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00年 맞이 企劃/韓國企業 100年, 퀀텀점프의 瞬間들]
1921年 慶南 晉州에 新式學校 開校… 儒學의 고장서 新文物 接하며 開花
LG그룹 創業主 九人會 會長의 故鄕인 慶南 진주시 지수면은 우리나라 財界의 發祥地라고 볼 수 있다. 三星, LG, GS, 曉星, LS 等이 指數面과 이런저런 因緣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九人會 會長은 1920年에 이웃 허만식 氏의 딸 을수 孃과 結婚하기 前까지만 해도 故鄕을 지키는 儒學者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弘文館 敎理를 지낸 祖父로부터 6歲부터 漢學을 배웠다. 萬石꾼 許 氏와의 因緣은 丘 會長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아내의 親庭에는 신문물을 接한 親戚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1年 지수면 勝算마을에 新式 學校인 ‘指數普通學校’가 생기자 손위 妻男은 丘 會長에게 이 學校에 다녀볼 것을 勸했다. 그해 4月 丘 會長은 普通學校 2學年에 編入했다. 나중에 서울로 留學을 가게 된 것도 丈人의 支援 德分이었다.
指數에 新式 學校가 생겼다는 消息에 慶南 宜寧郡에 살던 삼성그룹 創業主 이병철 會長도 指數普通學校로 留學을 오게 된다. 當時 許 氏 一家와 結婚한 둘째 누나가 指數에 살고 있었다. 丘 會長보다 3歲 아래인 李 會長은 1922年 12歲 때 指數普通學校에서 舊 會長과 遭遇한다. ‘湖巖自轉’에 따르면 누나 집에서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자른 그는 當時를 ‘開化의 날’로 回想했다.
효성그룹 創業主인 趙洪濟 會長도 故鄕은 慶南 咸安郡이지만 비슷한 時期에 指數普通學校를 다녔다. 허정구 삼양通商 創業 會長도 이 學校를 거쳤다. 조 會長과 허정구 會長은 後날 삼성그룹 創業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1945年 光復 直後 釜山에서 貿易業을 準備하던 九人會 會長을 허만정 會長이 찾아와 “내 아들(高 허준구 GS建設 名譽會長) 사람 만들어 달라”고 맡기면서 두 家門의 本格的인 同業이 始作됐다. 1947年 락희化學工業 創業 以來 이들의 同業 關係는 58年間 이어졌다.
김현수 記者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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