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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傳統市場을 가다] <1>日나가하마-히코네 桑田碧海|東亞日報 </1>

[世界 傳統市場을 가다] <1>日나가하마-히코네 桑田碧海

  • 東亞日報
  • 入力 2013年 5月 20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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琉璃工藝 ‘스타商品’ 띄우자… 年 244萬名 찾는 名品市場 變身

3일 일본 나가하마 전통시장에서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인구 6만 명의 평범한 농촌도시 나가하마는 1980년대 유리공예를 마을의 대표 상품으로 키운 결과 이제는 주말 하루 평균 2만여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나가하마 시장의 명물 ‘구로카베’다. 나가하마=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3日 日本 나가하마 傳統市場에서 商人들과 觀光客들이 取材陣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人口 6萬 名의 平凡한 農村都市 나가하마는 1980年代 琉璃工藝를 마을의 代表 商品으로 키운 結果 이제는 週末 하루 平均 2萬餘 名의 觀光客을 불러들이고 있다. 뒤로 보이는 建物이 나가하마 市場의 名物 ‘九老카베’다. 나가하마=정호재 記者 demian@donga.com
《 ‘골리앗 流通業體’와의 競爭 속에 國內 傳統市場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先進國에서도 傳統市場들이 巨大 資本을 武器로 한 大型마트의 攻勢에 놓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골리앗의 弱點을 파고들어 生存에 成功한 海外 傳統市場度 적지 않다. 小規模 傳統市場만의 悠然함과 專門性으로 오히려 地域商圈을 主導하고 있다. 동아일보 特別取材팀이 主要 先進國의 傳統市場 成功祕訣을 現地 取材해 3回에 걸쳐 紹介한다. 》

日本 第2의 都市 오사카(大阪)에서 汽車로 1時間 半 떨어진 詩가(滋賀) 現 나가하마(長濱) 時.

1980年代 後半까지만 해도 이곳은 늙어가는 日本 社會를 端的으로 보여주는 人口 6萬 名의 農村都市였다. 日本 最大 크기의 比와(琵琶) 湖水와 痕跡만 남은 옛 城郭을 빼면 볼 게 아무것도 없는 이 都市를 일부러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農村都市 나가하마 詩는 1990年代 들어 奇跡처럼 復活했다. 지난해 나가하마를 다녀간 觀光客은 244萬 名. 地域 名物인 나가하마 市場의 賣出은 지난해 8000億 원이나 됐다. 日本 言論들은 나가하마를 ‘魅力的인 마을 全國 1位’로 꼽고 있다.

나가하마의 奇跡을 만든 건 地域 商人과 住民들이 意氣投合해 만든 ‘九老카베(黑壁)’라는 傳統 琉璃工藝 作業場 및 展示場이었다. 나가하마 市場의 한복판에 位置한 九老카베는 日本 全國에서 손님을 끌어모으는 市場의 代表 스타인 셈이다.

九老카베의 琉璃工藝 專門家인 아사히 지사토(淺井千里·33) 氏는 “日本 美術界에서 ‘九老카베’란 타이틀은 興行 保證手票”라며 “琉璃工藝를 보러 오는 손님 德分에 傳統市場까지 좋아져 보람이 倍가 된다”고 말했다.

○ “스타 品目을 키웠더니 市場이 살아났다”

이달 初 日本의 黃金連休를 맞은 나가하마 傳統市場은 全國 各地에서 몰려든 觀光客으로 ‘門前成市’였다. 特히 日本 最大 規模의 琉璃工藝 展示場이 있는 구로카베는 觀光客의 必須코스. 頂上級 琉璃工藝가 13名이 各自의 作業室을 運營하고 있다. 觀光客들은 琉璃窓 너머로 匠人들의 섬세한 손놀림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感歎했고 各種 琉璃工藝 製作에 直接 參與하며 즐거워했다.

1000원臺의 小型 裝飾品에서 1000萬 원이 넘는 藝術作品까지 크기나 模樣도 各樣各色이었다. 特히 匠人들이 만든 琉璃 工藝品 곁에 늘어선 다른 店鋪들의 品格도 덩달아 올라갔다.

