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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住寺 솔숲|新東亞

法住寺 솔숲

‘한글 로드’ 따라 걷는 生命文化遺産 奇行

  • 전영우│國民大 山林資源學科 敎授│

    入力 2010-10-04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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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철의 절집 巡禮는 南녘에서 始作되지만, 가을철의 절집 巡禮는 南下하는 丹楓을 따라 北녘에서 始作해야 제格. 法住寺 큰절에서 福泉庵에 이르는 丹楓 숲길이 빠질 수 없다.
    • 한글 創製를 도운 신미대사가 걷던 길을 한글날이 있는 10月에 걷는다면 말과 글에 얽힌 意味를 되새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가슴에 色동 丹楓 숲이 季節의 불을 지필 것이다.
    법주사 솔숲

    法住寺의 오리 숲길.

    어느 절집인들 周邊에 소나무가 없으랴만, 法住寺의 소나무는 正二品松 때문에 각별하다. 2006年 文化관광부는 우리 文化를 代表하는 100代 民族文化 象徵으로 ‘民族 象徵’(2個), ‘疆域 및 自然 象徵’(19個), ‘歷史 象徵’(17個), ‘社會 및 生活 象徵’(34個), ‘信仰 및 事故 象徵’(9個), ‘言語 및 藝術 象徵’(19個)을 發表했다. 소나무는 ‘疆域 및 自然 象徵’의 하나로 珍島개, 韓牛, 虎狼이와 함께 이 땅에 生育하고 있는 植物 中에서는 唯一하게 包含됐다. 우리에게 食糧을 提供해주는 벼나 보리, 또는 藥效가 뛰어난 人蔘이나 다양한 맛을 내는 果樹(果樹)는 包含되지 않고,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4300餘 種類의 植物 가운데 소나무만이 民族文化의 代表的 象徵에 包含된 理由는 무엇일까. 소나무가 우리에게 어떤 存在이기에 이런 待接을 받는 것일까.

    소나무는 지난 數千 年 동안 建築材와 조선재의 重要한 原料였고, 陶瓷器와 소금 生産에 必要한 燃料였음은 勿論이고 凶年에 주린 배를 채워준 救荒食物의 구실도 해왔다. 그러기에 소나무는 農耕社會를 維持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所重한 生命資源이었다. 農耕社會에서 소나무가 베푼 다양한 物質的 惠澤은 우리 精神世界에까지 影響을 끼쳐 志操와 絶調, 生命과 길지, 風流와 安逸과 같은 象徵體系로 녹아들었다. 그래서 소나무는 우리 文化를 象徵하는 代表的 아이콘이 됐을 것이다.

    그런 소나무를 象徵的으로 가장 잘 나타내는 나무는 斷然 正二品 소나무라 할 수 있다. 四方으로 뻗은 줄기의 形象이 어느 쪽에서 보든 마치 正規分布曲線처럼 아름다운 對稱을 이루면서 堂堂하게 자라던 모습을 본 사람들은 瞬間的으로 그 아름다움에 魅了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理由로 佛子(佛子)의 與否를 떠나, 韓國人이면 누구나 世祖 임금과 正二品松에 얽힌 이야기를 익히 안다. 世祖가 法住寺를 訪問하고자 法住寺 들머리에 當到했을 때 소나무가 제 스스로 처진 가지를 들어올려 임금의 가마를 無事히 지나가도록 했고, 그 것을 가상히 여긴 賃金이 오늘날 長官級에 該當하는 情2품이라는 벼슬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祖上들이 나무를 人格體로 본 樹木館의 結晶體다.

    그러나 소나무와 關聯된 內容이 700餘 回 以上 收錄된 ‘朝鮮王朝實錄’을 보면 世祖가 소나무한테 벼슬을 내렸다는 記錄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正二品松에 傳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 事實처럼 믿고 싶어하는 나무(自然)와 人間의 敦篤한 關係를 傳하는 한 篇의 說話인 셈이다.



