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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국 記者의 슬기로운 아빠生活] <7>“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腸炎과 KT 火災|東亞日報 </7>

[변종국 記者의 슬기로운 아빠生活] <7>“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腸炎과 KT 火災

  • 東亞日報
  • 入力 2018年 11月 30日 16時 3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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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材源과 술을 마시고 있던 22日 밤. 아내에게서 온 不在中 通貨 文字 6件이 찍혀 있었다. (핑계 : 民防衛 끝나고 바로 約束 場所에 온 탓에 無音으로 해놨던 것) 아차, 뭔가 일이 터졌구나 싶었다.

“애가 吐하고 亂離 났어, 只今 올 수 있어?”

어지간하면 알아서 일 處理를 하던 아내도 多急했나보다. 곧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向했다. 腸炎에 걸린 듯 했다. 배가 아프다며 울고 있는 첫 째. 일정한 週期로 腹痛을 呼訴하며 하얀 토를 했다. 腸炎인가 싶었지만, 或是나 싶어 應急室로 向했다. 술을 마셔서 運轉을 할 수 없었지만, 多幸히도 隣近에 居住 中인 親 동생을 불렀다.

應急室에는 비슷한 症狀을 呼訴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우리 애는 가자마자 토를 또 했다. 배가 아프다며 울더니 아예 應急室 待機 場所 바닥에 누워버렸다. 소파에 누우라고 해도 울고불고 바닥이 좋다며 소리를 지른다. 나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안 다니는 곳으로 옮겨 그냥 내버려 뒀다. 다른 保護者들의 “잰 뭐지?” 하는 視線. 衛生的이진 않을 病院 바닥. 하지만 그 瞬間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便하다는데, 場所가 便器 位라면 어떻겠는가. 只今 생각해보면 吐하고 울다 지쳐서 어디든 눕고 싶어 했던 것 같다. 精神이 없어 寫眞 한 張도 못 남겼다.

X-RAY를 찍었다. 배에 邊과 가스가 가득하단다. 비슷한 症勢를 인터넷에 찾아봤을 때 나오는 後期와 恰似했다. 그런데 病院에 오기 前에 응가를 했다. 한 番에 快辯을 못 했을 수도 있지 싶었다. 館長을 해야 한단다. 나도 10살 때 눈 手術을 하면서 館長을 한 番 해봤다. “正말 이건 아닌데”라는 苦痛의 記憶이 고스란히 아직도 남아있다. 그 苦痛을 애가 느껴야 한다니.

灌腸藥이 들어가자마자 亂離는 始作됐다. 館長 有經驗者로서 泄瀉가 나올 것 같은 苦痛을 참는 건 어른도 힘들다. 特히 括約筋 調節에 能手能爛夏至 않은 아이들의 境遇, 或是나 規定된 灌腸藥 忍耐 時間을 참지 못하고 排便을 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看護師는 衛生掌匣을 주면서 아이의 응가 排出口를 막으라고 했다. 나는 渾身의 힘을 다해 막았다. 萬若의 噴出 事態를 막기 위함이었다. 5分만 참으라고 했다. 5分 正말 안 가더라. 아이게 “노래 불러 줄까?” “우리 예쁜 아가 괜찮아 아빠 있잖아~” 等等 別別 소리를 다 했지만 통할 理가 있겠는가. 달램을 빠르게 抛棄하고, 5分 동안 排出만 막자는 役割에 忠實했다. 無事히 묵은 變異 나와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5分이 지났다. 아이는 苦痛 속에서 응가를 봤다. 그런데 생각만큼 응가가 나오질 않았다. “아, 한 3分 더 참게 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增稅는 好轉되지 않았다. 그날 應急室에서만 3番을 더 吐했다. 나는 分明 腸炎 같은데, 病院에선 腸炎이라는 말을 안 해줬다. 處方箋에 적힌 藥을 檢索해 본 뒤에야 腸炎이구나 싶었다.

집에 오고 나서는 밤샘 看護의 始作이다. 아이는 밤이면 牛乳를 찾는데, 牛乳는 腸炎에 좋지 않다고 했다. 亦是나 밤새 牛乳를 찾았다. 주지 못하는 理由를 說明해도 莫無可奈다. 理解가 不可能한 狀況이었다. “答이 없다”라는 말이 가장 適切했다. 嘔吐는 밤에도 이어졌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다음날(25日) 아이는 如前히 腹痛을 呼訴했다. 아이는 지쳐서 인지 잠을 오래 잤다. 그런데 豫想치도 못한 곳에서 問題가 터졌다. 바로 KT아현 知事 火災였다. 火災의 餘波로 아이의 苦痛을 달래주던 올레 TV가 멈춘 것이다. 超非常이었다. 와이파이度 안 된다. 多幸히 두 아이는 자고 있었다. 그런데 何必 또! 그 고요한 瞬間 깨고 아파트 案內 放送이 흘러 나왔다.
“띵동~ 댕桐~”

아 제발. 아이들이 깰 까봐 나도 모르게 手巾으로 스피커를 막아 본다. 그게 잘도 막히겠다.
“아아 管理事務所에서 말씀드립니다.” (아~아~는 都大體 왜 하는 거지?)

“KT火災로 인하여~~~.” 둘째가 찡얼大氣 始作했다. 放送이 끝났다 싶었을 때!

“다시 한番 말씀드립니다~~.” (아니 알겠다고. 國民 安全處에서도 文字 왔다고) 두 番째 案內 멘트 때는 “KT火災의 迅速한 復舊를 위하여 住民 여러분의 協助 付託드립니다”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KT火災가 났는데 住民 協助를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마무리 해보시려 努力한 管理事務所 德分에 첫 째가 깼다. (案內放送을 하지 말라는 趣旨가 아닙니다) 案內放送 볼륨 調節窓紙는 왜 없는 건지. 둘째도 울기 始作했다. 나는 漸次 自暴自棄 狀態로 빠져들었다. 일어난 첫 째는 삐죽대다가 “뽀로로 보여주세요”라는 말을 뱉었다. 亡했다. 千萬 多幸인건 携帶電話는 KT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記者라는 職業 上 携帶電話 테더링 해야 하는 境遇가 많아, 無制限 데이터 料金制를 利用한 것도 神의 한 首였다. 인터넷과 TV, 携帶電話를 家族 패키지? 로 묶었다면. 아찔했다. 通信社를 分散 利用을 했던 것이 家庭의 動搖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었다. 수많은 變數들의 饗宴이 수놓은 나날들이었다.

한 숨을 돌렸을 즈음. 나도 嘔吐를 하기 始作했다. 아뿔싸. 腸炎이 傳染 된다는 걸 몰랐다. (櫓로 바이러스가 傳染된 것으로 보인다더라) 嘔吐와 排便 等을 깨끗하게 處理하고 手巾 等을 함께 使用하지 않는 注意와 衛生에 더 神經을 써야 했다. 多幸히 둘째는 無事하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이라고 했던 아빠의 精誠이 하늘에 닿았나보다. 나는 只今도 아래위로 좍좍 이다. 答이 없다.

갑자기 記者의 本分을 다하고 싶었다. 어리이집 衛生 狀態는 어떤지 等 取材 아닌 取材를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슬기로운 한 父母의 助言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 답니다.” 그래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健康하게만 자라다오!

변종국 記者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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