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世의 宇宙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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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論의 歷史 中 中世의 西洋에서는 過去의 天動說 을 修正하여 現代 宇宙論 의 基盤이 되는 變化가 일어났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 튀코 브라헤 , 요하네스 케플러 , 갈릴레오 갈릴레이 , 아이작 뉴턴 을 거치며 過去의 地球가 宇宙의 中心이고 하늘이 地球를 中心으로 돌고 있다는 天動說 에서 地球가 太陽을 中心으로 돌고 있다는 地動說 로 變化하게 된다.

宇宙論의 學問的 意味 [ 編輯 ]

宇宙論(宇宙論, Cosmology,그리스어:κοσμολογ?α)이란 宇宙의 構造 및 그 原理를 說明하는 學問이며 宇宙의 誕生, 救助, 鎭火, 未來 그리고 그를 說明하는 法則들을 다루고 있다. 현대 宇宙論은 觀測 天文學과 粒子 物理學에 基盤을 둔 大爆發 理論에 基盤을 두고 있다. 宇宙論이라는 單語는 最近에 (1730年 Christian Wolff의 Cosmologia Generalis에서 最初로 言及이 되었다.) 使用되었지만 宇宙의 構造를 理解하려는 硏究는 過去에서부터 始作하였으며 科學, 哲學, 宗敎, 形而上學과 聯關이 되어있다. 宇宙論은 宇宙의 最初 誕生을 硏究하는 學問인 宇宙 生成論(cosmogony)과 宇宙의 構造를 硏究하는 宇宙 構造學(cosmography)과 聯關이 되어있다.

中世 以前의 宇宙論 [ 編輯 ]

古代 印度의 宇宙論 [ 編輯 ]

古代 印度에서도 天文學이 다양하게 發展하였는데 그 中 쿠수마푸라 出身의 아리아바타 가 있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보다 後代에 태어났지만, 規則的인 圓運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의 行星 理論은 프톨레마이오스 以前 古代 그리스의 天文學 槪念에서 發達된 듯 하다. 그리고 그는 天體의 움직임에 關한 理論을 세웠다. 해의 境遇 카크시아만달라 라는 黃道面에 位置하며 地球를 中心으로 하는 원을 平均太陽이 일정한 速度로 움직이고 있다. 이때 해는 平均太陽이 運搬하는 主殿院을 軌道로 한다. 이 理論은 히파르코스의 理論 主殿院의 比率이 다르다는 點을 除外하면 一致한다. 달에 對해서도 해의 움직임을 說明하는 原理와 같은 原理이지만 달의 主殿院은 相對的으로 크다. 行星의 움직임을 說明할 때도 마찬가지로 主殿院의 槪念이 導入된다. 이로써 說明하기 힘든 不規則性을 說明하기 위해서 그는 古代 그리스에서 이퀀트의 槪念을 導入하기 前에 活用된 이심원과 主殿院 理論과 비슷한 理論을 使用하였다. 아리아바타는 地球가 回轉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의 天文學 體系에서는 行星들의 基本的인 週期가 해에 相對的이라는 點으로부터 해가 地球 돌레를 도는 것이 아니라 地球가 해 둘레를 돈다는 地動說의 基本的인 理論의 可能性이 보였다. [1]

古代 中國의 宇宙論 [ 編輯 ]

中國에서는 全體的으로 天文學에 對한 硏究가 많았다. 그들은 天球를 28個로 分割하여 그 部分에 따라서 별자리의 이름을 붙이고 曆法, 黃도 傾斜角, 그리고 精巧한 數學에 基盤하여 天體들의 움직임을 分析하기도 하였고 그와 關聯된 많은 記錄들이 있다. 이러한 公式的인 天文學 말고도 中國人들은 宇宙의 構造에 對한 특별한 理論을 가지고 있었다.

蓋天說 [ 編輯 ]

蓋天說은 地平千坪설 의 가장 代表的인 例示이다. 地平千坪說이란 하늘과 땅이 平行하며 平平하게 펼쳐져 있다는 宇宙論이다. 이는 紀元前 2,3 世紀의 것으로 보이는 주비산경 에 詳細하게 나오는데 蓋天說이란 하늘은 삿갓模樣으로 되어 있어 地上 80 萬 里의 위에서 덮고 있으며, 北極 部分이 갓의 中心이 된다는 宇宙觀이다. 그리고 地球의 半지름은 225,000里이며 하늘의 半지름은 305,000里라고 했다. 이 때 하늘의 해와 天體들은 北極을 中心으로 하여 圓 위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밤낮은 太陽까지의 거리에 依해서 決定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時代에 하늘의 움직임을 測定 하던 方法은 그노몬 이라는 8 隻의 막대기를 使用하여 太陽의 그림자로 測定였다. 이로부터 그림자의 길이가 한 치 달라질 때 그 사이 거리를 南北으로 잴 時 千里가 달라진다는 家庭 또한 使用되었다. [2]

渾天說 [ 編輯 ]

渾天說이란 땅은 地平으로 看做되고 하늘이 球로 假定된 것이 組合하여 中國人이 만든 地平天球說 이다. 이 때 地平天球說은 角度를 재는 道具가 만들어진 後 角度로써 하늘을 測定하게 되면서 하늘을 球로 假定하게 되었다. 混綴說의 起源은 紀元前 100年까지 올라가는데 그 理論에서는 天地를 鷄卵에 比喩하여 하늘은 밖에서 卵黃에 該當하는 땅을 싸고 있고 一周運動을 하고 알껍질의 表面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이 理論은 한나라 末葉까지 認定을 받았는데 地圖에서 땅을 平平하게 그린 것으로 보아 이 宇宙論이 天文學과 地理學 쪽으로 完全히 收容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渾天說은 蓋天說 보다는 進步된 天動說이라고 할 수 있으며 日本에도 影響을 끼쳐 에도時代 까지 行해졌다. [3]

宣夜說 [ 編輯 ]

이 理論에 依하면 해, 달, 별들은 凝縮된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는 物體이며 기운이 凝縮된 形態이기 때문에 빈 空間 속을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다고 한다.

