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명
(趙一明,
1903年
12月 1日
~
1953年
8月 30日
)은
日帝强占期
의 親日 共産主義 運動家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
政治가
이다.
一名
(一明)은 雅號(雅號)이며 本名
조두원
(趙斗元)으로도 活動했다.
生涯
[
編輯
]
江原道
襄陽郡
에서 出生하여
慶尙南道
咸安
과
江原道
三陟
에서 各各 暫時 幼年期를 보낸 적이 있고 그 後
江原道 金化
에서 成長한 그는
京城 연희전문학교
를 學事 學位했다. 1920年代
朝鮮共産黨
에 入黨하여
박헌영
,
리승엽
,
조봉암
,
권오직
等과 함께
火曜派
系列에서
共産主義
運動을 벌였고,
모스크바
의
東方勞力者共産大學
에서 留學하고 돌아와 같은 모스크바 留學生 出身인
김단야
와 함께 組織 活動을 벌이다 投獄되는 等 일찍부터 本格的인 政治 活動을 했다.
그러나
日帝强占期
동안 轉向하여
親日
團體인
야마토駐쿠
에 加入했으며 講演 및 敎師職 遂行 等으로 親日 行爲를 했다. 富裕한 家庭 環境과
親日
經歷은
共産主義
運動家로서의 조일명을 두고두고 괴롭혔다. 後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 間諜 嫌疑로 死刑당한 뒤에도
리승엽
과 함께 日帝 때부터 轉向했던 代表的인 變節者로 非難받았다.
1945年
光復後 리승엽과 함께
박헌영
의 再建派에 加擔했고, 朝鮮共産黨 機關紙인
解放日報
의 編輯長을 맡는 等 박헌영派의 核心 人物로 活動했다.
美軍政
이
整版社 僞造紙幣 事件
以後 解放日報에 武器停刊 措置를 내리자 越北했다.
北韓 內閣의 文化宣傳省 負傷까지 지냈으나,
이강국
,
李源祚
,
박승원
等과 함께 오랫동안 박헌영의 指令에 따라 間諜活動을 해 왔다는 嫌疑로
1953年
逮捕되어 死刑 宣告를 받았고, 곧 處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年 9月에 박헌영直系人
이강국
과 林和 等 남로당의 一部 核心幹部들이 駐韓 美軍防諜隊(CIC) 要員으로 活動했던 것으로 南韓에서 밝혀졌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