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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工夫하는 老年, 强推합니다” 71歲 김광성 氏가 13年째 大學生인 理由는[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工夫하는 老年, 强推합니다” 71歲 김광성 氏가 13年째 大學生인 理由는[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4月 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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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企業 停年 退職後 13年째 放送通信隊 在學 中
公告 卒業뒤 職場 生活로 人文學에 渴症 키워
現在 法學科 4學年, 來年엔 經濟學科 編入豫定
“이 나이에 工夫는 知識 아닌 智慧 얻는 過程”
‘工夫 德에’ 7年 前 再就業해 只今도 現役
손주 돌보는 아내 代身 料理도 살림도 척척

71歲 김광성 氏는 13年 次 大學生이다. 韓國鑑定院(現 韓國不動産院)에서 32年間 勤務하고 58歲에 停年退職했다. 그 이듬해 韓國방송통신대(방송대) 文化敎養學科 2011學番이 됐다.

4年 뒤 順調롭게 大學 卒業狀을 받았지만 工夫에 對한 渴症은 如前했다. 곧바로 國語國文學科 2學年에 編入했고, 같은 式으로 미디어映像學科를 거쳐 只今은 法學科 4學年에 在學 中이다.

工高를 나와 停年까지 일만 해온 그에게 ‘工夫’는 平生 키워온 渴症이자 언젠가를 위해 아껴둔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70代에도 工夫하는 靑春을 謳歌하는 그를 3日 서울 中區 手票路에 자리한 일터에서 만났다.

공기업 퇴직 후 방송통신대에서 4개 학과를 섭렵 중인 김광성 씨. 방송대에서는 학교 홍보단에 자원해 모델로 활동했고, 공부할 용기와 자신감을 얻기 위해  홀로 전국 도보 대장정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 중구 수표로의 사무실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公企業 退職 後 방송통신대에서 4個 學科를 涉獵 中인 김광성 氏. 방송大에서는 學校 弘報團에 自願해 모델로 活動했고, 工夫할 勇氣와 自信感을 얻기 위해 홀로 全國 徒步 大長程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 中區 手票로의 事務室에서. 신원건 記者 laputa@donga.com

公告 卒業生의 人文學에 對한 渴症
방송大와의 因緣은 이番이 처음은 아니었다. 1971年 한양공고를 卒業한 뒤 軍入隊를 앞둔 그에게 이듬해 서울대 附設 放送通信隊가 開校한다는 消息이 들려왔다. 或是 하는 마음에 志願했지만 落榜했다.

수많은 똑똑한 靑年들이 비싼 登錄金 탓에 大學 進學을 抛棄하던 時節이었다.

“放送대는 예나 只今이나 登錄金이 破格的으로 싸니까요. 當時엔 2年制 初級大學 過程에 5個 科가 開設돼 競爭이 엄청났습니다.”

除隊 뒤 中小企業에서 일하다 다시 大學 門을 두드리기 위해 夜間學院에 다니고 豫備考査까지 본 1979年, 그는 韓國鑑定院 高卒公採에 덜컥 合格했다. 當時 한국감정원은 企業 評價, 卽 工場과 機械設備에 對한 感情 需要가 높아 工高 出身을 많이 뽑았다. 그의 손을 거쳐 간 企業이 約 1萬 個는 된다. 結局 정년퇴직할 때까지 大學 門을 다시 두드릴 機會는 찾지 못했다.

“退職할 즈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남아 있는 많은 時間, 뭘 하고 보낼지가 발등의 불이었어요. 周邊을 둘러봐도 먹고사는 것은 웬만하면 解決되는데, 오히려 그 많은 時間 무엇을 할지가 深刻한 苦悶이 됩니다. 事實 子息 農事 끝나고 나면 큰돈 쓸 일은 別로 없지요. 그때 생각해 낸 게 平生 工夫입니다. 心身의 空白을 메우기 위해서도 工夫를 해야겠다… 家族도 積極 贊成해줬습니다.”

隱退者의 大學 挑戰이 쉽기만 했던 건 아니다.