蓋天說, 宣夜說, 渾天說 中 宣夜說은 後漢 때에 사라졌으며 蓋天說은 많은 缺陷들이 發見되었다. 渾天說만이 眞理에 가까운 理論이었기 때문에 王朝의 天文學者들의 觀測機構는 渾天說에 맞추어 졌으며 이 觀測 器具들의 使用法은 數百 世代 동안 變하지 않았을 듯하다.그리고 蓋天說과 宣夜說에 反對하는 立場들이 存在하였으며 그에 對한 言及이 있다.

16世紀 末에 西歐에서 中國에 온 宣敎師들이 中國에 地球의 크기, 模樣, 行星과 달의 位置等을 傳해주었고 프톨레마이오스 의 天文學 體系를 가르쳐 주었다. 이 때 中國에 온 宣敎師들 中 한 사람이였던 마테오 리치 (Matteo Ricci)는 이렇게 記錄하였다. "中國人들은 天球는 10個가 아니라 1個라고 생각했고, 별들은 하늘에 붙어 있지 않고 텅 빈 空間 속을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西歐人들이 空氣로 차 있다고 믿는 外界의 空間은 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 當時에는 中國의 宇宙論의 一部는 宣敎師들의 비웃음을 샀지만 宣敎師들이 가지고 있던 宇宙論 보다 正確했다는 點에서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4]

古代 바빌로니아의 天文學 [ 編輯 ]

古代 바빌로니아의 天文學은 물-아핀 粘土板에 記錄이 되어 있다. 그 記錄에는 별들을 記錄한 廣範圍河 目錄과 그 별들이 해뜰녘 뜨기를 하는 날짜 어느 한별이 뜰 때 또 다른 별이 지는 式으로 서로 反對 方向에 位置하는 各 별들의 目錄, 南中하는 별들의 目錄, 달이 지나는 길에 있는 별과 별자리의 目錄, 여러 날들에 對한 밤의 길이, 標準的인 그노몬의 그림자가 特定한 길이를 가질 때 알려주는 票 等 多樣한 天文學的 分析이 記錄되어 있다. 바빌로니아 人들은 두가지 修理 天文學 體系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은 달과 行星들의 不規則的인 運動을 說明하려는 試圖를 하였다. 그들의 天文體系에 依하면 黃桃라는 작은 圓은 빠른 원호와 느린 원호로 나뉘는데 이는 現象들이 해의 움직임과 關聯이 있어서이다. 結局 行星들이 空轉을 할 때 黃道에서 빠른 원호와 느린 援護를 돌아가며 이 때 돌아가는 速度 또한 計算하려고 하였다. 또한 이들은 사로스 週期 를 求하려고 努力하였으며 이는 달의 크기에 따른 速度 差異에 依해서 計算하기 어려웠던 한 달의 길이를 더 쉽게 計算하기 위해서였다. [5]

古代 그리스의 宇宙論 [ 編輯 ]

  • 唯獨수스 ? 天才的인 數學者이며 별들이 球面에 固定되어 있으며 해, 달, 水星, 金星, 火星, 木星, 土星 또한 各各의 球面에 固定되어 있다는 理論을 提案하였다. 이는 멀리 떨어진 天體에서 일어나는 變化를 다루지 않고 그들까지의 거리를 測定할 수 없는 以上 天體들은 같은 距離만큼 떨어져 있는 舊面에 固定되어있다고 假定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는 별들의 球面은 일정한 速度로 回轉하고 球面 聯動裝置를 考案하여 여러 行星들의 움직이는 特徵을 具現할 수 있었다. . [6]
  •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 有毒두스는 天文體系에서의 天球의 움직임들을 結合시키기 위한 하나의 體系로 使用하여 天球들을 實際로 存在하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天球들이 實際로 存在한다고 假定했다. 그는 天球의 가장 바깥인 土星이 돌아다니는 天球들을 統合시켰는데 다른 行星과 같은 길에 놓였다. 이 때문에 그는 하나의 天球들을 더 追加했어야 했다. 또 그는 무거운 物體들이 地球의 中心으로 떨어지는 것을 본 後 이 性質이 維持되기 위해서 宇宙의 中心에 地球가 있어야 한다고 主張하였다. 또 그는 地球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證明하기 위해서 努力을 하였는데 이 때 그는 天文學的이나 地理學的이 아닌 哲學的이나 神學的으로 다루어야 했다. [7]
  • 헤라이클레이데스 (Heracleides) ? 헤라이클레이데스는 처음으로 하늘이 固定되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심플里쿠스는 헤라클레이토스에 對해서 다음과 같이 言及했다고 한다. “그는 地球는 宇宙의 中心에 있고, 하늘은 움직이지 않는 反面 地球는 둥글게 움직인다고 하였고 이 理論으로 現象들을 說明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8]
  • 아리스타르코스 (Aristarchos) - 地球의 움직임에 對한 理論 말고도 아리스타르코스는 專門的인 天文學 著書인 해와 달의 크기와 距離에 對하여(Peri megethon kai apostematon heliou kai selenes) 를 썼다. 그는 著作에서 6個의 家庭으로 出發한다. 이때 이 家庭은 '달은 해에서 自身의 빛을 얻는다', '地球는 달 球面의 中心部에 있다 달이 折半의 形態로 나타날 때 빛을 받지 않는 部分과 달리 빛을 받는 部分으로 나뉘는 커다란 동그라미는 우리의 눈 쪽으로 向해있다. 달이 折半의 形態로 나타날 때 해와의 角距離는 1 直角보다 작은 1/30 直角이 된다. 地球 그림자의 넓이는 달 그림자의 넓이보다 2倍이다. 肉眼으로 보이는 달의 크기는 黃도 12 宮의 한 宮의 1/15이다'. 이러한 公理를 가지고 演繹의 方式으로 세 가지 結果를 얻어 낸다. 먼저 해까지의 距離는 달까지의 距離보다 18 乃至 20倍이다. 해의 지름은 달의 지름과 거의 비슷한 比率을 가지고 있다. 해의 지름은 地球의 지름보다 6.3 乃至 7.2倍 程度 더 크다. [9]
프톨레마이오스, 알마게스트 를 著述하였다.
  • 히파르코스 (Hipparchos) - 그는 幾何學的 解釋으로부터의 正確한 數値를 組織化하고 그가 擧論한 많은 數學的 數値들은 바빌로니아人들에 依해 活用되었던 것과 類似하다. 또 그는 어떠한 별의 目錄을 作成한 듯 하며 디오프트라 (dioptra)를 利用하여 해의 겉보기 지름을 求하려고 했고 이로부터 地球와 太陽 사이의 距離를 類推하였다. 그는 또 달은 主殿院의 둘레를 時計方向으로 돈다고 하면서 回轉率이 緯度週期마다 한 番씩 올라갔다가 내려가게 하였다. 그는 式이 있었을 때 스피카와 달 사이의 角度를 알아냈는데 이가 150年 前 티모카리스 (Timocharis)와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論文 地點과 分店의 歲差運動에 關하여(Peri tes metabaseios ton tropikon kai isemerinon semeion) 에서 饌具가 赤道와 黃道로 이루어져 있는 틀에 相對的으로 움직이며 皇極을 中心으로 回轉한다는 歲差運動에 對해서 說明하였다. [10]
  • 프톨레마이오스 (Ptolemy) - 그는 古代 天文學 槪括書人 알마게스트 (Almagest) 를 著述하였다. 그는 알마게스트 (Almagest) 에서 行星 理論을 提示하였으며 이 때 行星 理論은 角距離를 재는 方式으로 觀測되었다. 또 그는 行星들을 獨立的으로 取扱하여 木星의 主殿院과 土城의 主殿院의 크기 比率을 論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달이 地球에 가장 가까이 있으며 水星, 金星, 해, 火星, 土星, 順序로 配置되어 있다는 假說과 다른 天體의 領域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天體는 없으며 두 天體 사이에 쓸데없는 空間은 없다는 假說을 세웠다. 그리고 行書의 겉보기 지름 觀測 資料를 土臺로 行星들의 크기를 計算해냈으며 별과 行星을 보기위한 太陽의 最大 高度를 計算하기도 하였다. 2卷에서는 行星들의 움직임에 對한 考察을 主로 했는데 그는 모든 行星들의 主殿院은 內部 천구면과 外部 천구면 사이에서 움직인다고 하였다. [11]

