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世紀 靑年 作家들]
<9>‘25살差 結婚’ 是認 박연준
9>
詩人이 되고도 박연준 氏(38)의 生活은 고단했다. 大學을 卒業하던 해. 登壇의 기쁨은 잠깐이었고 學資金 貸出을 갚기 위해, 月貰를 내기 위해 밥벌이를 멈추지 말아야 했다. 機械 部品을 다루는 雜誌, 을지로의 印刷所, 光觸媒 施工業體 等 職場을 轉轉했다. “하나의 職業만 갖는 게 꿈이었어요(웃음).”
글만 쓰고 싶다는 熱望은 일터가 刻薄해서 그랬으리라고 여긴다는 그이다. 제대로 月給 받고 때맞춰 昇進했더라면 안 그랬을지도 모른단다. 2年에 한 卷꼴로 冊을 냈고 詩集과 散文集 7卷을 쌓아올렸다.
25年이라는 나이 車를 건너 詩人이자 小說家인 장석주 氏(63)와 結婚한 것으로 話題가 되기도 했지만, 박연준 氏는 ‘섬세한 言語를 통해 뿜어 나오는 潑剌한 에로티시즘의 美學’(評論家 조재룡)이라는 評과 함께 注目받아온 詩人이다.
그는 “男便이 늘 북돋워 주고 激勵해 준다. 내 詩에 讀者가 反應하는 것을 기뻐해 준다”고 했다. 같은 分野에 몸담은 이들에게 있을 법한 神經戰이 없다면서 “競爭心을 느끼기엔 나이 差가 많이 나서인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도 前에 (장석주 氏가) 登壇했으니…”라고 率直하게 말하면서 웃었다.
어렸을 적 嚴格한 姑母가 한글을 깨치게 하려고 同時 외기, 童話 베껴 쓰기 같은 課題를 내준 德分에 박연준 氏는 文學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했다. 將來希望은 라디오 DJ였지만 뭔가를 늘 끼적이는 게 日常인 學生이었다. 敢히 詩人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詩 쓰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詩를 完成했을 때의 感情은 “庫間이 가득 채워진 것 같은 氣分”이었다.
“20世紀에 文學 한다고 하면 浪漫을 떠올렸을 텐데, 只今은 다들 生計型이에요. 先輩 作家들은 團體나 同人 같은 네트워크로 連累돼 있었지만, 21世紀는 個人的인 섬이지요. 文人은 職業이 될 수 없어요.” 事務員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靑春을 보낸 그가 젊은 文人들이 겪는 現實을 吐露할 때 얼굴은 어두워졌다.
지난 世紀와의 差異가 또 하나 있다고 했다. ‘움직임’과 ‘기다림’이 없어졌다.
“知人이 오늘 낮에 뭘 먹었는지, 버스는 언제쯤 오는지 뭐든 그 자리에서 確認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요! 20世紀엔 보고 싶은 걸 찾아서 봤는데 只今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보이는 걸 봅니다. 손 안에 世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實은 스마트폰만 한 世界를 갖고 있는 거죠.”
그는 두 달 前 폴더폰으로 交替했다면서 “생각하는 時間, 詩 쓰는 時間을 갖게 됐다”며 “世上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새로운 機器로 인한 變化가 안타까운 건 事實”이라고 말했다.
詩人은 스마트폰이 象徵하는 ‘速度’의 反對便에 文學이 있다고 봤다.
“이 빠르고 效率的인 世上에서 文學은 삶의 발목을 잡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분주한 사람들을 세워서 當身의 內面은 괜찮으냐고 묻지요. ‘누가’ ‘언제’ ‘어디서’보다 ‘무엇을’ ‘어떻게’ ‘왜’에 注目하는 것, 그것이 이 時代 文學의 役割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영 記者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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