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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보다 重要했던 것[이은화의 美術時間]〈318〉|東亞日報

家族보다 重要했던 것[이은화의 美術時間]〈318〉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5月 8日 22時 39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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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는 42歲가 되던 해 自身의 家族을 描寫한 ‘藝術家의 家族’(1911年·寫眞)을 그렸다. 처음으로 한 畵面 안에 온 家族을 등장시켰다. 家族들은 絢爛한 인테리어를 한 室內에 함께 있지만, 그다지 즐겁거나 和睦해 보이지는 않는다. 畫家는 왜 이런 모습을 그린 걸까? 그에게 家族은 어떤 意味였을까?

그림 속 背景은 그가 家族과 함께 살던 파리의 아파트다. 바닥에는 華麗한 패턴의 洋탄자가 깔려 있고, 壁暖爐 위 선반에는 꽃甁과 彫刻像이 놓여 있다. 붉은 옷을 입은 두 아들은 체스를 두고 있고, 아내 아멜리는 소파에 앉아 뜨개질 中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女子는 마르그리트다. 아멜리와 結婚 前 사귀던 女性에게서 낳은 딸이다. 이들은 한 空間에 있지만 各自 일에 沒頭할 뿐 서로 어떤 交感도 없다.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甚至於 엄마와 한 아이는 아예 눈을 감고 있다.

事實 마티스는 이 그림을 그릴 무렵 아내와 葛藤을 겪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랑해서 結婚했지만, 現實的인 共生關係였다. 가난한 畫家였던 마티스는 어린 딸을 養育해주고 自身을 뒷바라지해 줄 아내가 必要했고, 아멜리는 帽子 가게를 運營하며 男便의 成功을 위해 熱心히 內助했다. 아내는 뮤즈이자 매니저 役割까지 自處하며 마티스의 經歷에 깊숙이 關與했다. 그러나 마티스는 그런 아내에게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다.

“食口들 생각만 하면 골치가 지끈거린다.” 1911年 5月 26日 마티스가 이 그림을 言及하며 쓴 글이다. 畫家로서 成功하고픈 野望과 家長으로서 家族을 扶養해야 하는 責任感 사이에서의 葛藤을 率直하게 드러냈다. 마티스는 家族을 ‘純全히 視覺的인’ 役割을 하는 室內 裝飾의 附屬物로 表現했다. 그에게 色彩는 韻律과 리듬이 있는 하나의 音樂이었다. 家族마저도 그림의 道具로 여길 程度로 그의 人生에서 가장 重要한 건 늘 藝術이었다.


이은화 美術評論家
#앙리 마티스 #藝術家의 家族 #家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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