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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聞과 놀자!/피플 in 뉴스]民族의 情緖-아픔 노래한 詩人 ‘金素月’|東亞日報

[新聞과 놀자!/피플 in 뉴스]民族의 情緖-아픔 노래한 詩人 ‘金素月’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3月 29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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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룰없이(얼굴 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韓國의 代表的인 抒情詩人 김소월(1902∼1934·寫眞)은 ‘봄비’라는 詩에서 변덕스럽고 짧아서 아쉬운 봄의 민낯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本名인 김정식보다 素月(素月·흰 달)이라는 雅號로 더 알려진 詩人은 1902年 平安北道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두 살 되던 해 日本人들에게 甚하게 두들겨 맞은 아버지가 精神 異常으로 廢人이 되자 家族 모두 鑛山을 運營하던 祖父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마침 叔母로 들어온 계희영이 어린 素月과 많은 時間을 보내며 民謠 자락을 들려주는데 後날 素月의 詩에 民謠的 가락과 民族的 情緖가 얹히게 된 건 스승 金億의 影響과 더불어 當時의 經驗 德分이라고 합니다.

1915年 平北 五山學校 中學部로 進學한 素月은 一生의 스승 金億을 만나 詩를 쓰기 始作합니다. 素月은 1920年 雜誌 ‘창조’에 ‘浪人의 봄’으로 登壇하고, 1922年에는 ‘開闢’에 代表作 ‘진달래꽃’을 發表합니다. 以後 ‘산유화’, ‘초혼’, ‘접동새’ 等 只今도 有名한 詩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우리 民族의 情緖와 아픔을 노래한 詩人으로 자리매김합니다.

素月은 14歲의 어린 나이로 祖父의 親舊 孫女딸人 홍단실과 結婚합니다. 只今의 視線으로 보면 神奇하지만 當時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같은 時期 함께 工夫하던 오순이라는 女學生을 사랑하게 되는데, 素月이 有婦男이었고 오순이 19歲의 나이로 媤집을 가는 바람에 둘의 關係는 흐지부지 끝났습니다. 하지만 五旬은 結婚한 지 3年 만에 疑妻症이 甚한 男便의 손에 맞아 죽었습니다. 素月은 한없는 슬픔을 詩로 승화시킵니다. 그 詩들은 詩集 ‘진달래꽃’(1925年)에 실립니다. 詩集에는 오순의 葬禮式 直後 썼다는 ‘초혼’도 들어 있습니다.

素月의 末年은 至毒하게 힘들었습니다. 運營하던 ‘東亞日報’ 支局이 日帝의 妨害와 經營難으로 門을 닫으면서, 極度의 貧困과 持病에 시달리며 술에 依支하다 서른둘 젊은 나이로 世上을 떠났습니다. 直接的 死因은 腦溢血이지만 痛症을 잊기 위해 過度하게 먹은 阿片 後遺症이란 말도 있습니다.

全國의 山과 들이 진달래로 물들 때면 자연스럽게 그의 詩 ‘진달래꽃’李 召喚됩니다. 그만큼 素月은 韓國을 代表하는 詩人입니다. 또 그의 詩는 韓國 抒情詩의 뿌리로 評價됩니다. 하지만 그를 記念하는 文學館 設立은 오래도록 遲遲不進했습니다. 오로지 한 個人의 努力에 힘입어 2019年에야 忠北 증평군에 겨우 開館했습니다. 우리 社會가 韓國을 代表하는 詩人에게마저 얼마나 무심한지 보여주는 事例 같아 씁쓸합니다.


이의진 度宣告 敎師 roserain9999@hanmail.net
#新聞과 놀자! #피플 in 뉴스 #是認 #김소월 #抒情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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