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레반 채찍질에도…아프간 ‘蹴球 少女’들은 自由 向해 달렸다|동아일보

탈레반 채찍질에도…아프간 ‘蹴球 少女’들은 自由 向해 달렸다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9月 13日 17時 13分


코멘트

아프가니스탄 女子蹴球 國家代表의 목숨 건 脫出記
탈레반, 女性이 유니폼 입고 築構하면 ‘律法 背反’ 看做
代表팀 選手들, 탈레반 銃彈 被害 空港서 48時間 死鬪

지난해 8月 末 美軍이 아프가니스탄에서 完全히 撤收하던 마지막 48時間 동안 벌어진 일이다. 首都 카불을 掌握한 탈레반을 被害 카불空港으로 몰려든 脫出 人波 中에 아프간 女子蹴球代表 選手들이 있었다. 10代 後半인 이 女子選手들은 탈레반의 主要 標的이었다.

탈레반의 눈에 유니폼 차림으로 蹴球하는 女性은 코란과 律法을 배반한 反動分子였다. 히잡을 쓰고, 긴 소매 商議에 바지를 입더라도 男性이 女性의 몸매를 볼 수 있다는 理由에서였다. 그들은 ‘蹴球 少女’들을 賣春婦라고 불렀다. 家族에 不名譽를 안긴 罪로 處罰해야 한다고 아버지와 男子兄弟들을 劫迫하기도 했다.

아프간 女子蹴球 國家代表팀 主戰 골키퍼이자 代表팀 主張인 파티(19)가 相對 攻擊手의 슛팅을 막아내고 있다. 아프간女子축구팀 트위터

골키퍼인 파티(19)는 女子 蹴球代表팀 主張이다. 파티는 카불空港으로 出發하기 前 집 뒤뜰에 60cm 깊이로 땅을 팠다. 그 안에 國家代表 유니폼 4벌과 골키퍼 掌匣 模樣의 黃金色 트로피 5個를 묻었다. 그女는 구덩이를 파면서 自己 무덤을 파는 듯한 慘澹함이 들었다. 平素에 파티는 트로피를 집어 들며 엄마에게 말하곤 했다.
“이게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들이에요.”

파티네 家族은 아프간에서도 逼迫받는 少數 民族인 하자라族이었다. 탈레반에게 이 種族은 ‘人種 淸掃’ 對象이었다. 파티는 蹴球場에서 唯一하게 자유로웠다. 늘 戰爭 中인 曺國, 女性, 少數民族 같은 足鎖가 그곳엔 없었다. 하지만 탈레반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只今, 나를 살아있게 한 것들의 痕跡을 지우는 게 살 길이었다.

● 유니폼과 트로피를 땅에 묻었다
카불空港은 어떻게든 飛行機를 얻어 타고 故國을 脫出하려는 數萬 名의 群衆들로 가득했다. 탈레반 兵士들은 하늘로 繼續 銃을 쏘아댔다. 出國 게이트로 몰려드는 사람들에겐 채찍으로 내리쳤다. 곳곳에 火藥 냄새와 땀 냄새가 振動했다.

지난해 8월 말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하자 시민들은 무작정 카불공항으로 몰려들었다. 필사적인 탈출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남성이 신생아를 철조망 너머 미군에게 건네고 있다. 트위터
지난해 8月 末 탈레반이 아프간 首都 카불을 掌握하자 市民들은 無作定 카불空港으로 몰려들었다. 必死的인 脫出 行列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男性이 新生兒를 鐵條網 너머 美軍에게 건네고 있다. 트위터

파티는 1次 接線知人 空港 밖 注油所 앞에서 女子蹴球 代表팀 選手들에게 餘卷을 나눠줬다. 며칠 前 女子蹴球協會 事務室에 있던 選手 名簿, 얼굴 寫眞 等 탈레반이 찾을 수 있는 證據들을 모두 불태우면서 與圈만은 챙겨 놨다. 殺害 威脅 탓에 아프간에선 競技를 못하고 印度, 우즈베키스탄 等을 떠돌며 競技를 해왔기 때문에 選手들에겐 旅券이 있었다. 파티는 自己를 둘러싼 選手 10餘 名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約束 하자. 우리 中 한 名이라도 脫出에 成功하면 그 사람이 남은 사람들을 꼭 求해주기.”

