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
(金南天,
1911年
3月 16日
~
1953年
8月 6日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 小說家 兼 文學評論家이며
兒名(兒名)
은
김효식
(金孝植)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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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南道
成川郡
에서 出生하여
1929年
에
平壤高等普通學校
를 나왔다. 以後 日本
도쿄
로 留學하여
호세이 大學校
에 入學하였다가
1931年
除籍되었다.
日本
에서부터
社會主義
運動에 參與하며
카프
의 少壯派 評論家로 活潑한 活動을 펼쳤다.
林和
와 함께 文藝 運動의
볼셰비키
火를 主唱하였고, 勞動爭議에도 直接 參加하였다. 1931年에
第1次 카프 檢擧 事件
때
朝鮮共産主義者協議會
加擔 嫌疑로 起訴되었다.
出獄 後 監獄에서의 經驗을 土臺로 한 短篇 〈물〉(1933)을 發表하고 文學的 實踐에서의 階級的 主體 問題를 놓고
林和
와 論爭을 벌였다. 長篇 《大夏》(1939), 聯作인 《經營》(1940)과 《맥》(1941) 等을 發表했다.
太平洋 戰爭
終戰 直後
美軍政
地域에서
左翼
活動을 始作했다.
조선문학가동맹
을 結成하여 左翼 文人들의 求心點 役割을 擔當하던 中,
1947年
經에
林和
等과 함께 越北했다. 越北 後 第1期
最高人民會議
代議員,
朝鮮文學藝術總同盟
書記長을 歷任하였다.
韓國 戰爭
에도
朝鮮人民軍
從軍 作家로 參戰했으나, 休戰 協定 後
박헌영
을 中心으로 한
남로당
勢力의 肅淸으로 오랜 同志인
林和
가 死刑 判決을 받았다. 이때 김남천度 함께 肅淸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正確한 死亡 時期는 알 수 없다.
1953年
이나
1955年
에 死刑당했다는 설,
1977年
까지도 生存해 있었다는 說이 있다.
大韓民國
에서는 越北 作家라는 理由로 김남천에 對해 言及하지 못하고 꼭 必要한 境遇에는 이름 한 글字를 지우고 言及하다가,
1987年
6月 抗爭
以後 이름을 되찾고 全集이 出刊되는 等 再照明되었지만 아직도
北韓
의 文藝史에는 金南天의 痕跡이 남아있지 않다.
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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