“내가 果然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지요. 大學에 入學한 첫해부터 틈날 때마다 徒步 大長程에 나섰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自信感을 얻기 위해서였지요.”

全國의 海岸線을 따라 約 1600km를 5年間 時間나는대로 혼자 걸었다. 한 番에 3~4日, 或은 一週日씩. 總 40日 걸렸으니 하루 約 40km를 走破한 셈이다.

“제게 徒步旅行은 遂行過程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한 國道邊을 끝없이 걷거나 조용한 山길을 하염없이 걸었죠. 추적추적 비 오는 거리를 흠뻑 젖어 걷거나 暴炎 아래 手巾 뒤집어쓰고 默默히 걷거나. 걷는다는 意識조차 없이 좀비처럼 걸었습니다.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너덜거렸죠. 나를 비우는 經驗이자 意志와 깨달음을 얻는 過程이었습니다.”

이 徒步旅行 經驗은 그에게 첫 大學 卒業狀을 안겨준 文化敎養學科 卒業論文에 고스란히 담겼다.

도보여행 중에  한컷. 길가에는 눈이 쌓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김 씨는 5년간 전국의 해안을 돈 뒤 한반도를 동서 횡단하기도 했다. 김광성 씨 제공
徒步旅行 中에 한컷. 길가에는 눈이 쌓였던 痕跡이 남아 있다. 金 氏는 5年間 全國의 海岸을 돈 뒤 韓半島를 東西 橫斷하기도 했다. 김광성 氏 提供

“이 나이에 工夫해서 남 주나”
그는 老年의 工夫는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自我를 찾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人生을 위한 工夫라고 强調한다.

무엇보다 現實的인 長點으로 젊어지는 效果를 꼽았다. 그의 表現에 따르면 ‘탈(脫) 꼰대’ 效果다. 새로운 知識을 배우며 젊은 世代와 接觸하다 보면 時代의 潮流를 알고 世上과 좋은 接點을 維持하게 된다는 얘기다.

實際로 그는 放送大 弘報團에 들어가 모델로 活動하기도 했고 스터디나 동아리 活動, 新入生과 多文化 學友들의 멘토 役割 等에 積極 參與하며 뒤늦은 大學 生活을 滿喫했다. 不動産 資産管理 講義나 글쓰기 講座를 열어 才能寄附를 하기도 했다.

방송대 홍보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대학 측의 신입생 모집 포스터에 젊은 동문들과 함께 참여했다. 다른 모델들은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모자이크 처리했다. 방송대 홈페이지
방송대 弘報모델로 活動하던 時節 大學 側의 新入生 募集 포스터에 젊은 同門들과 함께 參與했다. 다른 모델들은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不可避하게 모자이크 處理했다. 방송대 홈페이지
“방송大에서 工夫하는 분들 各自 뭔가 事緣들을 갖고 있지요. 저를 봐서라도 많은 學友들이 새로 工夫를 始作할 勇氣를 내달라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實際로 제가 工夫하는 모습을 보며 방송대에 支援한 제 또래 親舊들도 꽤 있어요.”

방송대 1年 登錄金은 約 75萬 원(工大는 200餘萬 원). 成跡 上位 7%까지는 全額, 20%까지는 半額 奬學金을 授與한다. 그는 單 한 番도 奬學金을 놓친 적이 없다.

“國費가 支援되는 學校에서 너무 많이 누리다 보니 제 平生 처음으로 稅金 내는 게 아깝지 않더군요. 奬學金을 대놓고 받는 게 未安해서 몇 年 前 學校에 發展基金 1000萬 원을 寄附했습니다.”

2020년 1월 방송대 총장실에서 열린 기부금 기탁식 장면. 방송대 홈페이지
2020年 1月 放送大 總長室에서 열린 寄附金 寄託式 場面. 방송대 홈페이지
첫 卒業 論文인 ‘나는 文化敎養을 學習하며 幸福해졌는가’는 學科 優秀論文으로 選定됐다. 이 論文에 따르면, 그에게 幸福은 品格 있는 삶을 위해 知性과 品性을 갖추려고 努力하는 過程이고 文化 敎養에 對해 工夫하는 나는 幸福하다.

