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株價 造作 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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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株價 造作 事件 1999年 에 設立된 投資諮問會社 BBK 가 옵셔널벤처스 社의 株價를 造作한 事件이다. 株價造作 事件 自體보다도, 株價造作 事件에 한나라黨 第17代 大選 候補 李明博 이 介入되었는지 與否가 더 큰 論難이 되었다. 김경준 李明博 이 BBK의 實際 所有主이며 自身도 株價造作의 被害者라고 主張했고, 李明博은 自身도 김경준에게 詐欺를 當했다고 主張했다.

이와 關聯, 노무현 政府 에서 國精院 을 통한 民間인 不法 査察을 敢行하면서까지 이명박과 그 周邊人들에 對한 뒷調査를 하였으나, 이명박과 BBK의 聯關性을 찾지 못하였다. [1] [2] [3] 이 事件을 搜査한 檢察과 特檢 亦是 김경준만 起訴하고 李明博은 無嫌疑 處分하였다. [4] 그러나 以後에도 株價造作에 利用된 資金의 實所有主 論難이 繼續 提起되었다.

事件 槪要 [ 編輯 ]

1999年 김경준을 代表로 ‘BBK’라는 投資諮問會社가 設立되었다. BBK는 資本金이 5,000萬 원에 不過해 投資諮問會社의 登錄 資格 要件을 充足하지 못했지만, 김경준이 30億 원의 投資를 誘致함으로써 營業을 始作하고 다른 企業의 投資 諮問을 誘致할 수 있게 된다. 이 30億 원의 出處가 누구인지에 對해 論難이 많았다. [5]

以後 BBK는 國內 中堅企業들로부터 數百億 원에 이르는 投資를 誘致했다. 李明博의 兄 異常은 과 妻男 김재정 이 大株主로 있는 (週) 다스 의 190億 원을 비롯, 삼성생명에서 100億 원, 심텍에서 50億 원 等 總 600億 원에 이르는 投資를 받았다. [6] [7]

한便, BBK의 代表인 김경준은 2000年 2月 이명박과 함께 LKe뱅크라는 사이버 綜合金融會社를 設立하였다. 여기에는 이명박과 김경준이 各各 30億 원씩 投資하고, 둘이서 共同代表를 맡았다. [8] 當時 김경준은 BBK를 運營하는 中이었는데, LKe뱅크를 紹介하는 冊子에는 "LKe뱅크는 이뱅크 證券 仲介株式會社, BBK와 姊妹會社"라고 되어있다. LKe뱅크는 BBK가 運用하던 MAF펀드에 1250萬달러 (150億원)을 投資하는 等, BBK와 密接한 關係에 있었다. [7] [9]

2001年 3月 金融監督院 調査에서 김경준이 LKe뱅크에 投資한 30億 원이 BBK의 會社資金人 것으로 드러났고 投資者에게 各種 胃·變造 펀드 運用 報告書를 提供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때문에 BBK의 登錄이 取消되었다. 李明博 側은 이 일로 因해 김경준을 信賴할 수 없게 되었고, 4月 18日에 李明博이 이미 LKe뱅크 代表職을 辭任했다고 主張했다. [10] [11] 그런데, 김경준 亦是 4月 18日에 LKe뱅크 理事職을 辭任했다.

BBK 및 LKe뱅크가 光州 銀行으로부터 뉴비전벤처캐피탈을 引受해 옵셔널벤처스코리아로 改名하고, 그 引受 過程에 證券去來法 違反이 있었다는 것이 檢察이 發表한 內容이다.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가 海外投資를 誘致할 것이라는 所聞을 냄으로써 옵셔널벤처스의 株價를 造作했고, 이를 통해 數百億 원의 不當 利得을 챙겼고,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의 資金 384億 원을 橫領해 僞造 旅券을 利用해 美國으로 逃走했다는 說이 있으나, 이는 客觀的인 事實(또는 檢察 起訴 內容)과 背馳된다.

옵셔널벤처스코리아 株式을 株式 市場을 통해 買入한 海外投資者中 英國領 버진아일랜드 에 籍을 둔 MAF펀드가 있다. MAF펀드의 株主는 LKe뱅크였고, 李明博은 LKe뱅크의 共同代表였고, 또 LKe뱅크 亦是 옵셔널벤처스코리아 株式을 株式市場에서 買入했기 때문에, 李明博이 LKe뱅크 및 MAF펀드를 통해 證券去來法 違反에 寄與를 했을 可能性이 提起되었다. [7]

李明博은 2004年 自身이 LKe뱅크에 投資한 30億원을 損害 봤다며 김경준을 相對로 美國 法院에 訴訟을 提起했다. [12]

李明博이 BBK 株價造作에 關與했다는 主張은 2007年 한나라당 大統領 競選을 앞두고 박근혜 候補 側이 처음 하였다. 그 內容은 "BBK의 實所有主는 李明博이며 ㈜다스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도 李明博의 借名財産"이라는 것이다. [13] [14] 열린우리당 박영선 議員도 그해 6月 國會 對政府質問에서 이명박 候補의 株價造作 連累說을 追加로 提起하였다. 윤증현 當時 金融監督委員長 은 "自體 調査 結果 李 候補의 株價造作 嫌疑가 없다"고 밝혔지만 當時 박근혜 競選 候補 側과 野黨은 攻勢를 멈추지 않았다.