中世의 宇宙論 [ 編輯 ]

코페르니쿠스의 宇宙모델 [ 編輯 ]

天球의 回轉에 關하여(De revolutionibus)

古代의 哲學者들이 提案한 地球가 宇宙의 中心이고 다른 天體들이 天球에 박힌 체로 地球를 中心으로 돌아간다는 理論, 卽 天動說 은 오랜 歲月 동안 믿어졌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否定하고 地球가 스스로 自轉하고 있으며 이로 因해 별들이 地球를 中心으로 도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과 地球가 太陽을 中心으로 1年을 週期로 하여 돌며 太陽은 固定되어 있다는 主張을 하였다. 여기에서 코페르니쿠스는 自身의 宇宙모델을 數學的이거나 觀測 資料로부터 導出해낸 것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數學的 分析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傳統的인 數學 方法을 擇하였으며 그의 冊에는 觀測 結果가 27番 밖에 없었다. 過去의 宇宙論과 코페르니쿠스가 主張하는 宇宙論은 數學的인 分析을 통해서는 무엇이 옳은 理論인지 판가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當時의 學者들도 두 理論을 區別할 때 優雅함에 依存하기도 하였다. 卽 그는 實驗을 하지 않고 天文 觀測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點에서 近代 科學者보다 古代 그리스 哲學者와 비슷한 性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 天球의 回轉에 關하여 (De revolutionibus)’’에서 그의 宇宙모델을 整理하여 出版하였다. [12]

天球의 回轉에 關하여 [ 編輯 ]

코페르니쿠스는 天球의 回轉에 關하여 를 出版하면서 冊에서 宇宙 모델을 다음과 같이 記述하였다.

  • 宇宙는 가장 完璧한 圖形인 句이며 이는 增加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 地球 亦是 句이다. 이는 모든 方向에서 地球의 中心으로 힘이 作用하기 때문이며 山과 溪谷 때문에 完璧한 求刑을 이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北쪽으로 向할 때 北極 方向의 物體는 漸次的으로 올라오고 南極 方向의 物體는 漸次的으로 낮아지는 것으로부터 地球가 求刑임을 알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宇宙모델에서 天體들의 配置
  • 땅과 물은 同一한 中心을 向해서 끌려간다. 또한 以前에 地球의 形態에 關한 많은 理論이 있었다. 地球가 납작하다던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시메네스, 드럼 形態라고 하였던 레우시푸스 等 많은 哲學者들이 地球의 形態를 類推하였지만 月蝕에서 달의 表面의 地球그림자는 原形이다. 卽 물을 包含한 地球는 球形이다.
  • 地球를 除外한 모든 天體들은 東에서 서로 움직이는 運動을 하며 太陽과 달과 같은 天體들은 速度가 일정하지 않은 運動을 하며 行星의 境遇 逆行을 하기도 한다. 이를 說明하기 위해서 여러 軌道를 合하여 說明하려고 하였으나 天體가 일정하지 않은 速度로 軌道를 돌 수 없기 때문에 不可能하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事實은 바로 均一한 運動이 우리에게느 비均一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 外部에서 일어난 일을 外部에서 볼 때와 움직이는 地球에서 볼 때 現象은 같은나 方向이 反對가 된다. 卽 宇宙가 움직이지 않고 地球가 하루를 週期로 西쪽에서 東쪽으로 自轉을 한다면 相對的인 運動에 依해서 地球에서 觀測되는 天體들은 東쪽에서 西쪽으로 뜨고 지는 것으로 觀測될 것이다.
  • 過去에 地球가 中心에 있는 것을 說明하기 위해서 돌고있는 天球에서 가장 느린 곳, 卽 地球가 宇宙의 中心이라고 하였으나 이는 問題가 있다. 天球에서 極과 가까운 큰곰자리는 다른 별자리에 비해서 느리게 움地이며 이는 具體에서의 運動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地球의 運動이 느린 理由는 地球가 다른 天體들과 마찬가지로 天球를 돌고 있는데 中心과 가까워 느리게 가는 것이다.
  • 觀測 資料들과 公轉 週期들로부터 行星과 다른 天體들에 對해서 配置를 한다면 宇宙의 中心에는 太陽이 있다. 그를 中心으로 太陽에 가까운 天體順으로 80 일을 週期로 守城이 公轉하고 9 달동안 金星이 公轉하고 地球가 空轉하고 火星이 2年을 週期로 空轉하고 목성이 12年 週期로 空轉하고 土星이 30年 週期로 公轉한다. 그리고 土星 뒬는 天體에 별들이 固定되어 있는 構造를 가진다.

