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택 (聖職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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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정순택   大主敎
大敎區 서울大敎區長 (2021年-)
管區 서울館區 管區長 (2021年-)
敎區 平壤敎區 敎區長 서리 (2021年-)
前任者 廉洙政 樞機卿
聖職
司祭敍品 1992年 7月 16日
授與  金壽煥 樞機卿
主敎敍品 2014年 2月 5日
授與  廉洙政 大主敎
個人情報
出生 1961年 8月 5日 ( 1961-08-05 ) (62歲)
大韓民國 大邱廣域市
敎派 天主敎
在職 가톨릭學院 理事長
學歷 가톨릭대학교 , 서울大學校 工科大學 工業化學과 學事
母校 가톨릭대학교
社目標語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敎會 (Deus Pater, Mater Ecclesia)
文章

정순택 (鄭淳澤 1961年 8月 5日 ~ )은 大韓民國 天主敎 聖職者이자 가톨릭 大主敎 이다. 洗禮名은 베드로 이며, 現在 第14代 天主敎 서울大敎區 天主敎 平壤敎區 敎區長이다.

幼年時節과 家系背景 [ 編輯 ]

정순택 大主敎는 1961年 8月 5日 大邱廣域市 에서 아버지 정운장(요셉)과 어머니 調停者(이빌라의 데레사)사이에서 1男 2女 中 외아들도 태어났다.

大邱 曉星초교와 서울 同一中 , 우신고 를 다니며 거의 全 科目 滿點을 맞아 '水災'라는 말을 듣곤했던 鄭 主敎는 서울大學校 工大 工業化學科에 入學, 아버지 바람대로 學者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듯했다. 하지만 平凡한 工學徒의 길을 걷던 정순택 大主敎의 삶에서 '分岐點'이 생긴다. 大學 3學年 在學 中 周圍 勸誘로 偶然히 參席한 抛콜라레 마리아폴리(마리아의 都市)에서 뜨거운 '信仰 體驗'을 한다.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르시고 쓰신다'는 體驗이었다. '늦게 데워진 구들장이 좀처럼 식지 않는 것처럼' 信仰의 原體驗은 오랫동안 뜨거웠다. 勿論 工學徒에서 神學徒가 되기까지는 時間이 必要했다.

"大學 卒業 때까지만이라도 하느님 부르심이 確實한지 기다려보자"는 아버지의 提案에 정순택 大主敎는 大學을 卒業한 뒤에도 神學校에 가겠다는 聖所를 지켰고, 드디어 敎區 神學生으로 서울大敎區 大神學校 2學年에 編入한다. 한 學期를 마치고 軍에 入隊하려 했지만 허리를 다쳐 다시 身體檢査를 받는다. 이 때가 가르멜會에 入會하는 決定的 契機였다. 허리를 다쳐 療養하는 동안 가르멜 靈性書籍을 읽으며 가르멜의 삶에 푹 빠져든 정순택 大主敎는 1984年 12月 가르멜會에 立會書를 낸 뒤 補充役으로 入隊, 兵役 義務를 履行하고 1986年 5月 修道會로 돌아온다.

司祭와 主敎 [ 編輯 ]

1988年 2月 첫 서원, 1992年 1月 終身誓願을 하고 1992年 7月 16日 가르멜回 仁川修道院에서 司祭品을 받고 穩全한 修道者로서의 길을 걷기 社作하였다.

以後 가르멜回 請願狀과 首鍊匠, 韓國支部 第2慘事 兼 서울 學生修道院長 等을 지낸 정순택 神父는 2000年 로마로 留學을 떠난다. 聖書學을 工夫하기 위해서였다. 5年 가까운 數學 끝에 鄭 主敎는 舊約 詩篇 57篇을 새로운 方向에서 解釋하고 照明한 論文으로 로마 敎皇廳 聖書大學(Biblicum)에서 聖書學 碩士學位를 받고 2004年 에 돌아온다. 歸國하자마자 한국준管區 第1慘事 兼 仁川修道院 副院長, 韓國管區 第1慘事 兼 光州 學生修道院長 等을 지내었다.

2013年 12月 30日 敎皇 프란치스코 서울大敎區 補佐主敎로 정순택 新婦를 유경村 新婦와 함께 任命 하였고 2014年 2月 5日 打마주카 名義主敎로 敍品되었다.

以後 서울大敎區 西서울 地域 및 修道院·靑少年擔當 敎區長 代理, 韓國 天主敎 主敎會의 靑少年 司牧委員長, 韓國敎會史硏究所 理事長으로 活動해 왔다.

