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蹴球로 하나됐던 그때… 韓日和解 첫 단추는 ‘어게인 2002’|東亞日報

蹴球로 하나됐던 그때… 韓日和解 첫 단추는 ‘어게인 2002’

  • 東亞日報
  • 入力 2014年 5月 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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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愛憎의 現場을 찾아/2부: 交流와 理解]
<上> 蹴球場 民族葛藤부터 날려버려야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응원을 펼쳤던 ‘만남KJ클럽’ 회원들. 지난달 일본 도쿄의 재일대한체육회 
사무실에서 다시 만나 양국 국민의 응원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 등을 들고 ‘우정’을 외치고 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2002年 韓日 월드컵 當時 韓國과 日本에서 共同應援을 펼쳤던 ‘만남KJ클럽’ 會員들. 지난달 日本 도쿄의 在日大韓體育會 事務室에서 다시 만나 兩國 國民의 應援 메시지를 담은 懸垂幕 等을 들고 ‘友情’을 외치고 있다. 도쿄=배극인 特派員 bae2150@donga.com
서울과 도쿄(東京)를 오가며 숱한 名勝負를 펼쳤던 韓日 蹴球代表팀 評價戰이 자취를 감춘 지 2年 9個月째다. 2011年 8月 10日 日本 삿포로에서 열린 親善戰이 마지막이다. 이 時點에서 韓日戰을 가져봐야 葛藤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게 兩國 蹴球界의 視角이다.

最近 蹴球競技場은 兩國 民族 感情이 부딪히는 激戰場으로 變했다. 特히 日本 서포터스의 旭日旗 挑發과 ‘JAPANESE ONLY’(日本人 外 謝絶)라는 人種差別的 懸垂幕으로 ‘蹴球競技場이 極右勢力의 解放空間으로 利用된다’는 말이 나오는 實情이다. 2012年 런던 올림픽 때 朴宗雨 選手의 ‘獨島 세리머니’와 지난해 東아시안컵 韓日戰 때 내걸린 ‘歷史를 잊은 民族에게 未來는 없다’는 懸垂幕도 맞불 論難을 일으켰다.

12年 前인 2002年 韓日 월드컵 共同 開催 當時 蹴球는 日本 內 한류 붐을 觸發시킨 觸媒劑였다. 當時에 다져진 交流와 協力은 多樣한 分野로 퍼져 韓日 關係의 ‘黃金期’로 이어졌다. 韓日 關係 專門家들은 來年 韓日 國交正常化 50周年을 앞두고 2002 월드컵 때의 交流와 協力精神을 되새겨 볼 必要가 있다고 말한다.

○ 2002年 日 스포츠紙, ‘아시아의 자랑, 韓國’

지난달 8日 저녁 도쿄 韓國中央會館 9層 在日大韓體育會 事務室. 卷동품 在日大韓體育會 感謝와 조정방 事務局長, 在日僑胞 蹴球 칼럼니스트인 신무광 氏가 情報技術(IT) 業體 經營者인 이와자키 히로시(巖崎浩) 氏, 컴퓨터 會社를 運營하는 이케다 겐이치(池田賢一) 氏, 自營業者인 道理야베 게이코(鳥谷部桂子) 氏 等 40, 50代 日本人들과 컴퓨터 畵面에 띄운 寫眞들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2002年 當時 韓國에서 共同 應援을 벌이던 모습이었다.

“當時 應援席에서 太極旗와 日章旗를 함께 흔들었죠. 그래도 모두가 즐거워하며 拍手를 쳐줬어요. 요즘 雰圍氣에선 想像도 하기 어렵겠죠.”

“韓國이 4强戰에서 獨逸에 0-1로 지자 日本 스포츠專門誌 스포츠豪侈는 ‘아시아의 자랑, 韓國’이라는 題目을 大門짝만 하게 뽑고 韓國을 集中 紹介했어요.”

이들은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韓日 兩國을 應援해 온 共同應援團 ‘만남KJ(Korea·Japan)클럽’ 會員들이다. 이들을 묶어준 契機는 1997年 11月 1日 서울 蠶室主競技場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地域 最終豫選 韓日 間 競技 2次戰이었다. 當時 本選 進出을 이미 確定지은 韓國과 달리 日本은 韓國을 잡아야만 플레이오프를 통해 本選 進出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 日本 國家代表팀 應援團인 ‘울트라 닛폰’(現 蔚트라스) 約 1萬5000名이 競技場을 찾은 가운데 大規模 應援戰이 펼쳐졌다.