休日을 맞이해 오사카에서 온 오카다 도모코 氏(26)는 “琉璃工藝로 有名한 九老카베를 直接 보고 싶어 나섰다”면서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많아 하루 더 머물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琉璃工藝 하나가 都市 全體를 觀光休養 都市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나가하마 商工會議所에서 30餘 年을 일하다 傳統市場 事務局長으로 일하는 요시이 시케히吐 氏(72)는 “歷史 都市라지만 내세울 만한 商業 基盤이나 觀光 資源은 거의 없었다”며 “地域 住民과 商人이 意氣投合해 1800年代 이 마을에서 蕃盛했다가 사라진 ‘琉璃 工藝’를 떠올리지 못했다면 只今도 洞네 사람 몇몇만 오가는 市場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가하마 市民들은 急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于先 商人과 地域 住民이 協議體를 構成해 모두 共感하고 힘을 모을 수 있는 方案을 構想했다. 마을의 歷史와 傳統을 發掘하고 保存하기 위한 ‘風格(風格) 있는 마을 만들기 委員會’였다.

琉璃工藝를 解決策으로 떠올린 委員會는 直接 유럽을 찾아 마케팅 技法을 배웠고, 젊은 琉璃工藝가를 招請해 商圈을 再構成했다. 1989年엔 十匙一飯 돈을 모아 쓰러져가던 옛 銀行 建物을 買入해 琉璃工藝家들을 爲한 九老카베를 만들었다.

九老카베에는 地域의 60餘 個 企業도 株主로 參與했다. 管理는 市場 商人이 하지만 有能한 專門家를 招聘해 經營을 맡겼다. 그렇게 번 돈은 傳統市場에 再投資한다는 게 第1의 原則이다.

이 같은 努力으로 ‘나가하마=유리공예’라는 브랜드가 全國에 알려지자 市場 全體의 變化는 더욱 빨라졌다. 요시이 事務局長은 “九老카베가 만들어진 뒤 마을 人口는 20%나 늘고, 100餘 곳에 不過하던 商店도 500餘 곳으로 늘었다”며 “400年 傳統의 마을 祝祭도 덩달아 復活해 새로운 地域 名物이 됐다”고 强調했다.

○ 傳統商品을 現代化한 히코네 市場

나가하마에서 南쪽으로 10km 떨어진 히코네(彦根) 市는 佛敎 寺刹이 많아 일찌감치 香과 醋를 만드는 匠人이 모여 살았다. 日本 近代化 以前만 해도 이곳에서 나온 香과 初는 日本 最高의 商品으로 認定받았다.

하지만 近代化와 함께 傳統産業은 生死의 岐路에 몰렸다. 하나둘 들어서기 始作한 大型마트는 히코네 市場의 숨筒을 조여 왔다. 히코네의 香과 初는 命脈만 維持하는 水準이었다. 더以上 이대로는 안 된다는 危機意識이 히코네 住民과 商人들 사이에 번졌다. 一旦 旣存 市場 골목을 넓히는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지만 問題는 그 안에 담을 內容이었다. 히코네 商人들은 ‘우리가 第一 잘하는 것’에 焦點을 맞췄다. 現代人들이 더는 祭禮儀式을 위해 香이나 秒를 使用하지는 않지만 집안의 小品과 명상용으로 使用하는 것에 注目했다.

히코네 商人들은 香과 初의 丈人을 說得해 現代人의 感覺에 맞춘 새로운 製品을 내놓았고 商品 包裝에도 各別한 功을 들였다. 結果는 大成功이었다. 히코네 市場에 오지 않으면 求할 수 없는 香과 초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기 始作했고 이들은 市場 全體 商圈에 活力을 가져왔다.

變化의 기운은 빠르게 傳播됐다. 隣近 가게 主人들도 家業으로 내려오던 떡, 菓子, 傳統人形 等의 褒章을 새롭게 바꾸고 現代化하기 始作했다.

야부打 忌惡視(62) 히코네 商人會長은 “스타 商品을 내세운 德分에 1年에 100萬 名의 外地人들이 全體 길이가 350m에 不過한 마을市長을 찾고 있다”며 “傳統의 品格을 잃지 않고도 現代式 商品을 내놓은 것이 成功의 理由”라고 밝혔다.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똑같은 商品을 팔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切迫함이 日本 特有의 匠人精神과 結合하면서 日本의 傳統市場은 옛 名聲을 回復해가고 있다.

나가하마·히코네=정호재 記者 demian@donga.com
#琉璃工藝 #나가하마 #傳統市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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