이 冊에서 알 수 있듯이 코페르니쿠스는 古代 哲學者들이 主張하였고 믿어져왔던 天動說, 卽 地球가 宇宙의 中心이며 다른 天體들은 天球에 박힌 채로 地球를 돌고있다는 理論을 否定하고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公轉하며 太陽이 宇宙의 中心에 있다고 하는 理論을 主張했으며, 이를 論할 때 觀測 資料에 根據한 理論은 적었고 오히려 優雅함에 依存한 理論 爲主였다. [12]

튀코 브라헤의 宇宙모델 [ 編輯 ]

튀코의 宇宙모델의 背景 [ 編輯 ]

튀코의 超新星 發見 [ 編輯 ]

튀코는 카시오페이아 자리 를 이루는 다섯 個의 별 以外의 더 밝은 별 하나가 있는 것을 發見하였다. 當時에는 천상이 完璧하여 별들이 水晶球에 固定된 채 永遠히 빛을 내뿜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는 매우 큰 衝擊이었다. 萬若 이것이 새로운 별임을 밝힌다면 이는 天上의 完璧함을 깨는 것으로 社會에 엄청난 波長을 불러올 것임이 틀림없었다. 이를 確認하기 爲해서 튀코는 萬若 이것이 彗星 과 같이 작은 天體라면 時間에 따라 位置가 變할 것이고 별이라면 固定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막 製作을 끝낸 六分儀 를 가지고 그 별의 位置를 集中的으로 觀測했다.

튀코의 六分儀의 構造

그 별은 18個月 동안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며 그 자리에 머물렀고 처음에는 너무 밝아 낮에도 觀測可能했지만 1572年부터는 次次 稀微해졌다. 튀코는 이 現象을 獨自的으로 分析하여 1573年 小冊子, 새로운 별(De Nova Stella) 를 出版하였다. (여기에서 神聖 (nova) 라는 天文學 用語를 얻었다.) 또, 튀코는 時差 變化의 痕跡이 없는지 살펴보려는 目的으로 그 별을 集中的으로 硏究하였는데 그의 훌륭한 裝備와 뛰어난 觀察能力 (별의 位置를 測定하는데 있어서 約 ±40″의 誤差만을 보였다. [13] ) 에도 不拘하고 當時 技術로는 時差의 證據를 全혀 發見할 수 없었고 따라서 그로서는 地球가 固定되어 있고 별들이 天球에 박힌 채 地球 둘레를 돌고 있다는 事實을 否定할 어떤 理由도 없었다.

年周視差는 地球가 太陽 周圍를 公轉하면서 별의 位置가 바뀌어서 생기는 角度로, 地球 公轉 軌道의 兩끝에서 恒星에 그은 두 直線이 이루는 角의 1/2이다.
튀코의 彗星 觀測 [ 編輯 ]

튀코는 彗星의 出1577年 밝은 彗星을 發見하고 그 움직임을 綿密하게 分析하던 玄이 달과 地球 사이의 大氣에서 일어나느 枝葉的 現象이 아니며 行星들 의 軌道를 가로질러 旅行한다는 事實을 밝혀냈다. 하지만 過去의 槪念에 依하면 行星들은 壽井區 위에 박힌 채로 地球를 中心으로 돌며 이 壽井區 사이를 移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튀코가 發見한 혜성은 이러한 壽井區들이 있는 곳을 가로질러 갔기 때문에 튀코는 彗星이 水晶球가 있다고 假定되어 있는 地點들을 가로 질러 날아오므로 天上의 오래된 觀念, 水晶球의 槪念을 깨뜨렸다.

튀코의 宇宙모델의 設立 [ 編輯 ]

튀코 브라헤는 1587年과 1588年에 두 卷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天文學 入門(Astronomiae Instauratae Progymnasmata) 를 出版하였다.

새로운 天文學 入門(Astronomiae Instauratae Progymnasmata)

튀코 브라헤는 이 冊에서 프톨레마이오스 體系와 코페르니쿠스 體系 사이에서 一種의 妥協을 試圖하는 折衷說을 提示하였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宇宙모델에 關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큰 理由를 들어 批判하였다.

(1) 物理的 法則에 어긋난다.

(2) 年周視差를 要求한다.

(3) 聖書에 違反된다.

그는 그는 地球가 움직인다는 主張을 '物理的 어리석음'이라 貶下하였는데 萬若 地球가 움직이고 있다면 높은 塔에서 떨어뜨린 돌이 떨어지는 동안 地球가 움직이는 까닭에 塔의 한 귀퉁이가 아니라 그보다 먼 곳에 떨어질 것이라 確信하였기 때문이다.(이는 그의 前近代的인 面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超新星을 硏究할 때에 當時 技術로 年周視差를 觀測할 수 없었기 때문에 地球가 움직이는 것은 틀리다고 主張하였다. 그러나 또한,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宇宙모델이 數學的으로 어떤 缺陷도 없기 때문에 그 모델에 對해 愛着을 가졌고 年周視差가 觀測되지 않는다는 것을 코페르니쿠스 의 理論으로 說明하기 위해서 들이 土星 보다 훨씬 더 멀리 位置해있어야 한다고 主張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地球가 宇宙의 中心이고 이를 固定點으로 하여 太陽 , , 다른 行星 들이 돈다는 理論인 프톨레마이오스 體制도 아니고 太陽을 中心으로 地球와 다른 行星들이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 體制도 아닌 妥協案을 提示하였다.

