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共同開發區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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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鑛區

韓日共同開發區域 (韓日共同開發區域, 英語 : South Korea-Japan Joint Development Zone, JDZ )은 大韓民國 日本 共同開發 海域으로 濟州道 南쪽과 규슈 西쪽 사이의 海域의 大陸棚 을 말한다. 大韓民國 에서는 흔히 7鑛區 또는 第7鑛區 라고 부른다. 이 海域에는 石油와 가스 埋藏量이 黑海 遺傳과 맞먹는 72億톤에 達할 것으로 推定되고 있다. [1] 한便, 中華人民共和國 은 大韓民國과 日本이 이 區域을 共同開發하는 것을 認定하지 않고 있다. [2]

한ㆍ日 大陸棚 協定 [ 編輯 ]

該當 地域은 地理的으로는 日本에 더 가깝지만 當時 大陸棚延長論이 優勢했던 國際情勢에 立脚하여 1970年 5月 韓國이 먼저 7鑛區를 開發해 領有權 宣布를 하였으나, 日本의 反對에 부딪혔으며 當時 探査技術과 資本이 없었던 朴正熙 政府 는 1974年 日本과 이곳을 共同으로 開發하자는 韓日大陸棚協定 을 맺었다. 協定에 따르면 이 地域의 探査 또는 開發과 關聯하여 한ㆍ日 兩國이 共同開發한다는 것이다. 卽, 어느 한쪽이라도 資源探査 및 採取에 對해 同意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協定은 1978年 發效되었고, 50年間 有效함에 따라 2028年 滿了된다.

1999年 國際聯合 大陸棚限界委員會(UN CLCS)에서는 隣接國 間 領土紛爭 解決을 위한 基準案 마련을 위해 關聯國 51個國에 10年 時限 안에 自國의 大陸棚 管轄을 主張할 수 있는 正式報告書를 提出할 것을 要求했다. 이는 國際海洋法에서 沿岸國으로부터 200海里까지 排他的 權利를 認定하면서, 例外的으로 陸地로부터 바다쪽으로 이어진 地層構造가 200海里 以後까지 自然的으로 같은 模樣을 이루고 있을 境遇 大陸棚 限界를 最大 350海里까지 設定할 수 있어 沿岸國 間 紛爭의 素地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日本과 中國은 2009年 各各 數百쪽의 '大陸棚報告書'를 UN에 提出했으나, 韓國 政府는 100餘 쪽分量의 正式文書를 만들어 놓고도 8쪽의 豫備報告書만 提出하였다. 豫備報告書 提出以後, 2012年 12月 26日 大韓民國은 大陸棚 正式報告書를 國際聯合 大陸棚限界委員會(UN CLCS)에 提出하였다. 한ㆍ日大陸棚協定이 滿了되기 前에 對策을 마련해 놓지 못하면 2028年 以後, 國際海洋法에 따라 7鑛區의 大部分은 日本側에 넘어갈 可能性이 크다.

2022年 尹錫悅 政府 出帆以後, 韓日頂上會談과 韓美頂上會談에서 韓日共同開發區域 內容을 言及해야 한다는 記事가 나오고 있다. 日本을 相對로 經濟的인 名分보다 中國 膨脹 沮止를 위한 安保 同盟 次元의 接近이 必要하다고 助言한다. [3]

試錐內譯 [ 編輯 ]

年度 試錐公明 試錐審도 結果 參與會社
1980年 5月 JDZ5-1 3,375m 油가스徵候 텍사코 20%,日本石油 50%,셰브론 20%,락희 10%
1980年 7月 JDZ7-1 4,486m 가스徵候 코암(Korean American Oil Company)50%-日本石油 50%
1981年 10月 JDZ7-2 4,190m 가스徵候 코암 50%-日本石油 50%
1984年 5月 JDZ5-2 3,203m 失敗 텍사코 20%,日本石油 50%, 셰브론 20%,락희 10%
1985年 5月 2日,18日 JDZ7-3,Nkkan8-Ⅸ 3,248~4,258m 失敗 코암 50%-日本石油 50%
1986年 JDZ5-3 3,221m 失敗 日本石油 50, 유개공 45, 京仁 5

協定締結以後 1986年까지 7個 探査試錐를 했으며, 이中 3個 試錐孔에서 少量이지만 石油와 가스가 發見되기도 했다. [4]

文化 [ 編輯 ]

1970年代 大韓民國은 1973年 石油 危機 等의 어려움을 겪었다. 7鑛區에 石油가 埋藏돼 있을 거라는 消息은 大韓民國이 中東 水準의 産油國이 될지도 모른다는 希望을 주었다. 歌手 정난이 의 노래 〈第7鑛區〉(1978)는 ‘숨어 있는 검은 眞珠’에 對해 노래하고 있고, 히트曲이 되었다.

2011年 映畫 《 7鑛區 》는 1980年代 7鑛區의 石油 試錐船을 舞臺로 하고 있다.

