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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男便 殺害 부른 家庭暴力… 母女의 SOS, 아무도 듣지 않았다|동아일보

[Narrative Report]男便 殺害 부른 家庭暴力… 母女의 SOS, 아무도 듣지 않았다

  • 東亞日報
  • 入力 2012年 6月 2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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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監獄에서 더 平穩해 보였다. 軟綠色 壽衣(囚衣)를 입고 오늘도 ‘괜찮다’는 말만 繼續했다. “밥은 먹을 만해?” “그럼, 잘 먹지.” 김경숙(假名·64) 氏가 하얗게 센 머리를 긁적였다. 손등의 검버섯이 더 짙어져 있었다. 收監된 지 이제 9個月. 面會 때마다 反復되는 엄마의 ‘괜찮은 척’에 딸 은희(假名) 氏는 火가 치민다. 그는 ‘아버지가 엄마를 죽일지 모른다’는 걱정을 놓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拘置所에 갇히는 想像을 數없이 했는데 窓 너머에 壽衣를 입은 사람은 엄마다. 金 氏가 딸을 다독인다. “正말 괜찮아. 여긴 安全하잖아.”》
○ 엄마의 選擇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記者 soojin@donga.com
지난해 8月 그날도 男便 정재만(假名·68) 氏는 싱크臺 서랍을 열었다. 그러곤 25cm 길이의 食칼을 빼들었다. 집 안 淸掃를 몇 時間째 하는데 도와주지 않는다고 夫人이 不平을 한 直後였다. 金 氏는 집안 곳곳으로 도망치다 안房 欌籠 앞에서 男便이 든 칼과 맞닥뜨렸다. 鄭 氏는 발로 夫人의 무릎을 차 주저앉혔다. 칼끝은 金 氏 눈앞에 와 있었다.

“눈을 찔러 소경을 만들까, 배때기에 亂刀질을 할까.” 金 氏는 바닥에 누워 事情했다. “나 이빨 나가도, 軟骨 찢어져도 絶對 申告 안 할게. 제발 살려줘.” 男便은 몇 分間 칼로 찌르는 시늉을 하다 徐徐히 지치는 듯했다. “나가면 죽여 버린다.” 男便은 房바닥에 누우며 다리를 金 氏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칼은 바로 꺼낼 수 있도록 칼자루가 보이게 장판 안에 넣었다.

얼마 뒤 男便은 잠들었다. 칼로 찌른다는 말은 單純한 脅迫이 아니었다. 金 氏의 손가락과 왼팔 가슴 等에는 칼에 찔린 傷處가 여럿 있었다. 金 氏는 自暴自棄 狀態로 한동안 멍하니 있다 뭔가를 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大淸掃를 하느라 열어놓은 欌籠에 넥타이 3個가 있었다. 金 氏는 숨을 멈춘 채 팔을 뻗어 그中 한 個를 빼냈다.

○ 아버지의 발소리

아버지는 有名 公企業에 다녔다. 은희 氏는 아버지가 出勤한 直後 1時間이 가장 좋았다. 하루 中 緊張이 풀리는 唯一한 瞬間이었다. 點心부턴 마음이 무거워지고 저녁이 되면 집 周邊 발소리에 귀가 쏠렸다. 아버지는 술을 싫어해 大部分 맑은 精神으로 歸家했다. 그의 구두 소리는 漸漸 커지다 門 앞에서 ‘딱’ 소리를 내며 멎었다. 열쇠를 찔러 넣는 ‘드르륵’ 소리는 은희 氏의 心臟을 貫通했다.

