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長慶
(
中國語
正體字
:
吳長慶
,
병음
:
W? Changqing
禹窓稱
[
*
]
,
1834年
?
1884年
)은
淸나라
末期의 軍人이다. 者는 소헌(?軒)이며, 讀書를 좋아하고 軍士를 사랑하여 유장(儒將)이라고 稱했다.
袁世凱
(袁世凱)의 은사에 該當한다.
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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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徽省
(安徽省)
여강현
(廬江縣) 出身이다.
鄕勇
(鄕勇)을 이끌고 여강현과 수淸絃을 지키고 있었지만,
李鴻章
(李鴻章)李
回軍
(淮軍)을 結成하자 그 軍隊에 合流하였다. 吳長慶의 部隊는 警自營(慶字營)이라 불렸다.
1862年
에 李鴻章을 따라
傷害
(上海)에 가서,
太平天國
(太平天國) 軍隊와 戰鬪를 벌여 遊擊으로 昇進했다. 이듬해 故鄕 驪江에서 다시 軍士를 募集하고 있었는데 太平天國의 충왕(忠王)
이수성
(李秀成)에게 包圍되었으나 이를 擊退했다. 그 後
傷害
로 돌아와
1864年
에는 勇將으로 알려진 영왕 鐃鈸수가 守備하는
嘉興
(嘉興) 攻掠에 參與했다.
1868年
에 李鴻章이
捻軍
(捻軍)을 鎭壓하기 위해 出陣瑕疵,
河南
(河南),
산동
(山東),
直隷
(直?)를 돌아다니며 捻軍을 鎭壓했다.
1880年
, 絶江祭毒(浙江提督)으로 昇進했지만,
베트남
을 둘러싸고
프랑스
와의 緊張 關係가 造成되면서
山東省
의 群舞를 補佐하는 일을 맡았다.
1882年
에
壬午軍亂
을 鎭壓하기 위해
朝鮮
으로 들어왔다. 當時 그를 遂行해 왔던 部下 將校들 中에는
袁世凱
도 있었다.
1884年
에 歸國하여
今週
(金州)를 지키다가 病死했다. 武裝의 諡號를 받았다.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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