튀코의 宇宙모델

튀코 브라헤가 主張한 折衷說은 地球가 宇宙 中心에 固定되어 있으며, 太陽 , , 固定된 들이 地球 周圍를 돌고 있다는 것으로 太陽 그 自體는 다섯 行星들의 軌道 中心에 位置하고 있는데 水星과 金星은 地球 를 中心으로 돌고 있는 太陽의 軌道 안쪽에서 돌고 있고, 火星 , 木星 , 土星 은 太陽을 中心으로 돌고 있지만 그들의 軌道 안에 太陽과 地球가 모두 包含되어 있다. 이 體系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 體系에서 提示되었던 所願과 이심이 除去되었고, 太陽의 움직임이 行星 들의 움직임과 뒤섞이는 理由를 說明할 수 있었다. 더욱이, 프톨레마이오스의 天動說로는 說明할 수 없었던 보름달보다 큰 內行星 의 位相을 解決할 수 있었다. 또한, 太陽, 地球, 行星의 位置가 다르게 配列됨에도 不拘하고 프톨레마이오스와 튀코의 體系는 外行星 의 運動에 關하여 一致하는 結論을 갖는다. [14] [15]


튀코는 地動說을 '物理的 어리석음'이라 貶下하기도 하였지만 行星의 軌道를 壽井區와 같이 物理的 實體와 관련짔지 않고 行星의 運動을 보여주는 幾何學的 關聯性에 결부시켰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宇宙모델 [ 編輯 ]

케플러의 宇宙모델의 背景 [ 編輯 ]

케플러는 좋지 못한 視力과 觀測 資料에 對한 接近의 어려움 때문에 純粹理性과 想像力을 發揮하여 宇宙의 本性을 說明하려던 古代人들의 精神的 발자취를 뒤쫓았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理論이 맞다고 假定한 後 (地球가 行星이라고 假定한 後), 特히 세 가지 質問에 對해 答을 찾고자 努力하였는데,

(1) 宇宙에는 왜 行星이 여섯 個인가?

(2) 왜 行星들은 일정한 間隔을 維持하여 位置하는가?

(3) 왜 太陽으로 멀리 떨어진 行星들은 느리게 움직이는가?

였다.

케플러의 幾何學的 宇宙모델 設立 [ 編輯 ]

1595年 7月 9日, 木星 土星 의 패턴에 對해 講義를 하던 中 (1),(2)에 對한 答이 생각이 났다고 한다. 各各의 合은 以前의 合보다 8個의 黃도 12窮만큼 떨어진 곳에서 約 20年을 週期로 發生하였고 케플러는 이에 따라 圖解를 그렸다.

파일:케플러도해.jpg
木星과 土城의 合에 關한 케플러의 天文學的 圖解

線들로 만들어진 안쪽의 圓의 半지름과 바깥 圓의 半지름의 비가 木星의 軌道와 土城의 軌道의 비와 거의 一致한다는 것을 發見한 케플러는 行星들의 軌道와 幾何學과 어떤 聯關性을 가진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苦悶하던 中, 行星들의 數(6個)와 幾何學的 立方體 들의 數(5個)와의 連結고리를 찾았고, 그에 따라 幾何學的 宇宙모델을 設立하였다. [16]

幾何學 形態를 띤 채 次例대로 늘어선 케플러의 宇宙모델

케플러는 立方體들 中 하나를 다른 것 속에 넣은 方式으로 쌓아서 各各의 境遇에 안쪽에 있는 立方體들의 모서리들이 그 立方體를 둘러싸고 있는 球의 表面에 接하도록 하고, 이어서 구는 그 다음 立方體 表面의 안쪽 側面에 닿게 하여 이렇게 나머지 다섯 個의 유클리드 立方體(正六面體, 正四面體, 正十二面體, 正二十面體, 正八面體)들을 羅列하면, 가장 안쪽에 있는 立方體 內部는 勿論 가장 바깥쪽 立方體의 外部에 있는 球가 놓이게 됨에 따라 6個의 區가 나란히 늘어서게 되어 各各이 行星의 軌道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卽, 太陽을 가장 안쪽으로 하여 正八面體를 두고 水星의 軌道를 나타내는 九老 그것을 둘러싸도록 한 다음, 그 뒤를 正二十面體, 正十二面體, 正四面體, 正六面體가 따르도록 함으로써 行星들의 軌道가 일정한 間隔을 維持하도록 具를 配置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1),(2)에 對한 그의 答을 달았고 이어 1597年 宇宙의 神祕(Mysterium Cosmographicum) 에서 (3)에 對한 答도 달았는데 行星들은 太陽에서 뻗어나와 그것들을 밀고 있는 힘 (그는 이 힘을 活力 이라 하였다.)에 依해 軌道를 따라 繼續해서 돌고 있기 때문에 太陽에서 멀어질수록 活力이 작아질 것이므로 천천히 돌 수 밖에 없다고 主張하였다.

行星運動에 對한 새로운 생각: 케플러 法則 [ 編輯 ]

케플러 第 1法則: 楕圓軌道의 法則 & 케플러 第 2法則: 面積速度 一定의 法則 [ 編輯 ]

現在에는 케플러 第 1法則을 楕圓軌道의 法則 , 2法則을 面積速度 一定의 法則 으로 배움으로 마치 그가 行星의 軌道 는 楕圓軌道임을 먼저 發見한 後 面積速度 一定의 法則을 發見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實은 그렇지 않다. 1602年에 이르러 '이심'原形軌道로 한참 火星의 軌道를 硏究하던 中, 케플러는 太陽과 太陽의 둘레를 따라 돌고 있는 行星을 連結하는 假想線은 同一한 時間에 同一한 面積을 휩쓸고 지나간다는 結論에 이르렀고 이를 發見하고도 한참 뒤에 軌道의 形態가 楕圓形임을 밝혔다.

