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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國務部 “김영삼議員 除名事態에 깊이 憂慮”|東亞日報

美 國務部 “김영삼議員 除名事態에 깊이 憂慮”

  • 東亞日報
  • 入力 2013年 8月 23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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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記者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時代’] <96>除名

자신에 대한 국회의원직 제명 처리안이 통과된 직후인 1979년 10월 4일 국회본회의장 자신의 의석에 앉아 관련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린 동아일보(석간)를 보고 있는 YS. 동아일보DB
自身에 對한 國會議員職 除名 處理案이 通過된 直後인 1979年 10月 4日 國會本會議場 自身의 議席에 앉아 關聯記事가 큼지막하게 실린 東亞日報(夕刊)를 보고 있는 YS. 東亞日報DB
1979年 10月 3日 밤 9時頃 YS는 장충體育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要員의 案內를 받아 乘用車로 채 1分도 안 되는 距離에 있는 한 洋屋집에 到着했다. 김재규 部長이 入口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둘이 앉았다. YS가 먼저 “무슨 얘긴지 말을 해보시오” 하고 말을 꺼냈다. 다음은 이날 對話를 詳細히 紹介하고 있는 그의 回顧錄 ‘나의 決斷’에 나오는 部分이다.

‘金 部長은 “어제 (제가) 朴 大統領과 만나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約 2時間 동안 總裁님의 除名 問題에 對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共和黨에도 除名 命令이 내려갔습니다. 來日 午前 10時면 다 處理됩니다. 저는 大統領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金 總裁를 만나볼 테니 時間을 달라고 請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朴 大統領이 마지못해 承諾하더라는 것이었다. 김재규는 나에 對한 朴正熙의 感情이 極에 達해 있다면서 朴正熙가 (나를) 除名·拘束할 것은 勿論 죽이려 들 것이라고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總裁님도 不幸해집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그는 始終一貫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나보다 朴正熙가 먼저 죽을 거요. 金 部長도 操心하시오”라고 말했다.’

YS는 이렇게 斷乎하게 말했지만 김재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김재규는 나라와 나를 위하는 것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來日 아침에 國會에 나갈 때 잠깐만 記者室에 들렀다가 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記者들과 偶然히 歡談하는 척하면서 뉴욕타임스 會見 內容이 訛傳되었다고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다음은 言論을 完全히 掌握하고 있는 中央情報部의 몫이 될 것이었다. 나는 “絶對 그럴 수는 없다. 뉴욕타임스 記事는 分明히 내가 한 말이고 事實인데, 왜 取消를 하나. (나는) 除名을 擇하겠다. (이 政權이 나를) 拘束한다 해도 全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재규는 “現在 우리나라의 모든 情勢나 情報를 나만큼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朴 大統領은 金 總裁를 國會에서 除名하는데 그치지 않고 拘束까지 하려는 後續措置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處한 國家的 狀況과 國際的 움직임 等에 關해 길게 說明을 한 뒤 “結局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破滅입니다. 우리는 破局을 막을 責任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政府도 讓步를 해야 할 것이고 金 總裁도 조금 참아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듭 “記者會見 內容이 訛傳되었다거나 誇張해서 報道된 것 같다고만 해주는 方法이 없겠습니까? 그렇게만 해주시면 제가 除名 안 하는 方法으로 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

對話는 平行線을 달렸다.

‘나는 金에게 “金 部長이 나를 잘못 본 것 같소. 當身이 只今 나에게 한 말은 結局 나의 發言을 解明하라는 말인데, 나는 決코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나는 除名을 當하든 監獄엘 가든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소. (監獄에 가면) 내가 一時 죽는 것 같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永遠히 사는 길이오. 金 部長이 分明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이番에 나를 除名하는 것이 이 政權의 終末을 재촉하는 것이라는 事實이오. 나는 只今도 朴正熙 氏가 不幸해지는 것을 願치 않소. 只今 朴正熙 氏를 求하는 길은 民主主義를 하는 길 以外에는 달리 길이 없소.”

YS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時計를 보니 約 한 時間假量 지난 뒤였다. 김재규는 바깥까지 따라 나오면서 그에게 “한 番 더 再考해 주십시오. 일이 惡化되면 金 總裁나 閣下나 다같이 不幸해집니다”를 거듭 反復했다.

本來 回顧錄이란 것은 自己 立場에서 敍述되게 마련이라는 點을 勘案하더라도 YS가 이날 對話에서 傳하는 김재규의 말들에서는 單純히 情報部의 工作 次元을 넘어 어떻든 最惡의 事態를 避해보려는 努力이 읽혀진다. 一角에서는 傳統的 氏族觀念이 强했던 김재규가 YS와 同姓同本인 김녕 金氏라는 것도 YS에게 自身의 속내를 드러내는 一團의 契機가 되었을 것이라는 分析도 있다. 어떻든 “大統領이 當身을 拘束하려 한다” “이러면 大統領도 不幸해진다” 같은 말들에서는 不幸한 事態를 막아보려는 眞心이 느껴지는 것이 事實이다. 하지만 當時 資料들이나 證言들을 綜合해볼 때 김재규의 속내는 極少數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露出됐을 뿐 겉으로 볼 때는 어디까지나 朴 大統領의 忠直한 輔弼者였다는 게 衆論이다. 김재규는 이 만남 뒤 꼭 23日 만인 10月 26日 朴 大統領을 弑害한다.

79年 10月 4日 공화당과 유정회는 與黨 議員 總會室로 本會議 場所를 옮겨 與黨 議員들만이 參席한 가운데 ‘YS 議員職 除名 處理案’을 想定했다. 國會는 이날 白頭眞 國會議長이 申請한 警護權 發動에 따라 本會議場 出入口와 複道를 300餘 名의 私服 警察과 50餘 名의 國會 警衛들을 動員해 遮斷시키고 野黨 議員들의 接近을 막은 가운데 18分 만에 通過시켰다. 159票 全員 贊成이었다. 議政史上 첫 國會議員 除名 處理였다.

이에 對해 美國 政府까지 나서 遺憾을 表明하며 駐韓 美 大使를 불러들인다. 美 國務部는 4日 “우리는 韓國 國會가 野黨指導者 김영삼 氏를 除名한 것을 깊이 遺憾으로 생각한다”고 論評했다. 京鄕新聞 79年 10月 6日子는 이렇게 傳한다.

‘사이러스 밴스 美 國務長官은 윌리엄 글라이스틴 駐韓 美 大使를 워싱턴으로 召喚했으며 이에 따라 글라이스틴 大使는 6日 서울을 出發한다고 好딩 카터 美 國務部 代辯人이 5日 밝혔다. 代辯人은 美國 政府가 韓國 國會의 김영삼 議員 除名事態에 對해 깊이 憂慮하고 있음을 4日 分明히 밝힌다고 말하고 國務部가 4日의 이 事態 論評에 뒤이어 5日 駐韓 大使에게 歸國을 要請했음을 指摘해둔다고 말했다.’

新民黨 議員들은 國會 登院을 無期限 拒否하겠다고 밝혔다. 10月 13日엔 所屬 議員 66名 全員이 國會議員職 辭退書를 國會에 提出했다. 통일당 議員 3名도 同調했다.

YS 國會議員職 除名은 그의 政治的 根據地 釜山을 흔들었다. 除名이 電擊的으로 處理되고 꼭 12日 만인 10月 16日 釜山과 馬山에서 大規模 示威가 벌어지니 維新體制를 決定的으로 무너뜨리는 契機가 되는 ‘부마 民衆抗爭’이었다.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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