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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男便을 建國 始祖, 將軍 만들고 子息들 剛하게 키운 高句麗 女人들|東亞日報 </13>

<13>男便을 建國 始祖, 將軍 만들고 子息들 剛하게 키운 高句麗 女人들

  • 東亞日報
  • 入力 2014年 6月 17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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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敎授의 高句麗 이야기]

평양 동명왕릉 전시관 벽화. 유화부인이 주몽에게 활 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윤명철 교수 제공
平壤 東明王陵 展示館 壁畫. 宥和夫人이 朱蒙에게 활 쏘는 方法을 가르쳐주고 있다. 윤명철 敎授 提供

윤명철 동국대 교수
윤명철 東國大 敎授
高句麗의 사내들에 對해 中國人들은 “교만하고 放恣하다(後稍驕恣)” “걸어 다니는 것이 달리는 것 같다(行步皆走)”라고 記錄했다. 바꿔 말하면 東아시아 强大國답게 自意識이 剛했고, 堂堂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高句麗 女人들은 어땠을까. 歷史 記錄에 依하면 사내들 以上으로 偉大했다.

● 朱蒙의 어머니 유화부인

高句麗 建國神話와 關聯 史料에 登場하는 最初의 女人은 朱蒙의 어머니인 油畫(柳花·버들꽃)夫人이다. 高句麗 建國神話에 依하면 油化는 물의 神(神) ‘하백’의 딸이었다. 油畫가 江에서 노는 모습을 보던 天帝(天帝)의 아들 解慕漱는 첫눈에 반했다. 油畫도 解慕漱를 사랑해서 아버지의 反對를 무릅쓰고 婚約을 한다. 結婚이라는 重大한 決定을 할 때 穩全히 自身의 選擇으로 했다는 女性의 自意識을 反映하는 대목이다.

두 사람은 鴨綠江가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解慕漱는 油畫를 버려두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아버지는 이 모든 일이 自身의 말을 듣지 않은 탓이라며 딸 油畫를 白頭山 近處로 追放해버렸다. 혼자 버려진 그女를 東扶餘의 임금이 宮으로 모셨다. 高句麗 建國神話는 어두운 房에 居處하던 그女의 倍로 하늘에서 빛이 내려앉았고, 곧 胎氣가 생겼다고 傳한다. 그리고 유화부인은 알을 낳았는데 그 알을 깨고 나온 아이가 後날 高句麗를 세운 朱蒙(활을 잘 쏘는 사람)이다. 광개토大王 碑文에는 朱蒙이 天帝의 아들이고 하백(宥和의 아버지)의 外孫이라고 記錄되어 있다.

朱蒙은 東扶餘 王室에서 驅迫을 받으면서도 잘 자랐다. 그를 훌륭하게 기른 사람은 어머니 유화부인이었다. 유화부인은 어린 朱蒙에게 활쏘기를 勸하고, 名馬를 고르는 方法을 알려주는 等 後날을 圖謀할 王의 그릇으로 키웠다.

어느 날 東扶餘의 王子와 兄弟들이 朱蒙을 猜忌하여 죽이려 한다는 事實을 알게 된 유화부인은 朱蒙을 脫出시키면서 夫人과 子息을 自身에게 맡기고 南쪽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고 命한다. 朱蒙은 어머니 말에 따라 南으로 가 紀元前 37年에 高句麗를 建國하였는데 그가 바로 동명성왕이다.

高句麗에서는 宥和夫人을 ‘夫餘神’이라는 이름으로 모셨다. 國內城의 東쪽에는 國棟對穴(큰 洞窟)이 있는데, 임금들은 10月에 同盟(國家祭祀)을 지낼 때 이곳에 가서 扶餘身上을 首都로 모셔와 祭祀를 지냈다.

高句麗와 唐나라가 戰爭을 벌일 때 遼東省이 점령당할 危機에 놓인 적이 있다. 이때 祠堂에 모셔둔 扶餘身上이 사흘 동안이나 피눈물을 흘렸다는 中國의 記錄이 있다. 앞에서도 言及했지만 自由 意志로 사랑을 選擇한 유화부인은 個人의 苦難을 참아내면서 아들에게 高句麗를 세우게 한 建國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 朱蒙의 아내 소서노

유화부인을 모신 신상이 있던 중국 길림 성 집안 시에 있는 국동대혈.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윤석하 사진작가 제공
宥和夫人을 모신 身上이 있던 中國 吉林 成 집안 市에 있는 國棟對穴. 하늘에게 祭祀를 지내던 곳이다. 윤석하 寫眞作家 提供
高句麗의 유화부인 다음 女人으로 소서노(召西奴)가 있다. 高句麗 建國說話에 따르면 홀본扶餘(또는 卒本扶餘·卒本扶餘) 王(貴族이라는 說도 있다)의 둘째 딸이었다. 홀본扶餘는 只今의 랴오닝(遼寧) 性 환런(桓仁) 地域으로 推定된다. 三國遺事는 ‘同名制(東明帝)가 북부여(北扶餘)에 이어 일어나 卒本州(卒本州)에 都邑을 定하고 卒本扶餘가 되었는데, 이것이 高句麗(高句麗)의 始作이다(東明帝繼北扶餘而興 立都于卒本州 爲卒本扶餘 卽高句麗之始)’라고 記錄하고 있다.

