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和主義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 共和 注意 에서 넘어옴)

共和主義 ( 韓國 漢字 : 共和主義, 英語 : Republicanism )는 모두의 利益과 權利를 保障하기 위해 公的 利益과 共同體의 安寧(安寧)을 重要視하며 各各의 個性은 貴族이나 平民 等으로 다를 수도 있으나 共同體의 立場에서 모두 공화的 槪念인 國民이나 市民의 美德을 高揚시켜야 한다는 政治哲學으로 理解된다. 쉽게 말하자면, 貴族이나 平民 같은 個人性보다 公的인 槪念인 國民이나 市民의 正體性을 더 選好하라는 思想이다. 그래서 파트리키들이 莫强하던 時節에도 貴族的 正體性보다 로마 市民的 正體性을 優先的으로 생각했던 貴族들도 있었다.

槪要 [ 編輯 ]

共和主義는 時代의 脈絡과 時代가 定한 正義의 普遍的 法則에 따라 그 意味가 달라질 수 있어 簡單히 定義될 수 없다. 一般的으로 政治哲學 次元에서 共和主義는 古代 로마 共和政의 스토아 學派 에 依해 發展이 되었으며, 라틴語 語源인 'res publica'의 意味와 聯關된다. [1] 여기서 共和主義는 로고스( 그리스어 : Λ?γο? , 理性)를 그것 自體인 大宇宙( 그리스어 : Μακροκοσμο? , 大宇宙)와 個別的 次元에서 人間 異性인 小宇宙( 그리스어 : Μικρ?κοσμο? , 小宇宙)로 나눈 다음, 이 둘이 하나라는 前提에 따라 이러한 로고스의 原理가 現實 社會 內 小宇宙에서 大宇宙로 나아가는 合理性의 發展에 相應하는 만큼, 政治·社會的 次元에서도 한 確定的인 形態( 그리스어 : Ε?δο? , 形態)로 나타날 수 있다는 믿음을 基礎로 하고 있다. [2] 로마 帝國은 共和主義를 내세워서 自身들이야말로 世界를 統一할 資格이 있는 唯一한 帝國이라 主張하기도 했다.

大宇宙의 原理에 合致하는 政治 共同體의 形態는 ‘共和國’이라고 할 수 있으며, 共和國은 私的 利益의 追求보다 公的 利益을 重視하고 市民의 삶에 걸쳐서 大大的인 福利增進이 進行되는 國家 形成과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共和主義는 宇宙法 그 自體로서의 法(Law, 法)과, 그것의 現象的 發現인 法律(Legislation, 法律)을 區分하고 있다. 共和國에서 市民은 政治의 自主的 主體가 되어야 하며, 共和國은 이러한 公民的 德이 없으면 存在할 수 없다는 政治 理念으로 認識된다. [3] 國家 》에서 以上國家論을 主唱했던 플라톤 의 이데아 思想과 人間을 政治的 動物로 보았던 古代 그리스의 政治思想 및 스토아 學派의 政治哲學을 르네상스 基에서 近現代에 걸친 西洋社會에서 自覺的으로 繼承하고자 하였던 一連의 思想的 總稱이다. [4]

19世紀 末 以後로는 社會主義 가 共和主義의 以上을 繼承·代替하는 勢力으로 登場하였기에 이념적 連續性이 屈折된 側面이 없지 않다. 特히 獨逸의 靑年헤겔學派 一員이자 急進 공화파人 모세스 헤스(Moses Hess)와 카를 그륀(Karl Grun)은 共和國의 異常을 繼承하는 政治로서 ‘眞正社會主義’( 獨逸語 : wahrer Sozialismus )를 創始하였으며, 共和主義가 갖고 있는 形而上學的 異常을 繼承하는 意味에서의 觀念的 社會主義 政派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古典的 共和主義 外에도, 貴族과의 妥協을 重視하는 線에서 折衷案을 提示한 몽테스키외로 이어지는 特有한 共和主義는 近代 美國 獨立 革命 (1783)에 影響을 주었다.

