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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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모
鄭漢模
大韓民國의 第17代 文化公報部 長官
任期 1988年 2月 25日 ~ 1988年 12月 4日
大統領 盧泰愚
總理 李賢在 國務總理 署理
李賢在 國務總理
次官 최창윤 문화공보부 次官
강용식 문화공보부 次官

身上情報
出生日 1923年 10月 27日 ( 1923-10-27 )
出生地 日帝强占期 忠淸南道 扶餘
死亡日 1991年 2月 23日 ( 1991-02-23 ) (67歲)
死亡地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國籍 大韓民國
學歷 서울대 大學院
經歷 휘문고등학교 敎師
高麗大學校 兼任敎授
同德女子大學校 敎授
延世大學校 兼任敎授
서울가톨릭대學校 兼任敎授
서울大學校 名譽敎授
正當 無所屬
父母 강마리아(모)
配偶者 박종월
子女 3男 2女
親姻戚 정수영 (孫女)
宗敎 改新敎 天主敎 (洗禮名: 베드로)

정한모 (鄭漢模, 1923年 10月 27日 ( 1923-10-27 ) ~ 1991年 2月 23日 ( 1991-02-23 ) )는 大韓民國의 詩人 이며 國文學者이자 前職 政治人이다. 號는 일모(一茅).

生涯 [ 編輯 ]

忠淸南道 扶餘 에서 出生한 그는 日本 오사카[大阪]에 있는 나니와 商業學校(難波商業學校)를 卒業한 뒤, 1955年 서울大學校 國語國文學科에서 學士 學位를 取得했고 1959年 同 大學院에서 國語國文學 碩士 學位를 받았다. 휘문고등학교 敎師를 거쳐, 1958年 同德女子大學 敎授로 赴任하였고, 1966年 서울大學校 國語國文學科 敎授로 자리를 옮겨 1988年 退職 때까지 在職하였다.

文壇 登壇은 8·15光復 直後 김윤성(金潤成)·구경서(具慶書) 等과 함께 同人誌 『百脈(白脈)』을 發刊함으로써 이루어졌으나, 本格的인 活動은 1955年『韓國日報』 新春文藝에 詩 「滅入(滅入)」이 當選된 뒤부터이다. 1958年 第1詩集 『카오스의 士族(蛇足)』에 이어 다음해 第2詩集 『餘白을 위한 抒情』을 發刊하였다. [1]

서울대학교 敎授, 文藝振興院長, 盧泰愚 政府 時節에 文公部 長官 等을 지냈다. 1945年 同人誌 《百脈》에 〈歸鄕視篇〉을 發表하면서 始作 活動을 했으며, 《時塔》과 《酒幕》 同人으로 活動, 詩集으로 《카오스의 士族》,《餘白을 위한 抒情》,《아가의 房》,《새벽》,《아가의 房 별사(別詞)》,《原點에 서서》 等이 있다. 《現代詩論》,《韓國 現代詩 文學社》《韓國 現代詩의 精髓》 等 多數의 學術書가 있다.

學歷 [ 編輯 ]

家族 關係 [ 編輯 ]

賞勳과 追慕 [ 編輯 ]

  • 1971年 한국시인협회賞
  • 1983年 서울特別市文化相
  • 1987年 대한민국예술원上(詩部門)

各州 [ 編輯 ]

前任
이웅희
第17代 文化公報部 長官
1988年 2月 25日 ~ 1988年 12月 4日
後任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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