어머니의 命에 따라 東扶餘를 脫出한 朱蒙은 홀본扶餘에 當到했는데 朱蒙을 본 소서노는 그가 뛰어난 能力을 갖춘 人物임을 看破했다. 두 사람은 婚禮를 올렸다. 朱蒙은 自然스럽게 홀본扶餘의 勢力을 接受했다. 이것은 북부여 東扶餘 홀본附與가 葛藤을 벌이는 過程에서 北夫餘系와 홀본夫餘系가 聯合한 것이므로 一種의 婚姻同盟과 類似하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나온 子息들이 바로 ‘沸流’와 ‘온조’다(삼국사기). 朱蒙은 南滿洲 一帶는 勿論이고 鴨綠江을 넘고 白頭山, 豆滿江 河口까지 領土를 넓혔다. 이때 夫人 소서노의 政治力 經濟力 軍事力이 絶對的이었다. 소서노는 뛰어난 政治家였다.

朱蒙에겐 故鄕을 떠날 때 아들을 두고 왔는데 그가 바로 琉璃王子였다. 그가 어느 날 아버지를 찾아온다. 朱蒙은 琉璃를 太子로 삼았는데 이는 자칫하면 次期 王權을 놓고 沸流, 온조와 피비린내 나는 權力爭奪戰을 豫告할 수 있는 狀況이었다.

소서노는 男便과 두 아들, 의붓아들人 琉璃를 모두 살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막 기틀을 잡아가는 高句麗의 分裂을 막아야만 했다. 絶對權力의 中心에 있었던 소서노는 不確實性 속에서 智慧로운 決定을 내렸다.

이들에게 權力鬪爭 代身 韓半島 南쪽 地域의 新天地를 開拓하게 하는 決定을 내린 것이다. 그女는 아들들에게 “競技만과 서울地域을 掌握한다면 큰 勢力을 形成할 수 있다. 漢江 物流網과 肥沃한 農土를 利用하여 韓半島의 南쪽을 掌握할 수 있다”며 “中國 地域과 바다로 交流할 수 있고, 南北 沿近海 航路를 利用하면 日本列島까지도 交流할 수 있으니 밖으로 나가 領土를 開拓하라”고 했다. 비류와 온조는 各各 남으로 내려가 소서노의 支援에 힘입어 비류백제와 온조백제(慰禮城에 都邑地를 둠)를 建國해 時調(始祖)가 된다.

● 溫達將軍의 아내 平岡公主

高句麗의 세 番째 女人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平岡公主다. 三國史記 ‘溫達傳’에 平岡公主에 關한 記錄이 있는데 歷史的 事實과 說話가 뒤섞여 있는 記錄이 아닌가 推定된다.

平岡公主는 平原王의 公主이며 영양왕 榮留王의 귀여운 누이同生이다. 어릴 때 울보였던 그女에게 평원왕은 “자꾸 울면 바보 溫達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하곤 했다.

後날 成長한 平岡公主는 貴族 집안과 婚姻하라는 아버지의 指示에 對해 “임금의 말은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의 秩序가 무너질 것”이라며 王室을 나와 바보 溫達과 婚姻했다.

公主였던 그女는 오두幕에 살면서 장님인 媤어머니를 至極精誠으로 보살폈고 나무꾼인 男便에게는 말(馬) 사는 法을 알려주며 工夫와 武藝를 가르쳐 凜凜한 戰士로 만들었다. 그 바보 溫達은 大將軍이 되어 北쪽에서 侵攻해온 北周(北周)의 大軍을 殲滅했다.

온달將軍은 다시 南쪽 國境으로 出戰했다. 竹嶺 以南의 領土를 收復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노라는 宣言을 남기고. 그는 新羅軍과 싸우다 峨嵯山 戰鬪 途中에 화살에 맞아 戰死했다. 그런데 屍身을 모신 棺이 움직이지 않는 것 아닌가. 悲報를 듣고 달려온 公主가 峨嵯山까지 내려와 棺을 어루만지자 비로소 움직였다고 한다. 溫達은 高句麗의 大將軍이었다. 그 온달의 뒤를 이은 名將이 바로 을지문덕이다.

일찍이 古代에는 母系社會가 있었다. 母系社會에서는 女性, 어머니가 中心이었다. 自然히 우리 古代 歷史에도 與信이나 女性과 關聯된 이야기가 많이 傳해진다. 오랜 歲月이 지난 오늘날 女性들이 다시 많은 나라에서 男性 中心의 家父長制 慣習을 깨고 指導者로 登場하고 있다.

母性은 平和 和解 包容 사랑 創造 敎育 生態 治癒 等 肯定的인 價値를 包含하고 있다. 그런 點에서 母性 리더십은 未來型 리더십이다. 우리 歷史 속 女性들을 再照明하는 일은 그래서 重要하다.

윤명철 東國大 敎授
#유화부인 #소서노 #朱蒙 #平康公主 #高句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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