共和主義는 프랑스 大革命 (1789)·남아메리카 解放(1814)· 辛亥革命 (1911)· 스페인 革命 (1936)· 이집트 革命 (1952) 및 以後에 이어진 共和 革命의 思想的 源泉이다. 오늘날 世界 大部分의 나라들이 共和主義에 立脚한 共和國임을 宣布하고 形式的이거나 實質的인 共和主義를 내세우는 點은 그 歷史性에 符合하는 것이다. [5]

歷史 [ 編輯 ]

古代 그리스에서는 플라톤 같은 哲學者가 古典的 共和主義로 認識하는 要素를 分析하고 說明했다. 그는 個人的으로도 偉大하며 公的으로 보았을 때도 偉大한 指導者가 國家를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으며 國家 5卷에 依하면 이런 哲人王이 다스리기 前에는 公共의 平和나 幸福이 있을 수 없다고 主張했다. 그에 依하면 私的으로도 偉大한 哲人王이 公的인 것도 考慮하면서 다스리는 共和政이 가장 理想的인 나라였다.

그리스人 歷史가 플루타르코스는 로마를 君主制, 貴族制, 民主主義가 混合된 國家로 생각했으며 로마 歷史家인 리비우스는 로마인들의 共和主義 精神을 記錄했다. 로마인들은 初期에 君主가 公的인 利益을 해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자 君主를 사라지게 했으며 本來 로마 民衆들 亦是 公的인 利益을 無視하기 始作하자 로마의 貴族들은 結局 民衆들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은 로마 貴族들은 共和主義 精神을 바탕으로 無益한 프롤레타리우스들에게 相當한 福祉를 提供했으나 結局 그들 自身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로마는 眞正한 共和國이었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잘 支配하는 公共의 普遍 帝國이 되었으나 時間이 흐르면서 共和主義 精神은 弱化되었고 로마에 지배당하던 다양한 사람들은 더는 로마를 믿지 않게 되었다. 이런 狀況에서도 로마란 國歌는 普遍的이고 公的인 特性을 살려서 繼續 살아남게 되었으나 로마의 基盤이었던 世上은 이미 共和主義보다 家門처럼 個人的인 歷史와 偉大함을 優先하는 一種의 高貴한 野蠻人 貴族들에게 넘어가서 오랜 歲月 동안 眞正한 共和主義의 復活은 希望이 없어졌다.

로마 以後에도 共和主義를 標榜하는 國家들은 있었으나 前近代 文明인 로마에 비해서도 不足한 面 [6] 이 많았고 옛날이나 只今이나 이름만 共和國인 나라들도 있었다. 美國 建國의 아버지級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民主主義는 커질수록 弱해지고 서로 다른 사람들로 인하여 더 弱化되는 反面, 共和主義는 모두에게 利益인 公的인 利益을 追求하기 때문에 커질수록 剛해질 수 있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合倂해도 오히려 더 剛해질 수 있다고 主張했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했던 共和主義 槪念과 精神은 美國人들에게 相當한 影響을 미쳤다. 現在 代表的인 共和主義的 國家는 美國이나 自身들만의 勢力을 擴張하려는 사람들 [7] 의 挑戰이 共和主義를 威脅하고 있다.

共和主義와 自由主義 [ 編輯 ]

共和主義는 個個人에게 특정한 權利와 義務를 附與하는 것을 各 個人에게 排他的으로 適用되는 自由權 確立이라고 보지 않는다. 共和主義者들은 個個人에게 더 많은 權利, 그리고 그에 合當한 義務를 附與하는 것에 對해 國家를 이루는 全體 人民의 自由, 平等, 그리고 政治的으로 考慮될 수 있는 追加的인 重要 價値를 確立하는 通涉的人 過程이라고 보고 있다.

反面, 自由主義는 이와 反對로 個人에 焦點을 둔다. 특정한 權利와 義務를 附與하고, 市民의 參政權을 保障하는 것은 國家를 이루는 全體의 觀點이라기보단, 排他的인 意味에서 個個人의 權利 신장, 自由權 確立을 세우는 過程이라는 것이다. 個人의 消極的 權利를 重視하는 自由主義의 立場에서 共和主義가 追求하는 自由는 眞正한 自由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點은 現代 社會에서 自由主義와 共和主義가 수많은 政策 決定에서 다른 事案을 갖게 하는 原因으로 作用된다. 一般的으로 共和主義는 經濟 領域에서 全體 人民의 여러 權利가 伸張될 수 있음을 保障하기 위해 여러 豫備 裝置를 두려고 한다. 그것은 企業에 對한 公的 所有, 經濟 運營에 對한 市民의 直間接的인 介入의 許容 等으로 나타날 수 있다. 反面, 自由主義 勢力은 經濟 領域에서 市場 原理와 資本의 (個個)民間 所有를 確立하는 立場을 固守하고 있다.