年表 [ 編輯 ]

  • 1970年 6月: 朴正熙 當時 大統領이 濟州島 南쪽과 日本 규슈 西쪽에 位置한 이 곳을 大韓民國의 大陸棚이라고 宣言했다.
  • 1974年 1月 30日 : 大韓民國과 日本 兩國은 韓日大陸棚協定 을 맺어 7鑛區 8萬餘km 2 의 海域에 對해 韓日共同開發區域(JDZ)으로 設定했다.
  • 1978年 6月 22日 : 韓日大陸棚協定 이 發效되었다. 7鑛區의 鑛物 資源은 韓日 兩國이 共同으로 開發해야 하며 鑛物 探査 및 採取와 關聯해 한쪽 政府의 要請이 있으면 兩國이 問題를 協議해야 한다고 規定하고 있다.
  • 1986年: 韓日 共同開發區域(JDZ) 協定 履行機構人 韓日 共同委員會가 마지막으로 開催되었다. 그 以後 2012年까지 追加로 委員會가 開催된 적이 없다.
  • 2002年: 韓日 共同으로 物理探査 및 分析을 하였다. 韓國石油公社 (KNOC)와 日本石油工團(JNOC)李 共同으로 作業했다. [5]
  • 2006年 3月 7日 : 中華人民共和國은 베이징 에서 열린 東中國海 가스田 開發과 關聯한 實務會議에서 日本에 7鑛區를 중일이 共同開發하자고 提案했다. 이러한 消息에 對해 大韓民國 政府 關係者는 不快感을 나타냈다. [6]
  • 2006年 5月 26日 : 物理探査 結果에 對해 韓國側은 經濟性이 있다고 본 反面에 日本側은 經濟性이 없다고 判斷했다. 日本은 이때부터 共同開發에 否定的인 態度를 取했다. 韓國 政府 關係者는 "共同開發區域 東南쪽 中國側 海上 鑛區의 가스 埋藏量이 10億t 以上으로 推定되는 點을 勘案하면 7鑛區 埋藏量은 3600萬t을 훨씬 웃돌 수도 있다" 말했다. 韓國의 年間 가스 輸入量은 2200萬t이다. [7]
  • 2008年 4月 21日 : 李明博 大統領이 訪日하여 후쿠다 야스오 日本 總理와의 頂上會談에서 韓日 共同開發區域 石油, 가스 開發을 檢討했다. [8]
  • 2008年 8月 21日 :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이재훈 知識經濟部 2次官 主宰로 第1次 海底鑛物資源開發 審議委員會가 열렸다. 한국석유공사는 日本이 消極的인 JDZ를 法律檢討下에 單獨探査를 申請할 것이라고 報告했다. 이러한 報告에 對해, 審議委員會는 韓日 兩國 어느 나라도 單獨探査는 不可能하다면서 再檢討를 勸告했다.
  • 2009年 5月 12日 : 大韓民國 政府 는 200해리가 넘는 東中國海 大韓民國 大陸棚 境界에 關한 豫備 情報를 《國際 聯合 大陸棚限界委員會》(CLCS)에 提出했다. [9]
  • 2011年: 하지원 主演의 블록버스터 映畫 7鑛區 가 2011年 8月 4日에 開封됐다.
  • 2012年 12月 26日 : 豫備報告書를 提出했던 3年 뒤, 大韓民國 政府의 外交部는 國際 聯合 大陸棚限界委員會(CLCS)에 正式 報告書를 提出하였다. [10]
  • 2020年 3月: 그동안 日本과의 共同開發條約에 발이 묶여 放置돼 있던 7鑛區 開發을 韓國 政府가 34年 만에 再推進하는 것으로 確認됐다. [11]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최인한 特派員 (2005年 10月 2日). “日 "東中國海 가스田 共同 開發하자" ‥ 中國에 첫 提議” . 《韓國經濟》.  
  2. 이동현 記者 (2008年 5月 16日). “疏外 當한 MB政府 資源外交” . 《釜山日報》.  
  3. 최인준 記者 (2023年 2月 12日). “9000兆‘7鑛區 油田’獨食 노리는 日本… 우리에겐 時間이 없다.” . 《朝鮮日報》.  
  4. 김태완 記者 (2023年 4月 17日). “[爭點] 韓日 大陸棚 第7鑛區 運命은… 政治權 “對策 세워야 " . 《월간조선》.  
  5. “한.日 大陸棚 共同探査 나선다” . 《韓國經濟》. 2002年 8月 2日.  
  6. 박용채 特派員 (2006年 3月 8日). “中, 韓日共同大陸棚 넘보나” . 《京鄕新聞》.  
  7. 박준동 記者 (2006年 5月 26日). “政府, 한.日大陸棚 共同試錐 提案” . 《韓國經濟》.  
  8. 장창민 記者 (2008年 4月 14日). " 韓ㆍ日 大陸棚 石油 共同開發" ‥ 李大統領 訪日때 論議할 듯” . 《韓國經濟》.  
  9. 利用人 記者 (2009年 5月 12日). ““오키나와 海溝까지 韓國 大陸棚” …政府 ‘豫備 情報’ 유엔에 提出” . 《한겨레》.  
  10. 강병철 記者 (2012年 12月 27日). “中이어 우리나라도 文書提出..불붙는 大陸棚 三國志” . 《聯合뉴스》.  
  11. 홍사훈 記者 (2020年 3月 20日). “‘第7鑛區’ 34年 만에 再推進…韓國의 마지막 勝負手” . 《KBS》.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