    法住寺는 不法을 求하러 天竺으로 건너가 經典을 얻어 歸國한 依申(義信)스님에 依해 553年(新羅 眞興王 14年)에 創建됐다. 法住寺란 이름은 法(法)李 安住할 수 있는 脫俗(脫俗)의 절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壬辰倭亂과 丁酉再亂으로 嘉藍의 建物 大部分이 불타버렸지만, 1624年 碧巖스님에 依해 重創됐고, 1787年(正祖 11年)에 23代 王이 될 純祖의 胎를 隣近 胎封에 安置하면서 泰封垂直査察이 됐다. 오늘날은 금산사와 함께 彌勒信仰의 搖籃으로 特히 有名하다. 法住寺 境內에는 八相殿(捌相殿·國寶 55號), 雙獅子石燈(雙獅子石燈·國寶 5號), 石蓮池(石蓮池·國寶 64號) 等의 國寶와 四天王石燈(四天王石燈·寶物 15號), 磨崖如來衣裳(磨崖如來倚像·寶物 216號) 等의 重要 文化財가 있다.

    한글 創製 도운 신미대사와 世祖의 因緣

    正二品松이 우리 文化를 象徵하는 아이콘의 심벌로 우리 가슴속에 자리 잡은 가장 큰 理由는 法住寺를 찾은 世祖와 正二品松에 얽힌 판타지가 存在하기 때문이다. 이 판타지의 背景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우리 文化의 核心인 訓民正音의 創製에 寄與한 佛敎의 功德과 함께, 이른바 ‘한글 로드’(말티재-正二品松-法住寺-福泉庵)라는 愛稱까지 얻게 된 또 다른 판타지의 世界를 만날 수 있다.

    歷史는 이 일을 世祖가 1464年 2月28日 法住寺 福泉庵의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80)를 만나고자 나선 걸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端宗을 廢하고 王位에 오른 世祖는 皮膚病을 甚하게 앓고 있었는데, 後날 世宗을 도와 集賢殿 時節부터 한글 創製에 積極的으로 參與(一說에는 한글 創製를 主導)韓 大學者이자 高僧인 신미대사가 머물고 있던 福泉庵을 찾게 됐고, 3日間의 祈禱와 法文으로 安定을 찾게 됐다는 이야기가 傳해진다.

    世祖는 倒壞 直前의 상원사 寂滅보궁을 復元시켜 달라는 신미대사의 請을 받아들여 復元工事에 必要한 財源을 나라에서 支援하게 했다. 世祖와 신미대사의 因緣 德分에 五臺山 月精寺의 적멸보궁이 復元됐고, 復元을 記念해 상원사 걸음을 하게 된 世祖가 밤中에 溪谷물로 沐浴할 적에 문수동者가 등을 밀어주어 皮膚病이 나았다는 것은 不可에서 傳해 내려오는 有名한 이야기로 이미 지난 月精寺 篇에서 다룬 바 있다.

    淸州에서 出發한 世祖 一行은 말티재 아래 大闕 터에서 하루를 묵었다고 記錄돼 있다. 다음날, 소나무로 빽빽하게 덮여 있는 말티재의 險한 고갯길을 넘어 平地로 내려섰을 때 周邊 소나무들 中에 저 멀리 群鷄一鶴처럼 멋진 한 그루의 나무가 눈에 들어왔을 터이다. 저 소나무로부터 부처님의 나라까지는 十里길. 아마도 險한 고갯길을 넘느라 지친 가마꾼들을 쉬게 하는 한便, 흐트러진 隨行員들의 衣冠(衣冠)도 精製할 수 있도록 소나무 밑에서 暫時 쉬어가게끔 걸음을 멈추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推測건대, 後世 사람들은 임금이 가마(輦)에서 내려 쉬어간 소나무를 神聖한 王權을 附與받은 나무로 置簿했을 터이고, 그래서 正二品이라는 벼슬을 下賜받은 나무로 판타지를 꾸몄을지도 모른다. 또는 宮闕을 짓고 배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라의 重要한 資源인 소나무를 더욱 徹底히 지키고자 至嚴한 王權의 象徵을 잘생긴 소나무한테 扶餘(象徵的 移入現象)했을 수도 있다.