BBK 事件으로 主要 投資者는 勿論이고 많은 少額 投資者들이 被害를 입었다고는 하나, 法廷에서 確認된 事實은 없다.

事件의 進行 [ 編輯 ]

김경준과 李明博의 만남 [ 編輯 ]

1996年 , 總選 에서 李明博은 國會議員에 當選되었지만, 곧 自身의 祕書官인 김유찬 이 李明博의 不法 選擧資金에 對해 暴露해 裁判을 받게 되었다. 李明博은 裁判을 받던 途中, 1998年 2月 21日 에 國會議員職을 辭退하고 美國으로 出國한다. 그 때 知人이었던 에리카 金 (美國 辯護士)을 통해 男동생 김경준 乙 알게 되었다고 言論에 報道되었으나, 全혀 事實이 아니다. 김경준은 그 當時 日本에서 勤務하고 있었고 李明博을 그 當時 만난 事實이 없다. 李明博은 2000年 1月에 김경준을 처음 만났다고 主張하고 있는 反面, 김경준 1999年 秒에 李明博을 처음 만났다고 主張했다 [ 出處 必要 ] .

BBK, LKe뱅크, e뱅크의 設立 [ 編輯 ]

1999年 4月, 김경준은 BBK 投資諮問(週)을 資本金 5千萬 원으로 設立했다.

1999年 9月, 김경준의 同僚인 홍종국이 在職하던 e캐피털이 30億 원으로 BBK의 持分 99%(60萬 株)를 사들였다.(30억 원은 金監院으로부터 投資 諮問業 認可받을 때 必要한 最小 資本金)

1999年 11月 16日 BBK 金監院으로부터 投資 諮問業 認可를 받았다.

2000年 2月 18日 이명박과 김경준은 50:50의 比率로 LKe뱅크를 設立했다. [7]

2000年 10月 李明博은 e뱅크證券仲介의 設立을 申請하고, BBK의 社長 김경준을 迎入했다. [15] [16]

2001年 2月 2日 이명박과 김경준을 共同代表로 EBK證券仲介가 設立되었다.

옵셔널벤처스 引受 및 BBK 登錄 取消 [ 編輯 ]

2001年 4月 8日, EBK證券仲介는 事業을 自進撤回했다.

2001年 4月 27日, 김경준 (美國人)李 같은 해 2月 26日 引受한 옵셔널벤처스(舊 狂銀創投)의 代表로 就任했다. 이 會社의 株價는 30% 程度의 株式이 株式市場에서 買入되는 過程 동안 急騰했다.

2001年 4月 28日, 金監院은 運營專門人力 不足, 會社資金 流用 (會社資金 流用이란 LKe뱅크 設立時 出資된 金額中 30億 원이 BBK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等의 理由로 BBK의 認可를 取消한다.

2001年 12月 김경준이 本國人 美國으로 돌아간다. 김경준이 僞造 旅券을 利用해 出國했다는 言論 報道가 있으나, [12] [17] 이는 事實이 아니다.

投資企業들의 投資 回收 [ 編輯 ]

2001年 1月 三星生命이 投資金 返還을 BBK에 要求하였다.

2001年 3月 三星生命은 投資收益 23億원을 包含한 123億 원을 BBK로부터 돌려받았다. 심텍度 50億 원 中 20億 원을 돌려받았다.

2001年 10月 26日 다스는 投資金額 190億원 中 39億 원을 돌려받았다.

2001年 11月, BBK에 50億원을 맡겼던 심텍 이 30餘億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서울地方檢察廳에 이명박과 김경준을 告訴하고, 法院은 李明博의 財産을 假押留했다. 以後 30億 원을 돌려받은 後 告訴를 取下했다.

2001年 12月 4日 다스는 投資殘額 190億원 中 50億 원만을 돌려받고 나머지 140億 원은 돌려받지 못했다고 主張하였다.

2003年 5月 30日 다스는 美國 法院에 投資金 返還訴訟을 提起하였다.

2004年 2月 李明博이 美國 法院에 投資金 返還訴訟을 提起하였다.

김경준의 橫領 [ 編輯 ]

2001年 4月,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의 代表로 就任했다. [18] 그리고 2001年 12月 380億 원의 會社 資金을 橫領한 後 그 中 220億 원을 BBK 投資者들에게 돌려주고 美國으로 되돌아갔다. [19] 2008年 10月 3日 美 抗訴法院은 聯邦檢察과 다스 (代父氣孔), 옵셔널 벤처스 等이 提起한 김경준 家族 財産沒收 解除 判決 抗訴審에서 지난해 3月 캘리포니아 聯邦地法이 내렸던 沒收 解除措置를 再確認했다. 이날 判決에서 聯邦 抗訴審은 "김경준 等에 對한 詐欺嫌疑의 犯罪 構成要件이 充分하지 않다 - 無罪"라고 밝혔다.