共和主義 沿革 [ 編輯 ]

古典的 共和主義 [ 編輯 ]

아리스토텔레스 의 共和主義: 아리스토텔레스에 依해 體系化된 古典的(classical)共和主義는 政治社會와 人間本性의 聯關性에 기초한 것으로 以後 西歐 政治思想의 기틀이 된다. 共和主義的 傳統에서 "自由와 支配"는 不可分의 關係다. 여기서 支配는 他者의 支配가 아닌, 自己支配 를 뜻하며 自由도 獨立된 個人의 自由가 아닌, 政治共同體 內의 政治活動에 參與함으로써 누리는 公民的 自由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理想은 現實속에서 問題를 派生시킨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政治行爲에 加擔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現實的으로 政治行爲는 自由市民들이 交代로 擔當하지 않을 수 없다.이 境遇 市民은 支配力量뿐만 아니라 自發的인 服從의 能力도 涵養해야 한다.즉 統治者는 被治者를 同僚市民으로 待遇해야 하며 이런 能力은 被支配 經驗을 통해 習得된다. 자유롭고 平等한 共和主義的 政治共同體에서는 모든 市民에게 要求되는 德性이 있다.

勇氣와 節制, 正義感 等이고 이에 더해 支配를 擔當하는 市民에게는 寬容과 自矜心, 溫情主義, 智慧로서의 신중함이 重要視된다. 比喩하면, 피치自認 大衆은 피리를 만드는 사람이고 政治하는 치자는 피리를 부는 사람이다. 그래서 바람직한 共和國은 德性과 智慧에 依據해 權力이 配分되고 市民들이 그들의 力量을 最大限 發揮할 수 있는 機會가 자유롭고 完全하게 保障되는 政治社會 이다.그러나 智慧에 依한 政治는 一般的 合意, 卽 多數決의 原則에 依해 制約된다. 여기서 智慧와 合意를 結合시키려는 努力은 法에 依한 合理的 支配로 나타난다. 共和主義的 法의 支配는 權力의 非人格化 를 의미하며 이는 多數大衆의 不滿과 反感을 解消할 수 있다. 플라톤이 말한 法과 市民의 德性과의 相關關係,卽 法의 性格에따라 市民의 德性이 規定된다는 觀點에 依據해 政治社會의 形成과 維持는 立法을 어떻게 하느냐와 그 內容이 關鍵이 되는 것이다.

立法의 基礎가 되는 法의 根源과 正當性의 問題는 매우 重要하다. 플라톤의〈법률〉이 法의 根源에 對한 穿鑿과 이를 이데아로 귀결시킨 것은 偶然이 아니다.모든 人間法의 起源, 源泉으로서의 이데아 또는 自然法에 對한 믿음은 共和主義의 强力한 土臺를 이룬다. 歷史的으로 모든 共和主義는 自然法에 對한 前提없이 理論으로 決코 成立할 수 없다. 共和主義는 超越的 地力과 權威에 對한 確信으로부터 法이 導出, 承認돼야 한다는 理想的인 信念을 깔고 成立되는 것이다. 이러한 共和主義的 信念은 스토아학파의 自然法思想의 基礎가 되고 하나의 政治共同體는, 自然法의 理致가 內在하는 巨大한 宇宙秩序 속에서 成立한다는 觀念으로 發展하였다. 오늘날 憲法에 保障된 天賦的 人權思想은 自然法思想에 攣踠하고 自然法은 古典的 共和主義의 理念에 뿌리가 닿아있는 것이다. [8]

共和主義와 關聯된 論爭이 政治史에 全面的으로 登場한 것은 카이사르와 키케로의 葛藤 以後다. 카이사르에 맞서 로마 共和政을 지키려고 했던 키케로가 "美德을 갖춘 市民이 公益을 위해 私益을 讓步하는 것"이라고 定義한 바 있다. 이는 個人이 全體를 위해 犧牲한다는 意味가 아니다. 公共善(公共善)을 이뤄서 個人의 幸福도 增進시키려는 要求이며, 이를 위해 法을 지키고 敎育을 받은 共和國 市民들은 討論을 통해 무엇이 公益(公益)인지를 合意해 간다는 意味다.

