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全量 輸入하던 原料醫藥品 開發해 輸出 “다음에 크면 事業은 하지 마라.” 事業 失敗로 家勢가 기울자 아버지가 어린 子女들(3男 1女)에게 當付했다. 炭鑛 所長을 지낸 아버지는 印刷所를 運營해 번 돈으로 金鑛 開發에 나섰다가 빚까지 지게 됐다. 정든 서울 약수동 韓屋을 떠나 無許可 板子村으로 옮겼다. 初·中學生 때 形便… 2017-04-06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10餘 個 企業과 ‘結婚’韓 M&A 鬼才 京畿 驪州에서 5男妹(2男 3女) 中 막내딸로 태어났다. 父母는 驪州에서 精米所를 運營하다 서울로 移徙해 米穀商을 크게 차렸다. 어린 時節 洞네 어른을 볼 때마다 해맑게 웃으며 人事해 사랑을 獨차지했다. 學校에 다닐 때는 通帳에 돈이 조금씩 쌓이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워 用돈은 勿論이고… 2017-03-08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國內 첫 인터넷쇼핑몰 연 벤처 1世代 全北 益山에서 10男妹(6男 4女) 中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많은 子息을 먹여 살리려고 農事를 지으면서 닥치는 대로 副業을 했다. 힘들어도 내色하지 않을 만큼 剛하고 自尊心이 셌다. “登錄金이 싼 서울대에 못 갈 거면 막勞動이나 하고 살아라.” 어머니는 大學 學費를 대줄 形便… 2017-02-08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創業 위해 中小企業에 入社한 서울대 博士 서울에서 8男妹(5男 3女) 中 막내로 태어났다. 父親은 光復 後 말 세 필로 穀物을 配達하는 運送業을 했다. 新女性人 母親은 子女 敎育에 힘썼다. 그 影響으로 家庭 形便이 넉넉지 않았지만 8男妹 모두 大學을 나왔다. 어린 時節 父母가 强調했던 正直을 只今도 座右銘으로 삼고 있다. … 2017-01-11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援助 보톡스 會社에 技術 輸出한 巨人 어린 時節 好奇心이 많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해 周圍에 묻거나 百科事典을 보며 理解할 때까지 배웠다. 좋아서 하는 일은 時間 가는 줄 모르고 沒入했다. 커서 科學者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대 微生物學科를 마치고 KAIST 大學院(生命科學과)에 進學했다. 양규환 敎授 밑에… 2016-12-14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맨주먹으로 賣出 1兆 企業 이룬 ‘망치 會長’ 光復 後 歸國한 在日同胞 家庭에서 8男妹(6男 2女) 中 막내로 태어났다. 故鄕 집은 慶北 義城郡 다인면 中心街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家庭 形便이 어려워 初等學校와 中學校를 제때 卒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눅 들지 않으려고 늘 自身 있게 行動했다. 그의 父母는 사람에게 가… 2016-11-16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展示産業 不毛地이던 韓國을 先進國으로 만들다 1948年 全南 寶城에서 3男妹(2男 1女) 中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病患으로 일찍 世上을 떠나 얼굴조차 記憶에 없다. 猝地에 男便을 잃은 어머니는 갖은 苦生을 하며 억척스럽게 子女를 키웠다. 獨學으로 한글을 깨친 어머니는 子息들을 嚴하게 가르쳤다. 품앗이로 모내기를 할 때 하나… 2016-10-19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革新 裝備로 韓國을 半導體 世界 1位로 만들다 慶北 高齡에서 6男妹(2男 4女) 中 막내로 태어났다. 父親은 約 40家口가 사는 작은 시골에서 農事를 지으며 방앗間을 運營했다. 家庭 形便은 어려웠다. 빨리 就業하기 위해 人文系 高校 代身 工高에 入學했다. 동양工高를 나와 工場에 들어갔다. 親舊들이 工夫를 잘하는데 왜 就職하느냐며 … 2016-09-21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정주영 會長에게 배워 自手成家한 高卒社員 全北 長水에서 農夫의 5男妹(1男 4女) 中 막내로 태어났다. 學費가 없어 中學校에도 못 갈 만큼 家庭 形便이 어려웠다. 오수중 入學試驗에서 1等을 해 3年間 學費를 免除받았다. 工夫에 對한 熱意로 집에서 8km 떨어진 中學校를 걸어 다녔다. 빨리 就業하려고 全州公告(機械科)에 進學했… 2016-08-24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LCD TV 失敗 딛고 交通카드 決濟시스템 開發 慶北 榮州에서 6男妹 中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時節 銀行員을 꿈꿨다. 父親은 初等學校 敎師였으나 薄俸이라 6男妹가 배불리 먹는 것조차 어려웠다. 굶지 않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初等學校 때 暗算大會에 나가 入賞할 만큼 山水도 잘했다. 當時 俸給을 많이 주는 銀行은 崔… 2016-07-20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國內 로봇産業 開拓해 온 1世代 走者 “一生의 業으로 삼아도 되겠다.” 1982年 國費 留學生(博士 過程)으로 美國 미시간大에 가 보니 로봇 硏究가 한창이었다. 로봇이 想像 속에 머물지 않고 現實 가까이 와 있다는 事實을 알고 놀랐다. 로봇工學을 처음 接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아톰, 鐵人28號 같은 漫畫나 空想科學(… 2016-06-22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皮膚美容 時代를 연 레이저 醫療器 國産化 “레이저 醫療器를 開發합시다.” 40歲 때인 1997年 創業한 그는 職員 6名에게 事業 方向을 밝혔다. 어떤 製品을 어떻게 만들지 具體的인 計劃은 없었다. 다만 皮膚 美容에 쓰는 레이저 醫療器를 開發하면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기쁨을 주고 會社도 成長할 것이라는 確信이 있었다. … 2016-05-25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맨손으로 500億 企業 일군 中卒 구두丈人 “구두 만드는 法 배워 볼래?” 家庭形便이 어려워 中學校를 마친 뒤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就業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때 忠南 瑞山에서 구둣房을 運營하던 작은아버지가 돈벌이도 괜찮다며 製靴 技術을 勸했다. “해보겠습니다.” 16歲 때 修習工으로 구두와 因緣을 … 2016-04-27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破産 딛고 리어카 끌며 1000億 企業 일군 오뚝이 “學習紙 어떻습니까?” 形便이 어려운 家庭의 7男妹 中 셋째인 그는 1974年 除隊일이 다가오자 뭘 해서 먹고살지 걱정이 됐다. 그때 親하게 지내던 後任兵이 아이디어를 줬다. 學習紙 代理店을 해보라고. 外出을 나가 可能性을 確認했다. 除隊 5日 後 父親의 도움을 받아 故鄕(慶南 고… 2016-03-30 좋아요 個 코멘트 個
[金尙喆 專門記者의 企業家 列傳] <17> 차근식 아이센스 社長 17>政府 擔當者의 말을 듣자 묵은 滯症이 싹 가신 듯했다. 大學 敎授인 그는 3年짜리 政府 硏究課題를 맡아 1年間 主管했다. 生體物質의 微細한 變化를 分析할 수 있는 超小型 機器인 바이오 멤스를 開發하는 課題였다. 그런데 2年 次부터 사업화할 中小企業이 課題를 主管해야 한다는 條件이 붙어… 2016-03-02 좋아요 個 코멘트 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