이때 韓國의 ‘붉은 惡魔’ 應援席에 ‘Let's go to France together’(프랑스에 같이 가자)라고 英語로 쓰인 懸垂幕이 펼쳐졌다. TV를 통해 懸垂幕을 본 日本 列島는 衝擊에 가까운 感動을 받았다. 道理야베 氏는 “눈물이 나왔다”며 當時를 回想했다.

이날 韓國은 안房에서 0-2로 敗했다. 日本은 이날 勝利의 餘勢를 몰아 이란과의 플레이오프 끝에 史上 처음으로 월드컵 本選 舞臺를 밟았다. 當時 서울에 主宰했던 한 日本人 會社員은 “다음 날 韓國人들이 祝賀한다고 握手를 건네 또 한 番 感動했다”고 말했다.

當時 感動은 1998年 11月 23日 ‘만남KJ클럽’ 結成의 불씨가 됐다. 在日僑胞와 日本人이 中心이 된 가운데 北韓 國籍을 가진 僑胞와 韓國人들까지 會員으로 參與해 2002 월드컵 共同應援을 向해 交流의 幅을 넓혀 나갔다.

蹴球硏究모임 會員이던 오자키 가즈히吐(尾崎和仁) 氏는 2002年 6月 同僚 會員들과 光州 월드컵競技場을 찾았다. 韓國이 스페인을 꺾고 4强 進出을 確定지은 그날 밤 그는 光州의 한 食堂에서 韓國 팬 20餘 名과 어울리며 함께 ‘大∼韓民國’을 외쳤다. 韓國이라면 불고기밖에 몰랐던 그는 그날 以後 每年 韓國 프로蹴球 競技場을 찾고 있다.

日本 內 코리아타운人 신오쿠보의 ‘大使館’이라는 이름의 韓國 飮食店 앞 駐車場도 韓日 交流의 메카였다. 競技 때마다 大型 스크린을 設置해 韓國 留學生과 日本人들이 어울려 共同應援을 펼쳤다. 많을 때는 1000餘 名이 駐車場 一帶를 가득 메웠다. 이 飮食店의 정양호 部長은 “當時 共同應援이 日本 TV에 集中 紹介되면서 신오쿠보가 한류 中心地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 “안타까운 韓日 關係”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당시 태극기와 일장기로 보디페인팅을 한 모델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붉은 악마의 환호 속에 한일 양국의 16강 공동 진출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동아일보DB
2002年 韓日 월드컵 共同開催 當時 太極旗와 日章旗로 보디페인팅을 한 모델들이 서울 光化門에서 붉은 惡魔의 歡呼 속에 韓日 兩國의 16强 共同 進出을 祈願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東亞日報DB
話題가 蹴球에서 最近의 韓日 關係로 넘어가자 이들은 안타깝다는 表情을 지었다. 道理야베 氏는 “2002 월드컵 當時로 돌아가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케다 氏는 “요즘은 韓日 間에 뭘 하려면 惡플이 80%다. 인터넷 輿論과 다른 意見을 말하기 어려운 雰圍氣로 善意를 가진 日本人은 숨어버렸다”고 憂慮했다.

오자키 氏는 ‘JAPANESE ONLY’ 懸垂幕 事件을 深刻하게 받아들였다. “蹴球場에서 내셔널리즘(民族主義)李 發散되는 것은 어떤 面에서 자연스럽다. 하지만 레이시즘(人種差別主義)은 方向性이 다르다”고 批判했다.

그렇지만 兩國 關係가 곧 正常化될 것이라는 期待도 적지 않았다. 조정방 局長은 “요즘 日本에 韓國에 對한 情報가 넘쳐나고 있다. 一種의 結婚狀態에 접어든 셈인데 結婚하면 좋은 面도 나쁜 面도 다 보게 된다. 그래도 서로 모르던 時代보다는 좋아진 것이고 이걸 넘기면 成熟한 關係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은 2018年 平昌 겨울올림픽과 2020年 도쿄 올림픽을 次例로 앞두고 있다. 신무광 氏는 “2002 월드컵 精神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舞臺”라고 期待感을 보였다.

도쿄=배극인 特派員 bae2150@donga.com
#韓日월드컵 #2002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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