行星의 楕圓軌道(케플러 第 1法則)과 面積 速度 一定의 法則(A1=A2)

行星들은 太陽을 한 焦點으로 두는 楕圓運動을 한다는 이 法則은 以前에 行星이 太陽을 中心으로 원운동한다고 믿어왔던 것을 뒤집은 法則이다. 이 法則으로 所願, 이심 을 비롯한 初期 宇宙모델의 複雜多端한 要素들이 除去되었고, 重疊된 立方體 라는 케플러의 初期 神祕主義的, 幾何學的 宇宙모델度 鐵槌되었다. 케플러의 全體的 思想은 1609年 새로운 天文學Astronomia Nova 에 出刊되었다.

케플러 第 3法則: 調和의 法則 [ 編輯 ]

케플러 의 마지막 偉大한 業績 中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1619年 世界의 調和 Harmonice Mundi 의 冊의 編纂이다. 비록 神祕主義的인 內容으로 가득 차 있지만 現在 케플러의 第 3法則, 行星이 太陽의 둘레를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時間( 周忌 )와 太陽에서 그 行星까지의 거리가 緊密히 連結되어 있다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떠올랐는지, 그리고 그 後 어떻게 完成되었는지에 對해 收錄되어 있다. 케플러 第 3法則이란 어떤 두 行星의 週期의 제곱은 太陽에서 그 行星들까지 거리 의 세제곱에 比例한다는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宇宙모델 [ 編輯 ]

1564年 2月 15日에 피사에서 태어났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는 코페르니쿠스의 地動說을 支持하였고 그에 뒷받침할 여러 가지 根據를 提示하였다. 그는 倍率이 높은 望遠鏡을 發明함으로써, 宇宙의 天體들을 觀測할 수 있는 方法을 발달시켰고, 實際로 自身이 直接 만든 望遠鏡으로 數 많은 觀測을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事實을 發見하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超新星 硏究 [ 編輯 ]

1604年 10月, 갈릴레오는 軍隊를 위한 作業에서 緻密한 調査를 통해, 새로운 별이 周邊의 별들과 마찬가지로 全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點을 立證하였고, 그 別 또한 다른 별들과 마찬가지로 地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主張하였으며, 天體는 變함이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槪念을 論駁하였다.

갈릴레오의 觀測 [ 編輯 ]

갈릴레오는 自身이 直接 만든 望遠鏡으로 여러 가지 觀測을 하였다. 그 當時의 一般的 見解는 달은 不透明하고 딱딱하며 매끈한 데다 밝게 빛난다는 것이었는데, 1609年 갈릴레오는 그 裝備로 달의 表面이 完全하게 매끄러운 球가 아니라 噴火口가 있으며, 山脈들이 있다는 事實을 發見하였다. 또한 그는 銀河水가 數없이 많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事實을 發見하였다. 이러한 發見들은 1610年 3月에 出版된 별들의 消息(Siderius Nuncius) 에 실려 있다. [17]

木星의 衛星 觀測 [ 編輯 ]

갈릴레오는 自身의 望遠鏡으로 木星을 觀測하였다. 그 觀測을 통해 목성이 兩極이 若干 납작한 큰 球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1610年 1月 7日 木星을 觀測하던 中, 木星의 衛星 4個를 發見하였다. 그 當時 코페르니쿠스 體系였던 地動說, 卽 太陽 中心說에 對한 한 가지 反論으로 달은 分明히 地球 周圍를 돌고 있다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木星의 衛星 觀察은 地球의 衛星인 달도 例外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였고 코페르니쿠스 모델의 正確性을 뒷받침해주는 決定的 證據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예전부터 逍遙學派들이 使用했던 代表的인 反證事例는, 달이 地球 둘레를 돌고 있으므로 同時에 地球가 太陽의 둘레를 도는 것이 不可能하며, 그렇게 되면 地球와 달이 서로 떨어져버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뭔가의 둘레를 돌고 있음이 確實한 木星과, 그 둘레를 돌고 있는 衛星 네 個를 發見함으로써, 갈릴레오는 地球가 움직이고 있더라도 달이 地球를 일정한 軌道로 도는 것이 可能하다고 主張하였다. [17]

갈릴레이 衛星 [ 編輯 ]

갈릴레오가 發見한 木星의 衛星 4個는 現在 그를 기리기 위하여 갈릴레이 衛星 (Galilean moon)이라고 불린다. 그 衛星들의 이름은 各各 이오 (Io), 유로파 (Europa), 가니메데 (Ganymede), 칼리스토 (Callisto)이다. 처음에 그는 코시모를 기리기 위해 이 衛星들의 이름을 메디치의 별들이라 불렀지만 現在 天文學者들은 이 衛星들을 木星의 갈릴레이 衛星이라고 부른다. 이오는 갈릴레이 衛星 中 가장 안쪽에서 돌고 있는 衛星으로 지름이 3642km인 太陽系에서 네 番째로 큰 衛星이다. 400個 以上의 火山이 있어, 太陽系에서 地質學的으로 가장 活潑한 天體 中 하나이다. 또한 大部分의 다른 衛星들과는 다르게, 이오는 녹은 鐵이나 黃化鐵로 둘러싸인 硅酸鹽으로 이루어져있다. 유로파는 木星에 두 番째로 가깝게 돌고 있는 衛星으로 지름은 地球의 衛星보다 조금 작은 3121.6km이다. 이 衛星의 表面은 이오와는 다르게 매끄럽고, 겉은 얼음 層, 안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유로파는 硅酸鹽으로 이루어졌고, 主로 酸素로 이루어진 大氣層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가니메데는 세 番째로 안쪽에서 돌고 있는 衛星으로 지름이 5262.4km인 太陽系에서 가장 큰 衛星이다. 또 이 衛星은 液體 鐵의 核의 對流로 인해 지磁氣圈을 生成하고 얇은 酸素 大氣層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칼리스토는 갈릴레이 衛星 中 가장 바깥에서 도는 衛星으로 지름은 4820.6km이고 太陽系에서 세 番째로 큰 衛星이다. 칼리스토는 二酸化炭素와 酸素로 이루어진 매우 얇은 大氣層으로 둘러쌓여있다.

