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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年 12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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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市民會館 火災 事故
(-市民會館火災事故)는 1972年 12月 2日, 只今의
世宗文化會館
자리에 있었던 서울市民會館에 火災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事件이다. 死亡 51名, 負傷 76名으로 集計되었으며 1971年
대연각호텔 火災
, 1974年의
淸凉里驛 大王코너 火災
와 함께 1970年代 서울市 3代 火災 事件 中 하나로 꼽힌다.
[1]
火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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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午後 8時 27分, 서울市民會館에서
文化放送
個國 11周年
10代 歌手 靑白戰
公演이 끝나 觀客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當時 舞臺에 섰던 歌手로는
南珍
,
이상렬
,
이용복
,
鄭薰姬
,
조미미
,
河春花
等이 있으며 新人賞 受賞者
김세환
과
정미조
, 特別賞 受賞者
김추자
, 코미디언
구봉서
,
곽규석
等도 있었다.
[2]
午後 8時 28分 무렵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舞臺 위에 假設된 照明裝置가 터지면서 불이 붙었다. 불이 發生하자 한 사람이 뛰쳐나와 빨리 待避하라는 손짓을 하였으며, 熱氣에 依해 내려진 幕이 들어올려지며 그 사이로 舞臺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보였다. 꼼짝도 못하고 있는 狀況에서 많은 사람들이 屋塔으로 올라가는 通路를 發見하고 龍鬚鐵 形態 模樣의 回轉式 階段을 타고 올라가는 選擇을 하기도 했다. 演技는 漸次 짙은 色으로 바뀌면서 膣式 水準의 狀況으로 發展하였고, 及其也 停電이 되면서 暗黑天地 속에 琉璃窓이 열기로 깨지는 等 複道 쪽 狀況은 漸次 急迫한 狀況으로 展開되고 있었다. 이 過程에서 窒息으로 쓰러지는 사람, 많은 人波 속에서 壓死하는 사람, 窓門이 깨지면서 墜落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大部分 死亡하였다. 어린이와 女子들이 主로 깔리고, 數十 名이 2層에서 1層으로 뛰어내려 2, 3層 死傷者가 大部分이었다. 또한 舞臺 뒤 또는 屋塔 近處에서 勤務 中이던 사람들 中에 犧牲者가 많았으며, 觀客들 中 一部가 아래層을 抛棄하고, 屋塔으로 올라가 犧牲되었다. 3千 餘 觀客 大部分은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나 階段에서 다른 觀客에게 밟히거나 舞臺 뒤 또는 屋塔 近處에서 勤務 中이던 사람들이 犧牲됐다.
[1]
이 事故가 있고 6年 後인 1978年 같은 자리에
世宗文化會館
이 지어졌다.
[1]
被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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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延建坪 3,432坪 中 小講堂을 除外한 3千餘 坪을 모두 태우고,
[2]
脫出하지 못한 51名이 膣式 또는 小使하고 76名이 負傷을 當했다. 財産 被害額은 約 2億 5,000萬 원으로 推算됐다. 負傷者 中에는 歌手
文珠蘭
과
金相姬
等이 있었다. 文珠蘭은 化粧室 琉璃窓을 깨고 뛰어내렸다가 第2腰椎 複合骨折의 重傷을 입었으며 김상희는 왼손과 왼발에 가벼운 負傷을 입었다.
[2]
寫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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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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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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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의 火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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