2021年 敎皇 프란치스코는 廉洙政 樞機卿의 서울大敎區長 및 平壤敎區長 署理職의 辭任請願을 受諾하고, 그後任으로 정순택 補佐主敎를 서울大敎區 敎區長主敎로 임명하였다

정순택 大主敎는 2021年 12月 8日 명동대성당 에서 서울大敎區長 및 平壤敎區長 署理로 着座하였다. 以後 6月 29日 바티칸 聖 베드로 大聖堂 에서 敎皇 프란치스코로 부터 서울管區長 大主敎 權威 象徵인 팔리움 을 받았고 11月 7日 명동대성당에서 팔리움 授與미사를 奉獻 하였다.

略歷 [ 編輯 ]

  • 1986年 5月 : 가르멜 修道會 立會
  • 1992年 1月 25日 : 가르멜 修道會 終身誓願
  • 1992年 7月 16日 : 司祭 敍品
  • 1993年 ~ 1996年 : 가르멜 修道會 首鍊匠
  • 1996年 ~ 1999年 : 가르멜 修道會 서울學生修道院長 兼 支部 第2慘事
  • 2000年 ~ 2004年 : 敎皇廳立 聖書大學 聖書學 遊學
  • 2005年 ~ 2008年 : 가르멜 修道會 仁川修道院 副院長 兼 管區 第1慘事
  • 2008年 ~ 2009年 : 가르멜 修道會 光州學生修道院長 兼 管區 第1慘事
  • 2009年 ~ 2013年 : 가르멜 修道會 로마 總本部 東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擔當 最高評議員
  • 2013年 12月 30日 : 서울大敎區 補佐主敎 任命 (打마주카 名의 主敎)
  • 2014年 2月 5日 : 主敎 敍品
  • 2014年 2月 18日 ~ 2021年 12月 7日 : 서울大敎區 鉏서울地域 및 修道會·靑少年擔當 敎區長 代理
  • 2014年 4月 4日 ~ 現在 : 學校法人 가톨릭學院 理事
  • 2014年 10月 30日 ~ 2023年 3月 16日 : 主敎會의 靑少年司牧委員長
  • 2014年 10月 30日 ~ 2023年 3月 16日 : 主敎會의 宣敎司牧主敎委員長
  • 2016年 6月 1日 ~ 現在 : (財)韓國敎會史硏究所 理事長, 서울大敎區 殉敎者顯揚委員會와 諡福諡聖準備委員會 委員長
  • 2020年 1月 1日 ~ 現在 : 아시아主敎會議聯合會(FABC) 神學委員會 委員
  • 2021年 10月 28日 : 서울大敎區長, 平壤敎區長 署理 任命 및 大主敎 陞品
  • 2021年 12月 8日 : 第14代 서울大敎區長 兼 平壤敎區長 서리 着座
  • 2021年 12月 18日 ~ 現在 : 學校法人 가톨릭學院 理事長
  • 2022年 3月 22日 ~ 現在 : 主敎會議 常任理事 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理事
  • 2022年 3月 22日 ~ 現在 : 主敎會議 聖職主敎委員會 委員長

文章 [ 編輯 ]

褐色 主敎 帽子와 (‘그리스도의 平和를 象徵하는 綠色’으로 된) 4段의 수실, 그리고 牧場(牧杖)은 傳統的으로 ‘使徒들의 後繼者’(Apostolorum Successor)인 대주敎職을 表象한다.

母子의 色인 褐色은 謙遜과 가난을 象徵하는 ‘땅의 色’이기도 하며, 托鉢 修道會(Ordo mendicantorum)의 傳統的인 色이기도 한다. 곧 謙遜과 가난을 머리에 이고 恒常 謙遜의 姿勢로 臨한다는 意味한다.

防牌는 敎會를 守護하는 主敎의 職務를 象徵하는데, 防牌 안 褐色의 形象은 한便으로 보면 山의 形象이요, 다른 便으로 보면 길을 遠近法으로 表現한 形象이기도 하다.

褐色 <山의 形象>으로는 ‘하느님과의 合一’을 向한 우리 信仰의 旅程을 表象하는‘가르멜 山길’이요, 또 한便 길의 形象으로는 나그네 길, 곧 ‘信仰의 旅程’을 表現하는 것이기도 한다.

별은 信仰의 旅程을 引導해 주시는 聖母님의 表象이고, 밑의 푸른色 띠는 한便으로는 바다의 色으로서 ‘바다의 별’ 聖母님을 象徵하는 흰 별의 밑에서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우리 救援의 빛은 結局 예수 그리스도의 十字架에서 나옴을 보여 주는데, 이 十字架에서 나오는 救援의 빛(노란色 빛)은 信仰의 旅程이자 ‘가르멜 山길’ 위에서 우리의 全體 旅程을 비춰 주고 있음을 表象한다.

外部 링크 [ 編輯 ]

前任
廉洙政 (안드레아)
第14代 天主敎 서울大敎區 敎區長
天主敎 平壤敎區長 서리
2021年 12月 8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