온다.

    只今의 檢察은 어느 때보다 聖域 없는 搜査를 해야 한다는 國民的 要求에 直面해 있다. 檢察 出身의 한 辯護士는 “理想的인 檢察總長은 外部 勢力이 主要 事件 搜査에 介入하려는 試圖를 막아주고, 實際 眞實을 찾을 수 있도록 一線 檢事들의 防牌막이가 돼줘야 한다. 向後 搜査에 對한 不義한 試圖를 斷乎하게 對處하고, 檢察을 代表해 情의 守護에 對한 意志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敎授(政治學) 亦是 “이원석 總長이 사는 方法은 犯罪 認知가 되면 原理原則대로 嚴正하게 搜査하는 것밖에 없다. 國民的 疑惑이 있는 事案이라면 野黨 代表든, 大統領 配偶者든 누가 關聯돼 있건 끝장을 봐야 한다는 心情으로 搜査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아 10월호 표지.

    신동아 10月號 表紙.



    정혜연 차장

    정혜연 次長

    2007年 東亞日報 出版局에 入社. 여성동아, 週刊東亞, 채널A 國際部 等을 거쳐 2022年부터 신동아에서 勤務하고 있습니다. 金融, 不動産, 재태크, 流通 分野에 關心이 많습니다. 意味있는 記事를 生産하는 記者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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