關聯 企業 [ 編輯 ]

다스 [ 編輯 ]

BBK 投資者들 中 가장 큰 投資者는 다스 이다. 當時 다스는 李明博의 妻男 김재정 과 李明博의 兄 異常은 이 다스 持分의 90퍼센트 以上을 所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스를 통해 李明博이 BBK에 影響力을 行使했다는 主張이 끊임없이 提起되었다. [20]

옵셔널벤처스 [ 編輯 ]

BBK 等은 創業投資會社인 옵셔널벤처스를 引受했다. 마치 外國人들이 옵셔널벤처스에 投資하는 것처럼 속임으로써 개미投資者들에게 옵셔널벤처스가 대단한 價値가 있는 것처럼 弘報하고 이를 통해 株價를 造作했다고 言論은 根據 없이 報道 했으나, 옵셔널벤처스이 外國人들이 投資했다고 弘報한 事實이 없다.

MAF펀드, AMPappas 等 各種 幽靈會社 [ 編輯 ]

BBK 事件에는 多數의 幽靈會社들이 登場하지만 事件의 흐름에는 幽靈會社들이 重要한 役割을 차지하지 않는다. [21] BBK는 MAF펀드의 轉換社債(CB)를 運用했는데, 여기에 李明博·김경준이 共同代表로 있던 LKe뱅크가 1250萬 달러(藥 150億 원)를 投資했다. 그런데, MAF펀드가 김경준이 代表로 있던 옵셔널 벤처스의 株價造作에 利用되었기 때문에, 結果的으로 옵셔널벤처스의 株價造作에 對한 責任이 LKe뱅크와 그 代表인 李明博에게도 있다는 主張이 提起되었다. [7]

10月 25日 國會 政務委 所屬 서혜석 議員은 "MAF와 美國 素材의 '짝퉁 종이會社'인 AM파파스 等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不法 돈洗濯이 이뤄졌으며, 李 候補는 돈洗濯에 動員된 MAF의 會長이자 實際 所有主로서 돈洗濯 過程에 `共犯'으로 緊密하게 連繫된 것으로 推定"했다. [22]

이에 對해 한나라당은 “김경준이 LKe뱅크의 會社印鑑을 盜用해 株價造作 및 資金去來를 했다"고 主張했다. 한나라黨 朴亨埈 代辯人은 이명박 候補가 MAF 펀드 加入에는 關與했지만, MAF를 支配한 것은 아니라고 解明했다. [23]

爭點 [ 編輯 ]

DAS와 BBK의 實際 所有主 [ 編輯 ]

李明博은 自身은 BBK라는 會社와 아무런 關聯이 없다고 主張한 反面, 김경준은 李明博이 實際 所有主라고 主張했다.

2000年 當時 李明博이 스스로 인터뷰에서 自身이 BBK(옵셔널 벤처스)를 創業했다고 말한 것이 中央日報, 동아일보 等에 報道되었다. [24] [25] 또한, 2000年 10月 17日 廣韻大學校에서 열린 特講에서 李明博이 "제가 인터넷金融會社를 設立中이고, 이를 위해 今年(2000年) 1月 달에 BBK라는 投資諮問會社를 設立하고, 이제 그 投資諮問會社가 必要한 業務를 위해 사이버金融會社를 設立하고 있다. 며칠 前 政府에서 인터넷證券會社 豫備許可가 났다"고 말하는 動映像이 2007年 大選 直前 公開되기도 하였다. [26]

김경준은 李明博이 實際 所有主였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證據로 裏面契約書를 公開했다. 週刊東亞는 2007年 6月 李明博이 BBK의 議決權을 行使한다는 內容이 包含된 BBK 定款을 公開했다. [20] 李明博은 이 書類들이 僞造라고 主張하였다. 서울중앙지검 特殊1部(部長 최재경 )는 搜査를 통해 裏面契約書 作成 時點이 元本 종이의 材質과 글꼴 分析, 圖章 使用 經緯를 綜合한 結果 契約書에 적힌 날짜보다 1~2年 뒤라는 文書鑑定 結果가 나온 것으로 보고 李明博의 主張에 손을 들어주었다.

