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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世界遺産을 지켜라] <4>佛敎藝術 精髓, 印度 아잔타 石窟|東亞日報 </4>

[유네스코 世界遺産을 지켜라] <4>佛敎藝術 精髓, 印度 아잔타 石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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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10年 9月 7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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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變萬化 壁畫의 威容도 몰려드는 人波에 ‘몸살’

불교벽화의 진수를 드러내는 아잔타석굴 중 17번 석굴의 벽화 일부. 무역상인 심할라(왼쪽 위 흰 코끼리를 타고 머리에 관을 쓴 인물)가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얻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뒤 자신의 아버지와 왕국을 몰살한 괴물들을 섬멸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서고 있다. 동물들의 세부묘사가 뛰어나다.
佛敎壁畫의 眞髓를 드러내는 아잔타石窟 中 17番 石窟의 壁畫 一部. 貿易商人 심할라(왼쪽 위 흰 코끼리를 타고 머리에 冠을 쓴 人物)가 觀世音菩薩의 도움을 얻어 가까스로 목숨을 救한 뒤 自身의 아버지와 王國을 沒殺한 怪物들을 殲滅하기 위해 軍隊를 이끌고 나서고 있다. 動物들의 細部描寫가 뛰어나다.
《 印度는 유네스코 世界遺産에 登載된 文化, 自然, 複合 遺産이 28곳이나 되는 世界 7位의 ‘流産 强國’이다. 政府가 管理하는 古代 遺跡이나 紀念碑的 建築物도 3000곳이 넘는다. 人類 文明과 主要 宗敎의 發祥地여서 그런지 발길 닿는 곳이 遺跡이요, 발길에 차이는 것이 遺物이다. 그래서 줄곧 疑問이었다. 어떻게 아잔타 石窟이 숱한 引渡의 遺産 中 世界遺産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릴 수 있었는지. 그것도 그 有名하다는 타지마할과 함께. 이 물음은 아고라 江 峽谷 絶壁의 29個 洞窟을 마주한 뒤 첫 番째 洞窟 속으로 발걸음을 뗄 때까지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周圍를 어렴풋이 分別하면서 解答은 슬며시 찾아들었다. 》

○ “시스티나 聖堂은 잊어버리렴”

바닥 等이 隱隱히 뿜어내는 옅은 朱黃빛 너머로 觀世音菩薩과 사람 動物 그리고 온갖 花草가 徐徐히 모습을 드러냈다. 1500年을 견뎌낸 壁畫는 釋迦牟尼 부처의 前生 이야기인 자타카(Jataka)를 主로 描寫했다. 時間의 더께가 내려앉아 色感은 多少 흐릿하지만 그럼에도 華麗한 色이 어우러졌다.

話法은 精巧하고 섬세하다. 出家를 決心한 王의 마음을 돌리려고 王妃가 女性으로만 構成된 樂團과 舞踊手를 불렀다. 피리를 불고 북을 치는 女性 演奏者 사이에서 舞姬가 춤을 춘다. 花冠을 쓰고 크고 작은 寶石이 세 겹을 이룬 목걸이를 둘렀다. 발과 손은 夢幻的인 리듬을 탄 듯 奇妙하게 구부러졌다. 兩손의 엄지와 검指를 맞닿게 하고 나머지 손가락은 부드럽게 편 模樣이 요즘의 印度 舞踊을 聯想시킨다.

여러 이야기가 時間의 順序와 相關없이 壁面 여기저기서 마주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進行되다가 어느새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이야기와 겹친다. 魔王 마라의 誘惑을 견뎌내는 싯다르타가 그려지더니 사랑하는 男女가 官能的인 姿勢로 서로를 탐하는 場面이 보인다. 蓮꽃을 든 觀世音菩薩이 登場하더니 먼 異國 페르시아에서 온 使節이 人事를 하고 있다. 成果 속이 서로 調和를 이룬다.

