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옥윤
(吉屋潤,
本名
:
최치정,
本名
漢字
:
崔致禎,
1927年
2月 27日
~
1995年
3月 17日
)은
大韓民國
의
作詞家
·
作曲家
·
編曲家
·
재즈
색소폰
演奏家·
音盤
프로듀서
·
映畫
音樂
監督이었다. 本貫은
全州
(全州).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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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名(本名)은
최치정
(
崔致禎
)이고
兒名
(兒名)은
최종수
(
崔鍾秀
)이며 移轉
日本
式
藝名
은
요시야 준
(
吉屋 潤
)이고 移轉
英語
式
藝名
은
준 요시야
(
June Yoshiya
)이다.
履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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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年 時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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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年
平安北道
寧邊郡
에서 태어났다.
1932年
6歲 時節에 本名을
최종수
에서
최치정
으로
改名
한 그는
1946年
에
美8軍
舞臺에서
재즈
色素포니스트
로 데뷔했다.
京城齒科醫學專門學校
에 入學해
1949年
에 서울대학교 齒科大學 專門部를 卒業했다.
大學을 나온 해인
1949年
以後에도 繼續 美8軍 舞臺에서 재즈 色素포니스트로 活動하던 그는
韓國 戰爭
으로 戰亂 中이던
1951年
에
大韓民國 陸軍
中尉
로 任官하여
1953年
까지
韓國 戰爭
에
軍醫官
으로 參戰하였다.
1953年
에
陸軍
大尉
로 進級, 이듬해인
1954年
大韓民國 陸軍
大尉
로 豫編하였으며 以後로도 재즈 色素포니스트 活躍을 繼續하였다.
本格 作曲家 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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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年
歌手
賢人
에게 《내 사랑아》라는 曲을 作詞 및 作曲하여 써 주었으며
1966年
歌手
패티 金
의 첫 番째 男便이 되었고 7年 뒤 離婚하였으며 以後 28年 年下의 전연란과 再婚하였다.
아울러 그는
1981年
慶熙大學校
치醫科大學院에서 《
管樂器
演奏者의 咬合狀態에 關한
硏究
》로 碩士 學位를 取得하였다.
死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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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年
3月 17日
別世했다.
3月 21日
大學路 마로니에 公園에서 演藝協會長으로 永訣式을 擧行하고, 運柩 때 패티김이 「서울의 讚歌」를 눈물로 불렀다. 文化勳章 保管場을 추훈받았다.
1995年
10月 23日
世宗路 公園에 「서울의 讚歌」 노래碑를 서울市에서 建立하였다. 墓所는 景氣도
安城市
天主敎 公園墓地이다.
[1]
所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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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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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事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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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人의 唯一한 男동생인 최치갑 釜山 조은齒科 院長의 손위同壻가
장효조
前 三星 스카우터의 三寸이기도 하다.
[2]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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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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