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映畫 監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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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出生 1929年 9月 23日 ( 1929-09-23 )
日帝强占期 京畿道 安城
死亡 2023年 12月 3日 ( 2023-12-03 ) (94歲)
職業 映畫監督
宗敎 佛敎

김수용 (金洙容, 1929年 9月 23日 ~ 2023年 12月 3日 )은 大韓民國 映畫監督 이다.

生涯 [ 編輯 ]

京畿道 安城 에서 出生하였고 京畿道 利川 에서 暫時 幼兒期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後 京畿道 平澤 에서 暫時 幼年期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安城公立農業學校 를 거쳐 서울교육대학교 의 前身인 서울師範學校 를 卒業하였다. 靑少年 時節 文學에 關心을 가져 習作 小說 을 쓰기도 했고, 自作 戱曲 을 舞臺에 올려 演出 主演 을 겸하는 等 演劇 에도 資質을 보였다.

1946年頃부터 서울師範學校 演劇部 部長 演出家로 活動하다가 韓國 戰爭 中이던 1951年에 大韓民國 陸軍 所謂 陸軍 甲種將校 任官하여 大韓民國 國防部 政訓局 映畫科에 配屬이 되면서 처음 映畫와 因緣을 맺게 되었다. 政訓局에서는 作家 鮮于 휘 의 指揮 아래 軍人 敎育用 映畫를 約 30餘 篇 만들었다.

當時 文官으로 勤務하던 映畫監督 양주남 의 周旋으로 그의 助監督이 되면서 《배뱅이굿》(1957) 撮影에 參加한 것을 契機로 本格的인 映畫 作業에 뛰어들게 되었고, 이듬해 코미디 映畫인 《恐妻家》로 映畫監督이 되었다. 初期에는 《恐妻家》와 같은 系列의 喜劇 映畫를 撮影했으나, 1963年 김승호 황정순 主演의 《굴비》라는 映畫 作品을 轉換點으로 삼아 좀 더 眞摯한 映畫로 轉換했다.

代表作으로는 《굴비》 以後 關心을 갖게 된 社會 問題에 對한 批判 意識을 담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와 《갯마을》(1965)을 비롯하여 1970年代의 《夜行》(1977), 《華麗한 外出》(1978), 1980年代 作品으로는 《都市로 간 處女》(1981), 《晩秋》(1982) 等이 있다. 奇行 僧侶인 중광 을 다룬 《허튼소리》(1986)는 佛敎 系의 反撥로 社會的인 論難 距離가 되기도 했다. 總 演出 作品 數가 100篇이 넘는 多作 演出家이지만 大衆性과 興行性이 調和를 이루며 質的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評을 받고 있다.

1991年까지 청주대학교 演劇映畫學科 敎授를 歷任하기도 하였고 1992年까지 서울藝術專門大學 映畫學科 特任講師 兼 중앙대학교 映畫學科 特任敎授를 지내기도 한 그는 대한민국예술원 會員이며, 映畫監督으로는 最初로 대한민국예술원 會長에 오르기도 했다.

學歷 [ 編輯 ]

名譽 學士 學位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脚註 및 參考 文獻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