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宗 (영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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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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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任 1450年 ~ 1455年
身上情報
出生日 1437年
死亡日 1461年
國籍 朝鮮
家門 海州 鄭氏
父親 追贈 議政府 左贊成 정충경
母親 貞敬夫人 여흥閔氏
配偶者 경혜공주
子女 정미수 (鄭眉壽)

定宗 (鄭悰, 1437年 ~ 1461年 )은 朝鮮 의 文臣이며, 文宗 駙馬 이다. 本貫은 海州 (海州). 參判 정충경(忠敬)의 아들이다. 1450年 ( 世宗 32年)에 文宗 의 딸 경혜공주 와 婚姻한 뒤 營養위(寧陽尉)에 封하여졌다. 英祖34年에 營養府院君(寧陽府院君)에 追贈되었다. 諡號는 헌民(獻愍).

生涯 [ 編輯 ]

斷種 初期에 刑曹判書가 되어 端宗의 두터운 信任을 받았다가, 1455年 ( 斷種 3年) 首陽大君에 依하여 금성대군 等과 함께 流配되었다. 이 해 首陽大君이 世祖 로 卽位하였고 定宗은 文宗의 唯一한 사위라 하여 競技도 양근에 羊이(量移)되었다. 1456年 (世祖 2年) 死六臣 事件으로 罪가 加重되어 水原 통진 을 거쳐 全羅道 光州 에 安置되었고, 1461年 에 僧侶 聖誕 等과 反逆을 圖謀했다가 發覺되어 陵遲處斬當했다. 英祖 때 身元되어 純沖積德補助功臣(順忠積德補祚功臣) 議政府 領議政(領議政) 營養府院君(寧陽府院君)追贈되었고, 單宗廟와 公州 東鶴寺 叔母展(肅慕殿)에 配享되었다. 諡號는 헌民(獻愍)이다. 墓는 實戰(失傳)하여 競技도 高陽市 德陽區 대자동 경혜공주墓 옆에 설단하였다.

家族 關係 [ 編輯 ]

아들 정미수의 孫女 中 한名은 다시 中宗 의 庶子 금원군 李寧의 妻가 되었다.

定宗이 登場하는 作品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