李明博의 介入 範圍 [ 編輯 ]

2007年에는 이명박과 김경준의 共同名義로 되어있는 MAF펀드의 弘報 브로셔가 公開되어 李明博의 介入 範圍에 對한 論難이 일었다. 하지만 朴亨埈 한나라당 代辯人은 “李明博이 金伯駿을 說得해 LKe뱅크 資本金을 MAF펀드에 加入시킨 것 뿐”이고, “MAF펀드는 김경준이 單獨으로 運用”했으며 “李明博은 全혀 모르고 있다”고 主張했다. [27]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의 橫領金을 빼돌릴 때 送金을 擔當했던 이진영은 元來 李明博의 祕書였고, 以後 事件이 끝난 다음에 다시 李明博의 祕書로 復歸한다. [28]

이명박과 김경준의 만난 時點 [ 編輯 ]

1999年 4月 BBK 設立 當時 李明博이 BBK 設立에 關與했는지 與否를 놓고 이명박과 김경준이 처음 만난 時點이 1999年 4月 以前이었는지 以後였는지가 論難이 되었다. 김경준 側은 1999年 初에 이미 두 사람이 만났다고 主張하였다.

이에 反해 2007年 11月 21日 까지 한나라당은 이명박 候補가 國會議員職을 辭退하고 美國으로 간 以後 1999年 12月 末까지 韓國에 온 적이 없다고 主張했다. [29] 그러나, 匿名의 네티즌이 李明博이 1999年 10月 5日에 高麗大 經營大學院에서 特講을 했음을 밝혔다. [30] 또한, 2007年 11月 22日 , 에리카 김이 인터뷰 프로그램 손석희의 視線集中 에서 1999年 2月 或은 3月에 韓國에서 이명박과 김경준이 만났으며, 出入國 記錄을 통해 確認할 수 있을거라고 主張하자 한나라黨 洪準杓 議員은 "李 候補가 1999年 너덧次例 韓國을 왔다간 것이 맞고 1999年 2月 20日 부터 3月 20日 까지 한 달間 滯留했다"고 是認하였다. [31] 그러나, 이때 김경준을 만나지는 않았다고 主張하였다.

2007年 11月 21日 , 한나라당은 두 사람이 2000年에 처음 만났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證據로 메모와 便紙를 公開했다. 고승덕 辯護士는 "事業提案을 이명박 候補가 아닌 김경준氏가 먼저 主導했음을 立證하는 메모"라고 主張하였으며, 이미 事業 파트너 關係였다면 이 便紙를 보냈을 理由가 없었을 것이라고 主張하였다. 또한, 이 便紙는 當時 事務室을 같이 使用하지 않았고 電話도 쉽게 할 수 없는 사이였음을 보여준다고 主張하였다. 하지만, 이 便紙가 오히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는 걸 뒷받침하고 있다는 主張도 提起하였다. [32]

이명박과 김경준의 訣別 時點 [ 編輯 ]

李明博은 김경준을 信賴할 수 없다고 判斷하고 2001年 4月 18日 訣別, 自身은 LKe뱅크 代表理事職을 辭任했다고 主張했다. [33] 하지만 이장춘 外務部 臺詞가 李明博이 김경준과 訣別했다고 主張하는 時點으로부터 한참 지난 2001年 5月 30日 에 李明博으로부터 받았다는 名銜에는 李明博이 BBK, LKe뱅크, 그리고 e뱅크 所屬으로 表記되어 있었다. [10] [11] 그리고 2001年 5月에 김경준에 依해 作成된 e뱅크 코리아 淸算文書에는 如前히 李明博이 登場하고, 李明博의 側近인 金伯駿이 加筆한 痕跡도 發見되었다. [34] 또한 民主統合黨 鄭鳳柱 議員은 2001年 7月 新도리코와 多聲健康이 LKe뱅크를 相對로 發行한 稅金計算書에 如前히 代表가 李明博으로 記載되었다는 點을 公開했다. [33]

問題 提起에 對한 告發 [ 編輯 ]

한겨레의 김경준 인터뷰 記事에 對한 李明博의 告訴 [ 編輯 ]

2007年 8月 17日 , 한겨레 는 1面에서 <"BBK 等 3곳 100% 李明博 會社">, 4面에서 <'李明博 - 김경준 祕密契約書' 實體 確認땐 '大選 爆發力'> 等을 報道했다. 2007年 8月, 李明博 은 한겨레가 '李明博이 BBK의 實際 所有主'라는 김경준 의 인터뷰를 報道한 것에 對해 '名譽를 毁損당했다'며 한겨레를 相對로 50億 원의 損害賠償 請求訴訟을 提起했다. 李明博은 50億 원의 慰藉料 中 5000萬 원을 于先 請求하는 損害賠償 訴訟을 提起했다. 2009年 2月, 서울中央地法 은 "被告가 3000萬 원을 賠償하라"라고 原告 一部 勝訴 判決을 내렸다. 2010年 5月 1日 , 한겨레는 '2007年 8月 BBK의 實所有主가 이명박 當時 大統領 候補'라는 인터뷰를 報道한 것에 對해 1面에서 遺憾을 표했다. 한겨레는 "當時 이명박 候補의 反論과 함께 김경준 氏의 主張이 虛僞일 可能性도 있다는 說明을 덧붙였으나 記事 全體의 脈絡 等에 비춰 金氏가 提示한 疑惑이 眞實일 蓋然性이 크다는 印象을 주었다. 그러나 報道 以後 金氏는 檢察에 依해 한글이면계약서를 僞造해 BBK의 實所有主가 李 候補라는 虛僞事實을 퍼뜨린 嫌疑 等으로 起訴돼 大法院에서 有罪確定 判決을 받았다. 檢察 搜査와 裁判을 통해 金氏가 인터뷰에서 밝힌 主張이 事實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에 이를 알려드린다. 이 報道와 關聯해 結果的으로 原告에게 被害를 준 事實에 對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35] [36]