家族들은 함께 食事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食事를 하면 밥床이 뒤집히는 일이 많았다. 누군가가 젓가락질을 서툴게 하거나 學校에서 있었던 일을 無心코 얘기하다 奇襲的으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아버지는 ‘애들 敎育을 왜 이 따위로 시키느냐’며 椅子나 革帶로 엄마를 때렸다. 仙人掌 花盆을 던져 엄마 얼굴에 가시가 수북이 박히기도 했다. 집에서 벌어지는 些少한 日常 하나하나가 아버지에겐 暴行의 핑계였다. 은희 氏는 初等學校 때 쓴 日記에 “아빠가 한 달에 한 番만 때렸으면 좋겠다”고 所願을 빌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理由가 늘 궁금했지만 어느 瞬間부턴 주먹질이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家族들은 鄭 氏가 차라리 술자리를 즐기길 懇切히 願했다. 집에 늦게 들어오면 그와 함께 있는 時間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술에 醉했을 때만 暴力的이 된다면 언제 防禦가 必要할지 豫測도 可能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暴力은 언제나 느닷없었다. 煉炭을 옮기며 달궈진 집게로 허벅지를 찌를 듯 휘둘렀고 펜치로 生니를 뽑았다. 房門을 잠그고 숨으면 손도끼로 門고리를 내려치고 들어왔다. 성한 門이 없어 언제부턴가 숨을 곳이 없었다. 엄마는 딸들이 집에 있을 땐 아버지 손을 잡고 안房에 들어갔다. 그 안에선 ‘퍽퍽’ 하는 鈍濁한 소리와 ‘헉헉’ 하며 呻吟을 삭이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나오면 얼마 뒤 엄마가 피 묻은 手巾을 들고 나왔다. 엄마는 그때마다 “이제 괜찮으니까 工夫해”라고 했다.

은희 氏는 父母가 浴室에서 半裸體로 있는 場面을 種種 目擊했다. 엄마에겐 가장 몸서리쳐지는 時間이었다. 食堂일을 하는 金 氏가 귀가 豫定時間을 넘겨 집에 오면 男便은 “어떤 놈이랑 있다가 왔느냐”며 漂白劑로 下體를 씻게 했다. 機械를 잘 다뤘던 男便은 집 電話에 盜聽裝置를 設置해 通話 內容을 隨時로 엿들었다.

○ 反響 없는 SOS

“警察입니다. 말씀하세요.” “아빠가 엄마를 때려요.” “어떻게 때리니?” “엄마를 칼로 찌르려고 해요.” “그래, 警察 아저씨 보내 줄게.” “엄마 얼굴에 피나요. 살려 주세요.”

은희 氏가 警察에 처음 申告한 건 初等學校 4學年 때다.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 손으로 電話機를 들었다. 30分쯤 뒤 到着한 警察은 招人鐘을 눌렀다. 아버지가 인터폰 受話器를 들었다. “네? 夫婦싸움이라뇨. 只今 집에 혼자 있어요. 女子애요? 우리 집에 딸이 없는데….” 인터폰 畵面이 꺼지자 은희 氏의 半바지가 小便으로 젖기 始作했다.

몇 年 뒤 은희 氏는 다시 勇氣를 냈다. 그날 엄마는 안房에서 生니를 뽑히기 直前 浴室로 逃亡을 쳤다. 아버지는 펜치를 손에 쥐고 浴室 門을 두드리고 있었다. 警察에게 이番엔 집에 꼭 들어와 달라고 했다. 警察官은 招人鐘을 누르는 代身 玄關門을 두드렸다. 아버지는 浴室 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中間에 나오면 알지.” 아버지는 紙匣을 꺼내 쥔 채 玄關門을 열었다.

“추운데 苦生이 많으시죠?” 警察官은 심드렁한 表情으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애들 敎育 問題로 아내와 言聲이 좀 높아졌습니다. 제가 잘 타이를게요.” 警察官은 玄關門 앞에 선 채 집 안을 둘러봤다. 아버지는 警察官을 집 밖으로 잡아끌더니 紙匣 속 社員證을 꺼내보였다. “내가 이 會社 次長으로 있습니다. 내 親舊가 地方議員이고….” 警察官은 몇 마디를 더 나누더니 擧手敬禮를 하고 階段을 내려갔다. 이때 은희 氏가 맨발로 달려 나가 警察官의 허리춤을 붙들었다.

“申告는 제가 했는데 왜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물어보세요.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고요.” 警察官은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점잖으신 분 같은데 좀 더 지켜보자. 當場 칼부림 난 것도 아닌데 우리가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기도 그렇고….”

‘쾅 쾅 쾅.’ 세 番째 申告를 받고 온 警察이 玄關門을 두드리는 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門 빨리 여세요.” 그날 아버지는 컴퓨터 冊床을 고치다 大型 드라이버로 엄마 머리를 내리쳤다. 居室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도 오늘은 어찌하지 못하리라. 은희 氏는 期待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넘어진 椅子를 일으켜 세우고 물걸레로 핏자국을 닦기 始作했다.

