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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호모부커스]〈103〉絶筆(絶筆)|東亞日報

[표정훈의 호모부커스]〈103〉絶筆(絶筆)

  • 東亞日報
  • 入力 2018年 3月 26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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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出版評論家
톨스토이는 小說 ‘안나 카레니나’가 成功을 거둔 뒤 1870年代 後半 突然 絶筆을 宣言했다. 그間 僞善的인 글을 써왔다고 自責했지만, 삶에 對한 會議와 죽음에 對한 恐怖에서 비롯된 苦惱가 眞짜 理由였다. 以後 宗敎的 人道主義에 心醉해 禁慾 生活을 했지만 絶筆이 繼續되지는 않아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年) ‘크로이처 소나타’(1889年) ‘부활’(1899年) 等을 내놓았다.

武俠·歷史小說 作家 진융(金庸)은 17年 동안 小說 15種을 發表했다. ‘녹정기’ 新聞 連載를 끝낸 1972年 48歲 때 絶筆을 宣言했다. 그때까지 쓴 作品을 뛰어넘는 作品을 쓰기 어렵다고 判斷한 때문이라거나, 作家보다는 言論人이자 評論家로 불리길 願했기 때문이라는 說 等이 있다.

尿酸 김정한(1908∼1996)은 日帝强占期 末부터 1960年代 中盤까지 25年 동안 絶筆했다. 作家 스스로 ‘20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왔다’고 했지만, 그 期間에도 發表하지 않았을 뿐 小說과 戱曲을 썼다. 김승옥은 1980年代 初 동아일보에 ‘먼지의 房’을 連載하던 中 新軍部의 檢閱에 抗議하며 絶筆을 宣言한 뒤 映畫監督과 시나리오 作家, 出版社 編輯主幹, 大學敎授 等으로 일했다. 2003年 腦中風(腦卒中)으로 쓰러진 그는 이듬해 散文集 ‘내가 만난 하나님’을 냈다.

小說家 한수산은 1981年 5月 國軍保安司令部로 끌려가 고문당했다. 新聞 連載小說 ‘欲望의 거리’ 內容을 問題 삼은 蠻行이었다. 풀려난 뒤 3年間 絶筆했고 1988年 日本으로 떠나 4年 뒤 돌아왔다. 小說家 김주영은 1989年 10月 絶筆을 宣言했다. “內面에 더 以上 글을 써나갈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理由였지만 1年餘 만에 執筆을 再開했다. 絶筆 理由는 個人的인 것에서부터 社會的, 政治的인 것까지 다양하다.

作家 生活에서 隱退하는 것이 가장 自然스러운 絶筆이라면, 1970年代 中盤부터 隨筆을 쓰지 않은 피천득(1910∼2007)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限界에 到達했다고 느낄 때 바로 붓을 꺾어야 하지요. 그런데 쓰지 않으면 世上에서 잊히는 것만 같아서 前만 못한 글을 자꾸 써댄단 말이죠. 그러다 보면 글이 價値가 낮아지고 虛僞가 되고 水準 以下의 글쓰기를 되풀이하게 돼요.”(‘대화’ 中에서)
 
표정훈 出版評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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