監考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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監考黨
感古堂
監考黨
基本 情報
位置 京畿道 驪州市 名聲로 71
座標 北緯 37° 15′ 37.9″ 東京 127° 39′ 20.0″  /  北緯 37.260528° 東經 127.655556°  / 37.260528; 127.655556
狀態 戰時 中
監考黨 懸板

監考黨 (感古堂)은 朝鮮 後期에 建築된 建物로, 朝鮮 高宗 의 王后인 명성황후 의 生家이자 肅宗 인현왕후 의 親庭아버지 민유중 의 墓所를 管理하면서 지키던 墓幕이었다. 인현왕후 가 親庭을 配慮하기 위해 지은 建物이었다.

槪要 [ 編輯 ]

本來 漢城府 안국방 37番地(現在 서울特別市 鍾路區 안국동 37-1番地 一帶 [1] )에 인현왕후 가 自身의 親庭에 特別히 내려 준 建物과 1687年 (肅宗 13年) 京畿道 驪州郡 여주읍 능현리 山에 肅宗의 丈人이자 인현왕후 의 親庭아버지 민유중 의 墓所를 지키기 爲한 墓幕이 各各 建立되었다. 그러나 안국동의 監考黨은 後日 德性女高 가 設立되면서 現在의 驪州 능현리로 一部 施設物이 옮겨졌고, 看板 亦是 驪州의 민유중 墓幕에 옮겨졌다.

當時 建物로 現在 傳하는 建物은 27坪이며 나머지 建物은 解放 以後 復元되었다. 以後 민유중 家門의 宗孫들이 代代로 居住하면서 墓幕을 지켰으며, 1851年 9月 25日 高宗 의 비 명성황후 가 여기서 태어났다. 以後 민치록 1858年 에 死亡했으나 민자영(明成皇后의 어린 時節 이름)은 비로 揀擇되기 前까지 어머니 寒山 李氏와 監考黨에서 繼續 居住하였다.

日帝强占期 때 破壞되고 6.25 戰爭 때 다시 破壞되었으나 1976年 朴正熙 大統領 의 特別 指示로 復元工事가 始作, 안채가 重修되었고 1995年 에는 行廊채와 舍廊채, 秒當 等이 復元되었다.

갤러리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

各州 [ 編輯 ]

  1. 겨레文化遺産硏究院 (2013年 9月). 서울 鍾路 통의동 20-5番地 近隣生活施設敷地 內 文化財 試掘調査 藥寶庫서 (PDF) (報告書). 12쪽(怨: 11쪽). 2023年 6月 24日에 原本 文書 (PDF) 에서 保存된 文書 . 2023年 6月 24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