示唆IN의 김경준 自筆메모 記事에 對한 檢事들의 告訴 [ 編輯 ]

2007年 12月, 示唆IN 은 김경준의 自筆 메모를 根據로, "金氏가 調査 過程에서 搜査 檢事로부터 '이명박 한나라당 (當時) 候補에게 有利한 陳述을 하면 求刑量을 3年으로 맞춰주겠다'는 趣旨의 懷柔를 받았다고 主張했다"라고 報道했다. 이에 2007年 大選 무렵 `BBK 事件'을 搜査했던 檢事들은 時事IN을 相對로, "시사IN이 金氏의 主張을 一方的으로 紹介하며 疑惑을 提起함으로써 自身들의 名譽가 毁損됐다"며 6億 원의 損害賠償 請求訴訟을 提起했다. 1審은 "該當 記事로 인해 檢事들의 名譽가 毁損됐다"며 責任을 一部 認定해 3千 600萬 원을 賠償하도록 原告 一部 勝訴 判決을 내렸다. 2011年 4月 21日 , 서울高等法院 은 이 損害賠償 請求訴訟에 對해 "報道된 金氏 自筆의 메모紙나 녹음테이프 等이 事後 造作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 點 等에 비춰볼 때, 技士의 虛僞性이 認定되지 않는다"라고 밝히며 原告 敗訴 判決을 내렸다. [37] [38]

김경준 辯護人團의 記者會見에 對한 檢事들의 告訴 [ 編輯 ]

2007年 大選 當時 BBK株價操作 事件과 關聯해, 김경준의 辯護人團은 김경준을 接見한 後 記者會見을 열고, "檢察이 이명박 한나라당 候補에게 有利한 陳述을 하면 求刑을 3年으로 낮춰주겠다고 金氏를 懷柔했다"라고 主張했다. 이에 2007年 大選 무렵 `BBK 事件'을 搜査했던 檢事들은, "檢察의 懷柔·脅迫이 있었다는 虛僞事實 流布로 名譽가 毁損됐다. 辯護人團이 單 한 次例의 事實確認 없이 金氏의 一方的인 陳述만 듣고 虛僞事實을 流布했다. 公職者로서의 自矜心과 社會的 名譽, 人格權 等이 顯著히 毁損됐다"라고 主張하며, 김경준의 辯護人團을 相對로 5億5000萬 원의 損害賠償 請求訴訟을 提起했다. 1審은 3050萬 원을 賠償하도록 原告 一部 勝訴 判決을 내렸고, 抗訴審은 原告 敗訴 判決을 내렸다. 2011年 4月 26日 , 抗訴審 裁判部는 "辯護人團이 金氏 自筆 메모 以外 家族, 親知와의 通話 錄取 等을 통해 같은 趣旨로 말한 것을 確認한 뒤 記者會見을 연 만큼 根據없는 行爲로 볼 수 없다. 發表 形式도 金氏의 말을 옮겼을 뿐, 個人 判斷이나 最終 結論을 性急하게 發表하지 않았으므로 惡意的이거나 輕率한 攻擊이라고 보기 어렵다. 메모 等이 客觀的 事實인지 明白하지 않더라도 金氏를 代辯하는 辯護人이 어느 程度 根據를 가지고 搜査過程에 疑問과 批判을 提起한 以上, 公職者에 對한 名譽毁損으로 볼 수 없다"라고 判斷했다. [39]

鄭鳳柱의 記者會見에 對한 檢事들의 告訴 [ 編輯 ]

