池運永
(池雲英, 兒名(兒名)은 池運永, 1852年 ~ 1935年 6月 6日)은
大韓帝國 朝鮮
王朝 末期의
是認
,
書藝家
, 書畫家,
寫眞家
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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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貫은
忠州
(忠州)이고 號는 설봉(雪峰), 白蓮(白蓮)이며
漢城府
出生이다.
醫師
兼
한글
學者
지석영
(池錫永)의 兄이고
獨立運動家
兼
政治가
지청천
(池靑天)의 7寸 叔父이며 獨立運動家 兼 政治가
지달수
(池達洙)의 三從弔賻(三從祖父)이다.
日本
에서 寫眞術을 배워 와서
1883年
무렵
漢城府
에 寫眞館을 開業하고 營業했다. 池運永은 開業과 童詩人 1884年 3月16日, 高宗의 御眞(御眞)을 撮影한 사람으로도 有名하다.
[1]
김옥균
(金玉均)을 暗殺하려다 失敗하였으며,
[2]
그의 寫眞館은
甲申政變
때 特異한 모습과 構造 때문에 日本人의 집으로 誤認되어 群衆이 破壞하였다.
庚戌國恥
以後에 書畫와 書藝에 專念했다. 그와 親分이 있던
윤치호
의 記錄에 依하면, 1920年代의 그는 스스로
西山大師
의 還生이라 믿었으며 뱃속에 "甇마구리"와 "網마구리"라는 女子鬼神이 들어살고 있다고 믿었다.
[3]
1935年 6月 6日
가회동
20番地 自宅에서 宿患으로 死亡하였다. 永訣式은
覺皇寺
에서 擧行하였다.
[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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