    이런 事緣 때문에 예부터 나라에서는 正二品 소나무를 保護하고자 各別히 애를 썼다. 그 象徵的인 例는 1980年代 初 솔잎혹파리의 攻擊으로 많은 소나무가 害를 입었을 때 이 소나무만은 큰돈 들여 나무 周圍에 大規模 防蟲網을 設置, 솔잎혹파리의 攻擊을 막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正二品松은 元來 ‘삿갓 또는 雨傘을 편 模樣’으로 斷定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年 强風으로 西쪽 큰 가지가 부러졌고, 또 以後 暴雪 被害로 西쪽의 남은 가지들조차 많이 傷했다. 正二品松이 自然災害로 아름다운 樹形이 毁損될 때마다 여러 言論媒體가 앞 다투어 記事化한 理由도 이 소나무가 가진 象徵的 價値에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世祖 一行의 걸음까지 멈추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은 아름답고 堂堂하던 정이품송의 모습은 오늘날 더 以上 찾을 수 없다. 오늘날은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란 옛 榮光을 뒤로하고, 2001年 정이품송의 花盆을 利用해 三陟 준경墓의 미인송과 交拜해 얻은 種子로 後繼목을 養成해서 保護하고 있는 實情이다.

    우리 소나무가 간직한 氣槪와 堂堂한 風采를 象徵하던 正二品 소나무가 病蟲害와 눈과 바람의 被害로 衰退해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조연환 是認(前 山林廳長)은 이렇게 읊었다.

    법주사 솔숲

    正二品 소나무의 옛 모습.

    正二品松

    正規分布曲線으로 象徵되던 네 모습이 / 허물어지는구나

    네 팔뚝을 부러뜨린 者가 누구더냐

    六百年을 버텨온 네가 / 견딜 수 없을 程度의 힘센 暴風이 있었더냐

    하루살이 솔잎혹파리가 네 팔뚝을 / 뚝딱 먹어 치웠단 말이냐

    너는 알고 있으리라 / 六百年間 昇進 한 番 못하면서도

    지켜온 正規分布 네 氣槪를 꺾고 / 非正規分布로 너를 무너뜨린 者들이 누구인지를

    暴風, 벼락, 天敵보다 / 얼마나 더 무서운 者들인지를

    그래, 찌그러진 네 모습으로/똑똑히 일러 주어라 / 저들의 所行을

    한 千年 더 살아가면서

    - 조연환의 詩集 ‘숫돌의 눈물’에서

    文化的 價値 對 生態的 價値

    ‘한글 로드’를 따라 法住寺를 向하고자, 새로 낸 터널 지름길 代身에 報恩 邑內에서 險한 말티재를 넘는다. 正二品松 앞에서 車를 멈추고 ‘한글 로드’의 콘텐츠를 다시금 想起한다. 500餘 隨行員을 帶同하고 오리 숲길로 向하던 世祖 임금의 行次를 想像하면서 一柱門을 지난다. 法住寺를 찾는 수많은 訪問客은 640餘 年 전 한글 創製를 도운 신미대사와 世祖의 因緣은 勿論이고 不可의 숨은 寄與를 果然 알고 있을까.

    職業意識을 속일 수 없는지, 想像의 날개를 더 以上 펼칠 수 없다. 自然의 秩序에 따라 참나무와 丹楓나무 等 闊葉樹의 勢力에 눌려서 소나무가 漸次 사라지는 천이(遷移) 現場이 오리 숲길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遷移가 이런 速度로 進行되면 法住寺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들머리 솔숲은 우리 눈앞에서 早晩間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法住寺의 들머리 솔숲 亦是 國立公園으로 指定돼 있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形便이다. ‘한글 로드’의 重要한 自然遺産人 솔숲이 사라지도록 그대로 放置하는 것이 順理일까.