2007年 12月, 大統合民主新黨 所屬의 國會議員 鄭鳳柱 는 記者會見 等을 통해, "檢察이 BBK가 이명박 候補의 것이라는 金氏의 自筆 메모를 搜査過程에 漏落했다. 짜맞추기식 不實 修辭다"라고 批判했다. 이에 2007年 大選 무렵 `BBK 事件'을 搜査했던 檢事들은 鄭鳳柱를 相對로 2億 8000萬 원의 損害賠償 請求訴訟을 한便 虛僞事實을 流布한 嫌疑(公職選擧法 違反 等)로 起訴하였다. 損害賠償 請求에 對해서는 1審은 1600萬 원을 賠償하도록 原告 一部 勝訴 判決을 내렸고, 抗訴審은 原告 敗訴 判決을 내렸다. 2011年 4月 26日 , 抗訴審 裁判部는 "國會議員으로서 檢察 搜査 結果를 監視·批判하는 것은 正當한 業務 活動이다. 金氏의 메모 等 어느 程度 根據를 가지고 疑問을 提起했던 만큼 顯著히 相當性을 잃은 것으로 評價되지 않는다"라고 判斷했다. [39] 그러나 公職選擧法 違反 및 虛僞事實 流布 等의 嫌疑에 對하여서는 1審 및 抗訴審에서 懲役 1年의 實刑이 宣告되었다. [40] [41] [42] 2011年 12月 22日 , 大法院 2部(主審 이상훈 大法官)는 鄭鳳柱에게 懲役 1年 實刑을 宣告한 原審을 確定하였으며 이로 因해, 鄭鳳柱는 [公職選擧法]第18條(選擧權이 없는자) 및 第19條(被選擧權이 없는자)에 依據 10年間 被選擧權을 박탈당했다. [43]

김경준의 歸國과 事件 搜査 [ 編輯 ]

2007年 10月 11日 영남일보 文化放送 100分 討論에서, 이명박 當時 한나라당 大統領 候補는 當時 美國에서 裁判 中인 김경준의 大韓民國 送還을 希望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바로 前날, 李明博의 美國內 訴訟을 맡고 있던 側近 金伯駿이 送還 延期申請을 했고, 이 延期申請은 美國 法廷에서 棄却되었다. 10月 19日 이명박 候補는 金伯駿을 通해 다시 김경준 韓國 送還 延期 申請을 美國 法院에 提出했다. [44]

美國 法院에서의 演技申請과는 別途로, 大選을 앞둔 2007年 10月 이명박 當時 한나라당 候補는 駐韓 美國 大使를 만나 ‘BBK 株價造作 事件’으로 美國에서 服役 中이던 김경준氏의 韓國 送還을 미뤄달라고 要請했다. 當時 한나라당 共同選對委員長이던 유종하 前 外務長官은 2007年 10月25日 알렉산더 버시바우 駐韓大使를 만나 關聯 論議를 했다. 그는 大選 前 김경준이 韓國으로 돌아올 境遇 政治的 衝擊이 ‘暴發的’일 것이라면서 “美國은 韓國의 內政에 干涉하지 않는 게 賢明하다”고 버시바우 大使를 說得했다. [45]

2007年 11月 16日 , 김경준은 美國에서 韓國 搜査當局에 引繼되어 韓國으로 入國했으며, 18日에 拘束되었다.

한便, 이 事件을 擔當한 서울地方檢察廳 特殊1部의 최재경 部長檢査가 한나라黨 최구식 議員의 四寸동생이라는 事實이 알려져 搜査의 中立性에 對한 疑問이 提起되었다. [46]

노무현 政府의 不法 査察 [ 編輯 ]

노무현 政府 에서는 國精院 까지 動員해 李明博의 周邊 人物들에 對한 大規模 不法査察을 하였지만, 이명박과 BBK의 關聯性을 찾지 못하였다. [1] [2] [3] 노무현 政府 時節 國精院의 不法 民間人 査察과 關聯해, 檢察은 搜査 着手 2年만인 2009年 國精院 5級 職員 高 某氏 한名을 起訴했고, 法院은 2年 가까운 裁判 끝에 懲役 1年, 執行猶豫 2年을 宣告하였다. [3] 判決文에서는 高 氏가 上部의 指示로 2006年 下半期에 이명박 候補와 周邊人物 131名의 不動産 保有現況과 所得內譯 等 560件의 情報를 不法 蒐集한 事實이 有罪로 認定되었다. [2] [3]

檢察 搜査 結果 [ 編輯 ]

大韓民國 檢察(서울地檢 特殊1部, 최재경 部長檢事)은 BBK 關聯 李明博 의 嫌疑가 모두 無嫌疑라고 發表하였다. [47] 朝鮮日報 設問調査에서 大韓民國 國民의 50% 가까이가 檢察 搜査를 信賴하지 못한 채, 政治權의 攻防은 繼續되었다.

2007年 12月 7日 , 김경준의 辯護士 오재원은 김경준의 嫌疑를 否認하는 記者會見을 가졌다. 檢察은 이에 對해 再反駁했다. [48]

2011年 3月, 김경준의 누나 에리카金이 歸國하여 "李明博이 BBK와 關聯있다"는 自身의 말이 잘못된 것이라고 陳述을 飜覆함과 同時에 檢察은 에리카金에 對해 不起訴 處分을 내렸다. 이에 對해 言論들은 檢察과 에리카金 사이에 에리카金이 陳述을 飜覆하는 代價로 檢察이 에리카金을 起訴하지 않는 것과 같은 去來가 있었을 수 있다는 可能性을 提起했다. [49]

特檢 搜査 結果 [ 編輯 ]

2008年 2月 21日 , 特檢팀(特別檢事 鄭鎬瑛 )은 李明博 에게 BBK 株價 造作과 關聯된 嫌疑가 全혀 없다고 發表했다. [50] 特別檢事팀은 BBK의 經營權 引受, 有償增資, 株價造作 等에 使用된 預金計座의 引出權者는 김경준과 에리카金임을 確認하였으며, 動映像과 名銜은 李明博이 株價造作 및 法人資金 橫領에 關與했다는 證據가 되지 못한다고 發表하였다.