은희 氏는 遑急히 뛰어나가 玄關門을 열었다. 아버지는 平素처럼 警察官에게 깍듯이 人事한 뒤 나가서 얘기하자며 어깨를 감쌌다. 警察은 “가만히 계세요”라며 뿌리쳤다. 警察은 머리에 피딱지가 앉은 엄마를 보며 自初至終을 물었다. 警察 옆에 서 있던 아버지가 엄마의 눈을 노려봤다.

“괜찮은데….” 엄마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줌마 正말 괜찮아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 氏가 가슴을 치며 끼어들었다. “아저씨 只今 가면 우리 엄마 正말 죽어요.” 警察官은 한숨을 쉬다 “잘 和解하라”며 돌아갔다. 엄마는 그날 처음으로 은희 氏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나 이러고 사는 거 너무 치욕스러워서 남한테 알리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네 아빠, 너 結婚式場 들어갈 때 네 손 잡아줄 사람이잖아. 나중에 늙으면 못 때릴 거야.”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는 건 ‘도망가면 地球 끝까지 쫓아와 죽일 것’이란 恐怖 때문만은 아니었다.

○ 처음이자 마지막 抵抗

金 氏가 自身에게 다리를 올린 채 잠든 男便의 얼굴을 봤을 때 그間 暴力의 痛症들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男便이 눈을 떴을 때 始作될 苦痛을 떠올리니 넥타이를 쥔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金 氏는 넥타이로 圓 模樣 매듭을 만든 뒤 男便 목에 걸고 잡아당겼다. 男便이 화들짝 놀라 깨 몸을 일으키자 金 氏는 男便의 등 쪽으로 몸을 避해 뒤에서 목을 졸랐다. 金 氏는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수박色 어둠이 깔린 하늘에 螢光色 直線이 여러 個 그어지는 幻影을 보았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는 幻聽까지 들리며 몸에는 힘이 솟구쳤다.

父母와 따로 사는 은희 氏는 이튿날 警察署에서 온 電話에 잠에서 깼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警察은 暫時 머뭇했다. “어머니가 容疑者로 잡혀 있습니다.”

딱 1年 前인 2010年 8月, 은희 氏는 國民權益委員會 홈페이지 申聞鼓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40年間 아버지의 暴行으로 무릎 軟骨이 찢어져 걸을 때마다 痛症을 느끼고 이가 부서져 飮食을 갈아서 드시면서도 子息들 傷處받을까 봐 숨기시는 우리 엄마를 救해 주세요. 法은 豫防과 保護가 아닌 判決을 위해서만 存在하는 것인가요.” 民願擔當者는 無料 相談所에 問議하라며 電話番號 몇 個를 적은 答辯을 보냈다. 은희 氏가 이미 여러 番 相談했던 곳이었다.

1審 裁判이 열린 2月 어느 날, 證人席에 선 은희 氏에게 檢事가 물었다. “學閥도 좋고 留學까지 다녀온 成人인데 이런 일이 벌어질 때까지 그동안 뭘 하셨습니까.” 은희 氏는 오래前 엄마가 出動한 警察官 앞에서 ‘괜찮다’고 말할 때 느꼈던 無力感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

“이 地境까지 견뎌낸 게 나의 罪입니다. 언젠가 벗어날 수 있을 거란 希望을 가진 게 罪일 테죠.” 은희 氏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을 내뱉지 못했다. 被告人 最後陳述을 하던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제가 저지른 끔찍한 잘못 謝罪합니다. 스물두 살에 媤집와 예순넷. 그래도 이젠 携帶電話로 누구와도 通話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어 마음이 가볍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抵抗은 殺人으로 끝이 났다. 法院은 金 氏에게 懲役 5年을 宣告했다. 男便이 칼을 휘두르다 잠든 狀態에서 犯行이 이뤄졌기 때문에 ‘現在의 不當한 侵害’에 該當하지 않아 正當防衛로 볼 수 없다고 判示했다. 男便이 凶器를 휘두르는 동안 反擊을 했어야 正當防衛가 될 수 있다는 論理였다. 서울高等法院은 다음 달 金 氏에 對한 抗訴審 宣告를 한다.

신광영 記者 neo@donga.com

[채널A 映像] 30年 家庭暴力 견디다 못해…가족들이 아버지 殺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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