파티의 팔뚝에는 電話番號가 하나 적혀있었다. 携帶電話를 盜難當하거나 押收당할 境遇에 對備해 적어둔 것이었다. 3年 前까지 아프간 女子蹴球 國家代表팀 코치였던 카터의 番號였다. 當時 카터는 美國 텍사스에 살고 있었다. 海兵隊 女軍 將校 出身인 그는 이라크戰 派兵 經歷이 있었다. 이 때 經驗을 살려 아프간 內 美軍과 情報를 共有하며 選手들을 軍用機에 태우려 했다.

카터에게 함께 救出作戰을 펴자고 說得한 사람이 있었다. 前 아프간 女子蹴球代表팀 主張 포팔이다. 2007年 女子代表팀 創團 멤버인 포팔은 攻擊手로 猛活躍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殺害 威脅에 시달리다 2011年 덴마크로 移住했다. 그女는 아프간의 後輩 選手들을 求해달라며 美國, 濠洲 政府와 人權團體에 도움을 請했다.

카터와 포팔은 파티에게 어디로 움직일지 電話와 채팅 앱으로 實時間 指示를 했다. 파티는 選手들 中 거의 唯一하게 英語를 할 줄 알았다.

數百 名의 사람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國際空港 밖에 모여 있다. AP뉴시스
● 탈레반 兵士가 나에게 걸어왔다
“北쪽 게이트로 가. 사람이 나와 있을 거야.”

카터는 파티에게 暗號와 祕密番號 말하면 들여보내 줄 거라고 했다. 暗號는 第2次 世界大戰 當時 海兵 英雄인 존 바실론, 祕密番號는 海兵隊 創設一人 1775年 11月 10日에 特殊文字를 結合한 것이었다.

北쪽 게이트 앞에는 마침 美軍 兵士가 서 있었다. 파티는 그에게 다가가 카터가 일러준 暗號와 메시지를 여러 番 말했다. 하지만 兵士는 疑訝하다는 表情을 지었다. “너희들 누구야? 무슨 國家代表?” 그는 美國 旅券이 있는 사람만 통과시킨다는 말을 反復했다. 이 場面을 近處의 탈레반 兵士들이 有心히 노려보고 있었다.

파티가 狀況을 알리려 카터와 포팔에게 多急히 메시지를 보냈다. 그 때 파티는 바로 옆에서 巨大한 銃聲을 들었다. 瞬間 귀와 눈이 멍해졌다. 날카로운 悲鳴 소리가 稀微하게 들려왔다. 파티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발길질에 쓰러졌다. 空港에 함께 왔던 파티의 오빠(23)가 急히 달려왔다. 오빠는 몸으로 발길질을 막아내며 生水桶을 꺼내 失神한 동생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精神을 차린 파티는 答狀을 確認하려 携帶電話부터 살폈다.

‘너무 唐慌하지 마. 南쪽 게이트 濠洲 軍人들한테 狀況을 알릴게.’(카터)

‘抛棄해선 안 돼. 繼續 싸우면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포팔)

파티와 選手들은 南쪽 게이트로 方向을 바꿨다. 그곳까지는 탈레반 兵士들이 지키는 檢問所 두 곳을 通過해야 했다. 첫 番째 檢問所 앞은 빽빽한 人波로 한 걸음 내딛기 것조차 어려웠다. 서로를 주스 쥐어짜듯 밀치며 切迫하게 나아갔다. 6, 7살쯤 보이는 少女들이 어른들 틈에 짓눌려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밀지 마세요. 저희도 살고 싶어요.” 파티는 4살 막내 女同生이 떠올랐다. 그女는 소리쳤다. “어린 애들이잖아요. 숨 좀 쉬게 해주세요.” 오빠는 少女 中 한 名을 들어올려 어깨에 태웠다.

옴짝달싹 못하는 群衆들을 相對로 탈레반은 電氣 채찍을 휘둘렀다. 一部 選手들은 團톡房에 “너무 아파. 더 異常 못 가겠어”라고 올렸다. 女子國家代表 先輩인 포팔이 團톡房에 連이어 메시지를 올렸다.

