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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美術時間]〈55〉노트르담 戴冠式|東亞日報

[이은화의 美術時間]〈55〉노트르담 戴冠式

  • 東亞日報
  • 入力 2019年 4月 1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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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대관식’, 1805∼1807년.
자크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戴冠式’, 1805∼1807年.
프랑스 고딕 建築의 白眉로 손꼽히는 노트르담 大聖堂은 파리의 象徵이자 重要한 國家 行事가 열린 歷史的인 場所다. 그中 1804年 12月 2日에 擧行된 나폴레옹 皇帝의 戴冠式 場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世紀 最高의 畫家이자 宮廷의 首席畫家였던 자크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命令으로 戴冠式의 歷史的인 場面을 畫幅에 記錄했다. 루브르 博物館에서 두 番째로 큰 이 그림은 幅이 거의 10m에 達하는 大作이다. 畵面은 雄壯한 노트르담 大聖堂 안에서 나폴레옹이 夫人 조세핀에게 王冠을 씌우는 場面을 描寫하고 있다. 參席者들이 이 場面을 지켜보고 있고, 皇帝 바로 뒤에 앉은 敎皇 비오 7世는 오른손을 들어 祝福하고 있다.

正말 그랬을까. 勿論 아니다. 畫家의 忠誠心과 皇帝의 傲慢함이 合作해 만든 虛構의 戴冠式 場面이다. 잘 알려진 대로 나폴레옹은 敎皇에게서 王冠을 빼앗아 스스로 머리에 썼다. 다비드는 이 불경스러운 狀況을 直接 目擊했지만 皇帝가 皇后에게 王冠을 씌우는 場面을 그림으로써 곤혹스러운 일은 덮고 華麗한 戴冠式 그 自體만을 浮刻시키는 데 成功했다. 가운데 貴賓席에 앉은 皇帝의 어머니와 왼쪽에 서있는 兄 조제프는 參席하지 않았는데도 登場한다. 當時 中年이던 王妃는 20代 美女로, 矮小했던 皇帝는 健壯한 美男으로 變身했을 뿐 아니라 元來 스케치에서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있던 敎皇은 皇帝의 要求로 오른손을 들어 祝福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비드는 皇帝의 잦은 變德과 要求에 副應하느라 數次例 修正을 거듭한 뒤 꼬박 3年에 걸쳐 그림을 完成했다. 1815年 나폴레옹이 失脚했을 때 畫家는 祖國을 떠나야 했지만 그가 그린 이 歷史의 한 場面과 舞臺는 프랑스의 象徵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856年 歷史의 노트르담은 15日 發生한 火災로 尖塔과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 一部가 불탔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大統領의 表現은 프랑스人들의 慘澹한 心情을 그대로 代辯해 준다.
 
이은화 美術評論家
#자크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戴冠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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