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
1952年
1月 25日
~
2021年
9月 2日
)는 大韓民國의 歌手다. 全南
靈巖郡
出生으로 1971年 《때늦은 後悔지만》으로 데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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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年 히트曲 女高時節을 發表하였고, 1973年에는 大川海水浴場에서 被襲을 當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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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年에는 大麻草 關聯으로 制裁를 當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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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年 9月 2日 肺癌으로 鬪病 中 別世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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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年 木浦 KBS 노래자랑 大會에 나와 5連勝을 했고, 뛰어난 歌唱力이 좋아 歌手로 認定받았다.
- 1971年에 때늦은 後悔地만으로 데뷔한 뒤 내 곁에 있어주, 두고 온 故鄕, 방울새 等의 앨범을 繼續 냈다.
- 그中 1972年에 낸 '女高時節'李 히트를 쳐 人氣가 많아졌다.
- 이수미 被襲 事件으로 인해 무척 힘든 生活을 지내다 앨범도 다시내면서 겨우 이겨낸듯 했지만, 大麻草 關聯 事件으로 인해 人生이 那落으로 떨어졌다.
- 2003年부터 다시 歌手 活動을 再開하며, 改新敎 信仰 生活을 하며 福音聖歌 活動도 하기도 했다. 大寒歌手協會의 理事職을 맡기도 했다.
死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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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年 9月 2日, 肺癌 3期 判定을 받고 세브란스병원에서 治療받던 中 享年 69歲로 死亡했다.
- 5月에 마지막으로 作業한 '별이 빛나는 이밤에'가 遺作으로 남게 되었다.
- 發靷날은 9月 5日 午前 11時, 葬地는 楊平 선영.
大川 海水浴場 自害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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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當時 人氣가 絶頂에 達해 있었던 때였는데 1973年 世間을 떠들썩하게 만든 大川 海水浴場에서 칼을 든 怪漢이 撮影 場所에 갑자기 亂入해 이수미를 攻擊했다.
- 當時 이수미의 人氣 탓에 大川 海水浴場 被襲 事件을 둘러싼 歪曲된 所聞과 이에 따른 波紋은 그칠 줄 모르고 커져만 갔다.
- 警察은 이수미가 戀人에 依해 失戀을 當해 自害를 했다고 發表했지만, 事實은 이수미가 實際로 被襲을 當한 事件이었다.
- 現場에 있었던 짧은 머리의 男子들이 警察에 連行돼 調査를 받는 被害를 막기위해 이수미가 警察에 거짓 陳述을 했던 것이다.
- 이수미는 "連日 言論에 報道되는 等 事件이 一波萬波로 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自害를 했다고 거짓말했다.
- 被襲이 한 瞬間에 '自害騷動'으로 바뀌었다고 當時 엄청 혼란스러웠던 狀況을 털어놨다.
大麻草 連累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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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年에 演藝界에 大麻草 事件이 일어났는데, 이때 大麻草 事件에 聯關 됐다.
- 그女는 抑鬱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고 無期限 放送停止 處分을 받고 事實上 演藝界를 떠나게 됐다.
- 當時에 大麻草를 피는 演藝人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 자리에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수미는 "그때 모든 걸 내려놨다. 20年을 아, 소리 한 番 안 내고 지내다 보니 어느 날부터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失語症 患者가 됐던 事緣을 告白했다.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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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年 때늦은 後悔지만
[5]
- 1973年 조용히 살고싶어
[6]
- 1974年 내 곁에 있어주
[7]
- 1975年 오로지
[8]
- 1975年 故鄕은 멀어도
[9]
- 1978年 나를 잊으셨나요
[10]
- 1980年 우리엄마
[11]
- 1982年 좋은일이 없을까요
[12]
- 2003年 또 다른 世上에서
[13]
- 2021年 별이 빛나는 이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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受賞 內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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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年
MBC
10代 歌手賞
- 1975年
TBC
最高 女子歌手上
- 1972年
TBC
7代 歌手賞
- 1972年
MBC
10代 歌手賞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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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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