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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散家族 問題 못풀고 世代 넘기면 統一도 어려워져”|동아일보

“離散家族 問題 못풀고 世代 넘기면 統一도 어려워져”

  • 東亞日報
  • 入力 2015年 2月 1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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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一코리아 프로젝트 3年次/準備해야 하나 된다]
[統一은 治癒다] <下>이병웅 前南北赤十字會談 代表

이병웅 한서대 국제인도주의연구소장이 “북한을 미워하더라도 북한 주민을 돕는 건 통일을 위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위 사진은 이 소장(아래쪽)이 2002년 대한적십자사 총재특보 시절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후보지인 금강산 온정리 조포마을을 둘러보는 모습.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동아일보DB
이병웅 한서대 國際人道主義硏究所長이 “北韓을 미워하더라도 北韓 住民을 돕는 건 統一을 위해 必要하다”고 呼訴하고 있다. 위 寫眞은 이 所長(아래쪽)李 2002年 大韓赤十字社 總裁特報 時節 離散家族 面會所 設置 候補地인 金剛山 온정리 粗暴마을을 둘러보는 모습. 홍진환 記者 jean@donga.com·동아일보DB
“映畫 ‘國際市場’에서 主人公 덕수가 少年 時節 겪었던 興南撤收, 그게 꼭 내가 處했던 狀況이올시다.”

1950年 12月, 아홉 살 少年이었던 이병웅 한서대 國際人道主義硏究所長(74). 醫師이자 基督敎人이던 그의 아버지는 北韓 共産主義者들의 監視를 받자 어린 病雄을 데리고 故鄕인 咸鏡南道 北靑을 떠났다. 12月 어느 날 해질 무렵 그가 탄 汽車는 興南驛에 到着했다. 어머니와 누나는 다음 날 만나기로 했지만 北靑驛과 興南驛 사이에서 戰鬪가 벌어져 길이 끊겼다. 生離別이었다. 零下 20度의 추위에 떨며 열흘을 넘게 興南埠頭에서 버텼던 少年 病웅은 아버지와 함께 美國 軍艦을 타고 慶南 巨濟로 向했다.

21年 뒤인 1971年. 中央情報部(現 國家情報院) 職員으로 公職 生活을 하던 이 所長은 그해 처음 始作된 南北赤十字會談 支援 事務局으로 옮겨 離散家族 問題 解決에 뛰어들었다. 33年 뒤인 2004年 大韓赤十字社 總裁特報로 退職할 때까지 南北赤十字會談 首席代表, 赤十字社 事務總長을 歷任한 그는 南北 離散家族 會談의 산證人이 됐다.

“一線에서 물러날 때까지는 北韓에 離散家族이 있다는 얘기를 一切 하지 않았어요. 내가 離散家族 問題를 다루고 있는데 (私的인 일로) 會談에 障礙가 될까 봐….”

以後 民間人 身分으로 北韓에 갔을 때에야 처음으로 “내 故鄕이 北쪽이다. 어머니 生死만 알려 달라”고 付託했다. “어머니와 누나가 살아있다는 消息만 들었어요. 돌아와 離散家族 相逢 申請을 했지만 機會는 얻지 못했어요.” 그는 “어머니가 1916年生이시니 只今은 돌아가셨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第一 안타깝고 서글픈 게 뭔지 아오? 사랑하던 어머니 얼굴을 잊어버렸어. 키가 좀 크시다. 얼굴이 길쭉하셨던 것 같다. 이것만 생각나….”

○ “戰爭 傷處와 미움 풀어야 統一”

“離散家族의 苦痛은 離散家族 아니면 잘 몰라….”

離散相逢 對象者로 選定이 繼續 안 되니까 “내 財産 半을 줄 테니 非公式的으로 生死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그에게 懇切히 請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離散家族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所長이기에 올해 설을 契機로 한 離散家族 相逢 霧散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는 統一 過程에 離散家族의 아픔을 治癒하는 게 重要하다는 메시지를 傳했다.