같이 보기 [ 編輯 ]

關聯 書籍 [ 編輯 ]

  • 金於俊. 《닥치고 政治》. 푸른숲. 2011年 10月 10日. ISBN   978-89-7184-868-5
  • 안원구. 《잃어버린 퍼즐》. 초이스北. 2012年 9月 5日. ISBN   9788996914730
  • 김경준. 《BBK의 背信》. 非비케이북스. 2012年 10月 8日. ISBN   978-89-969546-1-3
  • 메리 리. 《이명박과 에리카 金을 말한다》. 眞實. 2013年 10月 16日. ISBN   9788996958192

各州 [ 編輯 ]

  1. “盧武鉉,’이명박 BBK 갖고 죽이기 힘들다’…특검무효론” . 《CNB뉴스》. 2008年 1月 8日. 2017年 10月 6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7年 10月 5日에 確認함 .  
  2. " 李明博 大統領 周邊人物 131名 情報 蒐集 " . 《 MBC 뉴스 》. 2011年 4月 26日.  
  3. “國精院, '無差別 뒷調査'‥親姻戚,査頓 八寸까지” . 《 MBC 뉴스데스크 》. 2011年 4月 26日.  
  4. 大統領의 幸福 每日新聞, 2013年 2月 25日
  5. “미디어오늘 모바일웹” . 2014年 3月 2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4年 3月 22日에 確認함 .  
  6. 서동욱 記者 (2007年 11月 16日). “大選 마지막 雷管 'BBK 事件' 本質은” . 머니투데이. 2014年 3月 2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1年 12月 21日에 確認함 .  
  7. 엄상현 記者 (2007年 11月 20日). “(COVER STORY ①|5年 追跡 記者의 ‘BBK 疑惑’ 總整理) CB(轉換社債) 200億·橫領 180億원 어디로 사라졌나: 荒唐한 會社 다스· 두 次例 株價造作…事件 캘수록 ‘疑惑 눈덩이’” . 週刊東亞. 2014年 3月 2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1年 8月 2日에 確認함 .  
  8. 特別取材팀 (2007年 10月 8日). “BBK 實所有主 糾明 ‘大選 雷管’ 터지나” . 한겨레.  
  9. 안성용 記者 (2007年 10月 23日). “朴映宣 "LKe뱅크 마프펀드 投資 理事會 議決 거쳐":'김경준이 이명박 候補 몰래했다' 한나라당 主張 反駁” . 노컷뉴스.  
  10. 그러나 이명박의 오랜 知人인 이장춘 前 外交通商部 大使는 '조갑제닷컴'에 올린 寄稿에서 2001年 5月에도 李明博 本人이 直接 '인터넷 時代여서 인터넷 金融業을 한다'고 紹介하면서 BBK/LKe뱅크 代表理事 李明博이라 적힌 名銜을 주었다고 밝혔다. 김성욱 (2007年 11月 22日). " 이명박氏는 나에게 BBK名銜을 直接 주었다 " . 조갑제닷컴 . 2014年 3月 2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7年 11月 22日에 確認함 .  
  11. 구본권 記者 (2007年 11月 22日). “이장춘 全大赦 “이명박 候補가 ‘BBK名銜’ 直接 줘”” . 한겨레.  
  12. “BBK事件이란” . 韓國日報. 2007年 6月 6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3. 최상연 記者 (2007年 6月 7日). “李明博·朴槿惠 陳永 'BBK攻防' 加熱” . 中央日報.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4. 민일성 記者 (2011年 12月 20日). “‘박근혜 映像’ 急擴散…“鄭鳳柱 有罪面 朴도 拘束해야”” . Newsface. 2012年 6月 6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1年 12月 21日에 確認함 .  
  15. 홍찬선, 김승련 記者 (2000年 10月 15日). “李明博 "사이버金融에 勝負 걸겠다"” . 東亞日報.  
  16. 민왕기 記者 (2007年 12月 10日). " BBK는 LKe, E뱅크와 3角逐" "道谷땅 借名 李明博땅 맞다"/ 記者들, BBK 인터뷰 內容 事實이다” . 韓國記者協會. 2008年 5月 13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1年 8月 2日에 確認함 .  
  17. 조용철 記者 (2007年 11月 16日). “‘김경준 國內送還’ BBK 株價造作 事件이란?” . 파이낸셜뉴스.  
  18. 최상연 記者 (2008年 2月 21日). ' BBK 事件' 關聯 日誌” . 中央日報.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9. 特別取材팀 (2007年 11月 23日). “(에리카金 單獨 인터뷰) “李 候補가 김경준에 狂銀創投 引受 指示”” . 한겨레.  
  20. 엄상현 記者 (2007年 11月 20日). “(COVER STORY ①|5年 追跡 記者의 ‘BBK 疑惑’ 總整理) 다스 投資金 190億 ‘眞實과 거짓 사이’: BBK 事件 5大 疑惑과 解明 … 金氏 送還 後 關聯資料 내놓아야 實體 糾明” . 週刊東亞. 2014年 3月 2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1年 12月 20日에 確認함 .  
  21. 金於俊, 닥치고 政治, 2011