“幸福은 結論이 아니고 끊임없이 追求하는 過程입니다. 小小한 幸福, 요즘 말로 ‘小確幸’이所重하죠. 人間은 幸福한 瞬間에 幸福을 認識하는 境遇가 드물어요. 不幸이 닥쳐야 비로소 過去의 작은 幸福을 되돌아보지요. 幸福을 幸福으로 느끼려면 이성의 感受性을 銳敏하게 만들어야 해요. 아는 만큼 幸福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工夫 德에 ‘탈(脫) 꼰대’… 70代에도 職場인 生活
工夫는 工夫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7年 前 다시 常勤職 일자리를 얻었다. 鑑定評價法人의 常任顧問이자 子會社인 不動産仲介法人의 代表를 맡아 9時 出勤, 6時 退勤 生活을 只今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다시 職場을 갖게 된 祕訣도 工夫에 있었다고 主張한다.

“工夫를 繼續하니 世上 돌아가는 것을 알고 따라갈 수 있었지요. 이 나이에도 다른 世代와 交感할 수 있고 새로운 情報化 文物을 잘 驅使할 수 있고요. 제 나이에 컴퓨터 機器 제대로 못 만지는 분들 많잖아요. 就業해서 役割 하기엔 어려운 狀況이지요.”

그는 本來 電子機器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얼리 어댑터’ 系列이라고. 1988年 XT級 컴퓨터를 使用하기 始作했고 漸次 스스로 컴퓨터를 組立해 使用했다. 無線電話, PDA, 스마트폰, 태블릿 等 디지털 尖端 機器가 나오면 맨 먼저 써봐야 直星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그는 지금도 대학생이자 현역 직장인이다. 본래 정보화기기와 친한 편이었던 그는 업무에서 첨단 휴대전화와 태블릿 등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는 데 막힘이 없다. 사무실에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그는 只今도 大學生이자 現役 職場人이다. 本來 情報化機器와 親한 便이었던 그는 業務에서 尖端 携帶電話와 태블릿 等 다양한 裝備를 使用하는 데 막힘이 없다. 事務室에서. 신원건 記者 laputa@donga.com
特히 性 役割이나 家父長的 文化에 對한 視角 矯正은 그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經驗이었다. 여느 家長처럼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는 꼰대 스타일이었지만 料理와 살림을 도맡겠다고 나섰다.

“마침 손주가 태어나 아내는 그 수발드느라 바빠진 탓도 있었지요. 30餘 年間 아내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기만 했는데, 그때부터 해도 다 갚지 못할 것 같더군요. ‘앞으로 밥은 내가 해준다’고 宣言했습니다.”

그래서 女性 同窓들이 男便이 집안일을 안 한다고 푸념하면 그는 “(男便을) 얼른 방송대에 보내라”고 助言한다고.

“工夫를 통해 時代의 潮流를 알고 저 스스로 過去의 잘못된 行動 樣式을 깨닫고 깨우치는 겁니다. 나이 먹으면 知識이 아니라 智慧를 배우는 거예요. 그렇게 배운 삶의 智慧는 바로 現實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어요. 老年의 工夫는 日常을 바꿉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宏壯히 많이 바뀌었어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늦工夫의 苦悶 解決法
只今까지 放送大 弘報團 活動을 두次例 해서인지, 그의 話題는 자주 放送大 弘報로 가곤 한다. 이런 式이다.

“나이 들어 工夫할 때 가장 큰 苦悶이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點에서 나이 든 學生에게 가장 좋은 게 放送大 講義입니다. 오프라인 授業이라면 敎授님 講義를 놓치면 다시는 못 듣죠.

방송대 진학이 평생 가장 잘한 선택이라 말하는 김광성 씨. 다만 본인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방송대 進學이 平生 가장 잘한 選擇이라 말하는 김광성 氏. 다만 本人의 생각을 他人에게 强要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신원건 記者 laputa@donga.com
하지만 저희 學校 講義는 本人이 부지런하다면 언제 어디서건 다시 듣기를 할 수 있어요. 요 작은 携帶電話 하나만 있으면 敎授님을 불러낼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방송대 講義는 한 學期 平均 6科目을 듣는데 科目當 大略 15時間의 講義로 이뤄진다. 單純 計算으로는 한 學期 90時間을 듣는 셈이다. 그는 初期에는 모든 講義를 5番 씩, 요즘도 3番씩은 돌려보며 復習한다고 한다.