“統一은 쉽지 않아요. 6·25戰爭 被害者들이 南北에 다 있기 때문에 이들의 傷處를 治癒하지 않는 以上 어려워요. 많은 사람이 戰爭으로 죽고 헤어졌어요. 그러니 마음의 미움을 풀지 않고는 어려워요. 그래서 離散家族이 만나 울면서 같은 同胞임을 確認하는 게 重要한 겁니다.”

○ “離散家族 會談이 7·4共同聲明으로”

그가 1971年 南北赤十字會談에 뛰어든 것은 어떻게든 離散家族 問題를 解決하고픈 懇切함 때문이었다.

朴正熙 前 大統領 時節 離散家族 赤十字會談을 하는 過程에 板門店 祕密接觸이 이뤄졌고, 1972年 7·4南北共同聲明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說明이다. “離散家族과 같은 人道的 問題 對話가 南北 當國 間 政治 對話로 이어지는 始發이 되는 것이지. 離散家族 問題는 南北 間 懸案을 푸는 捷徑이오.”

그는 離散家族 問題를 통해 南北이 信賴를 쌓을 解法으로 ‘人道主義的 相互主義’를 提示했다. “離散家族은 人道的 問題이기 때문에 代價 없이 解決돼야 하지만 北韓이라는 相對가 要求하는 게 있는 만큼 戰爭物資로 利用되지 않을 對北支援을 통해 離散家族 問題를 解決할 수 있다”는 것이다.

○ “離散家族 問題 解決 없이 同質性 回復 不可能”

“얼마 前 한 세미나에서 離散家族 問題 解決을 위해 若干의 對北支援이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莫無可奈로 ‘안 된다’는 保守 人士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北韓 人口 2400萬餘 名 中 1500萬 名은 끼니를 걱정해야 해요. 우리 10代들은 170cm가 넘죠? 北韓은 커봐야 160cm 未滿이라고 해요. 이러면 韓民族이라고 해도 統一 뒤에 南北 사람들 間에 엄청난 差異가 나겠지요. 對北支援은 統一韓國의 社會相과 直結된 問題입니다.”

그 亦是 6·25戰爭으로 家族과 離別한 被害者이지만 “北韓 住民을 돕는 건 設使 北韓을 미워하더라도 統一을 위해 必要하다”고 强調한다.

그는 時間이 자꾸 가는데 離散家族 問題는 제자리걸음 하는 걸 매우 걱정했다. 한때 一千萬 離散家族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具體的인 數字는 아니었다. 6·25戰爭 當時 南쪽으로 내려온 約 500萬 名을 念頭에 둔 하나의 象徵이었다. 그런 離散家族들이 時間이 지나며 急激히 줄고 있다.

“結局 南北이 交流를 繼續하면서 世代가 가고 그 過程에 變化가 생겨야 平和統一이 可能해요. 그런데 世代가 그냥 가면 안 돼. 南北이 같은 民族이라는 同質感을 가져야지. 내 아들도 마흔여섯 中年인데, 自身이 離散家族이라는 槪念이 全혀 없어요. 生前 보지도 듣지도 못한 北韓의 할머니, 姑母를 어떻게 알겠어요. 中年層도 그런 槪念이 없는데 10代, 20代는 더할 거 아니오. 離散家族의 傷處를 어루만지지 못한 채 다 죽고 이대로 世代가 넘어가면 同質性 回復도, 統一도 어려워져요. 이제는 꼭 풀어야 해.”

▼ 離散家族 全員 生死確認→ 常時 相逢 ▼

政府 ‘離散 根本的 解決’ 構想은
不規則한 ‘이벤트 相逢’ 넘어서야… 北全面 生死確認 費用도 變數


南北 當國 間 會談이 成事되면 政府가 最優先으로 다룰 議題는 바로 離散家族 問題의 根本的 解決이다.