    지난 8月23日부터 28日까지 서울 코엑스에 2500餘 名의 全世界 山林科學者가 모인 가운데 第23次 世界山林科學大會(IUFRO) 서울 總會가 열렸다. 總會에 앞서 17個 나라에서 온 山林科學者 60餘 明과 하룻밤을 절집에서 묵으면서 절집 숲의 傳統的(宗敎的) 文化 價値와 現代社會가 要請하는 生態的 價値 사이에 尙存하는 軋轢을 解消할 수 있는 方案을 摸索하고자 절집 숲 現場에서 討論會를 열었다. 討論에 參與한 外國 學者들은 査察林의 宗敎的 活用과 保全에 對한 宗敎界와 政府 사이의 葛藤 解消責에 對한 助言을 求하고자 하는 나의 呼訴에 좋은 解決策을 쉽사리 提示하지 못했다. 參加者 大部分이 單숨에 解決할 수 없는 어려운 課題라는 데 意見을 모았을 뿐이다.

    지난 千 數百 年 동안 宗敎的 目的으로 使用돼온 절집 숲에 對한 佛敎界의 見解는 政府(地自體나 國立公園管理工團)와 다를 수밖에 없다. 거칠게 整理하면 査察 側은 遂行과 布敎 等 宗敎的 目的을 위해 절집 숲을 좀 더 積極的으로 活用하려는 데 反해 政府 側은 未來 世代를 위해 生態的 價値(生物多樣性과 景觀 保全)를 더 重視한다. 宗敎的 目的으로 維持해온 절집 숲의 利用과 保全에 對한 葛藤의 代表的 事例는 査察林이 國立公園(또는 道立公園이나 郡立公園) 面積의 30% 以上 編入된 寺刹에서 더욱 深刻하게 불거지고 있다.

    ‘소나무 巡禮’ 適期는 가을과 겨울

    법주사 솔숲

    天王門 앞의 전나무.

    世界山林科學大會 서울 總會 期間 中 나는 ‘文化價値와 持續可能한 山林經營’ 分課에서 우리 社會가 當面한 寺刹林의 이 懸案에 對해 절집 現場에서와 같은 問題 提起를 했다. 그러나 學術會議 參加者 大部分은 매우 조심스럽게 反應했다. 基督敎의 傳統이 뿌리 깊은 유럽에서 온 學者들은 勿論이고, 美國이나 南美에서 온 學者들이 提案하거나 助言한 內容도 限定的이었다. 分科 學術會議의 主催者 兼 司會者인 이탈리아 피렌체 大學의 마우로 아그놀레티 敎授는 事案의 敏感性 때문에 이 한 가지 主題만으로도 우리 分科에 配分된 이틀間의 時間을 모두 割愛해도 結論을 導出하기 쉽지 않을 만큼 어려운 主題라고 整理했다. 또 當場 兩者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解法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結論지었다.

    國土가 망가지고, 自然과 生態의 價値가 高陽되면 될수록 査察림에 對한 우리 社會의 期待値는 높아질 수밖에 없을 터이고, 그에 比例해서 宗敎的 文化 價値와 生態 價値 사이의 緊張은 增大될 것이다. 이 分野의 葛藤을 解消할 수 있는 中止를 모을 方法을 찾아야 할 때다.

    이런 무거운 主題에서 조금 벗어나 法住寺 절집 숲을 즐기는 한 方法은 한글 로드를 따라 말티재에서 福泉庵까지 소나무를 巡禮하는 것이다. 소나무를 巡禮할 境遇 숲이 우거져 소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 여름철보다 소나무의 形態가 確實하게 드러나는 落葉 陳 가을이나 겨울철이 좋다. 報恩郡에서 運營하는 말티재의 솔向公園(소나무 展示館)을 먼저 訪問한 後 正二品 소나무를 만나고, 法住寺 寺下村 公園에 一列로 선 멋진 落落長松과 오리 숲 곳곳에 자라는 소나무를 鑑賞하는 順序도 소나무를 즐기는 한 方法이다. 法住寺 수정교 앞의 俗離山事實肌痹(俗離山事實記碑) 周邊 솔숲엔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茂盛하다.