“‘工夫하는 老年’은 只今까지 살아오며 제가 해온 여러 選擇 中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他人에게 强要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꼰대죠(웃음). 그냥 저는 그랬다는 거예요.”

午前 3時에 始作하는 健康 生活 習慣
그의 하루는 午前 3時에 始作된다. 2時間 半 동안 工夫하며 料理도 하고 5時 半이면 헬스場에 가서 運動하고 定時에 出勤한다. 來年에 法學科를 卒業하면 經濟學科에 進學하겠다고 한다.

―방송대에 大學院 過程도 있는데, 學歷을 더 높일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 나이에 就業할 것도 아니고 人生을 알기 위해 工夫하는 건데, 굳이 가방끈을 따질 必要가 있겠어요. 저는 넓게, 많이 工夫하는 게 좋습니다.”

時代 變化에 따라 知識은 끊임없이 變하고 낡아간다. 그는 專攻에 따라 8年에서 12年이면 知識半減期를 맞는다며 平生 工夫가 必要하다고 强調했다.

―現役에서는 언제쯤 名實相符하게 隱退하게 됩니까.

“글쎄요…자회사 代表는 3年 任期制인데 最近 세 番째 任期를 始作했어요. 最小限 任期는 채울 것이고 그 以後는 모르겠어요.”

老後를 對備해 公認仲介士, 資産管理師 等의 資格證을 따뒀다. 不動産 關聯 專門家라니 不動産 投資에는 成功했으려니 했지만 夫婦가 19坪 아파트에 살며 不足한 老後 生活費를 위해 月貰 나오는 오피스텔을 마련한 程度라고 했다. 그래도 함께 勤務했던 同僚들 中에는 그가 가장 成功한 케이스라고.

―鑑定評價士라면 不動産 投資로 大박 난 분들이 무척 많을 것 같은데, 意外네요?

“저희끼리도 모이면 그 얘기를 해요. 鑑定評價 專門家는 不動産 投資를 못합니다. 鑑定評價라는 게 物件의 瑕疵를 찾아내는 일이거든요. 뭔가를 보면 短點, 問題點부터 빤히 보이는 거예요. 投資는 꿈이 있어야 하는 거죠. 問題點부터 보이니 선뜻 지를 수가 없어요. 하하.”

다만 그는 老後 必要 資金에 對해 金融界나 미디어가 너무 恐怖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指摘했다.

“살림하며 보니 제 境遇 夫婦 生活費는 月 200萬원 程度면 充分하더군요. 年金에 若干의 追加 收入을 確保하면 되는 거죠. 또 하나, 老後에는 있는 財産에 맞춰 사는 姿勢가 더 重要합니다. 다 살길이 있어요. 4050 時節에 資産을 뻥튀기해두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恐怖感은 造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인터뷰 末尾에 ‘잘사는 것도 重要하지만 잘 죽는 것은 더욱 重要하다’는 레프 톨스토이의 말을 꺼내 놓았다.

“톨스토이의 遺作 箴言集 ‘살아갈 날들을 위한 工夫’에서 제가 얻는 省察은 人間에 對한 깊은 사랑과 靈魂에 對한 믿음, 끝없는 物質的 欲望에서 벗어나 몸을 謙遜하게 낮추어 眞理를 追求함으로써 便安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人生 別거 있나요. 하루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거예요.”

방송대 모델로 활동하던 모습과 50대 현역 시절 사원증 사진 등을 화면에 띄워 보았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방송대 모델로 活動하던 모습과 50代 現役 時節 社員證 寫眞 等을 畵面에 띄워 보았다. 신원건 記者 laputa@donga.com


서영아 記者 sya@donga.com
#工夫하는 老年 #人文學 渴症 #法學科 4學年 #김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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