政府는 지난해 12月 末 大統領 直屬 統一準備委員會를 내세운 南北 當國 間 會談을 提議하면서 “來年(2015年)에 離散家族 問題의 劃期的인 解決이 있어야 한다”고 强調했다. 統一部는 지난달 大統領 業務報告에서 “離散家族 拉北者 國軍捕虜 問題의 根本的 解決을 南北對話의 優先的 議題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現在처럼 不規則하게 이뤄지는 이벤트式 相逢으로는 根本的 解決이 不可能하다는 指摘이 많다. 政府의 새로운 接近法에는 이를 뛰어넘을 妙案이 必要하다는 뜻이다.

政府 高位 關係者는 “離散家族 相逢을 繼續 推進하되 離散家族 全員의 生死 確認을 北韓에 提案할 方針”이라고 말했다. 北韓이 應해 離散家族 全員의 生死를 確認하면 相逢이 切實한 夫婦-兄弟-父母의 直系 家族은 1萬 名 以下로 줄어들 것으로 政府는 推算하고 있다. 이를 土臺로 자유로운 書信 交換과 함께 離散家族들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常時 相逢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게 政府의 構想이다. 한 消息通은 “박근혜 大統領은 北韓에도 離散家族이 있는데 問題를 풀면 그들도 좋지 않으냐는 認識을 갖고 있다”고 傳했다.

問題는 離散家族 問題를 政治的 事案이라고 主張하며 解決에 消極的인 北韓을 어떻게 說得하느냐다. 政府 高位 當局者가 지난해 12月 記者들과 만나 “生死 確認과 書信 交換 等 離散家族 問題를 풀기 위해 政府가 다른 部分에서 北韓에 줄 게 있으면 積極 考慮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苦悶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줄 수 있을지’에 對해 政府는 公開的인 言及을 꺼리고 있다. 人道的 問題를 푸는데 北韓에 代價를 줘야 하느냐는 保守 輿論의 否定的 認識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專門家들은 生死 確認 시스템을 갖춘 韓國과 달리 北韓이 全面 生死 確認에 나서려면 많은 費用이 들어가는 現實을 考慮한 支援도 檢討해야 한다고 指摘했다. 名分과 當爲에 머물러 있는 離散家族 問題를 實質的으로 解決하기 위해서는 果敢한 方式의 戰略的 接近이 必要하다는 것이다.

▼ 來日이면 늦으리… 70代 以上 高齡者가 82% ▼

南 生存 離散家族 6萬8303名… 年6800名씩 만나야 10年內 相逢


離散家族情報統合시스템에 따르면 現在 生存한 離散家族(韓國 側 相逢 申請者)은 6萬8303名(1月 現在)이다.

하지만 當局 次元의 離散家族 相逢이 本格化된 2000年 以後 올해까지 15年間 北韓에 있는 家族의 生死를 確認한 韓國 側 離散家族은 3496名, 北韓에 있는 家族을 만난 離散家族은 2546名에 不過하다. 畫像相逢으로 만난 家族 1082名을 包含해도 3628名이다.

時間이 갈수록 離散家族은 고령화되고 있다. 現在 韓國 側 離散家族 中 70代 以上의 高齡層이 차지하는 比率은 82.1%다. 60代 以上은 離散家族의 92.2%에 達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平均 期待壽命으로 볼 때 離散家族은 20年 안에 거의 死亡하고 70歲 以上의 高齡層 離散家族은 10年 안에 大部分 死亡할 것”으로 分析했다.

結局 現在 方式처럼 한 番 相逢行事에 100名의 離散家族이 北韓의 離散家族을 만나는 方式으로 10年 안에 離散家族 問題를 解決하려면 算術的으로 每年 6800名꼴로 만나야 하는 셈이다.

윤완준 記者 zeitung@donga.com
#統一 #이병웅 #南北赤十字會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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