루소의 共和主義 [ 編輯 ]

루소가 追求한 理想社會는 모든 社會 成員들의 獨立된 삶의 保障과 자유로운 人間 關係를 形成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반드시 個別 構成員들 사이에 經濟的 平等 , 社會的 平等이 前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루소의 平等主義的 共和主義는 旣存의 自由와 平等이 兩立할 수 없다는 立場을 正面으로 排斥하고 自由와 平等은 兩立可能할 뿐 아니라 平等을 自由의 根據로 提示하고 平等이 없이는 自由가 없다는 點을 强調한다.

루소는 그 어떤 思想家보다 平等과 正義의 關係를 深刻하게 다룬 政治哲學者로 初期 資本主義 社會의 不平等을 不正義로 把握하고 이로 인한 構成員들의 非道德的인 現象에 注目하고 이를 革罷해서 正義社會를 建設하려 했다. 鄭의 社會란 公共善, 卽 社會共同의 利益을 最優先的으로 생각하는 一般意志 가 支配하는 社會다. 이런 社會에서는 共同 價値와 線이 具現됨과 同時에 平等하고 자유로운 個人으로 人間답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鄭의 社會를 樹立하기 위해서는 社會 平等이 要求된다. 經濟 不平等은 個人들로 하여금 私的 利益을 優先視하게 함으로써 正義를 毁損하기 때문에 公共善을 追求하는 一般意志가 원활하게 作動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間의 經濟的 平等이 一次的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人間에 對한 人間의 支配라는 不當한 事態를 打破하고 서로 平等하고 獨立的인 삶을 營爲하기 위해서도 經濟的 平等이 優先的으로 要請된다는 것을 强調했다. 以上에서 드러나듯 루소는 富의 平等한 分配와 이에 기초한 正義社會를 主唱한 先驅的인 平等主義的 共和主義者라 할 수 있다. 루소의 共和主義의 特徵은 社會不平等의 原因을 私有財産制로 把握했다는 點과 當時 資本主義 社會의 不平等의 本質的 內容을 '人間과 人間 사이의 支配 從屬關係'의 定立으로 看做해 이를 '人間은 누구나 平等하고 尊嚴하다'는 人間 尊嚴性이라는 觀點에서 批判하고 克服하고자 했다는 點이고 共和主義를 平等主義라는 觀點에서 바라봄으로써 共和主義를 한層 格上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를 雄辯한다. "共和主義에 걸맞은 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自身을 팔아야 할 程度로 가난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도 남을 살 수 있을 程度로 浮遊해서도 안 된다." [9]

各州 [ 編輯 ]

  1. Polybius; Shuckburgh, Evelyn S. (2009). 《The Histories of Polybiu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doi : 10.1017/cbo9781139333740 . ISBN   9781139333740 .  
  2. Goodey, C.F. (2013). 《A History of Intelligence and 'Intellectual Disability': The Shaping of Psychology in Early Modern Europe》 (英語). Ashgate Publishing. ISBN   978-1-4094-8235-2 .  
  3. 김경희《共和主義》冊世上, 26쪽
  4. Polybius; Frank W. Walbank; Ian Scott-Kilvert (1979). 《The Rise of the Roman Empire》. Penguin Classics . ISBN   0-14-044362-2 .  
  5. 조지 세이빈《정치사상사》한길사
  6. 로마의 歷史에서도 그런 面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로마보다도 一部 사람들의 利益만 代辯했다.
  7. 民主主義者들 亦是 包含된다.
  8. 서울大 政治學科《政治學의 理解》박영사, 44, 45쪽
  9. 선우현〈平等〉冊世上, 86, 88쪽. 非롤리〈共和主義〉人間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