  22. "李明博 돈洗濯 關與", 韓國日報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3. “한나라 “마프펀드 加入 承認만 했을뿐” 이명박候補는 “마프 들어본 적도 없다”” . 한겨레 . 2007年 10月 26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4. 이정환, 조현호 記者 (2007年 12月 6日). “李明博의 거짓말, 言論은 왜 沈默하나:"자회사 BBK" 紹介하던 言論 인터뷰… 檢察·言論 檢證 不在” . 미디어오늘. 2004年 10月 15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7年 11月 22日에 確認함 .  
  25. 朴亨埈 記者 (2007年 10月 9日). “李明博이 告訴해야 할 言論은 中央·동아” . 오마이뉴스. 2004年 10月 15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7年 11月 22日에 確認함 .  
  26. 이태희 記者 (2007年 12月 16日). “(單獨) “李明博, ‘BBK 내가 設立’ 광운대特講 映像 公開”” . 한겨레.  
  27. 김동현 記者 (2007年 10月 25日). “新黨 "李明博-김경준, MAF펀드 함께 弘報 " . 뷰스앤뉴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8. 김태규 記者 (2007年 11月 7日). “橫領金 들어간 ‘LKe뱅크 計座’ 김경준 逮捕 뒤도 누군가 去來”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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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한나라 "李明博 99年 3月 韓國滯留 事實” . 머니투데이 . 2007年 11月 22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32. “이명박과 김경준, 만난 지 한달만에 會社 設立?” . 오마이뉴스. 2007年 11月 21日. 2007年 11月 23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7年 11月 22日에 確認함 .  
  33. 안성용 記者 (2007年 12月 3日). “鄭鳳柱 "김경준과 訣別 以後도 稅金計算書에는 李明博 代表 " .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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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김종화. 한겨레 'BBK 報道' 遺憾 表明 . 한겨레新聞. 2010年 5月 1日.
  36. 이청원. <한겨레> MB, ‘BBK 實所有主 虛僞事實 報道’ 遺憾 表明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폴리뉴스. 2010年 5月 2日.
  37. 임수정. "搜査팀이 김경준 懷柔' 虛僞報道 아니다"(종합) .聯合뉴스.2011年4月21日.
  38. 時事人編輯局. 김경준 '檢察 懷柔 脅迫' 疑惑 報道, '名譽 毁損 責任 없다' 判決 Archived 2011年 11月 23日 - 웨이백 머신 .時事人.2011年4月22日.
  39. 박유영. BBK搜査팀 '名譽毁損' 損賠 抗訴審 모두 敗訴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뉴시스.2011年4月26日.
  40. 聯合뉴스 (2008年 6月 17日). “‘BBK 狙擊手’ 정봉주 前 議員 懲役 1年 實刑” . 한겨레.  
  41. 박현철 記者 (2008年 12月 11日). “‘BBK 疑惑 提起’ 정봉주 前議員 抗訴審 懲役1年” . 한겨레.  
  42. 박영웅 記者 (2011年 12月 19日). “나꼼수 鄭鳳柱 大法院上告審 政治生命 決判 ‘來年 總選 豫備候補 登錄했는데..’” . 뉴스엔.  
  43. 韓國經濟 (2011年 12月 22日). “`나꼼수` 정봉주 前 議員, `懲役 1年` 實刑 確定” . 韓國經濟. 2016年 3月 4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1年 12月 22日에 確認함 .  
  44. 特別取材팀 (2007年 10月 22日). “李明博쪽 또 김경준氏 送還 延期申請” . 한겨레.  
  45. “BBK 김경준 送還 미뤄달라” 이명박 候補 側 美國에 要請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京鄕新聞 2011年 9月
  46. “李明博·최병렬·최구식·최재경은 어떤사이?” . 프리존뉴스 . 2007年 7月 12日.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47. "李明博 株價造作 無嫌疑... BBK 裏面契約書는 僞造"
  48. “BBK 搜査發表→反駁→再反駁 ‘공’은 法院으로” . 파이낸셜뉴스. 2007年 12月 7日.  
  49. 에리카 金 事件이 남긴 疑問들 中央日報 2011年 3月
  50. “BBK…다스…上岩DMC…"李當選者 모두 無嫌疑 " . 朝鮮日報. 2008年 2月 22日.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