몬순의 濕氣를 담뿍 머금은 洞窟 밖 길을 따라 다음 洞窟로 또 다음 洞窟로 걸음을 옮기니 숨이 차오른다. 曼陀羅처럼 얽혀드는 壁畫의 饗宴에 醉한 듯하다. 前날 아잔타 石窟 管理를 맡고 있는 印度 文化部 傘下 考古學探査委員會(ASI) 現場所長의 말이 생각났다. ‘時間的 餘裕가 없어도 꼭 봐야 할 石窟은 어디냐’는 質問에 水夫라만얌 博士는 “1, 2, 16, 17番을 보세요. 이 壁畫야말로 아잔타 石窟의 精髓입니다”라고 答했다.

아름다움만이 全部는 아니다. 온몸을 덮치는 건 경이로움과 戰慄이다. 아잔타 石窟 壁畫를 洞窟 속에 어렴풋이 비치는 自然光만으로 찍은 寫眞集을 1998年 펴낸 引渡의 寫眞作家 베노이 K 벨은 “아잔타壁畫는 르네상스 時期 유럽에서 꽃피운 프레스코 壁畫에 比肩된다”고 말했다. 노벨 文學賞 受賞者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作家 네이딘 고디머 氏는 1997年 아잔타 石窟을 둘러본 뒤 이런 글을 남겼다. “親舊들에게 시스티나 聖堂은 잊어버리고 아잔타 石窟을 보라고 하겠다.” 이탈리아 시스티나 聖堂에는 미켈란젤로의 天障畫 ‘天地創造’와 壁畫 ‘最後의 審判’이 있다.

○ 虎狼이를 잃고 寶物을 찾다

1819年 4月 引渡 駐屯 英國軍 존 스미스 大尉는 部隊員들과 아잔타 마을 隣近 숲에서 虎狼이 사냥에 나섰다. 언뜻 비친 虎狼이 자취를 쫓던 스미스 大尉는 숲이 사라지고 앞쪽의 땅이 푹 꺼지는 地點에 이르렀다. 絶壁 아래로는 瓦鼓라 江이 말발굽 模樣으로 굽이쳐 흐르고 江 저便에는 그 模樣대로 높은 鎔巖 絶壁이 솟아 있었다. 絶壁 中間쯤 검은 구멍이 連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스미스 大尉 一行이 江을 건너 絶壁을 기어올라 들어간 洞窟은 10番 石窟. 紀元前 1世紀頃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石窟이다. 그들 一行을 맞이한 건 박쥐 떼와 人間의 遺骨 및 動物의 뼈, 바닥에 수북이 쌓인 재와 落葉이었다. 곧 그들은 코끼리 孃 等이 彫刻된 기둥과 壁畫를 發見했다. 그러나 그들이 더욱 놀란 건 바로 이 石窟이 自然 洞窟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人間이 만든 作品이라는 點이었다.

29個의 石窟은 電氣에 6個, 後期에 23個가 만들어졌다. 紀元前 1世紀∼書記 1世紀 佛敎 初期 히나야나(Hinayana) 時代에 現在의 9番과 10番(祈禱하는 곳) 및 8, 12, 13, 15番(修道하는 곳)이 建設됐다. 以後 西紀 5世紀 中葉∼6世紀 初 印度 中部의 帝國 바카打카의 하리세나 王 指揮 아래 두 番째 石窟이 追加로 만들어졌다.

먼저 끌과 망치를 든 石工이 絶壁 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갔다. 줄에 매달린 石工들은 天障이 될 部分에서 아래로, 또 앞에서 뒤로 쪼아나갔다. 無酌定 빈 空間을 파내는 것이 아니라 기둥이 되고 스투파(탑)를 만들 巖盤, 修道僧의 空間과 寢牀을 만들 巖盤은 남겨 놓았다. 事前에 精密한 設計가 없이는 不可能한 作業이었다.