    걸음품을 팔 自身이 있으면 法住寺에서 毘盧峯으로 오르는 숲길 곳곳의 소나무도 鑑賞한다. 貯水池를 지나면 太平校歌 나타나고, 조금만 더 오르면 塔골癌으로 갈라지는 三거리 周邊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鑑賞할 수 있다. 塔골癌 위에 順調 胎室이 있음을 떠올리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茂盛한 理由는 어렵지 않게 斟酌할 수 있다. 福泉庵에서 西向 山麓을 바라보면 氣勢도 堂堂한 소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놓치지 말아야 할 風光이다.

    들머리 숲에서 福泉庵에 이르는 丹楓 숲

    봄철의 절집 巡禮는 南녘에서 始作되지만, 가을철의 절집 巡禮는 南下하는 丹楓을 따라 北녘에서 始作하는 것이 좋다. 우리 山河의 丹楓은 普通 하루에 50m씩 高度를 낮추고, 25㎞씩 南下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9月 下旬 江原道 山間地方에서 始作한 丹楓은 10月 中旬 中部地方을 거쳐 下旬에는 中部 海岸과 南部地方으로 내려온다.

    나의 절집 巡禮도 自然의 運行速度에 맞출 수밖에 없다. 10月 初旬부터 나의 丹楓 行脚은 먼저 江原道 最北端의 乾鳳寺나 百潭寺를 찾는 것으로 始作된다. 10月 中旬에는 月精寺를 찾고, 下旬에는 江華의 傳燈寺, 聞慶의 김룡사와 金泉의 直指使를 次例로 찾는 것이 大體的인 가을 丹楓 巡禮 順序다.

    法住寺의 丹楓은 10月 下旬이 제格이다. 지난해 10月 下旬에 새벽 일찍 혼자서 거닐면서 즐기던 오리 丹楓 숲길의 風光을 잊을 수 없다. 봄철의 新綠이나 闊葉樹에 가려서, 잎이 진 겨울철에야 제 모습을 穩全히 드러내는 들머리 소나무들과는 달리 가을철의 오리 숲길은 色동 丹楓 숲의 別天地로 變해 있었다.

    하나 記憶해야 할 것은 丹楓(어느 自然人들 그렇지 않으랴만)을 찾을 計劃이면 可能한 限 煩雜함을 避하는 것이 上策이라는 事實. 行樂客의 人波를 避할 수 있는 方法은 簡單하다. 새벽 일찍 절집을 찾는 부지런함과 함께, 可能하면 週末을 避하는 것만으로도 오붓하게 절집 숲의 丹楓을 限껏 즐길 수 있다. 人跡이 드문 이른 時間이면 오리 숲길을 천천히 吟味하듯 걷고, 可能하면 오리 숲길을 往復하면서 丹楓 숲의 風光을 가슴에 담아도 좋다. 오르내리는 方向에 따라서 눈에 들어오는 丹楓의 風光이 제各各 다름을 느낄 수만 있으면 이미 相當한 水準의 鑑賞眼을 지닌 自然 愛好家임에 틀림없다. 特히 一柱門 周邊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形形色色으로 變한 丹楓잎들을 한 자리에 서서 方向을 조금씩 바꿔 가면서 鑑賞해보는 것도 한 方法이다.