‘챔피언스리그 決勝戰인 것처럼 움직여.’

‘레드카드만 받지 말고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팔꿈치를 使用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뚫고 가야 돼.’

파티와 選手들은 가까스로 두 番째 檢問所 앞에 닿았다. 車輛과 人波가 數百m 줄지어 있었다. 經費는 더욱 森嚴했다. 銃을 든 탈레반 兵士들이 한 名 씩 身元을 確認하고 있었다. 그 때 群衆 틈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저기 봐요. 女子 蹴球選手예요!”

한 탈레반 兵士가 파티에게 銃을 겨누며 다가왔다. 怯에 질린 그女 앞으로 群衆 數百 名이 에워싸듯 몰려들었다. 兵士는 銃口를 그들에게 돌렸지만 瞬息間에 밀려드는 人波에 휩쓸려 넘어졌다. 파티는 無條件 앞으로 내달렸다. 흙먼지 속에 짓밟힌 채 피범벅이 된 탈레반 兵士의 앳된 얼굴이 어깨 너머로 보였다. 다른 탈레반 兵士들은 群衆들을 向해 銃을 쏘기 始作했다.

파티가 切親인 同僚 選手와 함께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고 있다. 아프간女子축구팀 트위터


● “넌 나처럼 奴隸로 살면 안 돼”
代表팀 主戰 골키퍼인 파티는 競技 中 날아오는 공을 다이빙해서 막아 내거나, 相對便 쪽으로 공을 뻥 차올려 抛物線으로 날아갈 때 痛快함을 느꼈다. 周邊의 執拗한 反對와 威脅에도 파티의 엄마만큼은 蹴球選手인 딸은 支持했다. 엄마는 學校에 다닌 적이 없고 13歲에 結婚해 5男妹를 낳았다. 엄마는 파티에게 “너는 나처럼 되면 안 된다. 집안의 奴隸가 되지 말고, 부엌 너머의 삶을 찾아가라”고 자주 말했다.

파티와 同僚 選手들은 ‘너희들을 죽여서 蹴球 골대에 매달겠다’는 威脅을 隨時로 받았다. 極端主義者들에게 拉致되거나 集團 毆打를 當한 選手들도 있다. 그럼에도 蹴球를 向한 熱望을 繼續 타올랐다. 그들은 수많은 숨죽인 女性들의 希望이었다.

파티는 탈레반의 銃알을 避해 艱辛히 두 番째 檢問所를 通過했다. 이제 南쪽 게이트가 눈앞에 있었다. 同僚들의 安全을 確認하려 뒤를 돌아보니 10餘m 앞에 오빠가 넘어져 있었다. 탈레반 兵士가 小銃 개머리板으로 오빠의 머리와 어깨를 내리치고 있었다. 땅바닥에 고꾸라진 오빠는 고개를 쳐들며 부르짖었다.

“빨리 가, 어서 도망가, 넌 잡히면 안 돼”.

파티는 온몸이 痲痹되는 듯 했다. 空港에 함께 왔던 파티의 家族들은 48時間 동안 脫出을 위해 死鬪를 벌이는 사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空港 앞에서 4살 女同生을 가슴에 끌어 앉은 채 탈레반의 電氣 채찍을 맞고 주저앉았다. 10代인 두 동생은 空港 어딘가에서 사라져 行方을 알 수 없었다. 平素에 파티가 蹴球를 繼續 할 수 있도록 ‘보디가드’ 役割을 해줬던 오빠마저 눈앞에 무너졌다.

아프간 女子蹴球代表 選手들이 蹴球 練習을 한 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鬪志를 다지고 있다. 아프간女子축구팀 트위터

파티는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느꼈다. 代表팀 同僚인 親한 親舊였다. 그女는 파티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同僚 選手들의 눈길이 모두 파티를 向해 있었다. 머리와 옷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이 10代 女性들은 시커멓게 된 손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파티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돌처럼 단단해져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主張이다.’