갈릴레이 衛星

갈릴레이의 思考實驗 [ 編輯 ]

갈릴레오는 運動하던 物體가 멈추는 것은 物體와 接觸面 사이에서 생기는 摩擦力 때문이며, 摩擦力이 作用하지 않는다면 힘이 作用하지 않아도 一旦 움직인 物體는 等速直線運動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傾斜路를 따라 굴러 내려온 공을 다시 傾斜路를 따라 올라가도록 굴렸을 때, 摩擦이 없다면 警査의 기울기에 相關없이 功은 出發한 곳과 같은 높이만큼 다시 굴러서 올라간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빗面의 警査를 繼續 낮추어 平地가 되면 공은 같은 높이에 永遠히 到達할 수 없기 때문에 永遠히 運動할 것이라고 主張하였다. 그는 이러한 事故實驗을 통해 物體가 힘을 받지 않는다면 等速直線運動을 할 것이라는 慣性의 槪念을 發見했다. 이 發見은 行星이 움직이기 위해 繼續 힘을 作用해 줄 必要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萬有引力까지는 생각해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行星이 直線的으로 宇宙 속으로 날아가지 않고 圓運動을 한다는 事實은 說明하지 못하였다.


그 以後의 宇宙論 [ 編輯 ]

윌리엄 길버트의 宇宙모델 [ 編輯 ]

길버트는 磁石으로 여러 가지 實驗을 하였던 物理學者로, 그는 地球가 北極과 南極을 지닌 巨大한 磁石이라고 主張하였다. 또한 그는 地球가 靜止해 있다는 튀코 브라헤의 學說을 뒤집고 地球가 自身의 軸을 中心으로 回轉하고 있다(자전하고 있다)는 설을 說得力 있는 理論으로 展開했다. 地球 自轉說은 ‘萬若 地球가 하루에 한 番 回轉한다면, 어떻게 해서 地球 위에 있는 物體가 宇宙 空間으로 날아가지 않고 地球 表面에 머물러 있을까?’라는 새로운 疑問을 惹起시켰다. 길버트는 磁石의 人力이 物件들을 地球에 붙들어 매고 있고 더 나아가 地球의 大氣가 宇宙로 날아가는 것을 防止하는 것도 地磁氣라고 主張했다. 對答하였다. 비록 그의 생각은 틀렸지만, 이 疑問은 以前까지 別로 關心을 가지지 않았던 時代에 人力 理論의 길을 텄다는 點에서 意義를 가진다. [18]

아이작 뉴턴의 宇宙모델 [ 編輯 ]

1643年 1月 4日에 태어난 아이작 뉴턴은 人類 歷史上 가장 影響力 있는 사람 中 한 名이며, 그의 代表的인 著書로는 逆제곱法則과 運動의 3法則을 說明한 自然哲學의 數學的 原理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光學 (opticks) 等이 있다. 自然哲學의 數學的 原理는 프린키피아 (Principia) 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달이나 行星을 楕圓 軌道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關해 깊이 생각하였는데, 이는 有名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듯이 沙果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解決할 수 있었다. (勿論 이 이야기가 實際로 있었던 事件이라는 證據는 없다.) 그는 謝過를 地球로 끌어당기는 힘과 같은 自力이 行星에도 作用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프린키피아에서 紹介하였다. 그는 그의 著書, 프린키피아에서 慣性과 普遍重力(萬有引力)의 槪念을 통해 宇宙의 모든 物體 사이의 相互人力을 說明하였고, 宇宙萬物을 數學的으로 說明할 수 있었다. 프린키피아 3卷에서 뉴턴은 太陽과 달의 普遍重力이 地球의 各 地點을 당기는 人力의 差異로 地球의 朝夕現像人 밀물과 썰물을 說明해냈다. 이는 天上과 地上에 같은 運動法則들과 힘이 作用한다고 생각한 것이므로, 前 宇宙에 同一한 自然法則이 成立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와 같이 뉴턴은 宇宙가 겉으로 보기에는 複雜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起源은 比較的 單純한 根本 要素들이기 때문에 새롭게 눈을 뜨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宇宙의 作動原理를 理解할 수 있다는 事實을 일깨워주었다. 또, 그는 行星의 速度 變化 問題에 關心을 가졌다. 여기서, 그는 이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 流率(fluxion)이란 것을 생각해냈다. 流率은 오늘의 微積分에 該當한다고 할 수 있다. [18]

萬有引力의 法則 [ 編輯 ]

뉴턴은 케플러의 法則을 硏究해 좀 더 一般的인 法則을 導出해냈다. 그것이 萬有引力의 法則이다. 케플러의 法則은 行星에 關한 것이지만 뉴턴의 法則은 行星뿐만 아니라 宇宙의 모든 物體에 適用할 수 있다. 뉴턴의 重力理論은 ‘質量m과 M을 가진 두 物體가 距離 r만큼 떨어져 있을 때, 그 사이에는 m과 M에 比例하고 距離 r의 제곱에 反比例하는 人力이 作用한다’는 것이다. 萬有引力은 매우 弱하다. 例를 들어 두 電子 사이에 作用하는 電磁氣力과 萬有引力을 比較하면 電磁氣力이 約 10^36倍 强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電磁氣力에는 兩極과 陰極이 모두 存在해 人力과 斥力이 모두 作用하여 相殺되는 側面이 있다. 反面 重力은 量의 質量과 人力만 있기 때문에 漸進的으로 强해진다. 그래서 天體 運動과 같은 宇宙 規模의 現象을 다룰 때는 萬有引力의 效果가 눈에 띄는 것이다. [19]

르네 데카르트의 宇宙모델 [ 編輯 ]

그는 天體論 (Le monde)에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地動說이 世界에서 어떤 原理로 作用하는지에 對하여 論하였다. 그는 渦流理論 을 主張하였는데 渦流理論이란 에테르라는 작은 粒子들이 天體나 太陽 周圍에서 巨大한 回轉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는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地球는 太陽의 소용돌이 흐름에 있는 것이며 달도 같은 原理로 地球의 소용돌이에 依해서 運搬되고 있다고 主張하였다. [20]

