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 飛行場
은
濟州道
西歸浦市
大靜邑 상모리
松嶽山
近處에 있는
飛行場
이다. 알뜨르는
아래 벌판
을 의미하는
濟州말
이다.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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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强占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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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初에 알뜨르 飛行場은 濟州島民들이 代를 이어 農事를 짓던
農地
兼
牧草地
였다.
日帝强占期
를 맞이한 後에는
日本 朝鮮軍
이
摹瑟浦
住民들을 動員하여 1920年代부터 1930年代 中盤까지
軍用 飛行場
으로 建設하였다. 66
ha
넓이의 飛行場 안에 幅 20m, 높이 4m, 길이 10.5m 規模의 20個 格納庫가 세워졌다. 1937年,
中日戰爭
이 勃發하면서 本格的으로
前哨 基地
로 쓰이기 始作하면서, 約 700
km
떨어진 中國의 都市인
난징
을 爆擊하기 위해 오무라
海軍 航空大
의 많은 戰鬪機가 出格하였다.
[1]
中日戰爭 期間中 2次 工事를 통해서 規模는 40萬 坪으로 擴張되었다. 그러나 1938年 11月에 日本軍이 상하이를 占領하면서 오무라 海軍航空隊는 中國 本土로 옮겨졌고 이에 따라 알뜨르 飛行場도 練習飛行腸이 되었다.
1942年
眞珠灣 攻襲
으로
太平洋 戰爭
이 勃發하여 本格的要塞化되어 264 ha로 學長되었다.1944년 10月 3次 工事로 레이다 眞摯와 各種 地下 진지들이 建設되었고 1945年 2月 9日,
結好 作戰
이 承認되면서 聯合國의 上陸에 對備하여 各 施設을 잇는
터널 네트워크
를 形成되었다.
返還 以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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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戰爭
이 勃發하여 濟州島로 건너온 陸軍 第25敎育連帶가 摹瑟浦의 오무라
兵營
에
第1訓鍊所
를 차리면서 알뜨르 飛行場을 訓鍊場으로 利用하였다.
第5共軍
軍事顧問團員들이 駐屯하였는데, 이때부터
K-40 飛行場
으로도 알려지기 始作하였다.
2006年 11月 29日, 大韓民國 近代
文化遺産
登錄文化財
로서
格納庫
, 地下벙커,
셋알오름
의 洞窟眞摯와
高射砲 진지
가 指定되었다. 滑走路는
大韓民國 空軍
의 反對로 除外되었다.
[2]
2010年 4月 6日,
濟州道
新空港 立地 問題로 인하여
定石飛行場
과 함께 擧論되었다.
[3]
2011年 大韓民國 空軍에서
探索 救助
部隊를 創設하기로 決定하였다. 探索救助헬기인
HH-60P
,
HH-47D
와
CN-235
,
C-130
輸送機 電力 爲主의 大隊級 規模로 創設할 豫定이다.
[4]
이와 關聯하여 알뜨르 飛行場의 使用與否가 問題가 되었다.
金泰煥
"濟州道知事는 濟州島에 空軍 基地가 들어온다면 알뜨르 飛行場 밖에 자리가 없다"면서, 그래서 알뜨르 飛行場의 問題가 論議對象이 되었다고 말했다.
[5]
이러한 國防部의 濟州 南部探索救助部隊 創設 計劃과 關聯해, 민주노동당
盧會燦
議員은 "이 部隊는
濟州島民
을 속이기 위해 '戰鬪機'라는 用語만 削除했을 뿐 實際로는 戰鬪機 收容能力을 갖춘 部隊"라고 主張했다.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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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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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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