    절집에서 福泉庵까지 丹楓 숲길을 거니는 方法도 推薦하고 싶다. 한글 創製를 도운 신미대사가 걷던 길을 한글날이 있는 10月에 걷는다는 氣分만으로도 말과 글에 얽힌 歷史와 文化의 意味를 다시금 새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슴에 色동 丹楓 숲이 季節의 불을 지필 것이다. 큰절(法住寺)에서 福泉庵에 이르는 登山路는 어느 절집 숲길과 比較해도 決코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福泉庵은 世祖가 신미대사 等과 함께 3日 동안 祈禱를 하고, 길목의 溪谷(沐浴소)에서 沐浴을 한 德分에 皮膚病이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傳해지는 由緖 깊은 庵子로, 恭愍王의 親筆인 無量壽라는 扁額이 걸려 있다. 庵子 咫尺에 있는 ‘이뭣고다리’ 周邊의 風光은 金剛山 摩訶衍, 智異山 七佛庵과 더불어 舊韓末 3代 船房의 하나로 이름을 얻은 理由를 想像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절집의 菩提樹와 전나무

    법주사 솔숲

    오리 숲길의 一柱門 周邊의 丹楓.

    法住寺 大雄寶殿 앞의 두 그루 피나무(Tilia amurensis)는 달피나무라고도 하며, 漢字로는 菩提樹(菩提樹)로 表記한다. 菩提樹는 釋迦牟尼 부처님의 得道를 지켜본 나무로, 佛子는 누구나 이 나무에 關心과 사랑을 쏟는다. 잎이 印度菩提樹와 닮고, 또 열매로 念珠를 만들기 때문에 佛子들은 普通 피나무를 菩提樹나무라고 부른다. 절집에서는 피나무의 四寸 格인 보리자나무(Tilia miqueliana)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나무의 열매 亦是 念珠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스님들이 中國에서 많이 들여온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큰 키로 자라는 피나무와 달리 ‘菩提樹나무’라고 불리는 灌木이 따로 자라고 있다. 그밖에 常綠性 덩굴나무로 자라는 ‘보리장나무’와 ‘보리밥나무’도 있다. 이들 나무 亦是 모두 念珠에 알맞은 열매를 맺는다.

    法住寺는 彌勒信仰의 度量이다. 彌勒信仰에서 일컫는 彌勒菩薩은 大乘佛敎의 代表的 菩薩 가운데 하나로, 衆生을 救濟할 未來의 부처를 말한다. 彌勒信仰에는 龍華樹(龍華樹)라는 나무가 나오는데, 一名 菩提樹라고도 한다. 大雄寶殿 앞마당의 두 그루 피나무는 따라서 龍華樹라 할 수 있다. 未來의 부처는 龍華樹 앞에서 成佛하기 以前까지는 彌勒菩薩이라 하고, 成佛한 以後는 彌勒佛이라 한다. 彌勒佛은 56億7000萬年이 지나면 娑婆世界에 내려와 花林院 龍華樹 아래에서 성도해 3番의 說法으로 300億의 衆生을 濟度한다는 未來佛(未來佛)을 말한다. 이 3番의 法會를 ‘龍華三會’라고 한다. 解釋하기에 따라서 大雄殿 앞마당에 버티고 있는 피나무 두 그루는 佛敎的 意味를 간직한 살아 있는 自然遺産人 셈이다.

    法住寺가 保有한 數많은 國寶와 寶物 못지않게 나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天王門 앞의 전나무다. 世祖가 찾은 福泉庵 入口에도 두 그루의 전나무가 堂堂하게 서 있다. 幢竿支柱처럼 굳게 하늘로 뻗은 天王門 앞 두 그루 전나무의 意味는 무엇일까.

    법주사 솔숲

    福泉庵 周邊의 숲길.

    전나무 숲을 保有한 月精寺나 來蘇寺와는 別個로 전나무는 이 땅의 수많은 절집에서 가장 흔하게 發見할 수 있는 나무다. 지난 3年間 절집 숲을 巡禮하면서 놓치지 않고 觀察한 것은 절집의 전나무 有無였다. 斷言컨대 歷史가 오래된 절집치고 전나무 없는 절집은 없었다. 서늘하고 추운 곳에 自生하는 寒帶性 隨從人 전나무가 溫和한 南道의 여러 절집에서까지 자라는 理由는 무엇일까. 스님네들이 이들 전나무를 直接 심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절집에 왜 다른 나무보다 전나무를 特別히 많이 심었을까. 왜 절집 곳곳에 무리지어 심거나 또는 三文(三門·一柱門, 天王門, 不二門) 周邊에 마주 보게 두 그루의 전나무를 심었을까?