18世紀 以後의 宇宙論 [ 編輯 ]

18世紀 以後에 수많은 宇宙論이 登場했다. 임마누엘 칸트 요한 람베르트 는 宇宙는 無限하며 安定된 狀態라고 하며 宇宙는 Hierarchical universe 를 構造로 하고 있다고 主張했다. 그 以後 아인슈타인 宇宙常數 의 槪念을 導入하여 宇宙論의 槪念을 擴張시켰다. 그리고 르메트르 街모프 허브의 膨脹說로부터 宇宙 內의 모든 物質을 包含하는 超原子가 暴發한 結果 膨脹하는 宇宙가 되었다는 大爆發 理論 이 있으며 宇宙 空間 內의 어느 方向에서나 2.7K의 黑體에서 放出되는 背景 複寫, 卽 宇宙 마이크로파 背景 이 觀測되는데 이는 宇宙 大爆發 後 宇宙의 溫度인 3000K일 때 放出되었던 宇宙가 膨脹하면서 식어 現在 溫度가 2.7K인 輻射가 觀測된다. 본디 골드 가 主張한 正常 宇宙論 은 宇宙는 恒常 只今과 같은 模樣으로 存在한다는 理論이며 宇宙가 膨脹하여 銀河사이에 새로운 空間이 생길시 새로운 物質이 생겨나 宇宙의 密度는 언제나 같다고 說明한다. 街모프 振動 宇宙論 을 主張하였는데 振動 宇宙論이란 宇宙는 有限하고 膨脹과 收縮을 反復하며 膨脹을 繼續하다가 宇宙의 크기가 限界에 到達하면 重力에 依해서 다시 收縮하고 大爆發 以前의 宇宙로 돌아가서 大爆發을 다시 일으키고 이로 인해 宇宙는 또다시 膨脹한다는 理論이다. 以外에 大爆發 理論을 補完해주는 急膨脹 理論 多重 宇宙論 , 平行 宇宙論 과 같이 宇宙의 構造를 說明하는 많은 理論들이 나왔으며 이 理論들에 對한 硏究는 進行 中이다. [20] [21]

아인슈타인의 宇宙모델 [ 編輯 ]

1917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은 自身의 一般 相對性 理論 에 기초한 宇宙의 모델을 提案하였다. 그는 章方程式 이라는 物質, 複寫, 重力의 相互作用을 數學的인 港으로 나타내는 方程式을 誘導하였다. 現代의 宇宙論은 大部分 이 章方程式의 解를 求하고 이를 觀測 데이터에 依해서 檢證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宇宙 모델은 均質, 等方이고 空間은 구대칭이며 體積은 有限하고 境界는 없다. 그러나 그의 모델은 政敵인 宇宙로서 이를 위해서 그는 그의 方程式에 宇宙論 上手라는 任意의 힘을 追加시켰다. 그러나 後에 허블에 依해서 宇宙의 膨脹이 發見되면서 아인슈타인의 政敵인 모델은 膨脹 모델로 修正되어야 했다. 이에 關해 아인슈타인은 ‘내 生涯 가장 큰 誤謬’였다는 말을 남겼다. 一般 相對論 에서는 重力과 加速度는 相應하는 것으로 物體가 重力場 속을 通過할 때에는 物體의 運動方向이 重力에 依해서 바뀌게 된다. 卽, 物體는 휜 空間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物質을 包含하고 있는 宇宙에서도 이와 같은 規則이 適用된다. 이 때 움직이는 物體의 軌跡이 휘어지는 現象을 보고 空間이 휘어 있다고도 말한다. 여기서 空間이 휘는 程度는 宇宙의 全體質量에 따라 달라진다. 章方程式의 해는 曲率 의 形態와 크기를 나타낸다. 宇宙의 未來도 이 曲率이 어떠하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現代 宇宙論의 中心 課題는 이 세 가지 可能性 中에서 어떤 것이 옳으냐를 決定하는 데 있다. [22]


各州 [ 編輯 ]

  1.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301-317,
  2. 나카야마 시게루 (1991). 《하늘의 科學史》. 飜譯 金 香.   , p.131-132,
  3. 나카야마 시게루 (1991). 《하늘의 科學史》. 飜譯 金 香.   , p.132-133,
  4.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142-183,
  5.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109-138,
  6.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188-198,
  7.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198-207,
  8.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207-208,
  9.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208-210,
  10.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210-236,
  11. Thurston, H. (1996). 《東西洋의 古典 天文學》. 飜譯 전관수.   , p.236-300,
  12. Michael J.Crowe (2001). 《THEORIES OF THE WORLD from antiquity to the Copernican revolution》.   revised 5th ed., p.83~p.108,
  13. Michael J.Crowe (2001). 《THEORIES OF THE WORLD from antiquity to the Copernican revolution》.   revised 5th ed., p.142,
  14. Michael J.Crowe (2001). 《THEORIES OF THE WORLD from antiquity to the Copernican revolution》.   revised 5th ed., p.143-145,
  15. 윌리엄 J. 補語스트, 임진용 (2001). 《티코 브라헤 천첻를 製作하다》.  
  16. Michael J.Crowe (2001). 《THEORIES OF THE WORLD from antiquity to the Copernican revolution》.   revised 5th ed., p.148-151,
  17. 콜린 윌슨 (1996). 《宇宙의 歷史》. 飜譯 한영환.   , p.127-128,
  18. 콜린 윌슨 (1996). 《宇宙의 歷史》. 飜譯 한영환.   , p.141-146,
  19. 다케우치 가오루 (2010). 《한 卷으로 充分한 宇宙論》. 飜譯 김재로, 이문숙.   , p.141-142,
  20. Edward Harrison (2000). 《Cosmology.》.   , 2nd edition
  21. 성연욱, 구자옥, 이기영. 《HIGH TOP 高等學校 地球科學 2 3卷》.   , p.136-154,
  22. 민영기, 우종옥, 윤홍식 (2003). 《敎養 天文學》.   , p.32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