池運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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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運永
池雲英
前 大韓帝國 忠淸北道 中原郡 태수
(前 大韓帝國 忠淸北道 中原郡 太守)
任期 1908年 12月 1日 ~ 1910年 8月 29日
君主 純宗 이척
攝政 소네 아라스케
데라우치 마사打케
야마가타 이사부로
데라우치 마사打케

이름
別名 兒名(兒名)은 池運永
雅號(雅號)는 설봉(雪峰), 白蓮(白蓮)
身上情報
出生日 1852年
出生地 朝鮮 漢城府
死亡日 1935年 6月 6日 (84歲)
死亡地 일제강점기의 기 日帝强占期 忠淸北道 忠州
國籍 대한제국 大韓帝國
經歷 忠淸北道 忠州 설봉寫眞館 館長
正當 守舊派 後裔 殘存 勢力
父母 지익룡(簿)
兄弟姊妹 지석영 (아우)
親姻戚 지성주(조카)
지紅창(조카孫子)
지재선(親戚 族弟)
지청천 (親戚 조카)
宗敎 儒敎 ( 性理學 )

池運永 (池雲英, 兒名(兒名)은 池運永, 1852年 ~ 1935年 6月 6日)은 大韓帝國 朝鮮 王朝 末期의 是認 , 書藝家 , 書畫家, 寫眞家 이다.

生涯 [ 編輯 ]

本貫은 忠州 (忠州)이고 號는 설봉(雪峰), 白蓮(白蓮)이며 漢城府 出生이다. 醫師 한글 學者 지석영 (池錫永)의 兄이고 獨立運動家 政治가 지청천 (池靑天)의 7寸 叔父이며 獨立運動家 兼 政治가 지달수 (池達洙)의 三從弔賻(三從祖父)이다.

日本 에서 寫眞術을 배워 와서 1883年 무렵 漢城府 에 寫眞館을 開業하고 營業했다. 池運永은 開業과 童詩人 1884年 3月16日, 高宗의 御眞(御眞)을 撮影한 사람으로도 有名하다. [1]

김옥균 (金玉均)을 暗殺하려다 失敗하였으며, [2] 그의 寫眞館은 甲申政變 때 特異한 모습과 構造 때문에 日本人의 집으로 誤認되어 群衆이 破壞하였다.

庚戌國恥 以後에 書畫와 書藝에 專念했다. 그와 親分이 있던 윤치호 의 記錄에 依하면, 1920年代의 그는 스스로 西山大師 의 還生이라 믿었으며 뱃속에 "甇마구리"와 "網마구리"라는 女子鬼神이 들어살고 있다고 믿었다. [3]

1935年 6月 6日 가회동 20番地 自宅에서 宿患으로 死亡하였다. 永訣式은 覺皇寺 에서 擧行하였다. [4]

各州 [ 編輯 ]

  1. 66年 만의 ‘認證샷’ 京畿新聞, 2014年 2月 2日
  2. 畫幅 위의 '近代 藝術魂'…近代書畫의 再發見 SBS뉴스, 2009年 1月 6日.
  3. 尹致昊日記 8卷, 1924年 8月 20日 水曜日
  4. “白蓮池雲英氏永眠” . 東亞日報. 1935年 6月 8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