    절집을 찾을 때마다 전나무에 對한 이런 疑問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스님께 그 緣由를 여쭈었지만, 시원한 答辯을 얻지 못했다. 전나무가 절집에 자리 잡게 된 事緣 中에 이런 저런 冊을 뒤져 얻은 가장 그럴듯한 說明은 唐나라 조주선社의 有名한 話頭 ‘停戰白壽者(庭前柏樹子)’와의 聯關性이었다.

    ‘停戰白壽者’란 先師의 한 弟子가 ‘調査가 西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니라’는 禪問答에서 由來한 故事다. 우리나라에선 看話禪에 얽힌 이 話頭를 說明할 때, 뜰 앞의 잣나무로 解釋하지만, 實際로 ‘柏(百)’은 側柏나무를 나타낸다. 事實 이 禪問答에 對한 解釋은 나무의 種類가 重要한 것이 아니므로 側柏나무 代身 잣나무라 해도 話頭의 意味가 變質되거나 損傷되지 않기에 큰 問題는 없다.

    결론적으로 전나무가 절집에 特히 많은 理由는 看話禪의 話頭로 言及된 側柏나무와 전나무가 外形上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 緣由는 전나무와 側柏나무를 나타내는 漢字의 字典에서 찾을 수 있다. 中國 後漢 때 허신(許愼·30~124년경)은 漢字 9353字를 蒐集해 540部(部)로 分類하고, 六書(六書)에 따라 글字의 模樣을 分析해 ‘說文解字(說文解字)’를 編纂했다. 이 自轉은 전나무가 ‘잎은 소나무, 줄기는 側柏나무를 닮았다’고 풀이한다. 그리고 옛 文獻에는 전나무를 뜻하는 回(檜)가 側柏나무를 뜻하는 백(柏)과 함께 百回(柏檜)로 使用되기도 했다고 한다. 西山大師 休廷이 남긴 옛 詩는 이러한 解釋을 더욱뒷받침하고 있다.

    草堂詠柏(草堂에서 전나무를 읊다)



    月圓不逾望 둥근 달도 보름 넘지 못하고

    日中爲之傾 해도 정오면 스스로 기우네.

    庭前柏樹子 草堂 뜰 앞에 서 있는 전나무

    獨也四時靑 四時四철 저 홀로 푸르구나.

    - 西山大師(休靜)

    법주사 솔숲
    全 瑛 宇

    1951年 慶南 馬山 出生

    高麗大 林學科 卒業

    美國 아이오와 주립대 碩士, 博士

    現 국민대 山林資源學科 敎授

    著書: ‘숲과 韓國文化’ ‘나무와 숲이 있었네’ ‘우리가 正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숲 보기 읽기 담기’ ‘韓國의 名品 소나무’ 外 多數


    結局 전나무는 側柏나무와 비슷한 모습을 간직했기에 예부터 禪 修行을 하던 스님들이 側柏나무 代身에 전나무를 절집에 많이 심은 데서 由來했다는 것이다. 절집마다 조주선社의 話頭로 言及된 側柏나무와 비슷한 전나무를 심어서 곧고 堂堂하게 자라는 전나무의 受刑(樹形)과 嚴冬에도 늘 푸른 常綠性을 통해 參禪 遂行에 臨하는 修行者의 올곧은 隨行 姿勢와 서릿발 같은 持戒(持戒)의 剛直함을 끊임없이 본받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 수많은 절집의 전나무들이 參禪 遂行에 나선 高僧大德의 同伴者였다는 事實을 알게 되면, 절집 숲이 包容하고 있는 萬物이 제各各의 意味를 간직한 生命文化遺産임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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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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