南쪽 게이트 앞에는 濠洲 軍人들이 있었다. 選手들은 與圈을 흔들며 '國家代表 選手’ ‘蹴球’ 같은 英語 單語를 미친 듯이 외쳤다. 軍人들은 오라고 손짓을 보냈지만 中間에 있던 탈레반 兵士들이 또 다시 막아섰다. 파티와 選手들 10餘 名은 서로 팔짱을 꽉 끼어 '人間 사슬'을 만들었다. 하도 꽉 끼어서 兩팔에 찌릿찌릿 電氣가 통하는 듯 했다. 한 몸이 된 채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選手들을 向해 탈레반은 차마 銃을 쏘지 못했다.

軍 輸送機(C-130) 안은 下水溝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코가 시큼했다. 搭乘者 中 一部는 空港 下水溝를 통해 게이트에 接近한 뒤 탈레반의 銃彈과 채찍질을 뚫고 飛行機에 올랐다. 飛行機가 離陸하자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機內를 가득 채웠다. 貨物칸 구석에 同僚 選手들과 앉아있던 파티 亦是 이제 아프간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잘 가, 나의 國家代表 유니폼과 트로피들. 이제 땅속에서 安全할거야. 나의 어린 時節도 안녕.’

美軍 輸送機에 자리 잡은 사람들. 搭乘人員이 受容限度를 넘어서는 640名에 達했다. AP뉴시스
● 濠洲에서 보낸 힘겨웠던 1年


아프간 女子 蹴球代表 選手들은 두바이 等을 거쳐 지난해 9月 初 濠洲에 到着했다. 死地에서 脫出하는 데는 成功했지만 낯선 나라에 定着하기 위해 힘겨운 鬪爭이 1年 째 이어지고 있다.

파티는 카불空港에서 잃어버린 初等生人 두 동생을 두바이空港에서 劇的으로 相逢했다. 기쁨도 暫時, 동생들을 學校에 보내고 生計를 책임져야 하는 家長의 役割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티는 다른 家族들을 아프간에 두고 왔다는 罪責感에서도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동생들은 脫出 몇 時間 뒤 카불空港에서 自殺 爆彈테러가 벌어져 自身들을 下水溝 밖으로 꺼내준 美軍 兵士를 包含해 130名이 犧牲됐다는 消息에 큰 衝擊을 받았다.

아프간 女子選手들은 蹴球 때문에 故鄕에서 도망쳐 와야 했지만 蹴球는 그들을 자유롭고 安全한 곳으로 이끌었다. 파티와 選手들은 濠洲 멜버른의 한 女子 프로축구팀에 所屬돼 다시 蹴球를 始作했다.

이들의 유니폼 뒷面에는 이름 없이 등番號만 있었다. 選手들 身元이 알려지면 아프간의 家族들이 報復을 當할 수 있어서다. 파티는 유니폼 뒤에 조그맣게 재봉된 아프간 國旗를 發見했을 때 손으로 國旗를 매만지며 故國을 代表한다는 것의 자랑스러움을 새삼 떠올렸다.

파티는 亡命 中인 選手團을 國家代表로 認定하지 않는 國際蹴球聯盟(FIFA)을 相對로 아프간 國家代表팀으로 認定해달라는 鬪爭도 始作했다.

아프간 脫出 8個月 만인 올 4月 濠洲에서 한 女子프로팀과 첫 競技를 치른 아프간 女子代表팀 選手들. 골을 넣고 기뻐했지만 곧 오프사이드 判定이 나 無效가 됐다. 競技는 0對0으로 비겼다. 아프간女子축구팀 트위터

파티는 濠洲 言論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蹴球를 하면서 제가 사람이라는 것을, 제게도 權利가 있다는 것을, 저에게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蹴球는 絶對 抛棄 못해요. 蹴球를 통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고 싶어요.”

아프간을 떠난 지 8個月 만인 4月 末, 選手들은 한 女子 프로팀과 처음으로 競技를 치렀다. 0對0 無勝負였다. 아프간 팀이 한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에 걸려 無效가 된 것을 選手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아프간 女性들은 元來 蹴球 할 運命이 아니어서 팀이 형편없다’는 惡評을 하도 많이 들어서 選手들은 한 番의 勝利가 늘 懇切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파티는 選手들에게 말했다.

“우리 슬픈 얼굴 하지 말자. 여기 이렇게 살아서 공을 차고 있잖아.”


신광영 記者 neo@donga.com
#아프간 #女子蹴球 #脫出 #人權 #탈레반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