石工이 기둥과 壁面의 浮彫까지 다 새기고 나면 化工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이들은 石窟 周邊의 숲에서 얻을 수 있는 高嶺土와 石灰石(흰色), 代赭石(代字石·붉은色과 노란色), 海綠石(海綠石·綠色), 검댕(검은色) 그리고 靑金石(靑金石·靑色)으로 여섯 가지 色을 만들고 이를 混合해 千變萬化(千變萬化)의 壁畫를 그려냈다.

아잔타 石窟은 두 番에 걸쳐 佛敎文化가 隆盛할 때 最高 匠人들의 손을 거친 傑作이다. 이 때문에 1983年 世界 文化遺産에 登載될 때 1個만 充足해도 되는 通過基準 6個 中 4個나 만족시켰다.

○ 아잔타 最大의 挑戰은 ‘保存’

5世紀 말 하리세나 王이 갑자기 숨지고 힌두敎에 밀린 佛敎가 衰退하면서 아잔타 石窟은 잊혀졌다. 逆說이지만 잊혀졌기 때문에 只今의 石窟과 壁畫를 維持할 수 있었다. 하지만 狀況은 달라졌다. 考古學探査委員會(ASI) 統計에 따르면 지난해 4月부터 올해 3月까지 아잔타 石窟 觀覽客은 約 39萬 名(印度人 36萬, 外國人 3萬 名). 하루 平均 1000名 以上이 石窟을 찾은 셈이다. 이들이 아잔타 石窟을 威脅하는 最大 要因 中 하나다.

勿論 ASI와 地方政府도 많은 努力을 기울이고 있다. 車輛 煤煙이 石窟에 影響을 미치지 않도록 遺跡 1.6km 以內에서는 天然가스버스만 運行한다. 觀光客은 바닥 保護를 위해 신발을 벗고 石窟에 들어가야 한다. ASI 關係者는 “地域과 氣候 때문에 石窟에 물이 새거나 巖盤이 갈라지는 等 問題가 있지만 觀覽客이 많아서 壁畫가 被害를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一部에서는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게 하고 돈을 받는 모습도 보였다. 또 石窟마다 하루 觀覽客 數를 制限하고 貴重한 壁畫는 模造品을 만들어 그것만 보게 하자는 ‘急進的’인 提案까지 나오는 마당에 ASI의 狀況 認識이 올바른지는 疑問이다.

유네스코 델리 事務所의 니콜 볼로메이 文化局長은 “아잔타 石窟은 觀光과 地域, 그리고 保存의 트라이앵글 안에 있다”고 말한다. 人類 報告인 石窟의 眞髓를 鑑賞하게 하는 것이 觀光이라면 地域은 이를 통해 實利를 얻으려고 한다. 이 틈바구니에서 遺産을 지켜내기 위해 누군가는 안간힘을 써야 한다. 歲 꼭짓點이 最大限 均衡을 維持하도록 하는 것이 아잔타 石窟이 直面한 가장 큰 挑戰인 셈이다.

글 · 寫眞 아잔타(印度)=민동용 記者 mindy@donga.com

이 시리즈 記事는 유네스코의 協調下에 동아일보의 判斷과 觀點을 바탕으로 作成됐습니다. 유네스코 世界遺産에 對한 一般 情報는 유네스코 世界遺産센터(whc.unesco.org) 및 유네스코韓國委員會(unesco.or.kr)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왼쪽)연꽃을 들고 인자한 모습을 보이는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1번 석굴 벽화.(가운데)4번 석굴 본존불상. 부처가 최초로 설법할 때 했다는 손모양(설법인)을 취했다. (오른쪽)기도하는 장소인 19번 석굴. 중앙의 스투파에 부처의 부조가 이채롭다.
(왼쪽)蓮꽃을 들고 仁慈한 모습을 보이는 觀世音菩薩을 表現한 1番 石窟 壁畫.
(가운데)4番 石窟 本尊佛像. 部處가 最初로 說法할 때 했다는 손模樣(說法인)을 醉했다.
(오른쪽)祈禱하는 場所인 19番 石窟. 中央의 스투파에 部處의 浮彫가 異彩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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